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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144화. 서리용 ( 2 )

       

       

       

       

       

       다그닥ㅡ 다그닥ㅡ

       

       잘 정리된 대로를 밟는 말발굽 소리가 울린다. 눈부신 태양빛을 반사하며 은하수처럼 흩날리는 흰 갈기. 늠름하게 자라난 크고 튼튼한 일각(一角).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고고한 자태로 뻗어지는 길고 늘씬한 다리.

       

       유니콘은 신께서 직접 빚은 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어지간한 귀족보다 우아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걸음마다 우아함과 품격이 뒤따랐고, 말 주제에 눈빛은 한없이 도도했다.

       

       

       “…조금만 가까이 와주면 안 될까.”

       

       《푸르륵! 나한테서 떨어져라! 위대하신 분의 명으로 어쩔 수 없이 널 주인으로 인정했다만, 나의 고귀한 육체에서 10보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이 신성한 뿔이 용서치 않으리!》

       

       반짝!

       

       허튼 말이 아니라는 듯, 유니콘의 뿔이 살벌하게 빛나며 한스를 위협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모습에 한스가 푹ㅡ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분들은 보석이나 멋진 무기를 받으셨던데, 왜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유니콘을 바라본다. 갈기를 휘날리며 도도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유니콘. 힐끗힐끗 눈동자가 움직이면서 길가의 여성들을 곁눈질한다.

       

       보나 마나 처녀인지 아닌지 탐색하는 것이리라.

       

       

       ‘…저런 변태말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쉰 한스는 걸음을 재촉했다. 텅 빈 도시락을 한 손에 들고 털레털레 흔들었다.

       

       

       《동정이여,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뭐? 동, 뭐?”

       

       《그대가 기분 나쁜 남성이기는 해도, 일단 나의 주인이니 너 혹은 이 녀석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법. 하여 동정을 동정이라고 칭하는 것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아아아니!! 지금 누가 동정이라는ㅡ!”

       

       

       대로 한복판에서 총각임을 들킨 한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동정인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하고 다닐 것도 아니었다.

       

       펄펄 뛰는 한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유니콘이 몇 번인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피식 웃었다.

       

       

       《이 퀴퀴하고 텁텁한, 홀애비 특유의 냄새. 나의 자랑스러운 뿔을 걸고 말할 수 있다. 그대는 틀림없는 동정이야.》

       

       “야이ㅡ!”

       

       

       참다 못한 한스가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ㅡ!

       

       

       “한스 님? 동…정? 동정이 뭔가요?” 

       

       

       지금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스의 목이 녹슨 관절처럼 삐걱거리며 천천히 뒤돌았다. 속으로는 아니기를 바라면서.

       

       

       ‘아…’

       

       

       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데이지가 보였다. 한스를 올려다보는 얼굴에는 순수한 궁금증만이 가득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어른스러운 모습에 가끔 잊고는 하지만, 데이지는 이제 고작 11살.

       

       동정이니 처녀, 순결과도 같은 이야기는 그녀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다.

       

       한스의 고개가 유니콘을 향해 휙 하고 돌아갔다.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유니콘이 데이지에게 쓸데없는 헛소리를 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촤앗!

       

       허나 아무리 내용물이 변태에 여자를 밝히는 한심한 녀석이어도, 그 육체는 틀림없이 신의 손길이 닿은 것. 유니콘은 바람처럼 교묘한 움직임으로 데이지에게 달려 나갔다.

       

       

       “와ㅡ 이 말이 아까 불꽃에서 나온 그 말이에요?”

       

       

       데이지가 유니콘을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유니콘의 외형만큼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니. 데이지의 반응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흠, 흠… 소녀여. 나는 그대처럼 순수한 꽃을 지키는 것이 의무인 몸. 하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그대는 저 동… 아니, 저 남성과 아는 사이요?》

       

       

       유니콘의 눈빛이며 말투는 기름이라도 바른 듯 미끌거리며 뚝뚝 흘러내렸다. 

       

       

       “한스 님이요? 한스 님은 저를 구해주신 아주 멋진 분이세요! 저의 영웅이에요!”

       

       《호ㅡ 그렇군. 실례지만 소녀여, 다리가 아프지는 않소? 내가 가시는 곳까지 태워다 드리지. 내 발은 바람보다 빠르고, 구름보다 가벼우니 어디까지라도 태워다 줄 수 있소.》

       

       “어, 아뇨. 저는 한스 님이랑 같이 갈 곳이 있어서…”

       

       《푸르륵ㅡ 저 동, 아니. 놈팽ㅡ 크흠! 저 남성과 함께 말이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겠소?》

       

       “같이 점심 먹고 도서관… 가려는데요.”

       

       《호오, 지식의 요람으로 향하는군. 소녀여, 이 몸은 이래 봬도 상당히 아는 것이 많아서 무엇을 물어보더라도 전부 대답해 줄 수 있다오. 허니, 따분한 도서관 같은 곳은 가지 말고, 나와 함께 볕 좋은 언덕에서 노래라도 한 소절 어떻겠소?》

       

       

       조금 반짝거리던 데이지의 눈동자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보기 좋고 화려한 것은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스가 신에게서 받은 것이기 때문.

       

       한스와 함께 도서관에 가려는 시간을 방해하는 가축은 필요가 없다.

       

       

       “한스 님, 어서 가요. 제가 읽기 쉬운 경전을 좀 찾아놨어요.”

       

       “어, 어? 경전? 왜?”

       

       “전에 보니까 한스 님만 경전을 하나도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전에…? 설마 너 처음 만났을 때?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전 한스 님과 관련된 건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데이지의 손에 이끌려가는 한스. 순식간에 혼자 남겨진 유니콘이 애타게 데이지를 부르짖으며 둘을 따라갔다.

       

       

       《소녀여ㅡ! 동ㅈ, 크흠! 주인! 나를 두고 가지 마시오!》

       

       다그닥ㅡ 다그닥!

       

       뒤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등지고 데이지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는 한스는 볼 수 없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누군가 데이지의 표정을 봤다면… 어린아이의 표정은 아니라고 했으리라.

       

       

       ‘동정… 동정…! 한스 님이 동정이야! 아직 여자와 연이 없으셨어!’

       

       히죽.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위로 올라간다. 애써 내리려고 해도 솟구친 입은 내려올 생각을 않았으니, 아무도 보지 못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7년.

       

       앞으로 7년 뒤가 기대되었다.

       

       

       

       

       

       *****

       

       

       

       

       

       길고도 길었던 콜로세움 이벤트의 마무리는 생각보다 수수했다. 콜로세움의 횃불이 타오르는 이팩트와 함께, 미리 설정해 둔 등수의 상품에 따라 각자 등수에 맞는 상품을 가져간다.

       

       삥뽕ㅡ!

       

       《케니스, 프리가, 이스칼, 카이사르의 성급 강화가 가능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곧장 강화.

       

       설마 강화 실패가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 강화가 터지는 사고 없이 무사히 성급 강화를 끝냈다.

       

       빠밤ㅡ!

       

       《성급 강화 완료! 1성 달성!》

       

       ‘1성 달성이라는 말은 2성, 3성… 그 위까지 있다는 소리인가?’

       

       

       케넬름이 설계한 게임이지만, 구조 자체는 참 지독하기 그지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콜로세움 UI를 종료했다

       

       슬쩍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새벽 2시에 가까워진 늦은 새벽. 내일도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려면 지금이라도 자야 한다.

       

       툭. 투툭.

       

       게임을 끄기 전에 신전이 보이는 메인 화면에서 무기나 몇 개 만들 생각으로 이곳저곳 터치했는데, 전에 없던 아이콘이 반짝였다.

       

       

       “뭐지 이건?”

       

       

       초원 한 구석에 놓인 서리알과 알을 껴안으며 둘러싼 드워프들. 서리알 위의 시계 마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툭, 터치하자 메세지 창 하나가 나타났다.

       

       

       《’서리가 낀 알’의 부화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정량의 ‘신앙심’을 사용하여 부화 촉진이 가능합니다!》

       

       ‘오, 서리알 이제 부화하나?’

       

       

       참 오래도 걸린 서리알의 부화. 직접 만져봤을 때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타조알과 비슷한 크기에 꺼끌꺼끌한 표면, 얼음처럼 서늘한 온도.

       

       안에서 뭐가 나올지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도마뱀이나 새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

       

       

       삥뽕ㅡ!

       

       《신앙심 사용 완료! ‘서리가 낀 알’의 부화가 더욱 빨라집니다!》

       

       

       가뜩이나 남아도는 신앙심이다. 이런 곳에 쓰지 않으면 쓸 곳은 ‘수수께끼 상점’ 밖에 없었으니, 아끼지 않고 팍팍 써준다.

       

       씰룩-! 씰룩-!

       

       곧장 부화할 줄 알았는데, 신앙심을 쓰고도 시간이 좀 남았는지 서리알은 좌우로 흔들리기만 하고 부화하지는 않았다.

       

       

       “으, 졸려…”

       

       

       점점 졸음이 몰려온다. 서리알의 부화를 못 보는 건 아쉽지만, 현생은 현생. 이제 진짜 자야 된다. 미련이 남았지만 게임을 껐다.

       

       머리맡 충전기에 연결한 핸드폰을 침대에 던진다. 곧장 눈을 감으니 잠이 솔솔 몰려온다.

       

       

       ‘내일… 출석하고… 상점 물건 확인…하고, 한스 사…탕…’

       

       

       가물가물하게 흐려지는 의식을 헤매면서, 내일 할 일을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

       

       

       

       

       

       ‘그것’이 기억하는 첫 감각은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 자신을 감싸안는 손길.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지만, 자신을 굉장히 아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텁! 터텁!

       

       감싸안는 손이 하나에서 두 개로, 네 개, 여섯 개… 시간이 갈수록 늘어갔고 기분 좋은 따뜻함은 답답할 정도의 후끈함이 되었다.

       

       

       ‘더워! 더워! 더워!’

       

       

       더웠다.

       

       미성숙한 자아와 덜 자란 몸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는 걸 느낄 정도의 온도! 자신을 둘러싼 무언가가 굉장히 많았다.

       

       

       ‘으악! 으아악!’

       

       

       떨쳐내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는 손길에 숨통이 턱 막힐 지경!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이 막을 부수고 싶었지만, 아직 덜 자란 몸으로는 턱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있는 힘껏 좌우로 발버둥 치는 것뿐.

       

       그렇게 후끈후끈한 열기 속에서 얼마나 보냈을까. 이변이 일어났다.

       

       스윽.

       

       몸 전체가 붕 뜨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통째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 푹푹 찌던 열기는 가시고,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찾아왔다.

       

       

       ‘따뜻해! 좋아! 너무 좋아!’

       

       

       어찌나 신이 났는지 덜 자란 몸으로 펄쩍 뛰어오르니, 자신을 감싼 막도 같이 뛰어올랐다.

       

       막을 통해 느껴지는 부드럽고 커다란 손. 따뜻하고 자상하다.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그것’은 깨달았다. 어미를 깨닫는 어린 짐승처럼,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쳤다.

       

       이 손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하여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뜨거운 손길들을 견디며 제 몸이 다 자라날 순간을 기다렸다.

       

       쩍ㅡ! 쩌적!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자신을 감싸던 막은 너무나 비좁고 약해져서, 힘차게 뻗은 발에 큰 금이 갔다. 하지만 부족하다.

       

       

       ‘한번 더!’

       

       콰직! 쩌저적!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두드리고 파괴한다.

       더 큰 세상을 위해, 지금까지의 세상에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마침내.

       

       콰지직ㅡ!

       

       하나의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포효한다.

       

       

       “삐이이익!!!”

       

       

       어린 서리용이 힘차게 울부짖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부드럽고 포근하고 따뜻한 후원!!! 감사합니다!! 유니콘은 처녀의 수호자!!!… 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처녀충의 이미지로…!! 불쌍한 녀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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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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