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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프란체의 발밑에서 일렁이는 그림자의 움직임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공기가 서늘해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의 등골에 오한이 깃들게 만드는 암전.

         

       극한의 스트레스. 조절할 수 없는 분노.

         

       프란체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카자르. 공작령을 전시 태세로 돌리렴.”

       “네?!”

       “힘을 과시하는 수밖에 없어.”

         

       진의 흔적을 찾았고, 마침내 곧 그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눈을 감으면 진이 웃는 모습이 아른거리고 귀를 닫으면 그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한 것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욕망으로 지금까지 달려왔고, 무너질 것 같은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그런데 이 모든 바람을 이룰 수 있는 문턱에서 시답잖은 방해를 받고 있다.

         

       “이 빌어먹을 성녀가…….”

         

       지금 프란체가 보여주는 반응이 그 성녀가 원하는 거라면 대성공이다. 박수까지 치며 축하해주고 싶을 정도로.

         

       “후우…….”

         

       프란체는 큰 숨을 내쉬며 흥분으로 인해 터질 거 같은 심장을 안정시켰다. 지금은 침착하게 데카르트의 분노를 보여줄 때.

         

       ‘내가 계속 당하고 있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지금까지의 행보와 여태껏 얻은 정보를 보면 성녀가 노리는 건 프란체의 목숨이라는 건 확정이다. 그러나 쉽게 당할 생각은 없다.

         

       “엑시드가 없는 게 크지만, 큰 상관은 없어. 정말로 전쟁을 할 거라는 의지만 보여주면 돼.”

         

       라데아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괜찮을까요…?”

       “괜찮아.”

         

       카자르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저는 찬성이에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했는데 계속 장난질을 치는 걸 보면 보여줄 때가 됐어요.”

         

       라데아는 그런 카자르가 의외였다. 항상 프란체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마다 치맛자락을 붙잡고 만류했는데…….

         

       그만큼 그녀도 분노했다는 거겠지.

         

       “보여주자. 데카르트의 전력을.”

         

       프란체의 손아귀에 있는 마수 군단만 8천. 인간계 최강의 소드 마스터 케일을 필두로한 기사단. 초월 마법사 카자르를 중심으로 한 마탑의 마법사.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려도 맞붙을 수 있는 전력.

         

       ‘황제는 이걸 몰라.’

         

       공작위에 오르면서 케일과 카자르에 대한 정보가 세간에 풀렸지만, 프란체가 거느리는 마수 군단을 모른다. 이를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이젠 말로만 하는 게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프란체는 곧장 전서를 펼치고 펜을 꺼냈다.

         

       “황실의 사자를 불러서 진정한 데카르트의 전력을 보여주고 누굴 건드리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려줄 거야.”

         

       전서의 내용은 황실의 사자를 불러라,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알리겠다. 우리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런 내용이었다.

         

       황실로 향하는 전서구의 목에 전서를 걸어주고 바로 날려보냈다. 도착까지 얼마 걸리지 않겠지.

         

       “공작령의 앞, 초원으로 나가자. 지금부터 마수 군단을 전부 소환할 거야.”

         

       라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프란체를 따라나섰다.

         

       “그만한 대마법을 쓰시는데 마석의 도움은 필요 없으세요?”

       “괜찮아. 이 저장술은 마력이 들지 않는 마법이거든.”

         

       카자르의 마법서에서 획득한 사령술과 영혼 저장술. 프란체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이자 최강의 마법이다.

         

       “황실에 우리의 전력을 보여줄 거야. 다시는 건들지 못하도록.”

         

         

       * * *

         

         

       얼마 뒤 황궁의 중앙 회의실에선 비상이 걸렸다.

         

       이유는 다름아닌 데카르트의 분노.

         

       그에 따라 원탁에는 주요 관료들과 황제, 황후까지 전부 모였다.

         

       “폐하, 이제는 정말 방도가 없습니다! 데카르트와의 화합을 주선해야 합니다!”

         

       대신이 소리쳤다. 원래라면 절대 황제에게 이런 짓을 해선 안 되지만, 지금은 제국의 미래가 걸린 상황. 그 어떤 벌을 받더라도 해야만 한다.

         

       “데카르트 공작은 현재 입장을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여기서 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외무 장관도 이에 보탰다. 현재 대륙의 지배자는 제국. 데카르트와의 화합이 깨지고 힘이 분산된다면 외교에도 문제가 생긴다.

         

       “송구하오나, 지금은 데카르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상황을 넘기는 게 좋을 듯싶사옵니다.”

         

       재상마저 현재 상황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경제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데카르트의 상단에서 돌아가던 금화가 전부 동결된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무장관까지 말을 덧붙였다.

         

       관료들은 레제프의 아집을 꺾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데카르트와 사이가 조금 틀어진 건 수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폐하, 보고를 드려도 괜찮겠사옵니까.”

       “말하시오, 군사장관.”

         

       팔락. 서류를 넘기며 말을 잇는 군사장관.

         

       “얼마 전 데카르트에 보낸 사자가 기록한 그곳의 전력 보고서는 받으셨겠지요?”

         

       레제프는 그렇소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카르트 공작의 마법으로 다스리는 마수 군단의 숫자만 8천. 백귀 케일을 필두로 한 기사단. 초월 마법사에 도달한 카자르 유플레인을 중심으로 한 마탑까지. 이는 제국 전체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전력입니다.”

         

       그리고, 하며 군사장관을 말을 이었다.

         

       “이건 협박입니다. 여기서 더 선을 넘으면 참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유혈 사태를 일으키겠다는 협박. 이는 레제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미레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가 없잖나…….

         

       “머리가 아프군.”

         

       이대로 데카르트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레제프는 지끈거리는 관자를 짓누르며 고개를 휘저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멈추고 데카르트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수밖에요.”

         

       성녀, 소미레가 말했다. 레제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미레! 데카르트와 이렇게 된 건 전부…!”

         

       아니요, 하고 단호하게 말을 끊는 소미레.

         

       “저는 일이 이렇게까지 되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폐하의 독단이시죠.”

         

       레제프는 “그게 무슨…!”하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데카르트와의 화합을 위해 회담을 개최하겠습니다. 그간 황실의 만행을 사과하고 보상함과 동시에. 공작이 진 바렌베르크의 제어를 실패한 것에 대한 죄를 물을 것입니다.”

         

       소미레는 싱긋 웃으며 장관들을 둘러봤다.

         

       “이것으로 되겠지요?”

         

       장관들이 일제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제프는 영 못마땅했다.

         

       애초에 데카르트와의 일을 이렇게까지 끌고 온 이유가 소미레를 위해서였다. 자신을 믿지 못한 그녀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지만…….

         

       ‘아니야. 소미레의 생각이 있었겠지.’

         

       레제프는 고개를 휘젓곤 잡념을 떨쳐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렇게 될 일이었으니.

         

       “알겠소. 그렇다면 짐이 책임지고 데카르트와의 회담을 주최하지. 그곳에서 모든 일을 끝내겠소.”

         

       이로써 황궁의 중앙 회의는 끝났다. 장관들이 자리를 비우고, 회의실에는 소미레와 레제프만 남게 되었다.

         

       “소미레. 이대로 괜찮겠어? 데카르트 공작은 그대에게…….”

         

       싱긋 웃으며 고개를 휘젓는 소미레.

         

       “괜찮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위해 힘을 써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한답니다. 그리고 이는 제국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요.”

         

       자애로운 미소에 레제프는 “아아- 역시 소미레야….” 하면서 얼빠진 대답을 했다. 이를 본 소미레는 속으로 구역질이 나왔다.

         

       ‘멍청한 놈.’

         

       뭐, 그래도 상관없다. 최종 목적은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 여자를 완전히 끌어내리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차피 소미레가 처음부터 원했던 건 이 거지 같은 세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아쉬운 점이야 아무래도 좋다.

         

       ‘이거로 프란체 데카르트와 독대할 수 있겠어.’

         

       그토록 원하던 기회를 얻었다. 거기에 초월 마법사 할멈에게 받은 이면 결계 마법진까지.

         

       이면 결계는 마법진을 기준으로 한 주변 공간을 복사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 밖에서 억지로 해석해 해제하지 않는 이상 시전자가 허락한 인물만 들어올 수 있다.

         

       ‘계획은 완벽해.’

         

       남은 건 품속에 있는 마법의 단검을 프란체 데카르트의 심장에 찌르는 것뿐.

         

       ‘돌아가는 거야. 집으로.’

         

       소미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폐하? 오늘은 만찬의 자리를 여시지요.”

       “만찬이라? 갑자기?”

       “특별히 기분이 좋아서요. 안 될까요?”

       “하하! 소미레를 위해서라면 안 될 거야 없지.”

         

       역시 멍청한 놈이다.

         

       “감사드려요. 오랜만에 즐거운 만찬을 즐겨요.”

         

       이 지긋지긋한 세상도 이제 끝이니 마지막 만찬은 괜찮겠지.

         

         

       * * *

         

         

       나는 장종원의 집에서 세계 신문들을 살피고 있다. 각국의 소식들이 가득하지만, 이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소식.

         

       페델리안 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황실과 데카르트의 대립이다.

         

       ‘대체 내가 없던 사이에 뭔 일이 있던 거야?’

         

       최근 기사들의 내용은 이러했다.

         

       첫 번째, 황제와 황후의 죽음은 암살이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증거나 흔적이 나오지 않아 결국 성녀가 급성 심정지로 판결을 내렸다.

         

       두 번째, 마탑은 판옵티콘의 사형수들부터 무고한 이들까지 이용해 끔찍한 마법 실험을 벌이고 있다.

         

       세 번째, 데카르트 공작이 제어하던 진 바렌베르크를 놓친 탓에 제국의 백성들은 왕국의 재앙이 올까 두려워 몸서리치고 있다.

         

       네 번째, 데카르트는 현재 제국에서 완전히 배척당한 상태. 공작은 이에 분노하여 제국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할 생각도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된 거지?”

         

       프란체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떠나고 미쳐버렸거나.

         

       ‘그럴 가능성은 적어.’

         

       주변에 카자르, 라데아, 케일이 있다. 어떠한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그녀의 정신을 붙잡아줬을 거다.

         

       ‘그러면…….’

         

       역시 그 성녀와 초월 마법사밖에 없다. 프란체를 노리기 위해 이리저리 흔드는 거겠지.

         

       ‘성녀를 죽이고 갔어야 했나.’

         

       그러나 당시의 내게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둘을 죽이기 위해서는 암살을 해야 하는데, 성녀를 죽이면 초월 마법사가 배후를 밝혀낸다.

         

       초월 마법사까지 죽이려 들면 암살이 아니게 된다. 초월자간의 싸움이니 황궁이 쑥대밭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

         

       ‘어떤 선택을 해도 프란체에게 피해가 갔어.’

         

       그래서 내가 만들어준 권력과 주변의 모두를 믿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프란체를 지켜줄 수 있도록.

         

       하지만.

         

       ‘이젠 안 되겠군.’

         

       신문 기사들만 보면 사태가 심각하다. 데카르트와 제국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거기에 내가 도망친 걸 들켰다는 건…….

         

       ‘결국 민폐가 되었구나.’

         

       나는 곧장 돈과 무기를 포함한 짐들을 챙겼다. 장종원의 대저택 손님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짧은 만남이었지만 잘 지냈다.

         

       ‘종원이한테는 편지 하나만 남겨두고 가자.’

         

       다시 만날 수 있을진 모르겠다마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종원아.”

         

       간단한 편지만 남기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보는 자유 도시 판테온의 풍경. 하도 햇빛을 안 봐서 그런지 몸이 근질거리는 수준이다.

         

       “후우.”

         

       크게 숨을 내쉰 뒤 걸음을 옮겨 마구간으로 가려고 했더니만.

         

       “진 바렌베르크.”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살기를 최대로 내뿜은 채 뒤돌았다.

         

       “누구지?”

       “…그리 경계하지 마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남성은 표식을 하나 꺼냈다.

         

       “엑시드군.”

         

       찾지 말라고 했는데 프란체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건가. 일생일대의 부탁을 무시했군.

         

       “마스터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여기 있던 걸 알고 있었나. 뭐, 상관없다. 이젠 돌아갈 예정이니까.

         

       “셀다스에게로 안내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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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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