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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 ***

         

       “거절하셨습니다.”

         

       “끄응.”

         

       어제 점심 때 뭣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혁기린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궁중식을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혼자 먹는 탓인지 어제 먹었던 식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급 음식임에도 입맛이 영 별로였다.

         

       “휴우.”

         

       잔반 하나 없이 모든 상차림을 깨끗하게 비워냈음에도 어제와 같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혼자서 점심 식사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묘하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궁녀들 사이에만 있자니 군중 속의 고독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정차 한 잔을 완전히 비워낸 채 나는 사색에 잠겼다. 아무래도 혁기린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어느 부분이 문제였을까…

         

       일단 전제부터 되짚어 보자.

         

       황제가 혁기린을 만나기 위해서 우릴 황궁으로 불러들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궁청전의 궁녀들은 혁기린이 남장여자이자 공주라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다.

         

       혁기린의 머리 위에 남아 있는 그 건이 명확한 증거였다. 편집적으로 외부 물품을 압수한 황궁이 혁기린의 건만 남겨두었다는 것은 곧 궁녀들이 혁기린이 남장여자이자 공주임을 안다는 증명이었다.

         

       혁기린과 나는 꽤 친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남장여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여일예의 은인이라는 인연으로 시작해 사천성 사태도 같이 겪었고 점창파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지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순딩순딩하고 착한 혁기린이 내가 ‘친구’라고 말했다는 사실에 대노하여 저럴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음.”

         

       나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살피고 있는 깐깐한 궁녀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황궁을 만만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숨막히게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건 사실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격함이랄까.

         

       오전에는 정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알현 연습을 하는데 궁녀 한 10명이 들어와서 신하처럼 도열해 있는데…어휴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눈으로 광선을 쏘는데 질식사 하는줄.

         

       그 외에도 의관을 정제해야 한다고 치수를 재는데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만 곳에 다 자를 들이대는데…머리카락 길이는 왜 재는 것이고 혀 색이랑 눈은 왜 까뒤집어 보는지… 그런 것들도 다 의관을 정제하는데 반영된다고 하니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봐라, 지금도 점심시간 이후에 차를 마시는 시간임에도 칼날과 같은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살피길 끊이질 않는 궁녀들의 시선이 한둘이 아니었다.

         

       첫날 기선제압으로 깐깐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첫날은 첫날이라고 봐준 모양이었다.

         

       “음…”

         

       황궁이 이 정도로 엄격하다면야 어제의 혁기린의 반응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뭐 이런 이야기들 많지 않은가. 지체 높은 가문의 사람은 친구조차도 가려 사귀어야 한다던가.

         

       나는 내 처지를 객관화 시켜 보았다.

         

       사천낭인이라고 해 봐야 결국 낭인이고, 무공은 딱 일류 수준에 특별히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신원도 엄밀히 따지면 미상.

         

       이 깐깐한 황궁에서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지.

         

       그래서 화를 낸 것이려나.

         

       나는 잠시 혁기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래 황궁은 혁기린의 집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 가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하다. 오래간만에 귀향했으니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겠지.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또 자신이 이룩한 것을 인정받아 번듯하게 무림인으로서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일류따리 낭인이 궁녀 앞에서 엄청 친한 티를 낸다?

         

       사천낭인이라고 해도 낭인. 낭인이 어떤 직종인가? 예비 범법자이자 잠재적 무법자. 돈만 되면 거리낌없이 사람도 베어 주고 걸핏하면 양민들을 핍박하는 양아치 아닌가.

         

       그런 일류따리에 별 것도 없는 낭인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하면 황궁에서 혁기린을 어떻게 보겠는가? 내가 황제고 황손이라도 호천안 따위랑 어울리는 혁기린에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겠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혁기린에게도 곤란한 일일 테고.

         

       생각해보니 혁기린은 내가 친구 대사를 꺼내기 전에도 좀 상태가 이상했었지. 나를 보고 눈치를 엄청 살피고 어색하게 행동했지. 어쩌면 혁기린은 그 자리에서 방금 내가 생각한 혁기린의 곤란함을 눈치채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일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같은데…”

         

       와 씨 호천안. 완전 사회인으로서의 감이 다 죽었다. 사람이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면 뭔가 낌새를 챘어야지 이걸 또 하루 꼬박 지나서 깨닫네.

         

       혁기린이 제발 친한 척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는 신호를 완전히 무시하고 친한 척을 했으니 혁기린은 화를 내는 척 하면서 나랑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딱히 혁기린에게 섭섭해 할 일은 아니었다. 사회적 직위 차이를 망각한 내가 망둥이였지. 내 트롤짓으로 혁기린을 곤란하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음…”

         

       그래 혁기린을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황궁에 있는 사이에는 조용히 숨 죽이며 살도록 하자.

         

       교육도 최대한 성실하게 임해야지. 내 평판은 곧 혁기린의 평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저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성의 없는 태도를 너무 많이 보였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만회해야지.

         

       “오후 일과 시간입니다.”

         

       “음! 준비되었소!”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눈에 힘을 주며 중년 궁녀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황궁의 여식들이 받는 교육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음?”

         

       “황궁의 여식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며 어떤 교육을 받으며 어떤 신부수업을 받는지 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묘하게 압박적인 어조로 말하는 궁녀를 보며 이게 뭔가 싶었지만 곧 의문을 털어버렸다. 수업 내용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단은 평판의 회복이 우선이지.

         

       “음. 알겠소.”

         

       나는 의욕에 차 고개를 끄덕였고 중년 궁녀는 잠시 날 바라보며 뭐라 중얼거린 다음에 수업을 시작했다.

         

       *** ***

         

       “이게 뭔가?”

         

       동창의 제독이자 명문 사마가의 일족인 사마경휘는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폐하.”

         

       첫줄부터 유경은 인상을 찌푸렸다. 출신 불명? 15세까지의 행적 묘연? 그 이름 높은 동창이라는 정보 조직의 보고서가 맞나 이게?

         

       “출신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없나?”

         

       “완전히 없습니다…그 당시의 행동거지나 인상을 수습해 본 결과 명문가의 자제라기보다는 화전민이나 유랑민 출신일 가능성이 높지만…그것도 어디까지 정황증거일뿐 출신성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 사마경휘는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저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쯧. 확실하게 알아보게.”

         

       “충!”

         

       유경은 상반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호천안을 평가했다. 유경은 혁기린이 활동하는 사천무림에 꽤 관심이 많았다. 사천의 특색 하면 역시 사천성이고 사천성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들은 사천낭인들이었다.

         

       사천낭인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사천 사람들이 아는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 유경.

         

       ‘사천낭인은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서 일을 처리한다고 했었지. 출신성분을 완벽히 숨긴 것은 능력이 좋다 칭찬해야 할 일일까…’

         

       호천안의 호구조사에 동창이 전력을 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호천안은 황제가 알현해야 할 사람 중 한 명. 그것도 무림인이다. 아무리 혁기린의 곁다리라고는 해도 그리 가벼이 조사하지는 않았을 터.

         

       그런 동창의 손을 피해 자신의 신상정보를 지켰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해 줄 법한 능력이었다.

         

       호천안의 출신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불쾌감과 그래도 자신의 매제가 되려면 이 정도 능력은 있어야 한다는 만족감 사이의 어딘가의 기분을 느끼며 유경은 보고서를 계속해서 읽어내렸다.

         

       유경은 보고서의 중간까지 읽고는 잠시 보고서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마경휘는 유경의 심정을 헤아리고는 머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이것이….사실인가?”

         

       “…보고서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사옵니다.”

         

       “허어….허어…”

         

       유경은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며 옥좌에 머리를 기댔다. 옥좌 등받이의 딱딱한 감촉이 머리를 짓눌렀지만 유경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낭인이 된 이후. 매일같이 도박장을 기웃거리며 밤새 도박을 했다고?”

         

       사마경휘는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것도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도박장을 기웃거리고…항상 막대한 돈을 잃었다고?”

         

       더 허리를 숙였다.

         

       “추정으로는 사천낭인으로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의 대부분을…다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내관들과 사마경휘가 일제히 절을 하며 머리를 박았다. 한동안 유경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없었고 사마경휘가 참다못해 슬쩍 고개를 들었을 때 유경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

         

       유경은 헛웃음을 흘렸다. 사천낭인…말이 좋아 사천낭인이지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돈으로 팔아버리는 직업이 아닌가. 승부조작, 기습, 등 결국 형편없이 패배해주거나 염치 없이 기습으로 선공을 가하거나..

         

       빈민의 삶을 지식적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는 유경이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그렇게 자존심을 박박 긁어다가 판 돈으로.

         

       “도박…”

         

       도박을 했단다. 매일 밤을 지새우며 도박을 하고 그렇게 자존심을 박박 긁어다가 판 돈을 몽땅 다 도박판에다가 뿌리고 온단다.

         

       주르륵.

         

       유경의 눈에서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사마경휘와 내관들이 대경하여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연신 머리를 찍으며 비통한 어조로 진정을 요구하는 내관과 제독의 모습에도 유경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 모든 것이 내 부덕함이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내 어찌 저승에서 선제 폐하를 보고 고개를 들 수 있겠느냐.”

         

       “폐하…”

         

       유경의 절절한 음성에 신하들은 숨을 삼켰다.

         

       호천안이라는 놈은 거짓으로 패배하여 도망치는 것이 직업인 자였고, 도박 중독자에 도박판에서도 지고 또 지는 그런 남자였다!

         

       이런 형편없는 남자를 혁기린이 가슴에 품다니!

         

       유경은 진심으로 책임을 통감했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에 황궁을 나서 제대로 된 이성관을 확립시켜주지도 못했고 그렇게 황궁을 떠나 남장여자로서 살았으니 저런 말도 안 되는 놈팽이 같은 놈에게 마음을 주게 된 것 아니겠는가!

         

       “짐이 부덕하고, 힘이 부족해서 유야가 무림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식으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처지에 처하게 만들었으니 현안을 기르지 못했고 저런 자에게 마음을 주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되었으니…이 모든 것이 내 부덕이 아니면 무엇이리..!”

         

       “폐하…!”

         

       사마경휘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떨구었고 내관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유경은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일단 이 호천안이라는 놈팽이를 다 살펴보도록 하자. 이미 도박중독자라는 시점에서 집안뿌리를 말아먹을 망종이라는 것이 확실했지만 아직 보고서는 많이 남아 있었다.

         

       유경은 보고서를 읽으며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사술을 부리다가 시비가 붙었는데 그걸 검을 뽑아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야바위를 통해서 해결했다고! 아하하하하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하하하하! 이보게 제독! 그리고 내관들! 여길 보시게나! 점창파에 초대된 뒤에는 또 선사님들에게 손기술을 가르쳤다는군! 아하하하하하하하! 그 점창파에서 말이야 일개 낭인이 선사님들에게 손기술을! 가르쳤다고 하는구만! 아이들 교육 명목으로 쓴다고 말이야! 하하하하하!”

         

       동창이 사활을 걸고 정보를 모으는 무림문파는 어디일까? 당연히 점창파였다. 혁기린 파벌이 혹시나 점창에 마수를 뻗을 수도 있었고 파벌의 건이 아니더라도 혁기린에게 어떤 변고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런 혁기린을 지켜주는 점창파의 동향에는 이상이 없는지, 늘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동창은 호천안이 점창파에서 무슨 행동을 하며 지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크흐흐흐! 아주 도박이라면 죽고 못 사는 모양일세! 도박에 대한 열정과 관심뿐이라면 천하제일의 도박사겠어! 크흐흐흐…”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유경의 웃음소리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채비하게.”

         

       서늘한 유경의 목소리에 사마경휘는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폐하?”

         

       “내 당장 그 자식을 봐야겠어.”

         

       유경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황제의 시선 요약

    출신성분 알 수 없는 수상한 놈.

    그래도 더러운 일이나마 하면서 어떻게 홀로서기 해보려는 기특한 놈.

    인줄 알았는데 그런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을 5년간 매일 도박판을 드나들며 꼬라박은 놈.

    도박중독자놈.

    사술공연이라는 해괘한 짓을 하다가 당도경을 만나니 칼 대신 도박으로 해결한 정신나간 놈.

    신성한 도관에서 선사들에게 손재주를 가르치는 미친놈.

    이거 완전 폐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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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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