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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아, 어……어, 시, 어? 오빠가, 언제, 언제, 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당이 안 될 정도의 당혹감이 제대로 된 언어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아크의 입밖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는 안 됐어. 한……30분 정도 된 거 같은데.”

        

       그리 대답하는 레반을, 그녀는 다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복도에서. 열린 문 앞에 선 채.

        

       ‘동거? 사귀나? 30분 전부터? 그러면, 방금 고백? 아니, 아니겠지? 합방? 합방이겠지? 어, 근데 합방이면-’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 아크의 눈에, 들어가자는 레반의 손짓은 인식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진짜 얘기 안 해줬나 보네. 아무튼 들어가서 기다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반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순간.

        

       -띵

        

       1층까지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돌아오는 소리와 함께, 모든 사태의 원흉이 태연하게 등장했다.

        

       한눈에도 묵직해보이는 비닐봉지를 무슨 외투처럼 한 쪽 어깨에 짊어진 이예나가, 느릿하면서도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레반과 아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했다. 과연, 어디에 등장해도 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오셨네요. 왜 안 들어가시고.”

        

       갸웃, 하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반개한 눈을 살며시 뜨는 것이……정말로 모르겠다는 걸까. 진심이든 아니든, 아크 입장에서는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너랑 레반 오빠가 사귀다 못해 동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라서 그랬어.’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들여 놓을 테니 짐이나 줘요. 물만 사오는 줄 알고 혼자 보냈더니 뭘 한 가득 사오셨네.”

        

       레반이 한 걸음 밖으로 걸어 나오며 손을 내밀었다. 그간 레반을 봐온 아크에게는 익숙한, 몸에 배인 배려와- 조금 생소한, 책망하는 말투.

       

       그리 내밀어진 레반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예나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손님은 일 안 시켜요. 말 나온 김에……왜 손님이 문지기 놀이를 하고 있지. 우리 지니씨 출입 통제하지 말고 비켜주세요.”

        

       “문지기가 아니라- 하, 그래요. 들어갑시다. 진희도 그만 정신 차리고.”

        

       “응? 아, 아, 응.”

        

       대단히 소란스러운 모임의 시작이었다.

        

       * * * *

        

       “……그러니까, 오늘 둘이 합방하는 건 줄 알았어! 그래서 화장 좀……신경써서 한 거야. 알겠지? 방송 화장이야. 언제든 방송할 수 있게. 알았지? 저번에도 우리 갑자기 캠방 했잖아. 기억하지?”

        

       “네. ……아, 잔 비셨네. 드릴게요.”

        

       “응? 아, 고마워. 짠- 아, 그런데. 아까부터 물어볼 때마다 술만 주는데……시훈 오빠도 오는 거 왜 얘기 안 했어?”

        

       “……얘기……비싼 술 사오라고 할 거라고 했잖아요.”

        

       “어?”

        

       “누군가가 사온다고 했고……달리 누가 집까지 술을 사오겠나 생각해보면……당연히 레반님으로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물론……이름을 얘기 안 한 건……음…….”

        

       저거, 진심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애초에 아크와 눈도 못 마주치며 고개를 묘한 각도로 돌리고 있는 게……스스로도 부끄러워하고 있는 티가 물씬 났으니.

        

       하여간, 묘한 포인트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부끄러워할 거라면 그러할 포인트는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있었을 텐데. 그리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리는 레반을, 이예나는 슬쩍 흘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조용히 입모양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협-조-해-줘-요-?’

        

       대체 뭘 협조해달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무-꾼-님……하.’

        

       알았어도 절대 협조하지 않았으리라.

        

       .

       .

       .

        

       결국 레반은 조용히 위스키를 즐기며 구경할 뿐이었다. 아크가 이예나로부터 사과에 이어, 앞으로 무슨 모임이든 꼭 참석자 구성을 미리 이야기하겠다는 다짐, 부계정 방송 시청 금지, 그리고 이후에 둘이서 한번 더 술자리 및 합방을 하자는 약속마저 받아내는 광경을 안주 삼아서.

        

       중재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크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었다면- 당연히, 개입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닌 이상, 저 이예나가 일방적으로 몰아세워진 채 갈수록 간절해지는 표정으로 자신을 힐끔거리는데……이걸 대체 왜 중단시킨단 말인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레반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이리도 빨리 끝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모든 것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 아크가 퍽 만족스러운 얼굴로 화장실로 떠나고-

        

       이예나는 처음에 비해 한층 우울해진 표정으로, 레반을 향해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을 열었다.

        

       “……난파선 구조신호는 적국 국적기여도 일단 구해준다고 하던데. 인권을 존중해주세요.”

        

       “모르긴 해도, 구조신호에 선전포고가 포함되어 있으면 안 구해줘도 된다는 예외조항 있을 것 같은데.”

        

       “됐어요. 후회할 거야.”

        

       눈살을 찌푸리며 꿍얼거린 이예나가 에스프레소 잔에 가득 담긴 위스키를 쭈욱 들이켰다. 향과 바디감을 즐겨야 하는 값비싼 위스키를 소주처럼 들이켜는 폭거였으나, 불만을 표할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글쎄. 이미 충분히 즐거웠어서, 딱히 후회할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말이 레반의 입에서 구르다가 삼켜졌다.

        

       중국 4대 미녀라던 서시가 지병으로 얼굴을 찡그릴 때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한동안 뭇 궁녀들이 그녀를 흉내내려 얼굴을 찌푸리곤 했다고 하던가. 얼토당토 않은, 과장 섞인 옛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될 듯도 했다.

        

       묘하게 몽환적이고 권태로운 눈빛으로 세상 만사를 흘려보내던 이예나가, 미간을 살며시 찡그린 채 가늘게 뜬 눈을 자신에게 향하면- 마치 그녀가 원하는 무언가를 오로지 자신만이 줄 수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저 표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풀어 주어야만 할 것만 같은 의무감마저 느껴졌으니.

        

       여우에 홀렸다는 사람들이 아마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레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날개옷도 안 훔쳐도 되는 세팅이었는데. 이미 선녀 승낙까지 받아놨는데. 한 번만 도와주면 된다니까, 나무꾼이 되어서 이걸 거절하고……아마 나무꾼 협회에서도 레반씨는 제명했을 거야. 앞으로는 도적으로 전향하세요.”

        

       눈앞의 새하얀 여우가 쉴 새 없이 헛소리를 꿍얼거리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말로.

        

       * * * *

        

       “그래서 오늘 방송 킬 거야? 예나 술 좀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음……글쎄요. 특별히 생각은 안 했어요. 술은……취하진 않았고.”

        

       “방송 킬 거면 나는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사전 합방 공지도 안 하고 집에서 방송을 켜는데 남자 스트리머가 등장하면……불이 얼마나 크게 날지 가늠도 안 되네 진짜.”

        

       “아. 그럼 켤까요.”

        

       “……무슨 뜻인데.”

        

       무슨 뜻이긴. 요즘 날씨도 좀 쌀쌀하고……불멍한지도 오래 됐다는 뜻이지.

        

       물론, 곧이곧대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솔직한 마음을 밝혀봐야 돌아올 반응이 눈에 선했으니. 내 생각에 공감해줄 동료……그래. 우리 별포크라도 있으면 모를까.

        

       아무튼, 방송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아니라는 점은 나도 동의했다. 그래도, 모처럼 VR기기도 설치했고……좀 아쉬운데.

        

       “그렇게 걱정할 건 없지 않을까? 오빠만 등장하면 몰라도, 나도 있잖아.”

        

       “그래서 더 난리날 거 같은데. 차라리 VR방을 가든가.”

        

       “그럴까? 뭐……예나 생각은 어때?”

        

       그러게. 내 생각은 어떻지.

        

       이렇게 저렇게 고민을 해보려 했으나- 알코올이 가득 담긴 혈액을 공급받는 뇌는 계속하여 흥미 본위의, 충동적인 의견만 내놓더라.

        

       나오나……훈수하면서 보면 재밌겠다- 처럼.

        

       “번갈아 가며 나오나 한 판씩 하면서, 두 명이 실시간으로 훈수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그걸 방송으로 하자고?”

        

       시선이……조금 실례 아닌가.

        

       * * * *

        

       [작성자: ㅇㅇ]

       [제목: 그래서 이 텐련 언제 옴?]

       [아니 스트리머가 왜 남의 방송에서 쥐흔을 하고 있냐고

        

       니 맘대로 쥐흔해도 되는 니 방송이나 키라고!!!]

       –     그야……책임 없는 쾌락이잖아

       –     ‘해도 되니까’

       –     나도 아따먹 계좌번호 알고 싶어……

        

       [작성자: 레따먹]

       [제목: 근데 휴방일 너무 겹치는 거 아닌가?]

       [(달력 캡쳐 스크린샷)

        

       최근 레반 휴방일이랑 아따먹 휴방일 솔직히 너무 겹치는데

        

       술 사들고 와라 발언까지 고려하면 이건 진짜 합리적 의심 아님?

        

       레따먹 응원합니다]

       –     센세 휴방일은 별포크나 아크랑도 겹치는데 센세가 남녀 안 가리고 세 명씩 따먹는 중이라는 거냐? 이거 나쁜 놈이네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     ㄴ 뭣……

       –     ㄴ 대충 하고 싶은 말을 써놓고 생각 안 한다고 쓰는 건 무적기가 아니에요

       –     일주일에 5일을 쳐 휴방하는데 안 겹치는 게 더 이상하지 씨1발아

       –     ㄴ ㄹㅇ 이 텐련이랑 최근 휴방일 안 겹치는 스트리머 찾는 게 더 힘들다

        

        

       [작성자: ㅇㅇ]

       [제목: 더 로그가 그립구나……]

       [우주갓겜 더 로그 시절에는 아따먹이 휴방을 하는 일이 없었는데……

        

       다시 좃오좃을 할 때가 되니 방송이 없구나……

        

       그립습니다 더 로그……]

       –     로첩 검거

       –     근데 더 로그 은근 낭만있긴 했어

       –     ㄴ 다시보기 있나?

       –     ㄴㄴ 아따먹 팬튜브에 하이라이트 위주로 편집본 있음

       –     ㄴㄴ 그건 이미 다 쳐먹었고 풀방송이 보고싶음

       –     ㄴㄴ 그러면 따아한잔 저장소 ㄱㄱ

       –     ㄴㄴ 팬튜브가 몇 개야 시발 ㅋㅋㅋㅋㅋㅋㅋ

       –     그립기는 지랄 그 좆망겜 6일동안 붙잡고 있을 때 민심 거의 민중봉기 일어나기 직전이었는데

       –     ㄴ 3일차까지만 지랄났고 결국 다들 만족했는데 방안분새끼네 이거

       –     ㄴㄴ 다들(한줌)

        

       [작성자: ㅇㅇ]

       [제목: 아 괜찮아 괜찮아 아따먹 방송 안 켜도 돼]

       [까짓 거 옥상 가면 그만이야]

       –     뭣……

       –     어어 그거 아니다

       –     어 뭐야 방송 켰는데?

       –     ㄴ 응 안 속아~  이미 엘레베이터 도착했어~

       –     ㄴ 뭐야 진짜 켰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명군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난파선 이야기는 이예나의 뇌피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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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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