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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용의 둥지-드래곤 네스트. 

     노스트럼 왕국의 핵심 전력인 ‘비룡기사단’, 통칭 용기병 양성을 위해 키우는 비룡들을 육성하는 장소.

     말을 키우는 곳이 마구간이라고 한다면, 용의 둥지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용기병들이 탈 비룡을 키우는 곳이다.

     비룡에 왜 드레이크, 와이번, 그리핀, 히포그리프 등이 들어가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는바.

     그저 ‘공군’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들을 전부 엮을 수 있으며, 용의 둥지는 대대로 노스트럼 왕가에서 직접 관리해 왔다.

     이곳이 어떠한 곳이냐.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곳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께서 드래곤 알을 깨 먹은 곳입니까?”

     “그래.”

     정치적 어머님, 카르멘 왕비가 내게서 물건을 하나 건네받아 어딘가로 사라진 사이, 대신 내게 생일선물을 왕가 차원에서 주기로 한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붙었다.

     “헥스 자작님. 추천하는 비룡이라도?”

     헥스 자작.

     원래는 윈체스터 대공이 와야 하는 일이지만, ‘그런 일은 내게 치가 떨린다’라면서 그가 헥스 자작에게 일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너는 뭐가 취향이냐.”

     “플라잉 호버 바이크?”

     “……?”

     취향을 말했는데, 헥스 자작의 표정이 좋지 않다.

     비싸서 그런 게 아니라, 뭔지를 아예 모르는 표정.

     “제국신문에 막 투자하라고 나오던데, 바퀴 달린 자전거가 마석의 힘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 비슷합니다.”

     “자전거가 하늘을 난다고?”

     “500년 전의 노스트럼에는 마법사인 여자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했는데, 마도구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지 못할 것도 없잖습니까?”

     “그건 마법이잖아.”

     “마법을 누구나 쓸 수 있게 연금술과 마도공학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게 하늘을 나는 빗자루죠.”

     “차라리 천마가 전차를 끌고 다닌다고 그러는 건 어때?”

     “천마는 마차를 몰 수 없습니다. 마차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거라면 모를까.”

     사실이다.

     “좋아. 정정하지. 여기 있는 녀석 중에서 골라봐.”

     “아무거나 골라도 되는 겁니까?”

     “그래. 윈체스터 대공께서 그러라고 허락하셨으니까. 애초에 여기, 관리를 지금 사실상 모르가니아가 다 하고 있거든?”

     “하긴.”

     용의 둥지는 엄밀히 따지면 용이 있었던 둥지다.

     당연히 이 원인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왕가의 수호룡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비룡들은 헤츨링프라이 사건 이후로 수장을 잃었고, 지금은 그다음으로 가장 드래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엘더 드레이크’를 수장으로 간신히 둥지를 유지하고 있다.

     “괜찮은 녀석 있습니까?”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렸지. 그냥 말을 타는 거랑은 달라요, 이 사람아.”

     헥스 자작은 싱글벙글 웃으며, 용 조련사들이 고삐를 잡고 데려온 비룡들을 가리켰다.

     푸르륵.

     몸길이가 최소는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비룡들.

     저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내게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브롤터인 걸 알고 있거나, 아니면 내게 스며든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거나.’

     다른 인간들과 달리, 나에게는 비룡-환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특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생각보다 애들이 관심이 너한테 많아 보이네. 역시 지브롤터라서 그런 건가?”

     “이마가 잘생겨서 그런 겁니다.”

     “얼굴이 잘생겨서 그렇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지금 셋 다 이마에 시선이 꽂혀있지 않습니까.”

     평범한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환수들에게도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기운’은 분명히 느껴지는 자연의 가호.

     새삼스럽지만, 비룡을 가장 잘 다루는 이들은 엘프들이다.

     “뭐로 시도해 볼래?”

     “시도라.”

     나는 셋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핀 블루 람바렐라. 드레이크 카드목스. 와이번 요하킨 카고일. 맞습니까?”

     공교롭게도, 다 아는 얼굴들이다.

     “비룡에 관심 있었냐?”

     “경룡에는 관심 있습니다만.”

     “…얘들로 도박을 하겠다고? 나 진짜 그거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아도 나중에 직접 해보시면 느낌이 다를걸요.”

     이 셋.

     나중에 지브롤터에서 관리하던 ‘용의 협곡’에서 살게 된 이들이다.

     경룡장에서 각 종족의 에이스로서 활약하던 이들로, 셋 다 노스트럼이 멸망한 이후 제국에 의해 날개가 물리적으로 꺾였다.

     그리핀은 타조가 되었으며.

     드레이크는 도마뱀이 되었고.

     와이번은 망가진 날개를 팔처럼 사용하며 땅을 네발로 기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대단해 보이긴 하네. 괜히 황제가 팔신장을 불러서 비룡들의 날개를 꺾어버린 게 아니야.’

     혁명군이 제대로 제국을 상대로 반격하지 못했던 것도 비룡들이 전멸했기 때문.

     용기병으로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게릴라전을 펼쳤다면 제국도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겠지만, 합스베르크는 이 짐승들이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이 짐승들을 이용해 경룡을 시켜, 노스트럼을 향한 조롱과 멸시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날개가 꺾이고 땅에 추락하여 기어가는 짐승.

     황제가 만든 경룡장은 노스트럼 국민을 향한 일종의 시위이자 경고였다.

     ‘정작 도박에 열광하기만 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만.’

     황제도 그때는 예상 못 했다고 했다.

     설마 국민성에 대한 조롱의 목적으로 만든 것이 도박 스포츠로 확장되고, 그렇게 크나큰 사건으로 비화되었을 거라고는.

     제도 대화재.

     제국 탈러의 절반이 증발해 버리는 대염상.

     도박중독과 당사자, 그리고 중앙은행에 깊게 관여하는 권력을 가진 자.

     그 대염상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셋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만.

     “저는 쟤로 하겠습니다.”

     “쟤라면….”

     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헥스 자작의 표정이 변했다.

     “야. 쟤는 안 돼. 쟤는….”

     “성질이 더러워서요?”

     “…그래. 지금까지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녀석이야. 심지어-”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세 비룡에게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 걸어간 뒤, 멀찍이 있던 비룡을 향해 다가갔다.

     “이런 녀석들을 두고 뭐라고 하죠?”

     “어, 음, 히포그리프.”

     

     히포그리프.

     상반신은 그리폰에 하반신은 말인 종족.

     본래는 존재할 수 없는, 제국의 생명공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일종의 ‘이종교배’로 만들어진 산물.

     막말로, 어느 한 그리폰이 말에다가-

     “이 녀석으로 하죠.”

     “아니, 잠깐만. 히포그리프가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지?”

     “설마요.”

     되다만 병신.

     혈연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

     괴물.

     “그레이 지브롤터에게는 딱 어울리는 녀석이 아니겠습니까.”

     

     푸르르.

     녀석은 나의 접근에도 뚱하게 가만히 있기만 했으나, 이어진 내 행동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서걱.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러, 목줄을 끊어낸다.

     동시에 등에 억지로 묶여있는 안장도 지팡이를 휘둘러 잘라낸다.

     

     “이봐…!”

     “등에 사람 태우기 싫어하는 녀석 같은데, 안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어찌 됐든,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푸르르.

     회색의 깃털을 가진 그리폰의 머리로 다가온 히포그리프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가볍게 두둥실 떠올랐다.

     “잘 부탁한다, ‘니드호그’.”

     나는 녀석의 발목을 손잡이처럼 움켜쥐었고, 곧 녀석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야, 야!!”

     “그러면 헥스 자작님, 나중에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뵙겠습니다.”

     부ㅡㅡ웅!

     

     힘찬 날갯짓과 함께, 니드호그가 하늘을 향해 빠르게 날개를 펄럭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역시.

     비행은 이렇게 즐겨야지.

     * * *

     [3월 30일 저녁, 테르시안 제국 황태자궁.]

     “……모비딕 호를 빼앗겼다고?”

     황태자는 그림자의 보고에 들고 있던 포크를 툭 떨어뜨렸다.

     “예.”

     “왜?”

     “…….”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황태자는 입을 떡 벌리며 멍하니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그러니까 지금 테르시안 제국의 황태자가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생일선물로 준 육상함 모비딕 호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왕명으로 징발해 갔다. 내가 지금 이해한 게 정확한가?”

     “예.”

     “이 새끼가, 돌았나?”

     “…….”

     그림자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저런 험악하고 천박한 말을 하는 건 황태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 나왔다는 건, 황태자이기 이전에 앞서 합스베르크라는 인간 자체가 이성의 끈을 잠시 놓을 정도로 화가 났다는 뜻.

     이럴 때는 침묵만이 살길이다.

     하급자란 상급자가 항상성을 지닌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분개하는 역린이 있다는 걸 알아둬야 하니까.

     “지금 모비딕 호는 어디에 있지?”

     “위치추적 마도구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세이레네 영지로부터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노스트럼에서 관리하는 별궁 중 하나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내가 그레이에게 준 선물을 훔쳐다가, 자기 별궁으로 가는 마도차량으로 써먹었다는 말인가?”

     “예.”

     “…….”

     황태자는 어딘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서랍을 열고는 무언가 길쭉한 물건을 하나 꺼냈다.

     딸칵.

     “……!!”

     그림자가 놀라서 앞으로 뛰쳐나가기도 전에, 황태자는 물건의 끝에 박혀있는 마석을 마구 손바닥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딸칵, 딸칵, 딸칵.

     “황태자님!!”

     “소리 지르지 말게. 나 귀 안 멀었으니.”

     “그건 자폭장치가 아닙니까!”

     “그래. 자폭장치지.”

     담담히 답하는 황태자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세인트 지오, 그 무능한 자에게 넘겨주려고 에르윈 회장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모비딕 호를 넘겨준 줄 아는가.”

     “세인트 지오를 죽이면 세계에 재앙이 찾아올 겁니다.”

     “2년 9개월 정도만 버티면 되네.”

     “황태자님…!”

     “용서할 수 없어. 감히, 내가 그레이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을 훔쳐갔다고…?”

     딸칵, 딸칵, 딸칵.

     “노스트럼의 피를 타고난 것을 제외하면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보다도 가치가 없는, 재활용도 안 되는 인간폐품 주제에…!”

     “일단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왕도로 보내진 모비딕 호에는 자폭장치가 해제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보낼 물건이니, 자폭장치는 해제하라고 지난번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아, 그랬지. 나도 모르게 조금 흥분한 모양이군.”

     조금. 

     그림자는 괜한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레이의 반응은? 뭔가 특별한 반응을 하던가?”

     “아니요. 오히려….”

     “오히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도착하자마자, 별다른 말 없이 넘겨줬다고 합니다.”

     “별다른 말 없이…?”

     황태자가 의자에 몸을 눕히며, 한 손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건 좀 그런데. 그냥 거대한 이동식 마차라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역시 원래 계획대로 하늘을 날아서 보내줬어야 했나?”

     “그랬다가는 우리의 ‘공군’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이스터 바토리의 추가 전언이 있었습니다.”

     “추가 전언?”

     “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하라며, 혹시나 전할 게 있다면 이렇게 전하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림자는 아카데미에 잠입한 백발적안의 마녀가 전한 말을 떠올렸다.

     “세인트 지오가 이렇습니다.”

     “……?”

     그림자의 말에 황태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아아, 그렇군. 나도 참. 한 수 배웠어.”

     

     곧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하긴. 나보다도 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 대해 어느정도 들은 바가 있겠지. 그래서 확신했구나. 자기에게 온 선물을 빼앗으러 왔다고.”

     “…….”

     “비상식적이고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면 그 속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건가.”

     “전하.”

     “그렇군. 그레이를 챙겨주거나 하려고 한다면, 무능왕을 먼저 왕으로 대접해 주고 난 다음에 뭔가를 줘야 한다는 건가.”

     황제는 자문자답을 통해 실마리를 얻었다.

     “좋아. 그렇다면 새로운 선물을….”

     “그리고 하나 더.”

     “더?”

     “예. 이 말을 꼭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림자는 보고를 계속 읊었다.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생일선물을 선불로 받았다고.”

     * * *

     [통일력 3월 30일 오후 11시 58분.]

     “으으, 도대체….”

     아스타시아는 가벼운 차림으로 제국 유학생 기숙사 건물의 옥상에 올라왔다.

     “이 시간에 이렇게 나와달라고 하는 건…으음.”

     아스타시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둔 물건을 확인했다.

     “분명히, 그거겠지? 그거일 거야. 으음, 그러면…응?”

     어둠 속.

     밤하늘, 상공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

     찰나.

     “자정.”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회색 날개를 펼치며 착지했다.

     “선물 받으러 왔습니다.”

     “어, 어….”

     거대한 비룡의 발목을 붙잡은 채 바닥에 착지한 그레이 지브롤터.

     “서, 선물이라면-”

     “이거.”

     그는 그대로 아스타시아의 허리를 한 손으로 낚아챘다.

     펄ㅡㅡㅡ럭.

     

     “히, 히익?!”

     

     아스타시아는 공중에 붕 뜨는 감각과 함께, 그대로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달라붙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공주님.”

     흩날리는 바람 속에서, 그레이 지브롤터는 활짝 미소 지었다.

     “당신이 제 생일선물입니다. 그렇죠?”

     “…….”

     반박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저, 바람 때문에 말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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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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