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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EP.144

     

   발아래로 펼쳐진 판타지 풍의 석재 건물 양식과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

   해가 지기 시작하며 펼쳐진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선선한 바람이 나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위를 넘나드니 왠지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금발 머리가 찰랑이는 푸른 눈의 미남자와 그의 손을 잡고 왈츠를 추듯 나란히 달리는 소녀.

     

   물론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은 피난민이었고 잔잔한 클래식 대신 괴물들의 괴성이 들려온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이것도 나름 낭만은 있지 않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꺄아악!”

     

   착각인가.

     

   옆구리에 한 팔로 들고 있던 붉은 단발의 여인을 보니 그리 낭만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떨어뜨릴 생각이 없었지만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진 하트.

     

   침착함 특성 때문이었는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아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약간 소름이 돋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긴가?’

     

   나는 다시 한 번 건물 옥상을 박찼다.

   현재 목적지였던 남쪽 성벽.

   진 하트와 대화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에 나는 성벽 위로 신속하게 뛰어올랐다.

     

   와아아아!!!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남문 전투의 규모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대검과 장궁을 들고 있는 수백 수천의 오크들.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거대한 공성용 기계를 끌고 있는 고블린들.

   그리고 뒤에서 바위를 던지는 트롤들과 하늘을 날아 마법사들을 노리는 그리핀과 여러 날짐승들까지.

     

   “성문을 사수하라! 마법사들을 보호하라!”

   “마법사들은 공성기를 밀고 있는 고블린들을 먼저 저격해라! 절대 벽이 무너지게 둬서는 안 된다!”

     

   전장 곳곳에서 통솔자로 추정되는 몇몇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마법사들은 명령에 따라 발사된 불덩어리들이 고블린들의 머리 위로 작렬한다.

   궁수들은 공중의 몬스터를 하나둘 격추시켰고 기사들은 그런 원거리 병사들을 수호하며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 나의 눈에 들어온 두 명의 기사가 있었다.

     

   “쿨럭…!”

     

   성벽에 기대어 누워서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기사와 피가 흘러넘치는 그의 옆구리를 꾹 누르고 있는 기사.

     

   “젠장! 씨발! 지혈 중이니까 입 닥치고 있어! 살아야지! 자네가 매번 귀가 닳도록 말한 딸내미 안 볼 거야?!”

   “아아… 우리 딸……”

     

   쓰러진 기사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에 흥건했다.

   서서히 낯빛이 창백해져가는 기사.

     

   심장이 시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상황은 결국 내가 진 하트를 찾기 위해 벌인 난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그로 인해 나타나는 죄책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우…”

   “……”

     

   몬스터의 침공으로 일어난 참상을 목도한 진 하트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천천히 틀어막는다.

   그리고 내가 천천히 그 기사들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당황하며 나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아무리 봐도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기사.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 저 자리에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행동이라는 생각에 나를 저지한 것 같았다.

     

   “괜찮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슬쩍 떼어내며 아공간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

   [초 회복약]

   종류 : 소모품

   랭크 : B+

     

   설명 : 33가지 이상의 고급 약초와 성수를 응축한 물약이다. 사용 시, 자잘한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고 실명이나 기절과 같은 상태 이상에도 효과가 좋다. (단, 내상에는 복용이 효과적이고 외상에는 바르는 게 효과적이다.)

     

   효과

   – 상처가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

   – 복용 시, 일정 시간 회복력이 유지된다.

   – 너무 많이 사용할 경우, 중독의 위험이 따른다.

   —

     

   5층에 처음 올랐을 때 구했던 포션.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기사가 내가 접근한다는 것을 알고는 살짝 고개를 든다.

   군에서 본 적 없는 외인이 근접하고 있음에도 그 슬픔에 압도된 것인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스윽.

     

   “가, 가까이 오지 마!”“걱정하지 마세요. 치료해주려는 거니까.”

     

   내가 포션을 들어 올리니 그제야 급하게 일어서며 나를 경계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그의 검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것도 모르고 빈 검집을 손으로 휘적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무시한 채, 들고 있던 포션을 기사에게 냅다 들이부었다.

     

   화아악!

     

   그의 환부에 부글거리는 기포가 올라오더니 서서히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이미 격이 오를 대로 올라버린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포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개는 아껴둔 것이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끄으응……”

   “야, 야!”

     

   의식을 잃었던 기사가 눈을 뜨고 그 소리를 들은 동료가 그에게 다가간다.

     

   “……당신 뭐야? 설마 방금 그거 엘릭서야? 못 해도 일만 골드는 할 텐데 그걸……”

     

   포션으로 치료를 마친 내가 진 하트에게 다가가자 당황한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이 세계에서 포션이 가지는 가치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의 무게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제는 또 상황을 정리할 차례다.

     

   “잠깐만 여기에 있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응?”

     

   나는 곧장 몸을 날려 성벽 아래로 도약했다.

   그 모습을 본 기사와 진 하트의 비명이 들렸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 상황을 만든 녀석을 호출하는 일이었다.

     

   “크레센도!!!”

     

   나의 외침에 하늘에 있던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향해 드리워졌다.

   거대한 몸집. 지금까지 이 문제를 만들어 낸 원흉이라 의심됐던 나의 소환수.

     

   -정말 죄송해요! 히끅!

     

   녀석의 푸르던 비늘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칠갑 되어 검붉은색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나의 물음에 녀석은 훌쩍거리면서도 또박또박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약간의 소동을 만들기 위해 몬스터를 조금 끌어들였다는 녀석.

   그리고 그것을 보며 레드 드래곤 한 마리가 급발진을 했고 이 대군이 몰려왔다고 했다.

     

   “수고했어.”

   -……네?

   “고생하고 있었다고. 이제 쉬고 있어.”

     

   녀석의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리핀, 가고일, 하피에 와이번.

   땅에 있는 몬스터와 비교해서 공중의 몬스터가 거의 보이지 않아 의아했었는데 이제 보니 녀석이 대부분의 괴물들을 붙잡고 싸우고 있던 덕분인 것 같았다.

     

   -제가…제가 이렇게까지 히끅! 일이 커질 줄은 몰랐는데…!

     

   나는 땅에 착지한 후, 괜찮다는 의미로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괜찮아. 내가 누구지?”

   -성좌?

   “그거 말고.”

   -……주인?

   “맞아.”

     

   녀석은 그저 잘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이런 상황이 나의 명령에 의해 발생했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었다.

     

   “수습은 내 역할이니까 이제 내 뒤에 숨어 있어.”

     

   나는 성문을 등진 채, 나에게 달려오고 날아오는 수많은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조잡한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괴물들과 나를 향해 손톱과 이빨을 드러내는 수많은 날것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의 황금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 잠깐의 푸름이 창공을 번쩍였다.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익숙한 찬 공기.

   해가 지고 달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이, 비로소 나의 검이 가장 밝게 빛날 순간이었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새로운 밤이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낮이 가고 오는 밤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이 밤이 하루의 시작이었던 때가 있었다.

     

   아침은 삶의 활력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밤은 그들의 휴식을 위해 신이 마련한 축복이었다.

     

   신월 新月

     

   나의 검에서 뿜어진 마력 덩어리가 성문을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검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뭉툭한, 하지만 위협적이지 않다고 하기에는 빛에 닿은 몬스터들이 먼지가 되듯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나는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푸른빛이 미묘하게 감도는 백색 검기가 솟아올라 이내 성벽의 담장을 뛰어넘기 시작한다.

     

   “후으읍!!!”

     

   나는 세상을 반으로 양단하듯 검을 내리쳤다.

     

   ***

     

   진 하트.

     

   그녀는 자신을 들고 하늘을 내달리는 남자를 보며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 나는 납치를 당하고 있는 것인가.

   나를 돕겠다고 하는데 이게 돕는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재밌는가.

     

   물론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옆구리에 무슨 밀가루 포대마냥 안겨서 날아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도주로와 숨을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침착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편안하지?’

     

   사실 격이 높은 성좌가 살기를 뿜으면 그 살기에 짓눌려 심정지가 올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적의가 없는 성좌는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온다는 것을 그녀도 김시인도 모르고 있었다.

     

   타탓.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땅으로 내려왔다.

   사실 땅이라고 하기에는 높은 성벽 위에 착지했지만 발이 닿았다는 느낌만으로도 여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응?’

     

   너무 빨리 날아오느라 살피지 못했던 주위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몬스터와의 전쟁.

     

   당연히 수도를 벗어 달아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는 몬스터들이 진격하고 있는 남문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으윽.’

     

   그곳에는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숨이 슬슬 가늘어지는 것을 보니 금방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인간.

     

   하지만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가 그에게 다가갔다.

   진 하트가 그를 잠시 제지했지만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니 감히 막아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끄으응…”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뭔가를 들이부으니 상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남자는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블루 드래곤이 그에게 날아가 고개를 조아렸고 그는 잠시 그 드래곤과 이야기를 나누며 검을 뽑아 들었다.

     

   ‘설마 싸우겠다고? 저 대군이랑?’

     

   감히 같은 인간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

   전설 속에 나오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휘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검을 들자 하늘에서 내려와야 할 달빛이 그의 검으로부터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마법으로 만든 빛 덩어리라 생각했던 무언가가 서서히 검의 형태가 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성벽을 아득히 뛰어넘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있는 검기.

     

   파스슷.

     

   빛에 닿은 그리핀과 가고일 등이 하늘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됐다.

     

   그렇게 이어진 휘두름.

     

   하늘을 향하고 있던 심판의 검이 땅으로 떨어졌고 그녀는 단 일격에 모든 괴물들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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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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