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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146. 후회성녀는 시간을 달린다(9)

       

       

       가장 독실한 신자는 곧 가장 절박한 인간이다.

       

       성황청의 교황.

       요한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친구, 연인, 가족.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위기에 처해서, 제발 그 사람을 데려가지 말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요한 본인이 그 일을 겪어보았기에 그러했다. 

       

       출장을 위해 멀리 나가있던 상황.

       눈먼 테러에 네살배기 딸이 휘말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어느 때보다 절박히 기도했다.

       몸과 마음 모두 평생 신께 바치리라고 선언한 날부터, 그가 진심을 다하지 않은 날은 없었지만.

       

       그날만큼 간절히 기도를 올린 적은 없었다.

       

       삶의 이유나 다름없는 존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 두려움이 신앙심을 더 견고히 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죄송합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친듯이 달려온 요한에게 사내는 반쯤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를 건네었다.

       

       그게 그 아이의 팔이라는 모양이다.

       다른 부위는 이미 폭발과 함께 한줌 핏물이 되어버렸기에 더 이상 찾을 수조차 없다고, 그 사내는 이야기했다.

       

       이런 일은 많이 겪은 적 있다.

       늦은 밤 교회에 찾아와 누군가를 데려가지 말라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 중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결과를 맞이했으니까.

       

       천천히 걸어가서 이것도 전부 그분의 계획이였다고,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는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스스로 위로하면 되나?

       그 아이를 데려가는 게 전지전능하신 빛의 판단이였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라고?

       

       하지만… 이게 정말 빛의 계획이였다면.

       그분은 정녕 이 아이가 이렇게 되는 것을 원하셨단 말인가.

       

       4살이다.

       세상에 태어난지 4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겪지 못한 것이 많다.

       아직 해주지 못한 것도 많다.

       

       그런데 정말 이게 신의 계획이란 말인가.

       

       의구심이 밀려왔다.

       악마의 손을 잡고 타락한 배교자들의 헛소리를 들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심의 씨앗이 싹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나 같은 범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원대한 계획이 있으시리라. 분명 그 아이도 빛의 품에서 행복히 지내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요한은 근심을 필사적으로 떨채냈다. 

       

       심지어 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신을 믿었다.

       

       내가 그분을 더 믿는다면, 좀 더 그분을 위해 일한다면, 그 아이를 더 신경써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리에 적혀있던 것처럼 3년 후에 그 아이가 기적처럼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런 믿음에 기댄 것이다.

       

       외부적으로 딸의 죽음 탓에 신앙을 버리고 타락했다는 이미지를 심어 두었다. 덕분에 그에게 접촉하려던 이단 몇 명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성과인데, 그 위장으로 이끌어낸 것은 그런 이단뿐만이 아니였다.

       

       무려 제국의 황제.

       거물 중의 거물도 그에게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신분을 숨기고 용사 파티에 잠입하자는 제안과 함께.

       

       -딱히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라네. 그놈과 지배 중 어느 쪽이 이길지는 확신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승산이 없다 판단된다면….

       

       상황에 따라 용사를 배신하고 지배 쪽에 붙겠다.

       빛께서 선택하신 인간을 처리하고 사악한 존재의 편에 서겠다는 절대 용서치 못할 이야기. 

       

       그것을 들은 요한이 내릴 판단이야 정해져 있었다.

       

       -…제가 어떤 걸 하면 되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용사 편에 잠입한다.

       그리고 만약에 황제가 용사를 배신하려고 한다면 그걸 제지하고 용사를 보호해낸다. 

       

       요한은 그런 생각으로 용사 파티에 잠입하였다.

       

       황제의 그 불경한 발언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용사에게 큰 전력이 되어줄 거라는 건 명백한 사실.

       

       어떻게든 잘 대처하여 참사가 벌어지는 걸 막아내고, 용사를 도와 그의 책무를 함께 이루어내겠다.

       

       그렇게 맹세하고서 요한은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그 맹세를 전력을 다해서 지켜 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마경을 탐험하던 도중,

       용사의 심장이 시체군주의 검에 꿰뚫렸다.

       

       아무리 신성력이 있다고 한들 저 정도의 부상을 치료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용사는 죽음은 확정된 셈.

       

       그 사실을 깨달은 요한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지만…. 이내 빛이 강림하였다.

       

       평생을 모셔왔던, 허나 그럼에도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빛의 여신이 그곳에 강림하였다.

       

       그분께서는 친히 그 소년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용사를 살려냈다. 분명 죽었어야 했을 소년은 그분으로 인해 새 삶을 얻었다.

       

       모두가 그 소년에게로 달려갔다.

       동료들은 용사를 부둥켜 안으며 빛의 신께 이 기적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요한만 빼고 말이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든 건 한 가지 생각뿐이였다.

       

       ‘……어째서?’

       

       소년은 살아났다.

       빛의 신께서 그를 살려 주셨다.

       

       그건 확실히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면 대체 왜 그분은 나의 딸을 살려주시지 않으셨단 말인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도.

       그분께서는 왜 그 아이를 그냥 두셨단 말인가.

       

       그 어린 아이가 폭발 끝에 흩뿌려져, 한 줌 핏물이 되어버리는 광경을 보고만 계셨단 말인가.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그 어느때보다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한평생 신을 위해 이 몸을 바쳐왔다.

       사사로운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보다 그분을 더 위하며 평생을 살아왔단 말이다.

       

       살아오면서 여태까지 그 어떤 부정한 일에도 손을 대본 적이 없으며, 교리에 적힌 가르침을 어긴 적은 더더욱 없다.

       

       그저 전력을 다해 그분을 찬양하였다.

       그분을 대신하여 선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그 아이는 안 되고, 저 소년은 된단 말인가.

       저 소년은 살릴 수 있었으면서, 왜 우리 아이는 죽게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만약 빛의 신이 그것을 무시한 거라면….

       

       ‘그게 살인과 다를 바가 있나?’

       

       그 순간 그의 신앙은 완전히 무너졌다.

       

       신은 완벽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을 평등히 사랑하지도 않았다.

       

       교리에 적힌 건 모두 거짓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런 거짓을 믿을 이유 따윈 없었다.

       

       그 아이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으리라.

       저 매정한 신이 나의 딸을 구원해줬을 리 없으니, 그 아이는 분명 지옥에 있을 것이다.

       

       딸은 살아나지 않을 거다. 교전에 적힌 부활 따위 그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거라면 너무나도 명백했다.

       

       딸을 죽게 내버려 둔 자가 있다.

       그런 존재가 태연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다니. 대체 어떤 아버지가 그럴 수 있겠는가.

       

       복수를 행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평생토록 신만 모셔온 그가 신에게 복수하는 방법 따위를 알 리가 없다.

       

       허나 그런 건 그다지 상관없으리라.

       

       ‘무슨 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내 딸을 죽인 죄값을 치르게 할 테니까.’

       

       악마와 손을 잡았다.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냈다.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처리하려던 카론과 친해져 그의 견해를 듣고 함께 연구를 진행하였다.

       

       신의 구조를 파악하는 연구.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믿음. 신은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며, 그것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용사의 시체. 그것을 이용해 빛의 신을 속박하면서, 신과 연결된 인간을 이용하면 놈에게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두 사실을 조합해보면 계획은 충분히 세울 수 있었으니. 행동을 망설일 이유 따위 없었다.

       

       카론을 후임자로 지명하고 행방을 감추었다.

       

       그놈이 자리를 이으면 아마 성황청은 급속도로 부패하고 타락하겠지. 성황청과 빛의 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지리라.

       

       하인리히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성녀의 곁에서 그녀를 감시하였다.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일 따위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

       

       모든 것을 불신하고 세상을 부정하도록,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하도록 그녀의 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서…. 

       드디어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허공에 구축되는 술식.

       아이들을 재료로 만들어낸 신성력. 성황청을 떠날 때 가져온 것을 모두 쏟아내어 만든 거대한 진.

       

       하늘은 붉게 물들고, 

       불길한 검은 태양은 떠오른다.

       

       ‘뭐, 이것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하늘을 모두 뒤덮을 만큼 거대한 술식이나 그 술식의 내용물은 단순하다.

       

       평범한 환상 마법.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하지만… 허상이라고 해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웅성거림엔 이제 비명까지 섞여들어가기 시작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일에 모두가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모두가 믿고 있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리고 이 순간 퍼져가는 정보.

       

       “…저주? 3황녀님이 사실 황녀가 아니라고?”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은 가짜 황녀.

       신분을 속이고 감히 제국 황실에 숨어든 악신의 성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믿고 있다.

       

       빛의 신을 사악한 악신이라고.

       사악한 악신이 지금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마 그 빛의 신이라는 작자는 지금 마구잡이로 비틀리며 왜곡당하고 있겠지.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정말 악신으로 덮어씌워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 방금 막 술식의 연결이 끊어졌다.

       이제 더 이상 이 검은 태양과 붉은 하늘은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낸 가짜 따위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믿음이, 두려움이, 그 모든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검은 태양, 아니 이제는 검은 알이 되어버린 것에서 무언가가 태동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요한은 미소지었다.

       

       이제 모든 일이 그의 손을 떠났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결과가 찾아올지 요한 본인조차 알지 못한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혼자 외롭게 울고 있을 너를 위해, 이 아비가 온 세상을 불태워 길동무로 삼아 주마.”

       

       바라마지않던 종말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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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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