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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심문소는 우리가 지내는 곳과 꽤 먼 곳에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신사적으로’ 대해야 할 중요한 포로라고 하더라도 적은 적이다. 혹시라도 탈출해서 황궁 내의 중요 인물을 암살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시설 자체는 일반적인 방과 다를 것이 없다고는 해도 목적 자체는 사실상 감옥.

       

        황성 안의 높다란 탑 꼭대기. 심문실은 그곳에 있었다.

       

        당연히 그 주위를 지키는 경비원들도 한가득이었지만—

       

        “이건…….”

       

        탑 근처에 도착했을 뿐인데 클레어와 앨리스가 멈칫했을 정도로, 그 주변은 처참했다.

       

        황성 최정예라고 불려야 할 기사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일부는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황량한 흙바닥 여기저기에 붉은 피와 검게 탄 흔적이 있었다.

       

        기사들 뿐만이 아니라 병사들도 저항했던 모양이다. 바닥 여기저기 온갖 파편과 반으로 잘린 총기들, 미처 사용하지 못한 수류탄이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귓속을 파고드는 사이렌 소리.

       

        쓰러진 병사들을 넘어서 새로운 병사들이 보충되는 중이었다. 사이렌 소리 위로 어수선하게 걸어 다니는 소리가 마구 겹치고, 여기저기서 고함치는 것이 들렸다.

       

        탑 주변을 화포가 감싸고 있었지만, 함부로 발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황녀님……!”

       

        기사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루카스 님께서 반역을 일으키셨습니다.”

       

        곧장 뛰어오느라 제대로 된 상황을 듣지 못한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기사는 곧장 부동자세를 취하더니 딱딱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탑 안에?”

       

        “예. 법국의 포로를 노린 듯합니다. 그리고…….”

       

        기사는 나와 앨리스의 눈치를 조금 보더니,

       

        “안에 황제폐하와 검성께서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죄송합니다!”

       

        앨리스가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기사가 외쳤다.

       

        “저희가 막았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나는 그 기사에게 곧장 대답했다. 어차피 말릴 틈도 없었을 거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겠지.

       

        그리고 황제가 저곳에 가게 된 건…… 단순히 루카스를 저지하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즐겁겠지, 분명.

       

        나는 이를 악물고 총을 장전했다.

       

        “황녀님, 잠깐……!”

       

        기사가 뭐라고 하면서 제지하려고 했지만, 나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탑 안에는 이미 상당한 수의 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제국 제일이라고 불리는 황실 직속 그리폰 기사단.

       

        넓은 탑을 돌면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에 기사들이 빼곡해서, 설정상으로는 루카스가 이들을 죄다 도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잠깐, 실비아.”

       

        계단 위에 발을 올려두는 나의 팔을 앨리스가 잡아챘다. 한 번 말리는 것이 아니라,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꽉 잡은 것이다.

       

        “위험해.”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거야?’ 그런 의심보다 먼저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은 고마웠다. 하지만.

       

        “루카스가 어떤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그리고, 그 검을 가장 많이 피해 본 사람이 저라는 것도 황녀님은 알고 계시죠.”

       

        내 말에 아주 잠깐 앨리스의 얼굴에 상처받은 표정이 스쳐 갔지만, 내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을 빼지는 않았다.

       

        “……루카스한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목숨보다?”

       

        당연히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믿는 바가 있었다.

       

        아무리 루카스라고 해도 황제와 검성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원작에서는 이맘때도 이미 검성의 실력을 넘어섰다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니까.

       

        검성과의 결투에서, 루카스는 가슴을 베인다.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의 상처는 아니지만, 흉터가 생길 정도로 깊게.

       

        그러니,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 황제까지 있다면 루카스한테 승산은 없다.

       

        그리고 황제는 루카스를 ‘살린 채로’ 싸움을 끝내지는 않을 거다.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내 정체가 무엇인지. 대체 어쩌다가 여기에 이렇게 와 있는 것인지. 

       

        루카스는 그 질문에 최소한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중에서는.

       

        “그러니까, 놓아주시겠습니까?”

       

        “…….”

       

        내 말에, 앨리스는 내 팔을 놓았다. 그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조금 마음이 켕겼지만, 나는 그런 앨리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절대로, 크게 다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황녀님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클레어, 레오도.”

       

        내 말에 세 사람 전부 전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곧장 바로 옆의 기사를 보며 말했다.

       

        “세 사람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감시해주시겠습니까?”

       

        “하, 하지만 황녀님은—”

       

        “제가 가서 죽을 것처럼 보이십니까?”

       

        “…….”

       

        내 말에, 기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전장에서 그 많은 군대를 혼자 쓸어버렸던 인간이 하는 말이니 그냥 넘길 수는 없었겠지.

       

        “실비아!”

       

        “…….”

       

        뒤에서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바로 돌아서서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

       

        하지만 일이 내 생각대로 굴러가지는 않았다.

       

        황제와 검성. 검으로는 이 세계관에서 최상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루카스한테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 우리 동생이 드디어 왔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피 냄새가 났다. 순간 움찔하지 않은 내가 대견했을 정도로.

       

        “크, 윽…….”

       

        “안 그래도 슬슬 네가 그리워지는 중이었어. 내 검술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너 정도뿐이었으니까.”

       

        콰직, 하는 소리가 났다.

       

        “끄윽!”

       

        이를 악문 사람의 신음.

       

        베라티가 루카스의 검에 찔려 나는 소리였다. 배를 베인 것 같았지만 치명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장이 삐져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허벅지에 박힌 칼이 뽑히자, 피 몇방울이 튀었다.

       

        심문실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원래 있어야 했을 가구들은 이미 그 모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산산이 조각나 있었고, 벽 여기저기에는 피가 튀어있었다.

       

        그 피는, 베라티의 것뿐만이 아니었다.

       

        “내 아들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군.”

       

        황제가 루카스한테 그렇게 말하자, 루카스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황제도 루카스한테 베인 모양이었다.

       

        ……황제가, 루카스한테.

       

        “뭐, 솔직히 말하자면 장비빨이지 않겠슴까?”

       

        루카스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법국에 다녀오셨습니까.”

       

        “그렇지. 바로 알아보네?”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의 손에는 법국 기사가 쓰던 검이 들려있었다. 고대, 인간이 물리법칙보다는 마법에 더 의존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

       

        게다가 입고 있는 옷도 법복이었다. 마치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작은 가방을 옆으로 매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끈을 줄여서 몸에 단단하게 밀착시켜, 흡사 이 시대 군인의 간소화된 군장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루카스가 갑자기 개종한 것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쓸모 있다고 생각해서 빼앗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법복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서 정확하게 무슨 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활력? 회복? 방어? ……아무튼,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겠지.

       

        “실비아,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황제보다 더 상처가 많아 보이는 검성이 그렇게 말했다.

       

        “…….”

       

        물론, 나는 검성의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여기서 내가 도망간다고 해도, 루카스는 곧장 따라올 테니까.

       

        판단미스였다.

       

        루카스가 갑자기 이렇게 튀어나올 정도라면 단단히 준비했다고 가정했어야 했는데.

       

        “뭐,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장비빨로 밀어붙일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루카스는 검을 휙 털면서 말했다. 딱 한 번 털었을 뿐인데 검에 묻었던 피가 전부 날아가 검은 완벽하게 깨끗해졌다.

       

        “아무래도, ‘너’를 상대하려면 나도 준비물이 있어야 하니까. 게다가—”

       

        루카스는 웃으며 방 한구석을 보면서 말했다.

       

        “—방해꾼도 있고 말이야.”

       

        그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가,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곳에는, 검에 베여 커다란 상처를 입은 가면녀가 있었다. 쓰러진 것은 아니었지만, 벽에 기대선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떻게……?

       

        “궁금해?”

       

        루카스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안 알려 줄 건데?”

       

        그리고 그 루카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큿……!”

       

        곧장 총을 들 수 있었던 건, 그저 내가 그동안 반복해서 학습한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은 딱 한 번이면 끝난다.

       

        루카스의 검이 휘둘러지고, 그대로 내 총이 잘렸다.

       

        “아—”

       

        “…….”

       

        허무하게 반토막이 되어버린 총을 보고 내가 당황하자, 루카스의 실실 웃던 표정이 무표정해졌다.

       

        그리고 그 표정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그렇다니까. 속임수를 쓰는 것들은.”

       

        루카스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막히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잖아.”

       

        마치 사형이라도 선고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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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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