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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루크의 짐을 풀어서 꺼내놓은 검사관의 표정은 꽤 어두웠다. 

    이상한 품목도 한두개가 아니다.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의료용포션, 비닐백에 가공, 정제한 마력초들.

    10살짜리의 가방에서 나온 품목 치고는 너무나 수상한 물건이라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이 침낭은 군용이 아닌가? 의료키트라고 쓰여진 파우치에도 어김없이 ‘군용’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다.

     

    단순 여행용 짐에서 나올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부상이 걱정되어 챙긴다고 해봐야 단순히 소독 겸 힐링포션이나, 반창고. 붕대 같은 것으로 충분하지, 지혈대나 응급수술키트는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 뿐만이 아니다.

    잘 말려서 보관되어 있는 로프, 손전등과 발화제, 다용도 포켓 멀티 툴……. 물론 군용이다.

    심지어 군용 비상식량도 존재한다.

     

    여기까지보면 어디서 짐이 바뀐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헌데 그와는 극도로 대비되는 여아용 의류와 생필품들이 또 착실하게 개어져있다는 부분이 정말로 골때린다.

     

    “이건 다 네가 직접 챙긴거야?”

    “그렇다네, 혹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많지…….”

     

    일단 이 라벨 없는 포션과 가루들은 따로 검사를 보내봐야할 것이고, 그 외의 금지품목들은 압수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짐이 조금 가벼워지고 말겠군.”

     

    이 시대의 규칙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니 누구를 탓하리, 자신이 잘못한 일이니 딱히 화를 내거나 항의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게다가, 압수한 물건들은 돌아올 때 돌려준다고 하니까 더욱 화낼 이유가 없다.

    루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눈을 감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 태연한 모습에 검사관은 환장할 노릇이다.

     

    “얘, 대체 이런건 다 왜 챙긴거니?”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저 미리 대비를 한 것 뿐이다만.”

    “…….”

     

    대비, 대비라…….

    뭐, 의도는 좋다.

     

    허나 10살짜리가 그런 발상을 하고 이런 짐을 싼다는 것은 심각한 안전 과민증이라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이건, 갑작스러운 비행기추락으로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에 떨어져야 비로소 써먹을 수 있을 법한 장비들이 아닌가?

    어디서 구하기도 힘든, 이런 수준의 장비를 말이다.

     

    “아, 그건 숲지기인 예르나의 물건들일세. 집에 그냥 있던 걸 가져왔을 뿐이니.”

     

    ‘좋아, 어째서 이렇게 군용 물품들이 많은가에 해당하는 궁금증은 해결이네. 아이가 숲지기와 같이 사는 거였군.’ 이라고 유쾌하게 넘기기에는 아직 커다란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삑삑삑-

     

    “…….”

     

    아이의 심장에 쌓인 마력이 너무나 강하다.

     

    아이가 제출한 서류중에는 물론 현재 자신의 신체적 특이점에 관한 자료도 존재했다.

    ‘마나심축적 증후군’, 소위 ‘서클’이라고 불리는 심장질환의 존재.

     

    비행기에 사용되는 마법회로는 너무나 섬세해서 마력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에, 신체 내부에 마나가 쌓이는 해당 질환의 환자들은 각자 자신의 마력량에 맞는 ‘보호장구’를 지급받는다.

     

    마나노출을 억제하는 장구를 말이다.

     

    보통은 악세서리처럼 제작해서 팔찌나 목걸이의 형태로 제작하고는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세계수급의 마력을 억제하는 장비는 그들에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

     

    “…….”

     

    사정을 전해들은 예르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크의 마력량이 엄청난 것이야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웬만한 세계수의 코어 급’ 마력을 심장에 담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검사관의 이야기를 들으면 루크가 비행기를 탈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었다.

    아니, 이 것은 고작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것을 뛰어넘어, 루크의 생존에 관한 문제가 된다.

     

    분명 처음 루크의 마력량을 검사해보았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 때에도 마나의 농도가 너무 높아 손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이중서클을 넘어, 전 세계에 발현자가 몇 명 없다는 삼중서클까지.

    게다가, 마나가 쌓이는 속도도 말이 안된다.

     

    이제 고작 반년정도 된 지금 세계수의 코어 급 마력이라면, 몇 년 뒤엔?

     

    보통 서클에 담긴 마력이 강할수록 서클의 폭주를 다루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평생 그 마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루크는?

    만약 폭주가 일어난다고 하면 제어할 방법이 전혀 없다.

    현대의 그 어떤 마법도, 심장에서 날뛰는 세계수의 코어 급 마나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예르나는 허탈하게 앉아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이 쌓이는 것에 별 경각심을 갖지 않는 루크라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는 문제다.

    측정치를 본 공항 응급의료팀 직원의 말로는, ‘여기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라던가……?

     

    그 말을 건네던 직원의 표정을 떠올린 예르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로 조금씩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하지만 루크는 용과 마수를 섞은 키메라잖아.’

     

    법적으로는, 그리고 표면상으로는 ‘혼혈수인’이기는 하지만, 루크는 엄밀히 실험으로 제작된 키메라였다.

    게다가, 상처도 금세 나아버리고, 용으로도 변해. 입에서 불도 뿜을 수 있고, 몸도 엄청 튼튼해. 씩씩하기도 하고, 잘 웃기도 하지.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걸. 그리고, 얼마나 귀여운데.

     

    그런 아이가, 고작 마력폭주로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잖아?

     

    맞아, 분명 그렇겠지.

     

     

    “카리나? 울어?”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푸른 머리의 소녀는 바로 파이리스였다.

    루크가 2~3살정도 어리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예르나는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짚어보았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는데.

     

    “응? 아냐, 내가 왜 울어?”

     

    “그치만, 슬퍼보여.”

     

    음, 이건 꽤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예르나가 표정을 다잡고 있으니, 루크가 곁에서 허탈한 웃음을 지어내며 말했다.

     

    “면목이 없군, 예르나. 또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만들고……. 마력량이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네.”

     

    “아냐, 그게 왜 너의 탓이겠니.”

     

    “…….”

     

    루크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피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자신의 탓은 맞았다.

    그 자신이 쌓은 마력이니 말이다.

     

    담임교사인 엠마는 이미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서 가버렸다.

    탓 할 수는 없으리라, 루크 말고 다른 아이들은 이미 짜여진 일정이 있고, 교사인 엠마는 그 아이들을 지도할 의무가 있으니까.

    어쩐지,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아무리 교사라지만 그녀라고 방법이 있을 턱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서도…….

     

    그 때, 루크를 향해 걸어오는 하얀 은빛머리의 엘프 꼬마가 있었다.

    시루드 트리핀드.

     

    그러고보니, 이 아이 역시 이중서클의 소유자였다.

     

    “엄마가 전화로 공항이랑 잘 이야기했어요. 루크는 저랑 같은 비행기로 가면 될 거에요.”

     

    “그게 정말이야?”

     

    ———-

     

    사실, 시루드는 이 일이 있기 전에 이미 할아버지의 비행기를 빌렸었다.

    공항 한켠에 놓여진 다른 여객기의 반의 반쯤 되어보이는 작은 비행기지만, 날렵하게 생긴 그 형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이할 점은, 마력엔진이 날개가 아닌 꼬리쪽에 달려있다는 점일까.

     

    “시루드, 이게 그대의 할아버지가 가진 비행기란 말이냐?”

    “응, 일 때문에 해외 나가실 때 타시는 건데, 이번엔 나한테 빌려주셨거든.”

     

    시루드의 할아버지라고 하면 바로 그 ‘소리드 트리핀드’다.

    심장에 3서클을 새긴 원로원, 그 자신도 높은 마력의 소유자인만큼, 응당 비행이동시 마나에 대한 대응책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에겐 마력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소형 비행기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가진 손자에게 빌려주는 것은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루크의 심장에 담긴 마력량이 세계수의 코어급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미리 알았다면 처음부터 루크까지 인원에 추가 해줬을 텐데, 급하게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버렸다.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원래 이 비행기는 세계수의 코어를 운반하던 비행기를 개조한 거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오호, 정말인가? 대단하군.”

     

    루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큰 비행기는 아니지만, 마법진의 회로도가 극도로 안정적이다.

    그 중에서도 취약점인 부분은 아예 완전히 기계로 작동하도록 설계한 것인지, 마력시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마법이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굉장히,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렇지?”

     

    루크가 연신 감탄을 내뱉는 모습을 본 시루드는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큰 비행기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루크는 이런 작은 구형비행기도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저런 대형 여객기들보다 훨씬 유심히 살피는 걸 보면 오히려 이 쪽이 더 취향인지도 모르겠다.

     

    이 비행기는 시루드가 지금보다 더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몇 번이나 타본 기억이 담겨져 있었기에 올라타서 보고 있다보면, 꽤나 애틋한 감정이 들곤 했다.

    오늘, 시루드는 그것을 루크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서 꽤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비행기에 가까이 다가간 둘을 반기는 조종사.

    그는 시루드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짐을 받아서 짐칸에 실었다.

     

    그리고 이내 루크의 짐까지 받아서 실으려 했지만, 그의 완력으론 도저히 두발짝 이상 그 짐짝을 들고 걸을 수 없어서 루크의 짐은 루크가 직접 짐칸에 실어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시루드는 생각했다.

     

    ‘대체 저 괴물 같은 힘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볼 때마다 놀랍다, 저게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라는 사실이…….

    루크는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 감탄했다.

    작은 비행기의 안쪽은 정말 실내처럼 꾸며져있는 상태였다.

    꽤 고급스런 소파 같은 의자가 서로를 마주보게 놓여있고, 바닥은 회갈색 카펫이 깔려있었으며, 바닥엔 탁자도 있었는데, 정말 다이튼의 말대로였다.

     

    “저기, 시루드?”

     

    “응?”

     

    “신발은 어디서 벗는 게냐?”

     

    “불편해? 그럼 아무때나 벗어도 돼. 여기 바닥은 깨끗하니까.”

     

    “그렇군.”

     

    시루드의 말에 루크는 구두를 벗었다.

    루크가 아무리 구두를 애용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것이 편한 신발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리 불편한 구두를 자주 신느냐 묻는다면 그저 그것이 귀족의 의상에 익숙했던 루크의 선호였을 뿐이다.

     

    과거에도 서클이 새겨지고 살아남은 자 대부분은 귀족이거나 부유한 자들이었고, 그들과 자주 마주해야만 하는 아카데미의 학장을 역임하던 시기가 있던 루크는 이미 5000년 전의 조금 비효율적인 예법과 의상에 익숙해져 너무 편안한 복식이 심리적으로 불편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루크가 신발을 벗고 의자에 앉으니 시루드 역시 그 맞은편에 앉아 말했다.

     

    루크는 의자 안쪽에서 벨트를 찾아 배 앞쪽을 가로지르게 하고는 찰칵 소리가 나도록 끼우며 생각했다.

     

    ‘다이튼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하긴,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리가 없지.

    그래도 솔직히 조금 정도는 의심을 했었는데, 반성하게 된다.

     

    ——-

     

    “에취!”

     

    “왜 그래? 다이튼, 혹시 감기야?”

     

    예르나의 걱정스런 물음에 다이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 그냥 재채기야.”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생각해보면, 짚이는 곳이 없지는 않다.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루크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 지 참 궁금하긴 하네.

    그 표정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다이튼이 살짝 웃는 모습을 본 예르나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내 물었다.

     

    “그렇구나……. 아무튼, 그래서…….”

     

    “베리튼행 비행기티켓 말이지? 아직 환불 안 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행기에서 신발벗기!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거짓말이 아닌줄 알았는데 거짓말이었던거임…

    이제 출발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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