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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쇠로 된 커다란 원반이 쇠막대 하나에 받쳐져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형태의 ‘접시 돌리기’라 할 수 있었다.

         

       원반 위에는 다섯 개의 커다란 공이 있었는데, 다섯 명의 곡예사가 각자 공 위를 달리며 발로 공을 굴렸다.

         

       공들이 움직일 때마다 원반은 위태위태하게 휘청거렸다.

         

       곡예사들은 음악에 맞춰 허겁지겁 달렸다가, 펄쩍 뛰어났다가, 물구나무를 섰다가, 공중제비를 돌았다.

       제멋대로인 동시에 일사불란한 동작이었다.

         

       다섯 명의 호흡이 어찌나 절묘했던지 원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균형을 복구해냈다.

         

       마지막에 원반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공들이 차례차례 무대 위로 쏟아졌다.

         

       그렇게 다섯 개의 공이 나란히 줄지어 섰다.

       그 위에 타고 있던 다섯 명의 곡예사가 마무리 인사를 했다.

         

       막간을 알리는 징이 울리며, 박수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것은 다섯 곡예사 중 가장 어린 이를 향한 것이었다.

         

       엘라는 마치 땅 위를 걷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공 위를 돌며 사방을 향해 허리를 꾸벅꾸벅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함께 연습한 동료들을 돌아봤다.

         

       “어땠어요?”

         

       4명의 곡예사는 그녀를 바라보며 엄지를 척 내밀었다.

         

       “브라보!”

       “대단하데!”

       “굴러가는 5인의 접시를 고작 두 번 만에 해낼 줄이야!”

       “레이나처럼 절대적인 균형감각을 타고난 것도 아닌데!”

         

       엘라가 공 위에서 미끄럼타고 내려오자 구경하던 곡예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으힛! 아직 부상이 낫지 않은 몸이라고요!”

       “으하핫, 양팔에 석고를 감고도 그런 움직임을 보였단 말이지?”

       “대단하구먼, 대단해.”

       “대회가 끝나면 내 제자가 되지 않을래?”

       “무슨 소리! 네놈 재주에 배울 것이 뭐가 있다고. 내 극장으로 와라!”

       “흥. 너희 둘 다 얘 스승감은 못 돼. 하루 만에 밑천이 탈탈 털릴걸?”

         

       엘라는 그들의 손길을 피해 몸을 빼면서 소리쳤다.

         

       “그거 부정 섭외인 거는 알죠? 확 신고해 버릴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곡예사들이 왁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그런 모습을 짐짓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봤다.

         

       “저는 이래 봬도 한 서커스단의 부단장이에요. 너무 어린애 취급은 사양하겠어요.”

         

       그녀는 석고가 감긴 팔로 찌그러진 모자를 펴며 툴툴거렸다.

       곡예사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도 좋은지 낄낄 웃었다.

         

       황금 카니발은 최고의 드림팀이라는 별명답게 단원들의 경험과 실력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단장인 로드 판타스틱의 깐깐함과 완벽주의 성향 덕에 연습하는 내내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들은 이번 그랑프리를 위해 임시로 뭉친 조직이었고, 단원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일류 곡예사라 누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지 않았기에 살가운 분위기가 쉽게 형성되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막내인 레이나는 차갑고 성숙한 성격이었고, 그녀가 있으면 로드 판타스틱이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싸늘하게 굴었기에 분위기는 더욱 처졌다.

         

       그러나 엘라는 달랐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활기찬 얼굴로 선배들에게 인사했고, 연습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가 돌지 않도록 중간중간 붙임성 좋은 농담을 걸어댔다.

         

       대부분 30대 이상인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은 딸뻘 되는 존재의 등장을 크게 반겼다.

       다들 곡예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었기에 서커스 마니아인 그녀와 얘기가 잘 통했다.

         

       처음 그녀가 아침 연습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을 때, 거부감을 드러냈던 단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그녀의 놀라운 재능과 열정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연습에 참여하는 데 반대하는 단원들도 있었지만, 이유는 이전과 달랐다.

       혹시나 그녀가 무리하다가 또 다치면 어쩌나 싶은 것이다.

         

       “부상이 습관화되면 곡예사 수명이 짧아진다네. 주의하게.”

       “지금 적을 걱정해주시는 거가요?”

       “적이라니. 임시지만 지금은 자네는 우리 단원이야.”

         

       심지어 평소라면 딱딱하게 굴던 로드 판타스틱조차 그녀에게는 부드럽게 나왔다.

       지몬 마기어 그 자신도 자신의 태도 변화에 놀랄 정도였다.

         

       서커스 연습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엘라가 내뿜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그도 모르게 감화된 거 같았다.

       레이나라는 마음의 짐덩이가 보이지 않는 덕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굴러가는 5인의 접시’는 누가 만든 거예요?”

       “이 몸이라네.”

         

       로드 판타스틱이 콧수염을 한 번 튕기고 말했다.

         

       “나는 이 곡예를 어디서 떠올렸냐면…….”

       “데포드의 ‘춤추는 팽이’에서……맞죠?”

         

       엘라의 말에 지몬은 씩 미소를 지었다.

       명석하군.

         

       “자네의 식견은 정말 놀랍군.”

       “교본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회전할 때 생기는 원심력으로 균형을 보조하는 거잖아요? 척하면 척이지요! 이제 오전 훈련은 뭐로 하는 거죠? 또 단장님 창작 곡예인가요?”

       “으하하, 이제 아침 훈련이 끝났는데, 벌써 오전 훈련을 생각하나? 우선 식사부터 들지 그래.”

         

       그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평소에 혼자서 식사를 하는 단원들도 함께했다.

         

       얼마 안 있어 식당에서도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중심에는 엘라가 있었다.

       그녀가 한마디 할 때마다 곡예사들의 입에는 미소가 걸렸다.

         

       업계 후배가 가진 재능과 열정이 대견했다.

       그녀가 그들의 이름, 별명, 대표적인 재주를 언급하며 아는 척을 할 때는 고마웠다.

       짓궂은 단원들의 장난에 그녀가 삐치는 모습이 귀여웠다.

       

       단원들은 이렇게 즐거운 아침 식사는 황금 카니발의 창단 이후로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별을 땄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오전, 오후, 저녁 훈련도 함께했다.

       그녀는 부상입은 상태에서도 딱딱 사용할 수 있는 신체 부위만을 사용하여 어떻게든 한 사람 몫을 해냈다.

         

       같이 지낸 시간은 고작 하루지만, 단원들의 머릿속에는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가 함께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단장인 로드 판타스틱도 같은 생각을 했다.

         

         

       ***

         

         

       그날 밤에 있는 정기 연락 시간.

       나는 엘라가 신나서 떠드는 것을 30분 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있지……. 마지막에는 ‘불타는 바퀴’라는 것도 했어! 커다란 쳇바퀴 안에 차력사 세 사람이 들어가는 건데…….

         

       나는 시계를 보며 가스통과 약속한 때가 된 걸 확인했다.

         

       -후후, 그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듣죠. 어쨌든 다행이군요.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어쩌나 했어요. 재밌었나요?

       -응! 물론이지! 이렇게 일류 곡예사들과 합동으로 연습하는 걸 또 어디 가서 해보겠어? 흐흥,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질투하는 건 아니지? 걱정되지 않아?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나?

         

       그녀의 말에 나는 ‘단원 관리’ 창에 뜬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전히 31에서 조금의 호감도 변화도 없었다.

         

       -전혀 안 하는데요. 엘라 양은 여전히 제 부단장인걸요.

         

       내 말에 그녀는 갑자기 헛바람 비슷한 것을 내뿜더니 말을 더듬었다.

         

       -어……으음……무슨 허, 헛소리를……아, 아니, 다, 당연한 소리를……우움……헤헤.

       -이만 줄여야겠어요. 영감님이 치료하러 들어올 시간이네요.

       -벌써……? 우움, 나 그거 받기 싫은데……. 당신이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 붕대 감은 동안 쉬기로 한 거 아니야?

         

       갑자기 그녀가 힘겨운 목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씨알도 안 먹힐 연기였다.

         

       -그러게 낮에 얼마나 쌩쌩 날아다녔으면 영감님이 그런 말을 했겠어요.

       -으……그, 그렇지? 웃,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그럼 내일 또 봐. 같은 시간에 연락할 거지?

       -그렇게 하죠.

         

       나는 ‘음향실’에서 엘라와의 채팅창을 내린 다음 30분 정도 기다렸다.

       그다음 단원 목록에서 가스통 할리우덴을 찾아 대화를 걸었다.

         

       -영감님.

       -…….

       -영감님?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상태창을 다시 확인하려는데 반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영감님이 누군가.

         

       토라진 노인네의 목소리였다.

       못 말리겠군.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진중한 톤으로 바꿔서 말을 걸었다.

         

       -스승님.

       -그래, 제자야.

         

       어제까지만 해도 존댓말을 듣던 대상에게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상대가 노인이라 거부감은 안 들었다.

         

       -어떻게 됐죠? 엘라 양의 상태는?

         

       반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끌끌, 내 예상이 맞았다. 엘라 이 계집애가 그동안 약을 먹은 척만 했던 것 같구나. 제법 연기를 잘했지만, 나는 혈색, 호흡만 슬쩍 살펴봐도 다 알 수 있거든.

         

       한 방 먹었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무조건 내 말을 잘 들을 거라 여겼던 내가 순진했다.

         

       -……그렇습니까?

       -으헛헛, 그것도 오늘로 끝이야. 오늘은 내가 약을 증기로 태워서 흡입시켰지. 효과가 조금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이걸로 치료는 확실히 진행될 거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제자야. 그건 그렇고 내가 쓴 본초학 개론은 몇 페이지까지…….

       -어? 스……님? 마, 마력이……다……떨……졌…….

       -야? 야! 야!

         

       나는 재빨리 연락을 끊었다.

         

       안 그래도 엘라가 사라진 터라 내가 해야 할 일이 몇 배로 늘었다.

       그런데 풀이니 나무 따위를 암기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당장 내일 단원들에게 새로운 곡예를 어떻게 가르치나 그게 더 걱정이었다.

         

       시범을 보이는 것은 ‘스킬북’으로 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였기다.

       스킬북을 통한 기술 습득은 자연스럽게 내 몸에 익혀지는 것이지, 내가 그 체득 과정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스통의 가르침을 애써 피하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그가 제대로 지식을 전수하려고 덤비면, 금방 내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사실 내가 천재도 뭣도 아니라는 것이.

         

       가스통의 능력은 지금 엘라를 위해 필요했다.

       그녀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이용해야 했다.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중에 나를 찾아올 만한 사람은 유라크네밖에 없는데?

         

       당연히 그녀겠지 하고 문을 열어본 나는 조금 놀랐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레이나였다.

         

       “무슨 일이죠?”

         

       나는 그녀를 방에 들어와 소파에 앉게 했다.

         

       “단장님.”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주저하더니 말을 꺼냈다.

         

       “제가 더 할 일이 없나요?”

       “할 일이요?”

       “네. 아무리 객식구라도 가만히 놀고 있는 건 불편하군요.”

         

       나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단원들과 선을 그은 뒤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식사를 모두 방안에서 해결하며 혼자만의 연습에 몰두했다.

         

       다혈질적인 세쌍둥이는 그녀를 욕했지만, 다른 단원들은 그러려니 했다.

       엘라가 워낙 별났던 거지, 저게 보통 사람이 보일 반응은 맞았다.

         

       나는 그녀가 심적으로 몰려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일할 거리를 달라니?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녀는 떠듬떠듬 말을 내뱉었다.

         

       “그게……아침에 제가 했던 태도에 대해서……단원들이 오해할 것 같아서……. 저는 그들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소심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머뭇거리며 본심을 털어놓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보육원 시절이 떠올랐다.

       동시에 TT1에서의 그녀가 떠올랐다.

         

       냉랭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 안에는 눈칫밥 먹고 큰 어린아이가 들어 있었다.

       나이에 비해 몇 살은 성숙해 보이는 겉모습과 반대로, 내면은 나이에 비해 몇 살은 미성숙했다.

         

       엘라를 몇 달 동안 옆에 끼고 있으면서 착각해버렸다.

         

       그녀가 워낙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였기에, 그보다 더 철들어 보이는 레이나는 정신적으로 그보다 더 성숙한 것으로 생각해버렸다.

         

       보육원에서의 우리도 그랬다.

       어리광 피우고 떼를 써야 할 시절에 강압적으로 예절을 교육받았다.

         

       우리는 원장의 폭력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답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인격이 성숙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가 아침에 보인 행동도 그녀의 본심이 아니라 감정적인 불안함에서 나온 어린애의 실수라 생각하는 게 맞았다.

         

       “후후, 단원들에게 미안하단 말이군요. 그럼…….”

         

       나는 TT3에 와서 그녀가 무슨 일을 하게 되었는지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혹시 그들을 지도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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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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