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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145화. 서리용 ( 3 )

       

       

       

       

       

       성지의 수많은 드워프 형제 중에서는 유독 형 대접받는 이들이 세 명 있었다.

       

       셋째 트리비우스 팔락, 둘째 세듀스 팔락, 맏형 오푸스 팔락.

       

       이들은 위대하신 분에게 직접 이름을 받은 드워프들이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형제들이 인정하는 권위로 이어졌다.

       

       사실 이 성지 안에서 권위라고 해봐야 별로 대단한 것은 없었다. 저들끼리 겨뤄봐야 위대하신 분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였기에.

       

       기껏해봐야 술집에서 조금 더 시원한 맥주를 먼저 먹는다거나, 술집에 전용 의자가 있고, 술집에 그들의 이름을 새긴 낙서가 제일 위에 있는 정도? 정말 별거 아닌 소소한 권력이지만, 세듀스 팔락은 이러한 소박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드워프였다.

       

       

       “흐흐흐. 어휴, 시원해. 요 예쁜이, 넌 도대체 왜 이렇게 시원하니.”

       

       꽈악ㅡ

       

       세듀스 팔락은 시원한 서리알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얼마 전 성지에 생겨난 서리가 잔뜩 낀 알을 껴안으며 냉기를 만끽하는 것도, 세듀스 팔락의 소박한 행복 중 하나였다.

       

       둘째의 무시무시한 권위와 권력은 세듀스 팔락이 다른 동생들보다 조금 더 오랫동안 서리알을 껴안을 수 있게 해주었다. 뒤에서 몇몇 동생들이 궁시렁거리는 것도 가끔 들렸지만, 그 정도는 가뿐하게 무시했다.

       

       오싹!

       

       뼈를 파고드는 이 시원함이라니! 맨날 뜨거운 불 앞에서 살다시피 했던 드워프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서리알을 껴안으며 시원함을 즐기곤 했다.

       

       

       “흐흐ㅡ 어허 시원하다.”

       

       

       서리알을 껴안은 팔에 좀 더 힘을 주며 꽉 껴안았다. 몸 구석구석까지 닿는 면적을 최대한 늘려볼 참이었다.

       

       쩍ㅡ!

       

       “…으음?”

       

       

       세듀스 팔락의 귀에 낯선 소리가 들렸다. 얇은 막이 부서지는 소리.

       

       소리의 근원을 찾아 세듀스 팔락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다른 드워프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저들끼리 웅성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콰직! 쩌저적ㅡ!

       

       또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세듀스 팔락과 모든 드워프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했다.

       

       

       “아, 알이…!”

       

       “부서진다ㅡ!!”

       

       

       그들에게 냉기를 제공하던 서리알에 크게 금이 가더니, 쩍쩍 갈라지며 부서지는 것이 아닌가!

       

       드워프들의 입이 떡 벌어지더니, 우르르 도망쳐서 멀리 떨어진 뒤에야 서리알을 바라보았다.

       

       드워프들에게는 많은 수의 형제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무언가 태어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태어나지 않고 신에 의해 만들어졌으니까. 하여 무언가 태어나는 그 낯선 장면에 드워프들은 지레 겁을 먹었다.

       

       

       “혀, 형님! 뭐라도 해야 되는거 아니요?”

       

       “밀지 마라 이놈아! 나라고 한들 뭘 알겠냐?”

       

       “어어…! 계속 부서진다!!”

       

       

       콰지직! 찌직!

       

       알의 표면에 그어진 금이 점차 커지면서 알을 덮어가더니 이윽고ㅡ

       

       

       “삐이이익!”

       

       

       우렁찬 포효와 함께,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한 생명이 태어났다.

       

       

       “오, 오오… 위대하신 분 맙소사…”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이런…”

       

       

       드워프들은 탄식했다. 알을 깨고 나온 그 존재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깨달음이었다.

       

       저 생명체는 타고난 맹수요, 철저한 사냥꾼이자, 무자비한 폭군이었고 그들의 천적이라는 것을.

       

       저 모습을 보라, 저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한 자태를 보라!

       

       뾰족하고 앙증맞게 튀어나온 발톱과 뽈록하게 튀어나온 뱃살! 오동통하게 살이 차오른 꼬리와 푸른 빛이 감도는 매끈한 비늘, 살짝 길게 찢어진 동공과 작고 빨간 혓바닥, 조약돌처럼 오돌토돌한 이빨까지!

       

       

       “삐이익?”

       

       두근ㅡ!

       

       “크윽ㅡ!”

       

       “시, 심장이…!”

       

       

       저 녀석은 사나운 맹수였다. 사냥감의 심장을 노려 공격하는 맹수.

       

       알을 깨고 나온 녀석이 드워프들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갸웃 흔들었다. 좌우로 갸웃거리는 머리를 따라 작은 몸이 흔들리다가,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발라당 누워 버렸다.

       

       실로 해로운 모습.

       

       불의의 일격으로 심장을 공격당한 드워프들이 일제히 가슴팍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습격!

       

       

       “뭐야! 무슨 일이요 형님들! 무슨 일이야!”

       

       “어, 어? 알이 없어!”

       

       

       소란을 듣고 우르르 몰려온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삐익? 삐이익?”

       

       “크웁!”

       

       “귀여워…!”

       

       풀썩.

       

       

       서리고룡의 주변에는 무릎을 꿇은 드워프들이 가득했다. 무력화된 드워프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서리용의 자태는 참으로 생태계의 정점이요, 날개 달린 것들의 왕이었으니.

       

       이 모든 것들은 서리용이 태어나고 짧은 순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맹수란 말인가? 

       

       

       “삐이익…? 삐익! 삐이익!”

       

       파닥파닥.

       

       쓰러진 드워프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서리용은 이내 짧은 날개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통통한 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고 앙증맞은 날개였지만, 놀랍게도 그 몸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드워프의 머리만큼 날아오른 서리용은 해와 달이 함께 떠있는 하늘을 향해 거칠게 포효했다.

       

       

       “삐이이이익!”

       

       

       작고 앙증맞은 하울링이 잔바람을 타고 퍼진다. 제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려는 듯, 오랫동안 그 잔향이 남았다.

       

       성지 역사상 가장 귀엽고 깜찍한 폭군이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

       

       

       

       

       

       용(龍), 혹은 드래곤.

       

       개인적으로는 문어만큼이나 서양과 동양의 인식 차이가 뚜렷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생김새부터 주로 갖는 이미지까지 정 반대에 가까우니.

       

       서양권에서는 공포와 사악, 두려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의 상징이면서 토벌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고, 동양권에서는 지혜와 현명함을 갖춘 영물 중의 영물로 자주 등장한다. 그야말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환상의 동물.

       

       어느 쪽이라도 굉장히 강하고 신비한 생명체로 나온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요점은 그거다.

       

       

       ‘…용이네?’

       

       

       별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서리알에서 대박이 터졌다는 거.

       

       

       – “삐이익. 삐익!”

       

       

       점심 시간에 재빨리 밥을 먹어치우고 잠시 접속한 게임. 서리알에서 뭐가 나왔는지 잠깐 확인만 해볼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얼굴에 잠깐 당황했다.

       

       ㅡ 파닥파닥.

       

       앙증맞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신전과 광산, 건물 사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작은 용 한 마리. 자신이 서리알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체적인 색깔은 파스텔톤의 하늘색에 가까웠다. 아직 새끼여서 그런 걸까.

       

       자세히 보니 서리알이 놓여있던 곳에는 산산이 부서진 알의 파편만이 존재했다. 몇몇 드워프들이 꼼지락거리며 남은 파편들을 청소하는 것도 보였다.

       

       

       ‘용? 그것도 서리용이라고?’

       

       

       이게 뭘 의미하는 거지?

       

       아직 이름을 정해주지 않은 새끼용의 머리 위에는 ‘서리비룡’ 이라는 임시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이름을 보니 좋지 못한 추억이 하나 떠오르려고 했다.

       

       평타에는 무시무시한 깡데미지와 스턴이 붙어있고, 심심하면 광역 브레스를 뿜고, 2 페이즈 시작하면 공중 패턴으로 전환하면서 게임 뭣같이 하던 녀석… 우연일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이름은 ‘서리고룡’이었고, 이 어린 용은 ‘서리비룡’이었다.

       

       

       ‘…진짜 둘이 같은 종인가?’

       

       

       합리적인 의심이다. 서리가 붙는 용이 흔하게 널린 것은 아닐 테지.

       

       만약 같은 종이라면… 이건 대박이다. 이 녀석을 잘 키우면 나도 평타가 기절인 희대의 개사기 펫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 거다.

        

       

       – “삐익! 삐이익.”

       

       툭 툭 툭.

       

       여기저기 초원을 끊임없이 누비는 서리비룡. 손가락으로 쳐주니까 좋다고 달라붙는 모습이 마치 새끼 강아지와 비슷하다. 시골의 할머니 집에 있는 흰색 솜털이 가득한 똥강아지 같은 느낌이다.

       

       스슥ㅡ

       

       – “삐이이익!”

       

       

       손가락으로 서리비룡의 앞에서 쭉 드래그하니, 신난다고 날개를 퍼덕이면서 손가락을 따라온다. 작고 빨간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거리면서 쫓아오는데, 살짝 튀어나온 뱃살이 뽈롱거리며 흔들렸다.

       

       

       ‘…너무 귀여운데?’

       

       

       조상님들이 왜 홀린다는 표현을 쓰는지 알 것 같다. 정신없이 서리비룡과 놀아주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서 밀린 메시지 창부터 확인했다. 

       

       

       빠밤ㅡ!

       

       《’서리가 낀 알’이 부화하여, ‘서리비룡’이 탄생했습니다! 충분한 애정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서리비룡’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이 귀여운 비늘 덩어리한테 능력이 있다고…? 귀여운 것도 능력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고양이처럼 귀여운 게 능력일 수도 있지 않은가.

       

       

       – “삐익! 삐이익! 삑삑!”

       

       파닥파다닥!

       

       내 생각을 읽은 듯, 서리용이 광산의 입구에 내려앉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조그만 비늘 덩어리가 제 나름대로 리듬까지 맞춰서 씰룩거리는 모습이라니.

       

       

       – “ㅋ-ㅡ흡…! 귀d여el워!”

       

       – “서리qㅂl룡, 최Rㄱㅗ다!”

       

       

       빠밤ㅡ!

       

       《’서리비룡’이 날개를 퍼덕이며 일꾼들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꾼들의 작업 속도가 증가합니다!》

       

       

       “아니, 이게 되네.”

       

       

       서리용의 앙증맞은 응원에 드워프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광산에서 광물을 캐서, 녹이고 무기를 만드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왼쪽 오른쪽 반복하며 살랑이는 꼬리를 확대해서 바라보다가, 서리용이 춤을 멈추고 나서야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삥뽕ㅡ!

       

       《’서리비룡’의 이름을 정해주세요. 설정하지 않을 시, 기본 값인 ‘서리비룡’으로 정해집니다.》

       

       “아, 이름. 맞아 이름을 안 정해줬네.”

       

       

       그제야 아직도 서리비룡의 이름을 정해주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하지만 뭐, 서리비룡의 이름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이 비늘과 서리라는 키워드를 볼 때 부터 팍! 하고 떠오른 하나의 이름.

       

       추억 속 게임의 그리운 이름을 녀석에게 붙여본다.

       

       

       “이베르카나… 좀 긴가? 네 이름은 이제부터 이베르라고 부르자.”

       

       

       이베르, 이 세상을 모조리 얼려버리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후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독자님들의 응원과 사랑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임티 MK.2는(1도 안 나옴)… 긍정적으로 고려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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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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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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