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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으음….”

       

       전투의 피로가 쌓여서였을까, 침대가 너무나도 푹신해서였을까.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잔 나는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에 잠에서 깼다. 

       

       ‘눈 뜨기 싫다….’

       

       막 어제 헤카르테라는 마왕을 물리친 참이다. 

       

       최근에 부지런히 움직이기도 했고, 이제는 좀 마음 놓고 늦잠도 자고 해도 되는 거 아닐까. 

       

       ‘물론 마왕 하나 잡았다고 모든 게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레키온과 만나서 하무트교 토벌을 도와야지.’

       

       아직 스토리 상으로 레키온의 레벨은 하무트를 홀로 이기기엔 부족할 것이다.

       

       만약 레키온이 하무트교를 토벌하다가 궁지에 몰린 하무트가 헤카르테처럼 불완전한 부활을 감수하고 나타난다면, 레키온이 패배해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우리가 레키온을 만나서 조력하고, 하무트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솔직히 아직 시간 상 꽤 여유가 있는 편이다. 

       

       ‘레키온이 아무리 하무트교를 열심히 추적하고 알렉스의 도움을 받고 해 봐야, 우리보다 빨랐을 수가 없지.’

       

       이쪽은 헤카르테교 교단원을 낚아서 모든 지부와 산하 세력의 위치를 알고 시작했고, 이드밀라의 등에 타고 최적의 동선을 밟아 왔다. 

       

       제아무리 레키온이라 하더라도 이드밀라보다 빠를 수는 없을 거 아닌가.

       

       ‘그러니 아직 시간은 충분해.’

       

       그간 피로가 많이 쌓였으니 최소한 며칠 동안 좀 풀어져 있는 것쯤은 괜찮을 거다.

       

       나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핑계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고, 결국 더 자기로 결정했다.

       

       ‘역시 이럴 때는 우리 아르를 품에 꼬옥 안고 한 번 더 잠을 청하는 게 최고지.’

       

       후후후후.

       

       일단 아르의 조그만 손바닥 젤리를 몇 번 만지다가….

       

       “……?”

       

       말랑.

       

       손바닥 젤리를 만지려던 나는 문득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다. 

       

       ‘아르 손이 이렇게 컸던가?’

       

       분명 내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는데.

       

       지금은 두툼한 게 거의 호랑이 손바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고….

       

       ‘팔도 두꺼워졌어…?’

       

       그때 아르가 마침 살짝 깼는지, 뀨웅 소리를 냈다. 

       

       “뀨웅…. 안아 조….”

       

       아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파고든 게 아니라.

       

       꼬옥.

       

       ‘아르가 반대로 나를 품에 껴안았어?’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

       “뀨웅.”

       

       놀랍게도, 내 눈앞에 있는 아르의 덩치는 나보다도 더 커져 있었다. 

       

       하룻밤 만에 말이다. 

       

       침대가 아주 컸기에 망정이지, 싱글이나 일반 더블 침대였으면 중간에 둘 중 하나는 굴러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힘도 엄청 세졌네.’

       

       이젠 나를 꼬옥 안는 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건…. 마치 동물 뉴튜브 중 사자나 호랑이 같은 대형 맹수를 키우는 채널에서 본 광경 같은데.’

       

       맹수를 키우는 서양 쪽 뉴튜브 채널들을 보면 채널 주인보다 덩치가 더 큰 맹수가 순한 고양이처럼 잘 때 주인을 안고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 내가 거기에 안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나마 표범 같은 동물은 날씬하기라도 한데, 우리 아르는 키는 키대로 크고 앞뒤로도 꽤나 뚠뚠해서 덩치가 더 커 보였다. 

       

       ‘와, 진짜 푹신한 대형 곰인형 같네.’

       

       나는 아직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르의 배를 꾹꾹 눌러 보다가,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뀨우….”

       

       귀여운 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이제는 어엿한 드래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얼굴의 골격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 단계라 할 만했다. 

       

       ‘이젠 진짜로 맘 먹고 크와아앙! 한 번 하면 마물들도 쫄겠는데?’

       

       지금처럼 행복하고 순한 표정 대신 미간에 힘 좀 딱 주고, 입가에 주름 좀 잡고 포효 한 번 날려 주면 꽤나 그림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지금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 그냥 몸만 이따만 한 순둥이지만….’

       

       여튼, 이제 아르는 내가 한아름에 안으려고 해도 손이 등 뒤에서 닿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었다. 

       

       나는 시야 한쪽에 쌓여 있는 메시지를 불러 왔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Lv.60 구간 성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스탯 상승 폭이 더욱 커집니다.]

       [고유 특성의 기능이 강화됩니다.]

       …

       

       ‘어우, 뭔가 많긴 많네.’

       

       그래서 지금 아르의 레벨이 몇이지?

       

       생각해 보니 마왕을 잡고 나서 레벨업 메시지 확인만 했지 몇까지 올랐는지는 아직 확인을 안 했었다. 

       

       [Lv.70 아르젠테]

       힘: 80 민첩: 70 체력: 88 마력: 411

       고유 특성: 「이해」, 「습득」, 「응용」, 「마나 친화」, 「마법 내성」, 「독 내성」, 「초재생」…(펼치기)

       …

       

       어?

       

       ‘70이라고?’

       

       전투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레벨이 54였던 것 같은데, 설마 마왕 잡은 걸로 한 번에 거의 15레벨업을 한 거야?

       

       이게 말이 돼?

       

       ‘생각해 보니 되긴 해. 원래대로라면 54레벨에 마왕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니까.’

       

       내가 「레키온 사가」를 했었을 때는, 마왕 바할라크 토벌을 시작하는 데에 필요한 레벨이 최소 80이었다. 

       

       권장도 아니고, 말 그대로 최소가 80이었다는 소리다. 

       

       ‘게다가 그 80도 주인공으로 플레이했을 때 기준이었지.’

       

       주인공 레키온은 각종 전설급 사기 특성을 몇 개나 가지고 있고, 그 아래 영웅급 특성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랜덤 캐릭터 가챠 플레이에서 나오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인물의 경우 영웅급 특성 한두 개만 있어도 대박이라고 할 만했으니, 레키온이 얼마나 사기캐였는지는 더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물론 그렇게 랜덤 캐릭터 플레이를 할 때는 게임 내 주인공이 알아서 스토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유저가 딱히 마왕을 직접 잡을 일은 없긴 했지만….

       

       ‘만약 랜덤 캐릭터로 마왕을 잡고자 한다면, 권장되는 레벨은 100 정도.’

       

       레키온처럼 전설급 특성도 없고, 특히 레키온이 ‘마기’를 가진 자들을 물리칠 때마다 얻는 ‘신성력’이라는 별도 스탯도 없는 평범한 캐릭터로 마왕을 잡으려면 100 정도는 찍어야 한다. 

       

       레벨100을 레키온보다 먼저 찍고 마왕을 물리치려면 반대로 레키온이 얻을 기연들을 선점하면서 주인공을 방해해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마왕을 잡았을 때, 캐릭터가 하는 레벨업이라고 해 봐야 3에서 5정도.’

       

       하지만 우리는 54라는 낮은 레벨에서 헤카르테라는 마왕을 잡았으니, 15라는 엄청난 폭렙을 한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단순히 15렙이 오른 게 아니지. 왜냐하면 나와 아르는 경험치를 나누어 먹었으니까.’

       

       레벨이 올라갈수록 경험치 통이 커지는 걸 생각하면 30레벨업까진 아니어도 대충 22업 정도를 한 번에 한 셈이다. 

       

       ‘게다가 드래곤을 제외하면 마왕 바할라크가 공식적으로 최종 보스였어서 원작에서는 딱히 레벨업 하는 의미도 없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마왕이 여럿이고 아직 바할라크는 구경도 못 한 상태니 레벨업의 의미가 아주 차고도 넘쳤다. 

       

       [Lv.70 레온]

       힘: 73(+15) 민첩: 77(+15) 체력: 69(+15) 마력: 「239+50」 (20)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 「습득」

       …

       

       ‘캬. 나도 스탯 엄청 올랐네.’

       

       근데 힘이랑 민첩, 체력 옆에 붙은 보너스는 또 뭐지?

       

       [고유 특성 「신뢰의 계약」의 부가 효과, 스탯 동기화가 2단계 활성화(상시) 중입니다.]

       [사역마 ‘아르젠테’로부터 스탯을 추가로 공유 받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실비아에게 단검술을 처음 배울 때.

       

       첫 모의 실전으로, 실비아가 목에 걸고 있는 짚 인형을 조금이라도 단검으로 건드리는 도전을 했던 기억이 났다.

       

       -으아아아아! 한 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아르가 응원을 해 주었었지.’

       

       -쀼우우! 쀼웃! 쀼웃!

       -[「신뢰의 계약」을 맺은 상대가 전심전력으로 계약자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탯 동기화’ 2단계가 활성화됩니다!]

       -[현재 동기화 중인 스탯을 제외한 모든 스탯의 일부를 추가로 공유 받습니다!]

       

       그때 오른 스탯 덕분에 짚 한 가닥을 베어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체험판으로 썼던 기능이 이제는 상시로 활성화된다는 거지.’

       

       역시 나도 레벨이 오르면서 「신뢰의 계약」 관련해서 기능이 계속 개선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그때 아르가 막타를 친 게 크긴 컸다.’

       

       비록 거의 대부분의 딜은 이드밀라가 다 넣긴 했지만, 어쨌든 경험치는 막타를 치면 들어오는 시스템.

       

       ‘이드밀라 님이 없었으면 진짜 이런 급성장은 엄두도 못 냈겠지.’

       

       아아, 또 당신입니까.

       그저 황드밀라, GOAT.

       

       짧은 기습 숭배를 마친 나는 스르르 침대에서 일어났다. 

       

       “뀨웅…? 레온…?”

       

       내가 아르의 품에서 벗어나자 아르는 허공을 움켜쥐더니 눈을 떴다. 

       

       “일어났어, 아르?”

       “우응! 레온도 잘 자써?”

       “잘 잤지. 아르도 진짜 잘 잔 거 같네.”

       

       아르는 내 부드러운 미소에 입을 헤벌쭉 벌리며 눈을 초승달처럼 접었다. 

       

       “헤헤. 아르두 엄청 잘 자써. 피로 쫘악 풀려써. 구래서 구런지 막 레온이랑 침대가 작아 보이는 거 가타.”

       “나랑 침대는 그대로지. 커진 건 아르고.”

       “우응…?”

       

       그제야 자신의 호랑이급으로 커다래진 말랑 젤리를 본 아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르 또 커써?!”

       

       아르는 벌떡 일어나 침실의 전신 거울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우아아아! 아르 이제 엄청 커져써! 레온, 레온보다 커져따!”

       

       아르는 나에게 쿠쿠쿵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쀼우! 아르 이러케 커져서 레온 안아 보구 시퍼써!”

       “켁, 아르야. 안는 건 좋은데, 조금 이따 다시….”

       “쀼! 미, 미안, 레온!”

       

       아르는 나를 꽈악 껴안았다가 급히 놔 주었다. 

       

       “일단 아침부터 먹을까? 실비아 씨가 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는데….”

       

       마왕을 물리친 다음날인데 수련장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고….

       

       혹시 아침 만든다고 재료 사 와서 직접 만들고 계신가 싶어서, 나는 거실로 나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쀽!”

       “응?”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줄 알았던 아르의 쀽 소리에 돌아 본 나는, 문 사이에 껴 버린 아르의 모습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레온…! 아르 껴써!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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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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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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