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5

       엑시드의 어쌔신에게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외곽의 어느 한 술집.

         

       낡은 판자나 갈라진 나무 기둥에서 보이는 세월의 흔적. 자유의 도시 판테온이 개발되기 전부터 있던 곳이다.

         

       내가 알기론 이쪽은 늦은 밤에만 운영하는 곳이라 지금은 문을 닫을 텐데.

         

       “마스터께선 안에 계신다.”

       “…….”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마는 얘네가 나한테 거짓말할 이유는 없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달칵.

         

       “왔군.”

         

       작은 원형 테이블에 앉아 갈색빛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셀다스. 혼자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뭔가 열 받는데.

         

       “이쪽 건물들은 다 늦은 밤에만 여는데. 술집을 통째로 빌렸나?”

       “어차피 장사도 안되는 곳이라 우리가 쓰기로 했다.”

         

       여기를 거점 삼아서 생활하고 있었나 보군.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 아무래도 좋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야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나?”

         

       탁.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휘젓는 셀다스.

         

       “너를 찾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지.”

       “프란체의 명을 듣고 온 게 아닌가? 지켜보고만 있었다니, 무슨 뜻이지?”

         

       셀다스는 고개를 까딱이며 자신의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인가.

         

       “앉았으니 이제 다 설명해라.”

       “이것만 다 마시고.”

         

       그대로 술잔을 원샷 때린 셀다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공작에게 협박을 받아 너를 찾았다. 협력하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키겠다더군.”

         

       셀다스는 프란체가 찾아왔던 일을 알려줬다.

       

       프란체는 엑시드가 협력하지 않으면 반란으로 제국을 차지하고 국가의 힘으로 나를 찾을 생각이었다고. 엑시드는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인지 알고 있어 그에 따랐다고 했다.

         

       “괜히 허풍을 부리는 건 아니더군. 재앙의 파도에서 죽은 마수들을 사령술로 살려서 저장하고 있었다.”

         

       고대 마법서에서 배운 마법이군. 재앙의 파도에서도 보여줬지. 나를 찾은 이유는 알았으니 인제 다음 질문이다.

         

       “나를 찾아놓고 지켜만 본 이유는? 프란체의 명을 따랐다면 당장이라도 데려가야 했을 텐데.”

         

       셀다스는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사전 조사다. 너를 강제로 데려가는 건 불가능하니 대화로 회유를 해야 하는데, 일생일대의 부탁이라 하지 않았나? 쉽게 데려갈 순 없다고 생각했지.”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겠다고 판단한 거군.

         

       “그런데 사정이 바뀌었다. 너도 알다시피 새로 집권한 황제가 데카르트를 흔들고 있지. 그래서 네가 자연스레 합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데.

         

       “내게 데카르트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계 신문 기사를 의도적으로 전달한 건가?”

         

       셀다스는 “그래.”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그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네가 움직일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장종원이 읽지도 않던 세계 신문 기사를 가져왔던 거구나. 당시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는데.

         

       “뭐, 어쨌든 너를 움직이게 했으니 작전은 성공이군.”

       “그래, 축하한다. 너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흘러갔다.”

       “…그런 시답잖은 농담이나 나눌 생각은 없다. 돌아갈 생각이라면 빨리 돌아가지.”

         

       셀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그림자 형태로 변해있던 어쌔신들이 대거 출몰했다.

         

       “다들 채비를 마쳐라. 페델리안으로 복귀한다.”

       ─충!

         

       사락! 깃털이 휘날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쌔신들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준비는 이미 마쳤겠지? 바로 출발하겠다.”

       “질문할 게 더 있지만… 이건 가면서 묻지.”

         

       지붕을 타고 넘으며 빠르게 이동해 판테온의 국경을 넘었다. 셀다스는 준비되어 있던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페델리안 제국까지 걸리는 시간은 3주. 시간을 단축하면 2주 만에도 갈 수 있겠지. 최대한 빠르게 가겠다.”

         

       펄쩍 뛰며 말에 올라타는 셀다스. 나는 저런 방법 모르기에 조용히 등자를 밟고 올라탔다.

         

       “바로 출발하지.”

       “잠깐,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라.”

       “현재 데카르트의 상황이 심각한가?”

       “제국 지부장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셀다스는 현재 제국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바뀐 황권과 타 귀족 세력이 뭉쳐서 데카르트를 견제하고 있다고. 둘 중 하나가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내전이 일어날 상황이라 한다.

         

       “갑자기 황권이 바뀐 것도 모자라 선을 넘으면서까지 데카르트를 견제. 이게 성녀의 짓인 건 당연히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그년은 처음부터 프란체에게 적대적이었으니.

         

       “그래, 더 큰일이 나기 전에 빨리 복귀해야겠다. 질문은 끝이야. 바로 출발하지.”

         

       이럇! 하는 출발 신호와 함께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가자, 프란체에게로.

         

       데카르트로.

         

         

       * * *

         

         

       황실의 전서가 도착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황제가 데카르트와의 화합을 위해 회담을 개최하겠다는 전서였다.

         

       이는 황실의 항복을 의미.

         

       “힘을 보여주니 바로 꼬리를 내리는구나.”

         

       부욱! 프란체는 그간의 속풀이로 시원하게 전서를 찢었다. 마찬가지로 소식을 전해 들은 카자르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황실 관료들이 어떻게든 황제를 뜯어말린 거 같네요. 그 사람들은 직책인 만큼 제국의 안위가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니까요.”

         

       현재 황실 관료들은 레제프의 사람이 아닌 전대 황제의 전유물.

         

       데카르트의 권위가 치솟아 힘의 균형이 깨졌다 해도 전대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국의 관료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제국의 힘이 올라간 건 맞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유서 깊은 데카르트가 권력 남용을 할 가문도 아니고.

         

       “관료들은 그간 레제프의 행보를 보고 속이 타들어 갔을 거야. 지금이라도 끝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걸?”

         

       프란체는 픽 웃으며 찻잔을 들곤 말을 덧붙였다.

         

       “뭐, 인제 와서 그쪽의 내부사정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단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승리했으니까. 나름의 이득도 있었고.”

         

       이번 권력 싸움을 통해 데카르트의 권위는 더 올라갔다. 황실과 귀족 세력이 뭉쳐도 무너트릴 수 없다는 게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잘 풀렸네요.”

         

       라데아가 말했다. 여태 지켜본 프란체 중 그 어떤 때보다 밝아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라데아마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엑시드에서도 진을 찾았다 했고, 마법 실험도 성공. 황실마저 꺾었으니 다 잘 풀렸구나. 음해로 인해 흔들린 민심은 회담이 끝나면 잠잠해질 거고.”

         

       호록, 프란체는 차를 마시곤 씁쓸히 웃었다.

         

       “드디어 진에게 집중할 수 있겠어…….”

         

       후아. 크게 숨을 내쉬자 극심하게 가슴을 옥죄이던 그간의 세월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진이 떠난 이후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프란체에게는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별.

         

       환각과 환청 증세는 여전하다. 그가 떠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러나 이젠 끝이 다가왔다.

         

       곧 진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회담이면 공작님께서 황궁으로 가셔야하는 거죠?”

         

       카자르가 물었다.

         

       “그래야지. 우리의 힘이 더 강하다곤 하지만 황실을 존중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니까.”

         

       이를 들은 카자르는 눈썹을 좁히며 턱을 어루만졌다.

         

       “뭔가 걸린단 말이죠.”

       “어떤 게?”

       “성녀가 노리는 게 있는 거 같아요.”

         

       프란체는 “노리는 것?”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 초월 마법사를 만나러 황궁에 갔을 때 성녀가 공작님을 만찬의 자리에 초대했잖아요?”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프란체. 라데아도 카자르의 말에 경청했다.

         

       “이걸 따로 놓고 보면 단순히 황궁으로 온 공작님을 황족이 환대하는 거지만, 그 성녀가 엮여 있으니 뭔가 수상하단 말이죠.”

         

       한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언가 생각하는 카자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프란체가 물었다.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성녀의 목적이 따로 있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다 그를 위한 발판으로 느껴진달까…….”

         

       무언가 찝찝한 듯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고뇌를 반복하는 카자르. 보다 못한 프란체가 말했다.

         

       “회담 장소는 보는 눈이 많은 황궁이야. 내 호위 목적으로 너희들 전부 따라갈 예정이고. 초월 마법사가 미쳤다고 덤비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을 거야.”

         

       맞는 말이었다. 카자르, 케일, 라데아가 직속 호위로 붙는데 황궁은 보는 눈이 많은 곳이다. 섣불리 움직이긴 어려울 터.

         

       “그리고 나도 대마법사란다. 혼자 떨어지더라도 너희들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지.”

         

       이어지는 프란체의 말에도 여전히 무언가 찝찝한 카자르였지만…….

         

       “알겠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추리하고 유추해봤자 지금 당장 정답이 나올 거 같지도 않고.

         

       “회담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라데아가 물었다.

         

       “음. 보통은 필요한 안건만 정리해서 끝내겠지만, 이번은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거니 데카르트와 황실을 중심으로 파티가 열릴지도 모르겠구나.”

         

       회담이 끝나면 황실 강당에서 짧은 파티가 열릴 거다. 그리고 거기서 공식적으로 황실과 데카르트의 화해를 선포. 이게 정석적인 화합의 회담이다.

         

       “그러면 하루 정도는 황궁에서 머물겠어.”

         

       그 성녀가 황후로 군림하는 황궁에는 한 시간도 발을 붙이고 싶지 않은 프란체였지만, 일이니 어쩔 수 없다.

         

       “하루라, 저는 공작님 곁에 붙어서 경계를 극한으로 올려야겠네요.”

         

       라데아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럴 때 엑시드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어쌔신들을 배치하면 들어오는 정보가 다르니…….”

         

       아쉬움에 입술을 내미는 카자르. 프란체는 씩 웃었다.

         

       “그럴 수 있으면 나도 좋았겠지만, 원래 아쉬운 점은 찾으면 찾을수록 나오는 법이야. 적당히 타협하고 들어가야지. 지금은 이게 최선이란다.”

         

       엑시드는 가장 중요한 진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력의 분산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니 이해하는 수밖에.

         

       “카자르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오감이 특출나요. 제가 있으면 바로 알아챌 수 있어요.”

         

       라데아는 아직 신출내기 소드 마스터고 활용할 수 있는 오러도 케일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감각 하나만큼은 케일을 압도한다.

         

       “…그래, 내 탐지 마법도 펼칠 생각이니 괜찮겠지.”

         

       여전히 의심과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 카자르였지만 이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정도 호위에 보는 눈이 많은 황궁의 내부니까…….

         

       “라데아? 이 소식을 케일에게 전해줘.”

         

       라데아는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집무실을 나갔다. 그렇게 둘이 남은 카자르와 프란체.

         

       “카자르, 내 주변을 중심으로 탐색 마법을 펼칠 거지?”

       “네. 범위를 줄여서 먼지 한 톨의 움직임까지 다 감지할 생각이에요.”

       “그래, 그러면 문제없겠구나.”

         

       이 회담이 끝나고 일이 정리되면 진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드디어 방해 요소들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프란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이제 곧 진을 만날 수 있다.

         

       프란체가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이 온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