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45

       나이를 먹을 수록 귀와 지갑은 열어야 하고, 눈과 손은 조심해야 하며, 입은 가급적 닫아야 한다고 했던가.

        

       귀감으로 삼을 만한 격언이다. 나이가 역행했을 때도 적용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아무튼. 실제로, 항상 귀를 열어 타인의 의견을 귀담아듣고자 노력하고 있기도 하고.

        

       정말로.

        

       “그러니까, 그만 하셔도……나중에, 두 분 가시면 켤 거예요.”

        

       “갑자기 폰으로 기습 방송 키지 말고. 폰은 이쪽에 두자, 알겠지?”

        

       “……인간에 대한 신뢰가 너무 부족하네요.”

        

       “특정 인간에 대한 신뢰만 줄어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아크한테 이렇게까지 의심받는 건 약간 억울하네. 거기에 한 마디를 얹는 레반한테 뭐라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리고 나니……조금 서러운 것 같기도 하고.

        

       ‘번갈아서 게임하며 2명은 훈수하기’가 그렇게까지 무리인 컨텐츠는 아니지 않을까.

       

       어렸을 때, 사람은 여럿인데 게임기나 컴퓨터는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즐긴 정겨운 문화 아닌가. 야유도 하고,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소리도 치는…….

       

       구경꾼의 수가 조금, 조금 많이 차이나긴 하겠지만. 

        

       응. 역시, 훈수 컨텐츠엔 죄가 없다. 생각해보면……이렇게 잠재적 테러범 취급을 당하게 된 건, 이어서 제안한 ‘아크-레반 즉석 우결’ 컨텐츠 탓이겠지.

        

       정말 부드럽게 제안한 거였는데. 아크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않았겠지만……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우결 자체는 생각이 있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줄 걸 기대했던 건가.

        

       하긴, 원래 알던 사이인 레반이랑 갑자기 ‘이제부터 우결!’이라고 하기엔……조금 민망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본래 친분이 있던 스트리머끼리 우결을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정색하며 거절할 줄이야.

        

       ……레반도, 그런 아크의 반응에 상처받았는지 표정이 상당히 굳었었고.

        

       레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고백도 안 했는데 차인 꼴이니. 기분 나쁜 것도 당연하다.

        

       굳이 말하자면, 레반한테는 허락도 안 받은 상태였고.

        

       그렇지만……내기 승리 소원권으로 아크랑 우결을 시킬 생각이었다보니 미리 허락을 받기도 애매했는데…….

        

       아, 이거 아크한테 더 미안한 일인가.

        

       생각할수록 누구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큰지 헷갈리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둘 앞에서 ‘너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해본 말이었어’ 라고 하면……양쪽 모두 두 배로 기분 나쁘겠지. 이미 싫다고 말한 마당에.

        

       “……그러면 먹을 거라도 좀 시키고……술이나 더 마실까요.”

        

       진짜 사과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하는 걸로 하고.

       

       지금으로서는, 맛있는 걸 대접하는 게 최고의 사과 아닐까.

       

       배달 어플의 즐겨찾기 목록을 둘에게 보여주며 상의한 끝에, 치킨과 회, 그리고 보쌈을 주문했다.

       

       육해공의 구색을 갖춘, 가히 산해진미라 할 만한 조합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그래도 이럴 때 도적부흥운동 자금을 안 쓰면 언제 쓰겠어.

        

       원래 이런 자금은 관계자들과 식사하는 업무추진비로 쓰이는 게 정석이니까.

        

       기껏 설치한 VR기기를 바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약간 아쉬우나, 이런 방구석 술자리는 언제나 환영이다.

        

       다만……VR 안 할 거고, 밥을 먹을 거면……이 답답한 속옷은 좀 갈아입고 싶은데. 

        

       뒤풀이 때도 혹시나 VR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포츠 브래지어를 차고 갔다가, 음식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는 쓰라린 경험을 했었더랬다.

       

       술은 액체라서 잘 들어갔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당연히 설치가 완료되자마자 VR을 할 줄 알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갑갑한 압박을 참고 있었을 뿐이다. 운동을 안 한다는 게 확정된 이상, 한시라도 빠르게 갈아입고 오는게 맞겠지.

        

       절대로, 틈만 나면 나를 향해 기묘한 눈초리가 찾아오는 이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잠시라도 탈주할 핑계가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저, 옷 좀 편하게 갈아입고 올게요.”

        

       맛있는 걸 먹기 시작하면 다시 분위기가 좋아질 수도 있잖아.

        

       그런 작은 기대를 품은 채,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 * * *

        

       폭탄과도 같았던 우결 제안으로부터, 약 30분 후.

        

       이예나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치킨 상자를 열고 있었다.

        

       “많이 드세요. 자. 레반씨는 특별히 하나밖에 없는 목도 드릴 테니까.”

        

       “……이런 배려는 안 해줬으면 좋겠는데.”

        

       “사양하지 마시고.”

        

       조금 전, 전전긍긍하는 티가 나던 시간이 벌써 그리워지는 행태였다.

        

       이어서 다리도 아크와 레반에게 하나씩 건네주는 걸 보면, 악의는 없는 듯도 했지만- 애초에 악의가 없다는 점이 제일 문제인 사람 아니었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던 아크는, 무심코 아래로 내려갈 뻔한 시선을 가까스로 바로잡았다.

        

       ‘진짜, 무슨 압박 붕대라도……아, 스포츠 브라. 성능 좋네. 이정도구나.’

        

       자꾸만 시작되려 하는 사고의 흐름 자체가 문제였다. 생각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도 향할 위험이 있지 않은가.

        

       혹시라도 그러다가 들킨다면, 이예나가 대체 뭐라 할지. 동성끼리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가능성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건……성별을 떠나, 예의의 문제다. 

        

       게다가, 저런……저런 몸을 가진 이예나가 신체를 향하는 시선에 얼마나 민감할지는……평생 가슴으로 주목받아본 적 없는 아크로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조심해야겠지.

        

       그래도, 이건 반칙 아닌가.

        

       ‘차라리 처음에, 처음 볼 때부터 저런……저런……아무튼, 숨기지를 말든가. 신기해서라도 보게 되잖아.’

        

       아크는 자연스럽게, 이예나의 첫 방송에서 조금 노출되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엄청난 보정속옷의 도움을 받았으리라고 확신했던…….

        

       ‘그만, 그만!’

        

       애초에 침묵이 너무 길어지는 게 문제였다. 아크는 레반에게 방송에 관해 가벼운 질문이라도 던지고자 고개를 돌렸다가, 닭목에서 어떻게든 살을 해체하려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필요 이상으로 시선을 음식에만 향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쩐지 짐작이 가는 탓이었다.

        

       * * * *

        

       “벌써 10시네. 슬슬 일어날까? 예나 방송도 한다고 했으니까.”

        

       “그럽시다. 오늘……잘 먹었어요. VR 잘 되나 테스트 안 해봐도 되려나 모르겠네. 문제 있으면 연락해요.”

        

       “잘 되겠죠. 아. 다음에 보면 말 놓으세요.”

        

       “……서로 놓자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자꾸 댁이 안 놓잖아요.”

        

       “말 놓으면 호칭이 야, 너, 임마, 혹은 새끼 정도로 변할 텐데. 괜찮나요.”

        

       “왜 이렇게 사람이 극단적- 하, 아닙니다. 그냥 상호 존대합시다.”

        

       “뭘 또 서운해하고 그래요. 그냥 혼자 말 놓으면 되지. 노인 공경받는 느낌으로……괜찮지 않나요.”

        

       “그놈의 노인 타령은 진짜- 아무튼. 그냥 자연스럽게 합시다. 자연스럽게. 말 놓아도 되겠다 싶으면 놓으세요. 따라 놓을 테니까.”

        

       “수동적이시네요. 남자는 자신감인- 아, 그거 두세요. 제가 치울 거예요.”

        

       “응? 아냐아냐! 나가는 길에 버리면 편하잖아.”

        

       “……그러면, 차라리 제가 배웅 겸 같이 나갈게요. 잠시만요.”

        

       아무리 만류해도 정리를 하려 드는 아크를 제지하는 걸 포기하고, 상에 가득 펼쳐진 배달용기들을 함께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 정리하며 보니, 음식이 생각보다 많이 남았더라.

        

       나는 이제 소식하게 됐다지만……운동에 가까운 VR게임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하는 저 둘은 훨씬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입에 안 맞았나.

        

       그래도, 언제부턴가 퍽 까다로워진 입맛으로도 나름 맛이 괜찮았고……음식이 도착할 무렵부터 나를 향한 공격이 확연하게 줄어든 걸 보면, 둘다 먹다보니 기분이 풀렸던 것 같은데.

        

       메뉴를 본인들이 직접 골랐으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으려나. 실시간으로 캠을 공개하는 스트리머들이니, 체중을 신경써서 식사량을 조절하는 걸지도 모를 일이고.

        

       일단은 그러려니 하는게 좋겠지.

       

       결론이 나오지 않을 문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는 건 지양하기로 했으니까.

        

       .

       .

       .

        

       손님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집에서는 희미한 음식냄새가 감돌았다.

        

       파티가 끝나고 고요해진 방의 적막에 어울리는 냄새. 외로움과 일거리의 냄새다.

        

       그러나 지금은, 둘 중 무엇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크의 주도 하에 셋이서 식탁을 깔끔하게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쳐버린 덕에 딱히 정리할 거리도 없었고.

        

       어째서인지, 그다지 외롭게 느껴지지도 않았으니.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컴퓨터를 가동했다.

        

       방송을 켠다면, 역시 VR을 할 타이밍이려나.

        

       요즘 내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민원은 제발 대검기사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지만, 최근에는 뭐든 좋으니 VR 게임 좀 하라는 아우성도 그에 못지 않았다.

        

       하긴, ‘고전’이나 ‘인디’로 분류될 게임이 아닌 이상에야, 모든 게임에서 VR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제작툴의 힘인지, 인디게임들조차도 VR을 지원하는 경우가 상당할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지.

        

       그런 마당에, ‘이상한’ 게임 좀 줄이고, VR 게임을 해달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요구리라.

        

       시청자들의 욕망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해줄 수 있는 걸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이제 와서 다시 VR이 무슨 지옥의 문물인 양 척화비를 세우고 배척할 것도 아니고.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방송 중입니다!]

       [도적부흥운동- VR세팅합니다]

        

       방송 제목을 설정하고 시작 버튼을 클릭한 후, 위게더에 ‘조금 전에 방송 시작했어요’라고 간략한 공지도 남겼다.

        

       대체 어떻게 알고 들어오는 건지. 삽시간에 손님들이 가득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는 광경은 매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익숙한 인사말들과 감탄사들, 친근한 욕설, 그리고…….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방송 공지를 왜 자꾸 방송 키고 쓰는 건데……공지의 의미가 없잖아】

        

       “음……일기 예보도 좋지만, 일기 중계도 누군가에겐 필요하지 않을까요.”

        

       채팅창의 반응을 보니, VR장비의 마이크는 잘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대체 그딴 게 누구한테 필요한데, 예 뭐 그런 걸로 합시다, 월즈 중계는 죽어라 안 보는 년이 지 방송을 중계……아, 월드 시리즈 중계.

        

       그러고 보면 월드 시리즈가 한창이었지.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관련 글의 비중이 제법 높은 걸로 보아, 관심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고. 

       

       방송이 끝나면 결과라도 한 번 확인해 볼까.

       

       그……오소독스였나. 그 사람, 도적 제대로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중의 일이다. 차츰차츰 과열되기 시작하는 채팅창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접어둔 채, VR장비들을 바닥에서 주워들었다.

        

       “오늘은 VR을 해볼 거예요. 일단 세팅부터 해야하긴 하는데……도움을 줄 분들이 이렇게 많이 있으니 든든하네요. 시작해볼까요.”

       

       기념비적인 첫 VR방송이니까.

       

       역시, 기초공사부터 함께 하는 게 직접 참여하는 기분도 들고 좋겠지.

       

       캠을 켜도 됐으면 설치부터 방송을 켜고 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일찍 올려보았어요.

    며칠 후면 벌써 2023년의 마지막 달이네요. 슬슬 신년 다짐을 결정할 때가 다가오는데…다들 정하셨나요. 저는 오는 2024년에, 2025년부터는 술을 조금 줄여볼까에 관하여 고민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