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45

       “…….”

        

       방문했던 이사가 돌아간 뒤에도, 최나경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 차를 들이켜고 있었다.

        

       탁자에 있던 상대방의 찻잔은 이미 비서가 치운 뒤였다. 그는 돌아갈 때까지 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최나경을, 비서는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레 찻잔을 치웠다. 최나경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는 것이 눈에 그대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별로 환영받지 못했을 테니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처음부터 잘못되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외로움에 떠는 그녀를, 자신이 먼저 품어주지 못한 것.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그녀를 붙잡지 않은 것.

        

       ……그녀의 부탁을 들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

        

       그래도, 딱 하나. 딱 하나만을 보고 계속해서 버텨왔는데.

        

       “이제 곧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어버린 찻잔을 여전히 손에 들고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시선은 멍하니 허공을 떠돌았다.

        

       “……또 늦어버린 걸까.”

        

       이번에는 철저하게 방지했다고 생각했다. 사라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주변을 철저하게 가로막아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받는 것을 경계했다.

        

       사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최나경뿐이었다.

        

       사라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도 최나경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에게 사랑받을 사람도, 최나경뿐이어야만 했다.

        

       “…….”

        

       하지만, 이번에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조용히 탁자에 내려놓았다. 감정이 가는 대로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것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만 남긴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 하나만 남겨두려고 했었다.

        

       돈이건 뭐건, 그런 것으로 그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와 만나기도 전에—

        

       “그렇구나.”

        

       이번에도, 어리석었다.

        

       “……같은 실수를 했네.”

        

       조용하게 뇌까린다.

        

       그래, 지난번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다가 결국 그녀를 가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조심스러웠다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 이사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사라가 최나경의 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 눈앞에 제대로 보여야 한다.

        

       믿음 없는 이들을 위해서.

        

       *

        

       “뭐라고요?”

        

       양혜인의 말을 들은 나는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께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방문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나에게, 양혜인은 몹시 송구스럽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래, 사실 이 일이 백 퍼센트 양혜인의 잘못은 아니었다.

        

       양혜인의 잘못은, 내가 ‘거부하라’고 했던 어머님의 연락을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하긴, 내가 그렇게 지시하긴 했어도 무작정 무시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전히 사용인 중 많은 사람이 어머님께서 심어둔 사람이었고, 어머님이 이곳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양혜인이 아무리 이 저택을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해도 어머님 쪽의 라인을 타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존재가 어머님의 연락을 받았다면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어머님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단은 그대로 남겨두었던 사람들인데, 어머님께서 이런 식으로 바로 움직이실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느슨하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미 저택 안에 어머님께서 질투하실만한 존재를 몇 명이나 두고 있었으니까.

        

       ……질투라.

        

       딸의 관계에 어머니가 질투한다는 것이, 퍽 웃겼다.

        

       사실, 이쪽이 연락을 거부하기 시작한다고 해도, 어머님이 직접 찾아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것까지는 막는다고 해도…… 만약 매일같이 찾아오거나 문 앞에서 기다린다면 결국 마주칠 수밖에 없게 된다.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선 결국 한 번은 얼굴을 봐야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나는 어머님의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

        

       분명 마주하게 되면, 다시 한번 마음이 흐트러질 테니까.

        

       ……그리고, 그랬다간 내가 아니라 내 안의 그 사람이 어머님과 마주하게 되겠지.

        

       어머님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그 사람의 몸을 마구 더듬을 것이고—

        

       싫다.

        

       그런 것은 싫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어머님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 사람이 어머님께 안기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마음에 따르고 싶다. 만약 내가 어머님께 안기는 것을 그 사람이 싫어한다면—

        

       싫어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살짝 뛰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린, 그저 내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기는 하지만…… 질투라는 감정이……

        

       싫지 않았다.

        

       입가가 슬며시 올라가려는 것을 꾹 참은 채, 나는 양혜인에게 물었다.

        

       “그 ‘이른 시일’이 언제인지는, 당연히 말씀해주시지 않으셨겠죠?”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자면, 당장 오늘 밤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어머님이 해외에 계신 것은 아닐 거고, 회사나 이 저택이나 결국 같은 서울 안에 있었으니까.

        

       출발하는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차를 타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

        

       “어떻게 할까요?”

        

       “으음…….”

        

       나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곁에서, 소희와 수아가 몹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

        

       그렇구나.

        

       그런 방법이 있었어.

        

       아마 내가 그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 것은,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럼, 잠시 도망갈까요?”

        

       그런, 너무나도 단순한 이야기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 거겠지.

        

       “……도망……?”

        

       내 대답을 들은 소희가 멍한 표정으로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래, 도망. 어머님께서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잠깐 지내다 돌아오면 되잖아.”

        

       “어……. 아, 확실히, 그건 그렇네.”

        

       그래도 소희는 금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리고 지금 당장 명목상으로는 ‘가출 중’인 수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종종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부모님과도 제대로 연락하고 지내는 걸로 봐서는 사실상 가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문제는 장소—”

        

       “저요!”

        

       장소 이야기를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그렇게 크게 외치면서 손을 번쩍 드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분명히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몸매도 어른스러운 소희였는데, 게다가 평소에 단추를 풀고 다니는 점이나 건강하게 그을린 것 같은 색의 피부를 하고 다니는 그녀였는데도, 이럴 때는 무척 순진무구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순진무구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우리 집에 남는 방 하나 있어!”

        

       “……정말?”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소희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진짜로 ‘방이 하나 남는다’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뭔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될 것 같다.

        

       사실, 장소는 섭외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섭외할 수 있었다. 널찍한 호텔 방을 잡아버리면 그만이니까. 물론 미성년자뿐이니 거부할 호텔도 있기는 하겠지만.

        

       “진짜야! 남는 방 하나 있으니까, 며칠 정도는 지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폐가 될 수도 있잖아.”

        

       양혜인과 수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방이 ‘하나’남는 상황이니까. 그곳에서 세 사람이 함께 지낼 수는 없다.

        

       방의 크기가 내가 지내는 방 크기라면 또 어떨지 몰라도, 그 사람의 기억 속을 살펴보면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저택의 크기가 비정상이었으니까. 소희가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라면, 방 크기는 이곳의 4분의 1이 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맞을 거다.

        

       “괜찮아, 메이드인 내가 따라가잖아!”

        

       아니, 그런 쪽의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나는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여기서라면 어떨지 몰라도, 본인 집에서까지 메이드 일하고 있다면 그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알 수 없었으니까.

        

       과거의 나라면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라면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친구 재워주는 거니까, 정말 괜찮은데…….”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니, 소희가 손가락 끝을 마주하며 말했다. 나보다 키도 큰 주제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

        

       아마 거절했다가는 엄청나게 우울해하겠지.

        

       “……그래, 알았어. 그럼, 오늘 밤은 너희 집에서 지내도록 하자.”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괜찮겠지.

        

       “와, 진짜? 진짜지!?”

        

       “우엡.”

        

       소희는 조금 과하게 좋아하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중량감의 살덩이가 얼굴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러워해야 할까? 아니면 부끄러워해야 할까?

        

       “…….”

        

       여기서 힘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저 소희가 진정할 때까지 안겨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따뜻함이 조금은 기분 좋았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