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5


    ​
    ​
    ‘만약 이번에도 그분의 핏줄이 아니라면… 술을 준비해야겠군.’
    ​
     
    어제까지만 해도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을 나누던 전우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술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술이 주는 일시적인 위안조차 그녀에겐 고통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끔 술잔을 기울일 때가 있었다.
    ​
    ​
    자식과 남편이 실종된 날과 아끼던 부하가 영원한 잠이 든 날이었다. 집사는 상실감에 잠겨 쓰디쓴 술을 삼키는 공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쓸쓸한 가을바람이 황량한 들판을 스치는 것처럼 건조한 아픔이 느껴졌다. 
    ​
    ​
    ‘하지만 만약 -… 만약에라도 저분이 각하의 핏줄이 맞다면.’
    ​
    ​
    오로지 끝을 향해,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는 외로운 그분에게 큰 희망이 되리라.
    ​
    ​
    부디 이 이야기의 끝이 달콤한 희망이 가득하길 바라며 집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
    ​
    울음 소동이 지나 늦은 오후. 집사는 전서구를 보낸 후 자잘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 후 진정에 좋은 차 세트를 들고 리안의 방으로 향했다.
    ​
    ​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와도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실례하겠습니다.”
    ​
    ​
    집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긴 하얀 소파에 앉아있는 리안과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든 아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
    ​
    눈가가 붉게 짓무른 것이 집사가 방을 나간 후에도 한참을 운 듯했다. 얼굴에 눈물 자국이 없는 걸로 봐선 닦아준 것 같았다. 집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
    ​
    “진정에 좋은 차를 가져왔는데… 조금 나중에 준비할까요?”
    “아이리스가 깨면 그때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
    ​
    시중을 이 주 동안이나 받다 보니 리안도 이런 대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집사는 소리 없이 소파 앞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곤 품위 있게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며 말했다.
    ​
    ​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으실까요?”
    “아, 예! 물론이죠!”
    ​
    ​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집사가 허리를 푹 숙여 보이자 리안은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두 손으로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집사는 감사를 표한 후 반대편에 앉았다. 그리곤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기 좋게 웃어 보였다.
    ​
    ​
    “두 분은 사이가 정말 좋아 보이시는군요?”
    ​
    ​
    그는 공작가 집사답게 직설적으로 묻는 일 없이 가벼운 대화로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두 사람은 별거 아닌 잡담을 주고받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사가 한 템포 정도 말을 쉰 후 입을 열었다.
    ​
    ​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질문드려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
    ​
    집사는 자세를 바로 하며 리안의 눈을 진지하게 직시하였다.
    ​
    ​
    “어떤 근거로 아이리스 양이 각하의 핏줄이라 확신하십니까?”
    “…!”
    ​
    ​
    노집사의 진중한 시선이 리안을 태워버릴 듯 뜨겁게 또 한편으로는 차갑게 바라보았다. 리안은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느꼈다.
    ​
    ​
    ‘근…거…? 그런 거 없는… 데 어쩌지?’
    ​
    ​
    그렇다면 리안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공작가에 냅다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걸까? 
    ​
    ​
    그건 아니었다.
    ​
    ​
    ‘원작 속 공작은 사진만 보고 바로 아이리스가 자기 딸인 거 알아봤으니까, 근거나 증거… 이런 건 필요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지.’
    ​
    ​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
    ​
    원작에서 공작가의 기사(판톤)이 공녀로 추정되는 아이리스를 발견하곤 구해낸다. 착한 아이리스는 리안도 데려가 준다.
    ​
    ​
    아이리스가 공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원작 리안은 하얀 머리와 금안을 내세워 아이리스와 남매 사이라고 우기며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다.
    ​
    ​
    아이리스만 없으면 가문까지 이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를 죽이려 한다. 이에 아이리스는 공작가를 떠나 도망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
    ​
    뒤늦게 돌아온 공작은 수정구를 통해 기록된 사진을 보곤 눈이 뒤집힌다. 제 딸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던 탓이다.
    ​
    ​
    심보는 고약했지만, 실력은 허술했던 원작 리안은 아이리스를 죽이려 했다는 걸 들키게 되고 공작에게 끔찍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
    ​
    이런 원작의 흐름을 알고 있기에 아이리스만 덩그러니 데려다 놓아도 어화둥둥 업어갈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작이 성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
    ‘하필 이때 자리를 비워선…’
    ​
    ​
    리안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
    ​
    ‘여기서 대답 못하면 사기꾼으로 찍혀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
    ​
    공작이 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의 문제는 전혀 다르다. 만약 지금 사기꾼으로 찍히면 돌아온 공작이 선입견을 가지고 아이리스를 바라볼 것이다. 자칫 겉모습만 따라한 가짜라고 오해하여 검을 뽑아 들 수도 있었다. 
    ​
    ​
    꿈도 희망도 뭣도 없는 다크 판타지 세계이니 불가능한 얘긴 아니었다.
    ​
    ​
    ‘뭔가 해결법이 끄응…!’
    ​
    ​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 손등 쪽으로 향했다. 도저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직면했을 마검이 짜잔 하고 나타나 항상 가볍게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
    ​
    일상생활을 위해 인장을 가린 상태라 손등은 그저 매끈하기만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무릎을 꾹 붙잡은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
    ​
    ‘하지만 이건…’
    ​
    ​
    떠오른 방법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
    ​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하자.’
    ​
    ​
    집사는 결심을 굳히는 리안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타까움에 신음을 흘렸다.
    ​
    ​
    ‘끙… 역시 동생만이라도 가문에서 귀하게 크길 바라 근거도 없는 거짓말은 한 것이구나.’
    ​
    ​
    식은땀을 흘리고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입술을 깨무는 리안의 모습은 답 없는 문제를 직면한 사람과 비슷해 보였다. 집사는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
    ​
    ‘…잘 타일러서 가르치면 될 거야. 거짓말이라고는 하나 동생을 위한 거짓말이었고 젊기까지 하니.’
    ​
    ​
    집사가 착착 마음의 정리와 생각 정리까지 끝내려는 순간.
    ​
    ​
    “사실…”
    ​
    ​
    리안이 고개를 들어 진중한 표정으로 집사의 눈을 직시했다. 아이리스보다 조금 더 밝은 영롱한 금안과 시선이 맞닿았을 땐 그저 거짓말을 고백하려나 보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무너지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
    ​
    파아앗!
    ​
    ​
    “…!”
   
    ​
    리안이 왼쪽 손등을 앞으로 내밀어 보이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등 위로 신의 인장이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빛처럼 순수하고 신성한 기운이 리안을 휘감았다.
    ​
    ​
    하얀 머리카락은 순수한 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며, 그의 금빛 눈동자는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했으며 눈빛은 별이 새겨진 밤하늘을 바라보는 듯 신비롭고 깊었다.
    ​
    ​
    신성력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며, 온 세상에 그의 존재를 알렸다. 그 빛은 새벽의 첫 햇볕처럼 따뜻하고, 밤하늘의 별빛처럼 신비로웠다. 집사는 그 경이로운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랜 전설 속에서만 존재했던 신의 사자를 목도한 것만 같았다. 
    ​
    ​
    빛이 점차 잦아들고, 신성력은 인장 속으로 스며들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신도가 많이 늘었는지 문양이 전보다 더 복잡하고 섬세해졌다. 리안은 날이 갈수록 화려해지는 인장에서 애써 시선을 뗀 후 집사를 바라보았다.
    ​
    ​
    은은한 웃음은 잃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입을 떡 벌린 채 동그랗게 뜬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벙긋거리는 입술이 조금 웃겼다.
    ​
    ​
    “이게, 이게 무슨…”
    ​
    ​
    리안은 머릿속에 ‘피칭!’하고 무언가 신호가 지나가는 걸 느꼈다. 
    ​
    ​
    ‘대충 덮고 넘어가려면 지금뿐이다!’
    ​
    ​
    리안은 곧바로 혀끝에 모터를 장착한 후 우다다다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보험이나 학습지, 휴대폰을 판매하는 전문가와 흡사했다.
    ​
    ​
    “아이리스가공작님의,각하의핏줄인걸어떻게확신하냐고물으셨죠?결론부터말씀드리자면신의인도덕분입니다.조금전에보셨다시피전신의선택을받았습니다.신께선저에게용사의하나밖에없는아이를자신이있어야할자리로데려다달라고말씀하셨습니다.그러하여전신의인도에따라아이리스를만나고끔찍한마왕의땅을탈출했습니다.아,왜이제야와서이런사실을알려주는지궁금하신가요?그건 -….(생략)..”
    ​
    ​
    성격이 더러운 귀족부터 음모를 꾸미는 걸 즐기는 귀족까지. 온갖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봤지만, 이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화는 처음이었다.
    ​
    ​
    목소리는 나긋나긋한데 말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워낙 또박또박 말하고 있어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말하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이해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
    ​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현대식 상담 스킬에 집사는 멍한 상태로 그저 “예,예 ”라고만 하는 기계가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리안은 가볍게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
    ​
    “휴… 그럼 이 정도 설명이면 근거가 될까요?”
    “예, 예 충분합니다.”
    ​
    ​
    집사는 단정한 머리는 어느새 잔머리가 튀어나와 지저분해져 있었고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
    ​
    만약 그가 리안을 향해 악의를 품었다면, 집사는 귀에서 피가 나도록 며칠 밤낮을 정신이 아득해지는 설명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화법이었다.
    ​
    ​
    ​
    “그, 그럼 저는 이만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
    ​
    집사는 비틀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리안은 묘한 승리감에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실실 웃다가 뒤늦게 아이리스의 존재를 떠올리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집사의 아득함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글효과를 줘봤습니다 ㅋㅋㅋ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만약 이번에도 그분의 핏줄이 아니라면… 술을 준비해야겠군.’

어제까지만 해도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을 나누던 전우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술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술이 주는 일시적인 위안조차 그녀에겐 고통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끔 술잔을 기울일 때가 있었다.

자식과 남편이 실종된 날과 아끼던 부하가 영원한 잠이 든 날이었다. 집사는 상실감에 잠겨 쓰디쓴 술을 삼키는 공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쓸쓸한 가을바람이 황량한 들판을 스치는 것처럼 건조한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 -… 만약에라도 저분이 각하의 핏줄이 맞다면.’

오로지 끝을 향해,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는 외로운 그분에게 큰 희망이 되리라.

부디 이 이야기의 끝이 달콤한 희망이 가득하길 바라며 집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울음 소동이 지나 늦은 오후. 집사는 전서구를 보낸 후 자잘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 후 진정에 좋은 차 세트를 들고 리안의 방으로 향했다.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와도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집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긴 하얀 소파에 앉아있는 리안과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든 아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눈가가 붉게 짓무른 것이 집사가 방을 나간 후에도 한참을 운 듯했다. 얼굴에 눈물 자국이 없는 걸로 봐선 닦아준 것 같았다. 집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진정에 좋은 차를 가져왔는데… 조금 나중에 준비할까요?”

“아이리스가 깨면 그때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시중을 이 주 동안이나 받다 보니 리안도 이런 대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집사는 소리 없이 소파 앞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곤 품위 있게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며 말했다.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으실까요?”

“아, 예! 물론이죠!”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집사가 허리를 푹 숙여 보이자 리안은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두 손으로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집사는 감사를 표한 후 반대편에 앉았다. 그리곤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기 좋게 웃어 보였다.

“두 분은 사이가 정말 좋아 보이시는군요?”

그는 공작가 집사답게 직설적으로 묻는 일 없이 가벼운 대화로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두 사람은 별거 아닌 잡담을 주고받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사가 한 템포 정도 말을 쉰 후 입을 열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질문드려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집사는 자세를 바로 하며 리안의 눈을 진지하게 직시하였다.

“어떤 근거로 아이리스 양이 각하의 핏줄이라 확신하십니까?”

“…!”

노집사의 진중한 시선이 리안을 태워버릴 듯 뜨겁게 또 한편으로는 차갑게 바라보았다. 리안은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느꼈다.

‘근…거…? 그런 거 없는… 데 어쩌지?’

그렇다면 리안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공작가에 냅다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걸까?

그건 아니었다.

‘원작 속 공작은 사진만 보고 바로 아이리스가 자기 딸인 거 알아봤으니까, 근거나 증거… 이런 건 필요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원작에서 공작가의 기사(판톤)이 공녀로 추정되는 아이리스를 발견하곤 구해낸다. 착한 아이리스는 리안도 데려가 준다.

아이리스가 공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원작 리안은 하얀 머리와 금안을 내세워 아이리스와 남매 사이라고 우기며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다.

아이리스만 없으면 가문까지 이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를 죽이려 한다. 이에 아이리스는 공작가를 떠나 도망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뒤늦게 돌아온 공작은 수정구를 통해 기록된 사진을 보곤 눈이 뒤집힌다. 제 딸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던 탓이다.

심보는 고약했지만, 실력은 허술했던 원작 리안은 아이리스를 죽이려 했다는 걸 들키게 되고 공작에게 끔찍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런 원작의 흐름을 알고 있기에 아이리스만 덩그러니 데려다 놓아도 어화둥둥 업어갈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작이 성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필 이때 자리를 비워선…’

리안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 대답 못하면 사기꾼으로 찍혀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공작이 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의 문제는 전혀 다르다. 만약 지금 사기꾼으로 찍히면 돌아온 공작이 선입견을 가지고 아이리스를 바라볼 것이다. 자칫 겉모습만 따라한 가짜라고 오해하여 검을 뽑아 들 수도 있었다.

꿈도 희망도 뭣도 없는 다크 판타지 세계이니 불가능한 얘긴 아니었다.

‘뭔가 해결법이 끄응…!’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 손등 쪽으로 향했다. 도저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직면했을 마검이 짜잔 하고 나타나 항상 가볍게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위해 인장을 가린 상태라 손등은 그저 매끈하기만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무릎을 꾹 붙잡은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건…’

떠오른 방법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하자.’

집사는 결심을 굳히는 리안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타까움에 신음을 흘렸다.

‘끙… 역시 동생만이라도 가문에서 귀하게 크길 바라 근거도 없는 거짓말은 한 것이구나.’

식은땀을 흘리고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입술을 깨무는 리안의 모습은 답 없는 문제를 직면한 사람과 비슷해 보였다. 집사는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잘 타일러서 가르치면 될 거야. 거짓말이라고는 하나 동생을 위한 거짓말이었고 젊기까지 하니.’

집사가 착착 마음의 정리와 생각 정리까지 끝내려는 순간.

“사실…”

리안이 고개를 들어 진중한 표정으로 집사의 눈을 직시했다. 아이리스보다 조금 더 밝은 영롱한 금안과 시선이 맞닿았을 땐 그저 거짓말을 고백하려나 보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무너지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파아앗!

“…!”

리안이 왼쪽 손등을 앞으로 내밀어 보이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등 위로 신의 인장이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빛처럼 순수하고 신성한 기운이 리안을 휘감았다.

하얀 머리카락은 순수한 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며, 그의 금빛 눈동자는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했으며 눈빛은 별이 새겨진 밤하늘을 바라보는 듯 신비롭고 깊었다.

신성력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며, 온 세상에 그의 존재를 알렸다. 그 빛은 새벽의 첫 햇볕처럼 따뜻하고, 밤하늘의 별빛처럼 신비로웠다. 집사는 그 경이로운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랜 전설 속에서만 존재했던 신의 사자를 목도한 것만 같았다.

빛이 점차 잦아들고, 신성력은 인장 속으로 스며들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신도가 많이 늘었는지 문양이 전보다 더 복잡하고 섬세해졌다. 리안은 날이 갈수록 화려해지는 인장에서 애써 시선을 뗀 후 집사를 바라보았다.

은은한 웃음은 잃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입을 떡 벌린 채 동그랗게 뜬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벙긋거리는 입술이 조금 웃겼다.

“이게, 이게 무슨…”

리안은 머릿속에 ‘피칭!’하고 무언가 신호가 지나가는 걸 느꼈다.

‘대충 덮고 넘어가려면 지금뿐이다!’

리안은 곧바로 혀끝에 모터를 장착한 후 우다다다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보험이나 학습지, 휴대폰을 판매하는 전문가와 흡사했다.

“아이리스가공작님의,각하의핏줄인걸어떻게확신하냐고물으셨죠?결론부터말씀드리자면신의인도덕분입니다.조금전에보셨다시피전신의선택을받았습니다.신께선저에게용사의하나밖에없는아이를자신이있어야할자리로데려다달라고말씀하셨습니다.그러하여전신의인도에따라아이리스를만나고끔찍한마왕의땅을탈출했습니다.아,왜이제야와서이런사실을알려주는지궁금하신가요?그건 -….(생략)..”
“아이리스가공작님의,각하의핏줄인걸어떻게확신하냐고물으셨죠?결론부터말씀드리자면신의인도덕분입니다.조금전에보셨다시피전신의선택을받았습니다.신께선저에게용사의하나밖에없는아이를자신이있어야할자리로데려다달라고말씀하셨습니다.그러하여전신의인도에따라아이리스를만나고끔찍한마왕의땅을탈출했습니다.아,왜이제야와서이런사실을알려주는지궁금하신가요?그건 -….(생략)..”
“아이리스가공작님의,각하의핏줄인걸어떻게확신하냐고물으셨죠?결론부터말씀드리자면신의인도덕분입니다.조금전에보셨다시피전신의선택을받았습니다.신께선저에게용사의하나밖에없는아이를자신이있어야할자리로데려다달라고말씀하셨습니다.그러하여전신의인도에따라아이리스를만나고끔찍한마왕의땅을탈출했습니다.아,왜이제야와서이런사실을알려주는지궁금하신가요?그건 -….(생략)..”
“아이리스가공작님의,각하의핏줄인걸어떻게확신하냐고물으셨죠?결론부터말씀드리자면신의인도덕분입니다.조금전에보셨다시피전신의선택을받았습니다.신께선저에게용사의하나밖에없는아이를자신이있어야할자리로데려다달라고말씀하셨습니다.그러하여전신의인도에따라아이리스를만나고끔찍한마왕의땅을탈출했습니다.아,왜이제야와서이런사실을알려주는지궁금하신가요?그건 -….(생략)..”




성격이 더러운 귀족부터 음모를 꾸미는 걸 즐기는 귀족까지. 온갖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봤지만, 이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화는 처음이었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한데 말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워낙 또박또박 말하고 있어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말하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이해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현대식 상담 스킬에 집사는 멍한 상태로 그저 “예,예 ”라고만 하는 기계가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리안은 가볍게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휴… 그럼 이 정도 설명이면 근거가 될까요?”

“예, 예 충분합니다.”

집사는 단정한 머리는 어느새 잔머리가 튀어나와 지저분해져 있었고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만약 그가 리안을 향해 악의를 품었다면, 집사는 귀에서 피가 나도록 며칠 밤낮을 정신이 아득해지는 설명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화법이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집사는 비틀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리안은 묘한 승리감에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실실 웃다가 뒤늦게 아이리스의 존재를 떠올리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