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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5

   설산 위.

   종이를 내려다보던 크라슈는 홀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유일한 네크로맨서이자 과거 밤 까마귀의 수장.

     

   그녀가 알려온 편지를 보고, 크라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크라슈의 주머니에 왔던 쥐는 정지해 있었다.

   정말로 자신을 찾아오지 말란 뜻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찾지 말라는 말을 전한 이유가 무엇인가.

     

   ‘에벨아스크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날 만한 일이 있었다.’

     

   에벨아스크가 갑자기 변할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에 같이 다니던 동료 녀석들이 있어. 지금은 다 죽었지만, 그래도 꼭 한 번쯤은 그 녀석들이랑 다시 웃어 보고 싶어.」

     

   크라슈의 머릿속에 술 취한 에벨아스크가 술주정 부리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서에 의해 창공의 세대의 도구로서 이용당했던 그녀는 늘 자신의 옛 동료를 그리워했다.

     

   ‘에벨아스크의 꿈은 옛 동료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네크로맨서를 택할 정도로 그녀는 지독하게 여러 책을 탐구하고, 공부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긋지긋해! 난 너희의 개가 아니야! 나도 사람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어! 나도, 나도 그 녀석들이랑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주를 퍼부으며 에벨아스크가 처절하게 외쳤던 그 말을 크라슈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 순간 크라슈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이런, 썅…….”

     

   그녀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인물을 딱 한 명 크라슈는 안다.

   크라슈의 손에 종이가 구깃구깃하고 변했다.

     

   에벨아스크가 저토록 처절하게 저주를 퍼부었던 이유는 아서가 그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살려낼 힘을 지닌 저승사자.

   그리고 크라슈가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멸망의 시초 중 하나인 미치광이.

     

   ‘흑마녀.’

     

   크라슈가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감쌌다.

     

   그 여자가 에벨아스크에게 접근했다고 확신했다.

     

   ‘그야, 이전 회차에서도 한 번 그녀가 에벨아스크에게 접근한 적 있었으니까.’

     

   흑마녀가 에벨아스크에게 접근한 목적은 단 하나.

     

   세계 침식자 집단.

     

   ‘익시온’

     

   그곳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 * *

     

     

   익시온.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세계를 다시금 창조해줄 창조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목적에 쓰이는 것이 무엇인가.

   그건 다름 아닌 세계 침식이었다.

     

   ‘세계 침식의 힘을 이용해 신을 창조하려는 정신 병자 놈들.’

     

   크라슈는 익시온을 그렇게 평했다.

     

   ‘이제야 짜 맞춰졌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크라슈가 냄새를 맡았다.

     

   ‘독왕에게 중상을 입힌 이는 익시온 소속의 인물 중 하나다.’

     

   독왕은 분명 제국의 명을 따라 에벨아스크를 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에벨아스크가 아닌 익시온의 누군가와 먼저 마주하게 됐겠지.

     

   ‘에벨아스크를 원하는 익시온은 독왕이 에벨아스크를 쫓게 둘 생각이 없었을 거고.’

     

   그 결과 독왕과 익시온의 단원의 전투가 벌어졌고, 독왕은 중상을 입은 채 후퇴하게 되었다.

     

   ‘제국은 그걸 숨겼고.’

     

   독왕은 천하십강에다가 제국 소속.

   갑자기 튀어나온 세계 침식자에게 독왕이 당했다는 말이 퍼진다면 제국의 위상이 깎인다.

     

   반면에 에벨아스크는 제국의 악명 높은 밤까마귀 단의 수장이자 황녀 시해까지 하려 했던 세계 침식자다.

     

   이름값이 있으니 독단 임무를 했다가 무리해서 중상을 입었다고 하면 위상이 최대한 덜 깎이는 선에서 넘어갈 수 있다.

     

   덤으로 에벨아스크를 제 손으로 잡아 들일 수 있는 기회기도 하고 말이다.

     

   ‘제국도 익시온의 움직임 정도는 꿰고 있을 테고.’

     

   익시온 건은 조사를 마친 뒤.

   차차 세계의 인물들을 끌어들여 토벌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시즐리가 한 말이 맞았다.

   제국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절대 한 마리만 노리지 않는다.

     

   ‘에벨아스크 녀석은 사실상 활동을 멈췄으니까. 익시온 놈들도 지금은 접근할 리 없다 생각 했는데.’

     

   너무 무른 판단이었다.

     

   익시온은 최흉을 일으키는 원인인 놈들이다.

   그놈들의 규모가 커져서는 절대 안 된다.

     

   크라슈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어쩌면 기회다.’

     

   크라슈로서는 아직 세계 침식자를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하덴하르츠에는 무려 그의 형인 검왕이 있다.

   잘하면 익시온의 단원 중 한 명을 조질 수 있다.

     

   ‘이용하려면 전부.’

     

   자신의 가문이라도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전부 쏟아붓는 크라슈의 눈이 번뜩였다.

     

   ‘이번에 익시온의 일원 중 하나를 잡을 수 있다면 익시온을 흔들 수 있다.’

     

   익시온의 존재가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고, 세계의 강자들을 모아 익시온을 쫓는다.

   그것만으로 익시온의 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손으로 어쩌지 못하면 다른 카드라도 쓰면 돼.’

     

   일망타진을 못 해도 세력의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성과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크라슈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설산이 비춰 보였다.

     

   “크림슨가든.”

     

   그리고 크라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전 익시온 소속의 인물을 알았다.

     

   불사를 지워 주겠다는 거래를 승낙하고.

   세계 침식의 힘을 폭주시키고 다녔던 이를 말이다.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그녀가 바로 익시온의 전 단원이었다.

     

   “익시온이 에벨아스크한테 개입한 거 같다.”

   [ 쯧, 마침 그 생각하고 있었다. ]

     

   크림슨가든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크라슈와 거래한 시점에서 그녀는 익시온과 손잡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니 냉큼 그들을 끊어 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크림슨가든도 익시온의 소식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종으로 그들을 염탐하려 한다면 즉시, 세계 침식자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테니까.

     

   “당장 에벨아스크 녀석을 찾아야 해.”

     

   크라슈는 손에 쥔 종이를 이그니스로 조용히 태웠다.

   아무래도 독단 행동을 해야 할 것 같다.

     

   [ 기다려라. 익시온 놈들은 위험해. 나도 한때 함께 하기는 했지만, 그 녀석들은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위험한 녀석들만 모아 놨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놈들은 네 녀석도 탐낼 거다. ]

     

   크림슨가든의 말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그만큼 익시온은 위험한 놈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 그건 오히려 나쁜 방향이 아니야.”

     

   돌아온 말을 듣고 브로치가 한차례 빛났다.

     

   [ 혹시나 해서 묻겠지만 또 정신 나간 짓을 벌이려는 건 아니겠지? ]

   “내가 언제 그런 짓을 벌였다고 그러는 거냐.”

     

   크라슈가 너스레를 떨자 브로치가 선명히 빛났다.

     

   [ 확실하게 말해라. 네게 있어 익시온은 걸림돌이냐. ]

     

   이 녀석이랑 너무 오래 붙어 지낸 모양이다.

   크라슈는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크림슨가든의 말에 목덜미를 매만졌다.

     

   “아주 하늘 끝까지 차버려 줄 걸림돌이지.”

     

   그리고 대답해 주자 크림슨가든의 한숨 소리가 기다랗게 울려 퍼졌다.

     

   [ 죽고 싶으면 그냥 말을 해라. 내가 한 방에 보내주마. ]

   “아쉽게도 네 불사를 받을 때까지는 죽을 생각 없어.”

   [ 썩을 놈, 말이라도 못하면. ]

     

   날이 가면 갈수록 취급이 너무한 그녀였다.

     

   [ ……내 쪽에서도 알아보마.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는 몰라도 절대로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만 움직여라. 너도 아는 모양이지만 익시온 놈들은 미치광이다. ]

   “걱정하지 마. 나도 에벨아스크의 거처 쪽만 먼저 살펴볼 생각이니까.”

     

   수색 작전 전에 거처라도 들러 조금의 단서라도 잡고 싶었다.

   수색 작전이 시작되면 자유롭게 움직일 기회가 사라질 테니 말이다.

     

   ‘익시온의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만큼은 반드시 알아야 하니까.’

     

   뒤늦게 알면 대처가 늦어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 순간 브로치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녀도 움직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크라슈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독단 행동하기 위해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바로 복도를 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복도 앞에 한 인물이 보였다.

     

   “크라슈.”

     

   그건 다름 아닌 하링이었다.

     

   마침, 잘됐다.

   하링에게는 하나 받아 가고픈 게 있었다.

     

   “하링, 적호단 하나만 줄 수 있냐.”

     

   하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걸 겪고도 다시 적호단을 받아 가겠다 하니 기가 막힌 것이었다.

     

   순간 강화 영약까지 만들어 놓고, 적호단까지 써먹으려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혼자 어디 가려는 거야.”

     

   크라슈의 이동을 눈치챈 하링이 그의 옷깃을 잡았다.

     

   “떠오른 게 있어서. 그걸 좀 확인하러 갈 거다. 적호단은 만약을 위해서 받아두고 싶은 거고.”

     

   혹시나는 언제나 대비해 둬야 하는 법이다.

   하링이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난 임무에서 그가 몸을 사리는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적호단을 주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는 필요하다면 위험하건 말건 즉시 사용할 것 같았으니까.

     

   “……크라슈, 이번 임무, 다른 게 더 있지?”

     

   동시에 하링은 크라슈의 행동에서 의문점을 느꼈다.

   처음에는 하링도 크라슈가 제국과 스타론 사이에 다툼을 막기 위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4황녀인 시즐리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무언가 더 있는 게 확실했다.

     

   “아버지를 중상 입힌 세계 침식자와 관련 있는 거야?”

     

   그리고 하링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아버지, 독왕은 세계 침식자에게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세계 침식자가 일으킨 세계 침식에 살해당했다고 하였다.

     

   하링은 은연중에 크라슈를 자신의 오빠와 겹쳐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세계 침식자와 관련된 일을 하려 하니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

     

   크라슈가 잠시 동안 침묵했다.

   하링에게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잠시 입술을 떼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던 크라슈는 이내 하링과 눈이 마주쳤다.

     

   하링은 자신의 가문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는 걸 자신이 끌고 데려온 거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조차 안해 준다면.

   크라슈 자신도 라그렌 가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짜증 나게도 아서가 떠올랐다.

   무엇이든 남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던 그 녀석이 말이다.

     

   그런 행동 탓에 아서는 제일 선두에 있음에도 다른 이들과 같이 깊은 신뢰는 얻지 못했었다.

   크라슈 또한 아서를 깊이 신뢰하지 않은 게 그 증거였으니까.

     

   크라슈는 아서와 같은 길을 걸을 생각 없었다.

     

   창공의 세대가 그 이름에 걸맞게 확실하게 날아갈 수 있도록.

   자신이 앞에 서서 그 녀석들을 강제로 끌어 올려버릴 작정이었으니까.

     

   그러니 신뢰란 크라슈에게도 가장 중요한 단어였다.

     

   하링은 그런 창공의 세대의 멤버에 가장 적합한 이 중 하나.

   그런 그녀의 신뢰를 얻으려면 자신 또한 신뢰를 보여야 했다.

     

   “그래, 그렇지만 이야기가 좀 길어. 갔다 와서 말해줄게.”

     

   당장 전부 해주기에는 상황이 급하다.

   에벨아스크 녀석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까.

     

   그러니 크라슈가 그렇게 말하자 침묵하던 하링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조건이 있어. 알아보러 가는 데에 나를 같이 데려가.”

   “그건…….”

   “위험한 곳을 가는 거라면 적호단보다 내가 오히려 더 도움 될 거야.”

     

   크라슈는 하링의 스킬을 떠올렸다.

   하링의 스킬 인비저블.

     

   자신의 기척과 모습을 지우는 스킬이다.

   이 스킬로 데카라비아를 상대할 때 크게 한 방 먹인 만큼 그 위력은 크라슈도 잘 알고 있다.

     

   ‘확실히.’

     

   은밀하게 움직이기에는 하링의 스킬은 유용하다.

   무엇보다 몰래 빠져나가는 데 이만한 스킬이 없겠지.

     

   “그래, 가면서 이야기하자.”

     

   크라슈는 하링을 데려가기로 했다.

   이 녀석이야말로 사건의 진상을 가장 알고 싶어할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한 번 호흡을 맞춰 본 적 있는 하링이다.

   무슨 일이 생기든 잘해주겠지.

     

   크라슈는 그렇게 하링을 이끌고, 복도를 쭉 걸어갔다.

   그러곤 어느 한 방 앞에 멈춰 섰다.

     

   이 방 앞에 오니 자연스럽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서만큼은 주눅 들 수밖에 없는 크라슈였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손을 들어 노크하였다.

   그러자 안쪽에서 스르륵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곧 방문이 열렸다.

     

   “안녕, 내 동생.”

     

   잠깐, 눈을 붙이기라도 했는 듯.

   

   검푸른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풀어헤치는 샬롯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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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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