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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보안을 위해 외부로 연결된 창문이 없어, 칙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세희 연구소 보안실.

    수많은 감시 카메라 영상이 띄워진 그곳에서, 보안실 직원들은 한 화면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에이, 저렇게 얌전히 잠만 자는 애가 그럴 리가 없죠. 또, 제가 못 봤다고 장난치는 거죠?”

    “아니, 이게 선배 말을 못 믿네? 진짜라니까.”

    직원이 바라보는 잔뜩 줌인 된 화면에는 남색의 피부를 가진, 새근새근 잠이든 새싹 사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얌전히 잠이든 모습은 평온하고 편안해 보여서, 마치 잠이든 천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저런 착한 표정의 아이가 카메라를 보면서 도발했다고요?”

    “진짜라니까. 내가 이런 거로 왜 거짓말을 해?”

    선임 직원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저장된 영상을 화면에 띄우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이걸 설득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냥 영상 돌려보면 되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영상을 뒤져봐도 새근새근 잠이든 새싹이의 모습만 비칠 뿐 특이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허, 거참. 오브젝트 같은 일이 다 있네. 내가 착각했나?”

    “역시, 이번에 나타난 새싹이는 무해하고 얌전한 아이라니까요.”

    후배 직원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보안실에 컵라면을 숨겨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배도 고픈데, 선배도 라면 하나 드실래요?”

    “그래.”

    후배는 휴게실에서 가져온 컵라면 두 개를 준비하면서 말했다.

    “요즘 들어서 푸른 사신이들의 행동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 난 푸른 사신이랑 별로 접점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달라졌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집에 돌아가 보면 사과 같은 것도 자주 깎아둔다고 하더라고요.”

    후배는 뜨거운 물을 집어넣은 컵라면 두 개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선임 직원은 후배가 가지고 온 컵라면을 받아 들면서 말했다.

    “이 익숙한 인스턴트 냄새. 요즘 연구소 돈도 많이 번다면서, 이 싸구려 컵라면은 그대로네.”

    컵라면을 먹으면서 보안실 직원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푸른 사신이 초콜릿을 선물 해줬다는 이야기.

    세희 연구소 지하에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회색 사신 동상이 있다는 소문.

    별로 영양가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 저는 쓰레기 좀 버리러 갔다 올게요.”

    후배는 컵라면의 잔해들을 그러모아, 비닐봉지에 넣고는 보안실 밖으로 나섰다.

    후배가 떠나간 보안실에는 식곤증으로 살살 졸음이 몰려오는 선임 직원만이 남았다.

    라면 냄새가 가득 차오른 보안실에서 선임 직원은 턱에 손을 괴고, 졸린 표정으로 CCTV 영상들을 무의미하게 바라봤다.

    근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훌륭한 세희 연구소 직원의 자세였다.

    그때, 새싹 사신의 화면에서 변화가 있었다.

    살짝 실눈을 뜬 새싹 사신과 선임 직원의 눈이 마주쳤다.

    “어!” 

    순식간에 잠에서 깬 선임 직원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자, 새싹이가 조금 더 눈을 크게 뜨면서 놀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베-.

    그리고 혀를 삐죽 내밀고, 메롱.

    역시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어!

    그리고 타이밍 좋게, 보안실 문이 열리며 후배가 들어왔다.

    “선배? 갑자기 일어나서 뭐 하는 거예요?”

    하지만 쓰레기를 정리하고 온 후배가 돌아왔을 때는 짓궂은 표정으로 혀를 내밀던 새싹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

    지독히 높은 시야로 내려다보면 지평선 끝까지 검은 점액의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윤기 나는 표면은 잠든 짐승의 호흡처럼 느리고 불길한 리듬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이 어둡고 끈적끈적한 바다 한가운데서 가죽에 불길을 두르고 있는 돼지의 무리가 점액 속을 가로지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검은 점액을 불사르는 것이 보였다.

    돼지들이 나아가는 앞에는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은 마치 심연의 입구처럼 깊고 어둡게 빛을 삼키고 있었다.

    돼지들이 향하는 심연의 입구는 헬기 위에서 보았던 것과 쌍둥이처럼 생겼지만, 그 색깔만큼은 좀 더 검고 오염된 것처럼 보였다.

    불타는 돼지의 군단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구덩이를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묵시록의 한 장면처럼 파멸적인 암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에 대한 악의와 증오로 가득 찬 돼지들의 행진 목적은 명확해 보였다.

    지구로의 침입,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격.

    예린이가 머무는 호텔은 그 땅 구멍 근처니까,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목표는 가장 앞장서서 나아가는 대장 돼지.

    가장 커다란 돼지였다. 

    공간을 찢어버리기 위해서 양손으로 공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가 살아있는 것처럼, 내 의지를 읽고는 공간이 비틀리고 우그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허공에서 빛을 끊임없이 삼키는 검은 구체가 생겨나 공간을 잡아 뜯어버렸다.

    한때 벌판을 가득 채웠던 돼지들은 저항조차 못 하고, 피와 고통 속에서 검은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거대한 돼지도 검은 구체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하지만 오브젝트 사이에서의 승패는 그렇게 쉽게 갈리지 않았다.

    파괴 조건을 채우지 못한 공격은 돼지들을 죽이지 못했고, 갈기갈기 찢긴 살점들이 뭉쳐서 돼지들을 부활시키고 있었다.

    몸 대부분을 잃어버린 거대한 돼지는 핏물 대신 용암을 줄줄 흘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지면을 가득 채웠던 작은 돼지들도 다시 살아나서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그리고 거대한 돼지는 입을 크게 열고 소리를 지르며 말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구에서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 이질적인 언어.

    전에는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왜 못 알아듣는 거지?

    의아해서 내 몸을 내려다보니, 평소와 다른 몸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검게 물든 육체. 

    공허 속에서 하얗게 타는 장작.

    모호하게 흐릿해진 신체.

    하늘에 닿을 것처럼 커다란 신장.

    그리고 오래전에 죽어버린 육체와 영혼의 그릇.

    지면에 그림자를 드리운 나의 모습은 검은 점액과 일체화되어, 돼지 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도대체 뭐야?

    육체가 달라진 것을 인식하자마자, 급격하게 감각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전 대륙, 행성 전체 그리고 우주를 넘어서까지.

    전능함.

    그래, 전능함이 느껴져.

    그렇게 취할 것 같은 기분은, 갑자기 들려온 아주 작은 목소리에 사라져 버렸다.

    ‘엄마 빨리 와….’

    황금 사신의 아픈 목소리!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화르르.

    갑자기 치솟는 불길에 황금 사신은 고개를 올려서, 강철 돼지상을 바라보았다.

    튼튼한 강철로 만들어진 강철 돼지상이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녹아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이겼어!’

    황금 사신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강철 돼지상의 속에서 회색 사신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황금 사신의 앞에 나타난 것은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의 회색 사신이었다.

    의지를 가지지 못한 육체는 녹아내리는 강철 돼지상 속에서 쓰러져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

    황금 사신은 깜짝 놀라서 회색 사신에게 다가갔지만, 회색 사신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고 있지 않았다.

    때찌때찌.

    황금 사신은 회색 사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찰싹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든 것도 아니었다.

    여기 있는 것은 그저 겉껍데기일 뿐.

    사실상 시체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여기에 없어.’

    황금 사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회색 사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크게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황금 사신이 생각하기에 회색 사신은, 엄마는, 창조주는 무적이었으니까.

    그저,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걱정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회색 사신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자, 작은 걱정은 커다랗게 크기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회색 사신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장작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그 속도가 빠른지, 환하게 불을 밝히던 회색 사신의 몸은 순식간에 그 빛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마른 진흙처럼 푸석푸석해진 회색 사신의 피부.

    황금 사신이 빨리 일어나라고 때찌때찌하는 것만으로도 살점이 모래처럼 흩어져 버리고 있었다.

    ‘엄마!’

    회색 사신이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위험해!’

    황금 사신은 자기 동료들에게 위급한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장작을 회색 사신에게 모두 전달했다.

    ‘엄마….’

    흐릿해지는 황금 사신의 시야 속에서, 다른 황금 사신들이 마구 도착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착한 황금 사신들은 회색 사신의 몸에 손을 대고 자신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장작을 모두 불어넣었다.

    빛을 잃고 쓰러지는 황금 사신들.

    ‘엄마 빨리 와….’

    장작을 잃고 죽어가는 황금 사신들의 작은 염원이 그들의 작은 장작 속에 실려서 흘러가기 시작했다.

    ***

    깊은 밤, 빛의 커튼이 로키산맥 인근의 연구소 밀집 단지에 드리웠다.

    지평선을 가득 메우는 붉게 빛나는 커튼.

    서쪽 끝에서 끝까지, 지평선이 불타고 있었다.

    로키산맥을 어우르는 거대한 장벽.

    미국을 지켜주는 영체 방벽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화재로 인해 하늘은 불길한 연기로 가득 찼고, 그 연기를 바탕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산맥을 뒤덮는 크기의 거대한 돼지의 그림자가 인간들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은 경보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로키산맥 영체 방벽 관리 센터.

    영체 방벽과 그 안에 존재하는 오브젝트 ‘심연의 소용돌이’를 관리하는 관리 센터에서 비상경보를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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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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