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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146 – 밤놀이>

     

    “오크노디. 영혼을 뽑는 기술을 나한테도 전수하는 영광을 허락할게♡”

     

    곤충채집 업적을 깨려고 곤충포충망을 들고 열심히 풀밭을 쏘아 다니던 내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뚜루루루.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뻘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 당연히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게 머야?”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부하들이 이미 시험장에서 보고 알려줬으니깐♡”

     

    시험장이라면 오늘 낮에 모브와 자쿠의 시험을 구경하던 때를 말하나보다.

    근데 내가 영혼을 뽑는 기술을 썼던가?

    아닌데.

    암흑마나를 뽑은 적밖에 없는데.

    아항.

    그걸 갖고 싶다고 한 거였구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다.

     

    “내가 왜 알려줘야 해?”

    “포인트 줄게♡”

     

    당당하게 5000포인트를 수첩에 써서 제시하는 매스각키 황녀.

    과연 현 대륙의 패권국가인 중앙신성제국의 황녀다운 패기로운 입찰가였다.

    하지만 딱히 포인트를 바라고 꺼낸 말도 아니었다.

     

    “싫어!”

    “…5000포인트면 아티펙트의 소지허가도 받을 수 있는데?”

    “포인트는 나도 많아.”

     

    농담이 아니다.

    나중에 이벤트 때 써먹으려고 꾸준히 모은 포인트가 자잘한 것까지 다 합쳐서 삼십만을 넘긴 지 오래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5000포인트면 영혼도 팔 수 있는 거금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착실하게 모이는 것이 포인트다.

     

    “앗, 잡았당!”

    “뚜루루루.”

     

    포충망으로 포획한 귀뚜라미를 채집정리함에 집어넣어 보관하니, 어느덧 곤충채집 컬렉션 20종을 꽉 채울 수 있었다.

     

    [곤충채집 입문 2단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 <응애 파브르>를 습득합니다.]

    [칭호 보유효과로 모든 활동의 체력소모가 0.1% 감소합니다.]

    [칭호달성 보너스로 5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남들이 학업에 여념이 없을 때, 이미 다 아는 공부를 하는 대신에 열심히 각종 도감을 채우고 칭호작을 하면서 스펙을 업그레이드하고 포인트를 모으고 있다.

    이것이 고인물이 뉴비와 같은 시간 게임을 하면서도 어느새 스펙역전이 벌어지고 저만치 앞서나갈 수 있는 비결이다.

     

    “푸풋. 그런 놀이나 하고 다니니까 응애노디 소리를 듣지♡ 너무 어려♡”

    “머어? 그러는 너는 평소에 얼마나 잘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곤충이 갖고 싶으면 추종자들에게 시키고 그들의 공헌에 합당한 치하를 내려주면 그만이야♡ 내 발로 뛰어다니는 건 너무 촌스러운걸~?”

     

    여자아이를 상대로도 특유의 애교스러우면서도 킹받는 말투를 고수하는 매스각키 황녀.

    얄밉지만 미워하기 힘든 귀여운 외모를 지닌 황녀님이었다.

    특히나 본판은 남자였던 빙의자라면 더더욱!

     

    “흥. 누군 못할 줄 알고? 난 남들 부려먹는 게 미안해서 안할 뿐이야!”

    “그런 사람이 이사벨에게 매일 요리를 시켜~?”

    “헉! 그, 그걸 어떻게!”

    “아카디아에게는 다과회에서 간식을 얻어먹지~?”

    “으읏. 그, 그건 아카디아가 먼저 초대한 거야!”

    “도로시가 채집해오는 산나물을 받아먹는 건~?”

    “우씨. 왜 전부 다 알고 있는 거야!”

     

    스토커마냥 모르는 게 없네!

     

    “평소랑 다를 거 없어. 이번에는 음식 대신 포인트를 받아먹는 것이 다를 뿐이야♡”

     

    저렇게까지 치밀하게 스토킹을 해온 사람이다.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좋아. 알려줄게. 대신 포인트가 아니라 다른 걸 걸어줘야겠어.”

    “뭘 원해~?”

    “내기!”

    “내기…?”

    “나랑 대결을 해서 승리하면 마나검증시험에서 자쿠를 제압할 때 썼던 기술을 전수해줄게. 대신 지면 그때는 내 요구를 들어줘야해!”

     

    매스각키 황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싫어♡”

     

    설마 거부할 줄은 몰랐던 나는 크게 당황했다.

     

    “어째서?”

    “너 학년수석인걸. 너무 강해♡”

    “힘쓰는 내기는 안 해!”

    “마법은~?”

    “마법대결도 아니야!”

    “흐응~. 듣고 결정할래. 종목을 말해봐♡”

    “곤충채집대결!”

    “곤충채집… 으엑. 품위 없어~. 그딴 걸 굳이 내기로 할 이유가 있어~?”

    “내가 곤충을 모으고 있거든.”

    “벌레술사라도 될 셈이야~?”

    “아무튼 내가 이기면 황녀가 모은 곤충도 전부 내가 가질 거야. 이게 싫으면 나도 안 해!”

     

    어차피 하고 있던 칭호작, 벌레수집가 칭호까지 모으기 좋게 황녀를 끌어들인다.

    황녀도 딱히 져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내기를 받아들였다.

     

    “좋아♡”

     

    그렇게 내기가 시작되었다.

     

     

    * *

     

     

    오크노디가 기숙사에 돌아오질 않는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비밀훈련장이니 히든피스니 뭔지 모를 소리를 하면서 종종 오만 곳을 쏘아 다니는 오크노디였으니까.

    하지만 헤스티아는 걱정이 들었다.

    오늘 그녀가 하급반 시험장에서 벌였다는 일에 대한 소문이 기숙사 내에 자자했기 때문이다.

     

    “오크노디가 하급반 학생의 영혼을 구속해서 절대복종의 맹세를 받았대!”

    “다크프린세스의 첫 행보를 기어이 시작한 건가!”

    “악마군주 클래스에 승급하기 위해서 동급생의 영혼을 모으고 있는 걸지도 몰라. 너무 무서워…!”

     

    오크노디가 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헤스티아는 당연히 소문을 믿지 않았다.

     

    “즈앙. 오크노디를 찾고 싶어. 한 번만 도와줘.”

    “그 애를?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심한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는 말이라면 하지 마. 용병생활을 하면서 광전사라는 이유로 수많은 핍박을 들었지만 정말 괜찮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헤스티아는 알고 있다.

    부당한 모욕을 당하는 억울함을.

    음해와 모함을 겪는 것이 익숙한 헤스티아조차도 지금 오크노디를 둘러싼 소문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암살자에게는 드문 일도 아니야. 애초에 정체가 발각되면 목이 달아나기도 하는걸. 신변에 위협이 닥치지 않았다면 운이 좋다고 봐야 할 정도로.”

     

    검은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단검으로 조각상을 요리저리 깎다가 달빛에 대고 잘 깎였나 점검하는 즈앙의 모습에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암살자라는 클래스에 따르는 위험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었다.

     

    “그래도 오크노디는 친구잖아.”

     

    친구라.

    평생 자신과는 연이 없을 줄 알았던 단어의 등장에 즈앙의 손이 멈췄다.

    손재주를 키우기 위해 <달빛조각사가 되어보자> 강의를 듣고 과제에 집중해있던 정신이 흐트러졌다.

    원한다면 시장 한복판에서도 명정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암살자.

    그 집중이 고작 친구라는 단어 하나에 흐트러져서야 암살자로서의 정신수양도 아직 멀었다.

     

    ‘곤란하네.’

     

    스승은 말했다.

    망설임을 생기게 만드는 것은 전부 죽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즈앙은 그럴 수 없었다.

    오크노디가 싫지도 않았고, 설령 그녀가 싫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실력으로 그녀를 죽일 수 있을지 확신도 서지 않았으니까.

    집중력을 되찾으려면 근심의 원흉을 없애야 한다.

    오크노디를 없앨 수 없다면 그녀의 신변에 닥친 위협이 없음을 헤스티아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이 근심걱정이라는 이름의 방해꾼을 없애는 방법이었다.

     

    “알았어. 도와줄게.”

    “고마워. 역시 너라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

    “변덕이 들었을 뿐이야. 이번엔 또 어떤 황당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졌을 뿐이니까.”

    “후후. 그런 점까지 착한아이다워. 역시 오크노디의 주변엔 착한 사람이 많아.”

    “…착하기는 누가 착하다고.”

     

    즈앙은 헤스티아의 평가가 껄끄러웠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선악을 따져본 적도 없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착한아이가 될 수 있다면 헤스티아의 착한아이에 대한 기준이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정말 곤란하네. 오크노디, 너도 이런 기분이었니?’

     

    누구보다 나쁜 아이가 착한아이 소리를 듣는다.

    어색함 이전에 불쑥 고개를 치미는 충동이 성가셨다.

    정말로 착한아이가 되고 싶다고.

    이 착하고 순해빠진 먹잇감들과 같은 온순한 존재가 되어보고 싶다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물러터지게 변하려 드는 마음이 눈엣가시처럼 밟혔다.

     

    “일단 양면띠지의 방에서 오크노디가 갈 만한 곳을 찾아야겠지?”

    “그쪽이 아니야.”

     

    헤스티아는 깜짝 놀랐다.

     

    “오크노디가 어디로 갔을지 알아?”

    “천리미향을 묻혀뒀거든. 그 아이는 필요할 때 찾으려고 하면 하도 오만 곳을 쏘아 다녀서 도저히 찾을 길이 없으니까.”

    “굉장하네. 그런 동방스러운 아이템까지 쓰고.”

    “스승이 동방 사람이거든.”

     

    즈앙이 앞장서서 도착한 곳은 한때 모기가 떼거지로 날아왔던 숲 방면이었다.

     

    “…정말 이런 곳에 오크노디가 있어?”

    “쫄지 마. 모기들은 지난번에 아카데미 부근으로 서식지를 옮겼다가 싹 쓸렸잖아.”

     

    선배들 사이에서 어째서인지 최근 모기들이 만드는 혈석이라는 것의 가치가 폭등하고 있기도 해서 모기를 찾아보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즈앙은 그런 소식까지는 헤스티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보다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소리가 들린 탓이다.

     

    챙챙…

    캉캉…

     

    멀리서 들리는 쇠붙이가 충돌하는 소리.

    오크노디와 다른 누군가가 있다.

    그것도 그녀와 교전이 성립될만한 수준의 누군가가.

     

    “속도를 올리겠어.”

     

    발소리도 없이 귀신같이 숲을 타고 넘는 즈앙의 몸놀림에 무작정 달리기로 속도를 높여 따라가던 헤스티아의 몸에 무언가가 걸렸다.

    튀어나온 나뭇가지.

    무성한 덤불.

    밤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들과 어수선한 그림자.

    사람 한 구 시체로 발견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의 숲 저편에 즈앙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햘퀴고 뜯겨지며 난장판이 된 자신과 달리 멀쩡한 모양새가 조금은 약이 올랐지만, 눈앞의 광경에 삿된 감정은 금방 사라졌다.

     

    “저거… 황녀 아니야?”

    “아마도.”

    “쟤들 뭐하는 거야?”

     

    핀셋을 꺼내 나무구멍 속으로 우수수 던지는 2황녀와 넓적한 방패를 바위처럼 들어 막아내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황녀에게 돌을 던지는 오크노디.

    소꿉놀이라기에는 다소 살벌한 야밤의 싸움은 놀랍게도 황녀가 일방적인 우위를 가져가고 있었다.

     

    “멈춰어어! 던지지 마, 이 나쁜 황녀야!”

    “푸풉~ 바보 오크노디♡ 곤충을 채집하는 내기라고 했지, 잡은 곤충을 죽이지 말라는 규칙은 안 정했잖아~? 내가 못 찾으면 네가 찾은 걸 전부 죽이면 그만이야♡”

    “하아… 그러니까… 오밤중이 되도록 곤충채집내기를 하고 있었던 건가…”

     

    즈앙의 한숨에 헤스티아도 진이 다 빠졌다.

    차라리 제국척살령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질 급한 황녀가 손수 오크노디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상황이면 뭐라도 했을 텐데.

    긴박함과는 별개로 너무 애들 놀이였던지라 도통 나설 맘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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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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