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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147. 후회성녀는 시간을 달린다(10)

       

       

       “추, 출입 불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황녀님. 다름아닌 황제 폐하께서 직접 중요한 순간이니, 당분간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황제의 집무실 앞. 그곳에 들어가려던 율리를 은발의 기사가 완고히 제지한다. 

       

       “그치만… 난 그분의 딸이라고!”

       

       “죄송하지만, 어명에 예외는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기사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혐오가 묻어나왔다. 특히 ‘그분의 딸’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더 일그러지던 얼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놈이 왜 저리 황족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지. 그 이유라면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망할 소문 때문이다.

       

       두 번째 친구.

       그녀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인간.

       

       그 누구보다 믿음직했던 기사를 잃은 것만 해도 감당하기 버거웠는데. 하필이면 연달아 터진 끔찍한 불행.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불길한 검은 태양은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있다.

       

       멸망.

       그걸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현상들.

       

       그리고 그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녀 본인이었다. 한평생 악마는커녕 흑마법에 손도 댄 적도 없는데.

       

       그녀는 한순간에 악신의 성녀가 되었다.

       제국을 파멸시키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숨어든 가짜 성녀. 

       

       망나니라는 평판에서 더 떨어질 곳이 있나 싶었는데, 그녀는 이제 역사 제국 최악의 악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수준이면… 해명 따윈 불가능해.’

       

       여기는 황궁이다.

       황족에 대한 무례 따위 원래라면 절대 용서받지 못하는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저 남자는 노골적으로 그녀를 혐오하며 그 감정을 드러내는데 거리낌 하나 없다. 그걸 말리는 사람도 전무했고.

       

       이곳에서도 반응이 이렇다면… 바깥은 더더욱 심하다고 보아야 했다.

       

       자연스레 율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도, 아무리 해명하고 설명해 봤자 그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으리라는 것도. 

       

       다름아닌 그녀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패닉에 빠져 있다.

       미지만큼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없으니.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상현상의 원인을 규정짓고 이 불길한 사태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거기에 악신의 성녀와 그 성녀를 죽이면 이 모든 재앙이 해결될 거라는 소문은… 그야말로 모두가 믿고 싶어하는 이야기.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다.

       소문은 점점 확산되고, 불안과 함께 광기는 더더욱 퍼져나가고 있으니. 군중은 언제라도 그녀를 화형대로 내몰려고 하리라.

       

       살고 싶다면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그 기사가 사라진 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는 단 한 명 뿐. 

       

       “자, 잠깐.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렇기에 율리는 집무실의 문을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나갔다. 그 앞에서 그녀를 제지하려는 기사들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어도, 황궁에서 황족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특히나 상대가 마력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황녀라, 자칫 공격을 잘못 맞았다가는 죽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그녀는 당당히 그 문을 열어제낄 수가 있었다.

       

       집무실 문 너머.

       짙은 푸른색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한다.

       

       제국의 황제.

       태양처럼 찬란한 금빛 머리칼의 사내. 다시 말해 그녀의 아버지가 지금 율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

       

       몸이 부유한다.

       달려나가고 있던 그녀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붙잡히기라도 한 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숨이 막힌다. 전해지는 끔찍한 정신은 아득해져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기에. 율리는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그러건 말건 상관없이, 그녀의 몸이 내동댕이쳐진다. 그녀는 목을 붙잡고 켁켁거리면서 볼품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그런 그녀를 짙은 푸른색 눈동자가 내려다본다.

       그 눈동자에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듯 했다. 그것이 율리를 더 두렵게 했다.

       

       ‘도, 도대체 왜?’

       

       아버지는 지혜로우시다.

       그러니 그분은 알 수밖에 없다.

       

       지금 그녀가 어떻게든 목숨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은 황족이라는 신분 덕택이라는 것을. 심지어 그것도 이젠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마치 그녀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기사들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명백한 적대감이 담긴 얼굴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무찔러야 할 사악한 마녀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저 기사들이 이 이야기를 외부에 퍼트린다면. 분명 광기에 물든 시민들은 그녀를 어떻게든 화형대로 내몰려 할 터인데.

       

       정말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셨단 말인가.

       

       율리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이미 압력은 사라졌는데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그녀는 멍청하지 않으니까.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따위 모를 리가 없었다. 알고서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을 뿐.

       

       하지만….

       

       “내게 너 따위를 살려낼 의무 따위 없으니.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지 말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그 말.

       그걸 들은 이상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남아 있던 희미한 빛이 사라진다.

       

       평생을 피하고, 부정하고 외면해왔던 사실.

       그것이 다시금 잔혹하게도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내 편 따위…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구나.’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를 위해주는 인간 따위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망나니 황녀의 몰락을.

       그리고 악신의 성녀의 죽음을 원한다.

       

       …그저 그뿐인 이야기였다.

       

       *****

       

       머리가 어지럽다.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처소에 틀어박히고 나서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았다. 분명 악화되고 있을 상황에 무슨 대처를 취한 적도 없다.

       

       애초에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면, 모두가 내가 죽기만을 바란다면, 내가 살아봤자 기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심지어 나 자신조차 살아있는 것이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대체 살아갈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검은 태양. 붉어진 하늘.

       멸망의 전조, 괴상한 소문. 

       

       [제■, 더 ■상은■도 ■■수가 ■■■!]

       

       머릿속에 울려 대는 괴상한 목소리까지.

       

       전부 의문스러운 것들 투성이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더 이상 발버둥칠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다시금 하루가 지나간다.

       그저 멍하니 틀어박혀 벽만을 바라보고 있는 채 시간은 하염없이, 계속해서 흘러만 갔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평온은 찾아오지 않았다.

       

       분노한 군중이 들이닥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며, 그녀가 처형대로 보내지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분명 아직 재앙은 해결되지 않았을 터.

       거기에 그 소문의 확산세를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퍼트린 것일 테니.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소문이 묻힐 일은 없을 터인데. 괴상할 정도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죽기로 결심한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 그건 분명 사실이긴 하지만…. 

       

       신경이 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영문모를 예감이 자꾸만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닫혔던 문이 다시금 열린다.

       그녀는 홀린 듯이 처소를 나섰다.

       

       허나 보이는 풍경은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사람들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왔을 터다. 그런데도 아직 그녀가 살아있으니 분명 제국군이 힘을 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전투를 치뤄야 할 제국군은 성 내부에서 평상시처럼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이것 자체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황제 폐하의 그 발언. 그건 사실상 그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그렇다면… 밖에서 들리는 광기어린 군중의 함성은 뭐란 말인가,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는?

       

       제국군이 싸우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그녀를 위해 싸워주고 있단 말인가?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아주 바보같고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이기 그지없는 추측. 실현 가능성 따윈 존재하지 않는 몽상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은 호위기사 아닙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책무는 다하겠습니다.

       

       그건 그냥 거짓말이었다.

       2황자의 스파이로서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했던 말일 뿐이다.

       

       -너 같은 건… 그냥 죽어버려.

       

       게다가 그녀는 그런 심한 말까지 해버렸다.

       

       만약에 정말로 시온이 2황자의 첩자가 아니였다고 한들, 이런 말을 한 상대를 지키려고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숨이 가빠져 온다. 생각보다 먼저 발이 움직인다.

       

       성문을 향해서 그녀는 하염없이 달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앞에 보인 것은….

       

       “……아아.”

       

       만신창이가 된 채 창으로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마지막까지 서 있는 한 기사의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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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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