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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하지만 루카스는 곧장 나의 목을 치지는 못했다.

       

        바로 양옆에서 검기가 날아들어 루카스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서 충돌했다.

       

        사람이 그 사이에 있었다면 갈가리 찢겼을지도 모르는, 진짜 살기가 달린 검기.

       

        대련에서 보던 클레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칫……!”

       

        그렇게 뒤로 빠지는 루카스가 그런 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저건—

       

        “그렇지.”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황제가 말했다.

       

        “굳이 저렇게 장비를 가지고 와야 할 정도의 이유는 있었다는 뜻이다.”

       

        루카스는 상처를 입었다. 아직 자기 힘을 전부 발휘할 수는 없다는 뜻.

       

        저 법복과 검을 얻는 과정에서 당한 상처일까?

       

        기사단을 한 번에 상대하려고 했다면,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모두 쓰러뜨릴 수는 있어도 한 번의 공격도 안 먹힐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중에는 단순한 회복 마법으로는 고칠 수 없는 상처도 있었을 거고.

       

        “헤, 정말 그뿐이라고 생각해?”

       

        루카스가 웃고, 가면녀가 움찔 몸을 떨었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여기 계신 황제보다 많이 알고 있거든. 법국에서는 벌써 네 정체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는 거, 알고 있냐?”

       

        “…….”

       

        그럴지도 모르지.

       

        베라티 사건도 있고…… 물론 베라티는 나 없었어도 잡긴 잡았겠지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계속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해보자고?”

       

        루카스는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궁금하지 않아? 지금 네가 왜 그러고 있어야 하는지.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내 검을 피할 수 있으면서.”

       

        “…….”

       

        “뭐, 적어도, 법국에서 궁금해하던 것 하나는 풀렸구만.”

       

        루카스는, 아무래도 자기 나름대로 어떤 진실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자기 몸에 황제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내가 몇 마디 더 하는 사이에,

       

        쾅, 하면서 문이 폭발하듯 열렸다.

       

        그리고 동시에 앨리스, 클레어, 레오가 들어왔다. 그 뒤로는 기사들이 쏟아지듯 들어와 방을 채웠다.

       

        “내가 방을 봉쇄하라고 했을 텐데?”

       

        황제의 말에, 기사들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제가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내 왼쪽 옆으로 나오며 앨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네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정말로?”

       

        황제가 엄하게 꾸짖었지만, 앨리스는 내 쪽을 흘끗 보았을 뿐이다.

       

        “앨리스.”

       

        “루카스.”

       

        루카스가 앨리스에게 인사하듯 이름을 부르자, 앨리스도 그에 화답했다. 얼핏 보면 꽤 여유 있는 대답이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이스 남작가의 녀석들인가. 너희들은 아무리 수가 많아져도 전혀 도움 안 될걸? 오히려 불편하기만 할 텐데. 검기도 마음대로 날리지 못하게 될 거고.”

       

        “뭐, 그런 식이라면 전장에서는 언제나 다수가 불편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지 않겠느냐.”

       

        루카스의 말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레오와 클레어를 보고, 검성이 대답했다.

       

        “아무리 검기를 마음껏 날리는 미친놈이 있더라도, 결국 다수의 앞에서는 굴복하게 되는 법이다.”

       

        “흥, 그래?”

       

        루카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더니 말했다.

       

        “그럼, 해보자고. 어차피 확인하고 싶던 건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말한 루카스는 곧장 이쪽으로 쇄도했다.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모든 기사가 루카스 쪽으로 달려들었고—

       

        푸슉, 하면서, 한순간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내 앞쪽으로 달려들던 기사 몇 명이 쓰러졌다. 치명상인지 어떤지 확인할 틈은 없었다.

       

        내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연습했던 동작을 그대로 재생시키듯, 손은 내 겨드랑이 아래의 자동권총을 잡아 뽑고,

       

        탕, 탕!

       

        연속으로 두 발.

       

        분명 조준은 제대로 했다. 

       

        하지만, 순간 내 총구 쪽으로 루카스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루카스는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부터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괴물.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평소의 껄렁껄렁한 루카스의 태도가 아닌, 정말로 나를 죽여보겠다는 듯한, 살기 어린 표정.

       

        하지만 동시에 즐겁다는 듯 웃는 그 표정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내 총구를 피한 루카스의 몸이 바로 옆으로 회전하며, 검기를 날렸다.

       

        기사 둘이 더 쓰러지고,

       

        “츳……!”

       

        복싱 선수가 내는듯한 소리를 내며 가면녀가 뒤쪽으로 밀렸다. 미처 다 막아내지 못한 검기가 가면녀의 양팔에 얕은 상처를 냈다.

       

        챙!

       

        그 사실에 놀라기도 전에, 다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가 휘두른 검을 루카스가 칼로 받아낸 모양이었다.

       

        황제의 검날 끝부분을, 루카스가 들고 있는 검이 반쯤 파고들었다.

       

        “검기인가? 역시 대단함다, 아버지……!”

       

        검날에 검기를 둘렀기에 그대로 반토막 나지 않았다는 뜻일까?

       

        “어이쿠……!”

       

        옆에서 날아오는 검기를 루카스는 가볍게 피했다.

       

        “노인장, 계속 그렇게 주변 사람 신경 쓰면 죽어요.”

       

        저놈의 입은 쉬지도 않네.

       

        루카스는 그대로 검을 비틀었다. 땡강,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황제의 검 끝이 그대로 갈라지고, 루카스의 검은 그 넓어진 틈으로 빠져나왔다.

       

        “흠……!”

       

        곧장 휘둘러지는 검기를, 황제는 그대로 자기 검을 내려쳐 반토막 내버렸다.

       

        “크헉……!”

       

        하지만 넓은 검기는 주변 사람들을 한꺼번에 베어버리기 충분했다.

       

        탕탕!

       

        다시 두 발. 하지만 너무 급하게 총을 돌렸는지, 루카스의 어깨 위를 스쳤을 뿐이다. 법복이 조금 찢어지고 붉게 물들었지만, 루카스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시선을 나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그대로 다시 방아쇠를 당기자—

       

        팅, 하고, 맑은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팅, 하는 순간에 루카스의 검에서 스파크가 튄 것 같기도—

       

        옆에 있던 앨리스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어때, 마법 같지?”

       

        방금, 검으로 총알을 튕겨낸 건가?

       

        “훌륭해. 그 표정을 본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네!”

       

        루카스는 여전히 웃는 표정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대로 내 쪽으로 검기가 쇄도했다.

       

        이건, 못 피한다.

       

        한순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안돼!”

       

        ……내가 몇번이나 반칙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 자매의 황금빛 머리카락이 내 시야를 가렸다.

       

        피슉, 하고 피가 튀었다.

       

        어……?

       

        내 앞을 가로막았던 사람이 그대로 쓰러졌다. 동체시력이라고는 일반인 수준이 될까말까 한 내 눈에 한순간 그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앨리스!”

       

        절규하듯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루카스 옆으로, 가면녀가 그대로 달려들고,

       

        다시 루카스는 검을 휘둘렀다. 마치 강아지풀을 휘두르듯 아무렇게나, 좌우로 두 번.

       

        다시 비명이 들리고, 피가 튀었다.

       

        배 부분이 뜨거웠다.

       

        시선을 내려보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시야가 천천히, 옆으로, 아래로……

       

        하지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내 상태가 아니었다.

       

        앨리스.

       

        바닥에 쓰러져서 괴로운 듯 피를 흘리고 있는 앨리스.

       

        앨리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앨리스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나보다 훨씬 상처도 깊으면서.

       

        앨리스는 나를 올려다보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클레어의 고함이, 레오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다음 순간에는 두 사람이—

       

        쓰러져가는 나의 시선에,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고, 루카스가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안 돼.

       

        여기서, 나 때문에 다 죽어버려서는—

       

        “다시!”

       

        그 말이, 내 입에서 비명처럼 튀어나왔다.

       

        *

       

        쿵, 하고 부딪히는, 이미 몇 번이나 겪어보았던 감각.

       

        어딘가 세게 부딪힌 것처럼 머리가 웅웅 울리고, 숨이 빠져나왔다.

       

        이명이 천천히 사그라들고, 별이 반짝이던 시야가 다시 빛을 받아들이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앞으로 달려가는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아이의 등.

       

        “다시!”

       

        *

       

        쿵.

       

        바위에 몸을 그대로 부딪히는 것 같은 감각.

       

        이상하게도, 그 감각에 머릿속이 조금은 개운해진 것 같다. 가면녀가 있을 때마다, 마주칠 때마다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능력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나의 능력은, 그대로 막혀버린 거였을까?

       

        생각, 생각을.

       

        다시, 저 앞을 뛰어가는 소녀. 피를 흘리는 황녀 둘.

       

        “다시!”

       

        *

       

        쿵.

       

        빠직.

       

        한순간 느껴지는 것은 공간이었다.

       

        마치 만화경의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색색이 갈라져 무지개를 만드는 것 같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세계.

       

        하지만 그런 세상을 보면서도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을, 분명히 깨본 적이 있었다.

       

        몸으로 세게 부딪혀서.

       

        공간을 깨고, 나는 그 순간 분명히 시간을 돌렸었다.

       

        돌려서, 가면녀와 전투가 있기 직전으로 돌아갔었다.

       

        만약 내 멱살을 잡고 끌던 그 손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

       

        쿵!

       

        온몸이 울린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알 것 같다. 내가 왜 돌아가지 못했는지.

       

        원래는 통할 수 있는 길을 무언가가 막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이 부수고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리케이드는 아니었다.

       

        오히려 몸으로 부딪쳐 깨버릴 수 있을 만큼 불안정한 것.

       

        부딪히면 아프긴 하지만, 정말 힘껏, 그래.

       

        내가 겁먹지만 않는다면, 확실하게 부술 수 있는 수정.

       

        하, 참, 어이가 없네.

       

        누가 대놓고 속인 것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 멋대로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때 유적에서 내가 그곳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몰랐으니까.

       

        부딪히면 얼마나 아플지, 몰랐으니까.

       

        아무런 표시도 되지 않은 유리창을 향해 돌격한 사람처럼, 그냥 그대로 그 막을 깨고 들어가 버렸을 뿐이다.

       

        한 번 부딪히고 난 뒤에는 나 혼자 겁에 질렸던 거고.

       

        뭐, 멀쩡하지는 못하겠지. 그렇게 세게 부딪히는데.

       

        하지만 그때도, 멍 좀 들고 죽지는 않았었으니까.

       

        그렇단 말이지.

       

        내 시야에 흩날리는 파란 포니테일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더 세게.

       

        더 멀리.

       

        있는 힘껏.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것.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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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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