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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미친 마법사가 수두룩하게 도전과제를 정리하고 있는 걸 보고, 유나가 끼어들어 물었다. 

       

       “있지, 이 도전 과제는⋯⋯ 혹시 엔버스에게 보여주려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뭐야, 다짐에는 보상이 따르면 좋으니까 미리 정리해 두는 거예요. 정리하기 편하게.”

       

       “보상?”

       

       “네. 달성할 때마다 뭐라도 하나씩 쥐어주려고⋯⋯ 예를 들면.”

       

       [힘의 추구 : 절정 고수(답파, 충만, 조율 달성)에 오르기]

       

       “이걸 달성하면 +99강 전설 등급 빛나는 날개를 주는 거죠.”

       

       “갈(喝)──!!”

       

       미친 마법사는 유나의 태극권으로 투닥투닥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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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색 무복을 입고 서 있던 사내, 남궁명에게 소 형님이라고 불리운 자.

       

       남궁세가 직계이자 장남, 무심휘검(無心輝劍) 남궁소(南宮昭)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무인이었다.

       

       외모는 멀끔하고 무공의 수위 또한 출중하다. 갓 스물이 넘은 나이로 절정 고수가 되었으니 이는 무림의 흥복이라.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일곱 살을 넘어가는 남궁명과 비교하면 나이 차이도 까마득하여, 그는 대 남궁세가의 차기 가주로 유력한 인물이었다.

       

       외모와 실력과 혈통 세 가지를 갖추었으니 그 빼어남이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 당금의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기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명이가 데려온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술법이 높은 경지에 오른 도사시라고 하던데.”

       

       “약소한 재주가 있을 뿐이오.”

       

       “그렇습니까?”

       

       더하여 그의 평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존대를 해 온다는 것이었다. 가진 것이 이토록 많음에도 남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까지 가졌으니, 과연 비범한 자였다.

       

       초면에 느꼈던 꺼림칙함은 착각이었던가?

       

       남궁소는 자처하여 엔버스에게 세가를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비록 명이의 손님이나, 혹여 명이가 실수를 저지르면 누가 될 테니 형인 자신이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명이는 “형님이 맡아주신다면 안심이 됩니다!” 하고 흔쾌히 대답했고.

       

       하여, 엔버스는 남궁소와 이렇듯 복도를 나란히 걷게 된 것이었다.

       

       어색한 침묵이다. 엔버스는 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으나, 남궁소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우며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먼저 어디로 향하는지 묻자니 좀 그랬고, 또 아무 말도 않자니 침묵이 곤란하다. 엔버스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걷고만 있을 때, 그의 발밑에서 끼익 하고 마룻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삐걱.

       

       “⋯⋯⋯⋯?”

       

       “소리를 내셨군요.”

       

       남궁소는 흘긋 내려다보더니 먼저 두 걸음 더 나아갔다. 그가 마룻바닥 위로 걸으니, 엔버스와는 다르게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는 말을 이었다.

       

       “스스로의 보법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리라 생각하여, 이 복도는 일부러 수리하지 말라고 두었습니다.”

       

       “그, 그렇구려.”

       

       “이곳을 지나면 본가의 식객분들이 모이는 접객당이 나오게 됩니다. 도사님께서도 그곳에서 머무르게 되실 겁니다.”

       

       “음⋯⋯.”

       

       삐걱. 삐걱.

       

       한쪽의 발걸음에서는 연신 듣기 싫은 소리가 울리고, 다른 한쪽의 발걸음은 눈밭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듯 조용하다. 삐걱대는 소리가 자신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아, 그는 생각했다.

       

       오우거를 쏘아 잡을 때, 루나가 소리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소리가 나면 어그로가 끌린다면서.

       

       분명, 그 요체는 무게중심의 부드러운 배분이라 하였지.

       

       삐걱. 삐이걱──.

       

       조금씩 내딛는 법을 바꾸어, 엔버스의 삐걱이는 소리가 살짝 줄어들었을 때. 남궁소는 곧바로 말을 걸었다. 

       

       “도사님?”

       

       “⋯⋯음?”

       

       집중이 깨졌다.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희 아버지 생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제 곧 연회가 있을 예정인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도사 한 명을 불렀습니다. 그분도 접객당에 계시지요.”

       

       “그렇소?”

       

       “예. 비슷한 경지의 무인이 서로 만나면 무공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듯, 같은 도술사인 만큼 이야기가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로 옆방으로 잡아드렸습니다.”

       

       “음. 친절에 감사하오.”

       

       이세계의 마법사인가. 흥미는 있었다. 엔버스는 가짜 마법사였던 만큼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아티팩트를 구경시켜 주는 것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트인 복도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작은 정원이 나왔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2층짜리 집이 지어져 있었으니, 저곳이 바로 접객당으로 보였다.

       

       남궁소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엔버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마교 놈들의 습격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도사님의 도술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다고요.”

       

       “마침 스크롤⋯⋯ 부적이 있어서 따돌릴 수 있었소.”

       

       “위기를 타파하는 부적이라. 그것은 필시 영험한 부적이겠군요. 혹시 그런 부적을 몇 개 더 가지고 계십니까?”

       

       “⋯⋯⋯⋯.”

       

       침묵.

       

       너무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은 침묵.

       

       복잡해지는 생각 속에서, 엔버스가 그런 것을 묻는 건 좋지 않노라고 대답하려 할 때. 남궁소는 깨달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먼저 말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 평소에 도술에 관심이 많아서⋯⋯ 그만 무례한 질문을 입에 담고 말았군요. 제 동생을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동생을 많이 아끼시오?”

       

       “물론입니다. 제 하나뿐인 동생이니까요.”

       

       “⋯⋯⋯⋯.”

       

       그는 웃는 낯으로 접객당의 청색 깃발이 내걸린 방을 이용하라고 말한 뒤에, 몸을 돌려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 나갔다. 

       

       엔버스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심했다. 어째서인가, 저 사내의 앞에 서 있으면 불편해졌다. 손등에 거미가 올라탄 것만 같은 꺼림칙함이다.

       

       “⋯⋯에이, 기우이겠지.”

       

       상판대기가 잘생긴 기생오라비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치솟는 것이 남자인 법. 이번에도 그런 경우이리라.

       

       엔버스는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접객당 안으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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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객당 내부는 커다란 거실에 작은 별실이 다닥다닥 붙은 형태였다. 별실의 문짝에는 각기 색이 다른 작은 깃발이 내걸려 있어, 팻말 없이도 구분할 수 있었다.

       

       적색 깃발이 걸린 문이 열려 있었고, 염소 수염을 기른 중년인 한 명이 거실의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더랬다.

       

       정황상 저자가 남궁소가 초빙하였다는 도사로 보였다.

       

       과연 그 생김새가 도사에 꼭 맞았다. 묘한 모자를 쓰고 긴긴 장포를 둘렀으며, 모자에는 색색의 깃털을 꼽았고, 허리춤에는 여러 부적들이 내걸려 있었다. 나 도사요 하고 광고를 하는 꼴이다.

       

       엔버스는 그 꼴이 신기하고 하여, 정답게 말을 붙이려는데.

       

       “반갑소. 나는⋯⋯”

       

       “네놈이 그 사기꾼이냐?!”

       

       “⋯⋯⋯⋯?”

       

       대뜸 사기꾼 소리를 들어맞은 엔버스는 몸을 움찔 떨었다. 당혹스러워서이기도 했고,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저 도사가 엔버스를 언제 봤다고 사기꾼 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초면에 그게 무슨 소리요?”

       

       “얼굴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젊은 놈이 도사라, 남궁세가를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지?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이 사기꾼아!”

       

       “⋯⋯허.”

       

       “어떻게 네깟 놈이 하늘의 먹구름을 지상에 내린단 말이냐?!”

       

       꼬리에 불붙은 생쥐처럼 날뛰는 꼴이 보기에 밉다. 엔버스는 그제야 저 도사가 언성을 높이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의심과 질투로 가득했다.

       

       어린 녀석이 고명한 도사라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긁히니, 우선은 무턱대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필히 속임수를 써서 저들을 속였으리라 하며.

       

       이세계 마법사와 건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엔버스는 인상을 찌푸리고 몸을 팩 돌렸다. 더 어울려 줄 가치도 없었다.

       

       “이놈! 꽁무니를 빼는 거냐?!”

       

       “됐소. 댁의 허리춤에 내 건 스크롤에서도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당신은 별 볼 일 없는 도사이거나, 아니면 사기꾼이겠지.”

       

       “누굴 더러 사기꾼이라고 하느냐! 가암히! 각오해 둬라, 이 사기꾼아! 곧 연회가 열리거든, 사람들의 앞에서 네놈이 사기를 쳤다는 걸 똑똑히 밝힐 테니까!”

       

       엔버스는 청색 깃발이 내걸린 방 안으로 들어가, 미닫이문을 쾅 닫았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꼬장부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짐 정리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약간의 트러블은 있지만 지금까지는 아주 잘 풀리고 있었다.

       

       연을 트고 손님으로 초대받지 않았던가.

       

       구명지은을 받고, 남궁세가에 자신이 도움을 줄 일이 있다면 은혜를 입히고, 그만큼 보답을 받은 뒤에⋯⋯ 떠나거나 떠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어떤 무공과 만나게 될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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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버스는 접객당에 머물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몸이 근질근질하여 이내 침대에서 일어섰다. 

       

       식사는 제 시간에 시종들이 가져다 준다 하였고, 누가 부르거든 언질을 주겠다 하였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머무르기에는 좀이 쑤시고 시간이 아깝지 않던가.

       

       심심하면 무공을 연마하던 엔버스다. 이세계로 넘어온 지금, 그 마음이 들떴으면 들떴지 사그라드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앞마당에서 수련하면 화원이 망가질까 하여, 연무장을 찾아야 하겠는데.

       

       시종에게 묻자니 저녁까지 시간이 있어 나중에나 올 것 같고, 찾으러 나가자니 저택의 구조를 몰라 곤란했다.

       

       해서, 엔버스는 괴팍한 도사가 머무르는 붉은 깃발 방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

       

       “말씀 좀 묻겠소.”

       

       “내가 사기꾼 놈에게 대답해 줄 것 같으냐?!”

       

       “나도 댁이랑 길게 말할 생각 없소! 내가 수련을 위해서 연무장에 가야겠는데, 위치만 알려주면 귀찮게 안 하겠소.”

       

       “⋯⋯연무장이라?”

       

       도사 놈은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길을 일러주었다.

       

       “소리 나는 복도를 쭉 따라서 가다, 첫 번째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너른 공터 하나가 나오니. 그곳이 남궁세가의 연무장이다.”

       

       “⋯⋯생각보다 순순히 알려주시는구려?”

       

       엔버스가 미심쩍어 덧붙여 물었지만 도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길을 일부러 잘못 알려준 건가도 싶었으나, 틀린 길로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면 그만인 일.

       

       삐걱, 삐걱.

       

       그는 다시금 삐걱거리는 복도를 지나 (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경 썼지만 무리였다), 도사가 알려준 대로 길을 따라 걸었다.

       

       막다른 복도에는 문이 하나 있었고, 손잡이를 쥐고 돌리니 잠겨 있지 않았다. 그대로 밀어 여니 도사의 말대로 너른 공터가 나왔더랬다.

       

       그리고 연무장에는 선객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검을 뻗는다. 공기를 매섭게 가르고 거두어지는 칼날에는 묘리가 있어, 절도 있고 강맹한 검술에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녹아 있었다. 

       

       무공이로구나!

       

       엔버스는 검무를 추는 여인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거지로부터 배운 무공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과연 이 무공은 어떠한 목표로부터 쌓아 올려진 검술일까. 루나가 옆에 있었더라면 타구봉법을 보고 그랬듯 명쾌한 해설을 해 주었을 것인데. 저 검술이 완숙히 피어나면 어떤 모습일까!

       

       몸이 근질거렸다. 엔버스가 손가락으로나마 검의 궤적을 따라 그려보려 할 때, 검무를 추던 여인이 매섭게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쉬이이익!

       

       투검. 칼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다.

       

       엔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칼이 자신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문짝에 꽂힐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콱! 파르르르.

       

       장검이 문에 반쯤 박힌 채로 떨었다.

       

       엔버스는 감탄하며 박수를 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수련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소. 멋진 검술이구려!”

       

       “⋯⋯색목인? 그렇다면, 명이가 말했던 도사라는 자로군요.”

       

       “그대는 누구요?”

       

       “남궁가의 차녀, 남궁승아라 하지만⋯⋯ 가문의 무공을 훔치려는 악적에게 댈 이름은 아닌 것 같군요!”

       

       “⋯⋯⋯⋯?”

       

       그러고 보니 무림에서는 남의 수련을 훔쳐보는 것이 큰 무례라고 했었다. 그러나 남궁의 검에 깜빡 홀려,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엔버스는 황급히 팔을 내저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소!”

       

       “도둑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죠. 이다음에는 ‘색목인이라 중원의 문화에 무지했다’고 둘러댈 셈인가요?”

       

       후발선제라!

       

       남궁승아가 교묘한 수로 다음 변명거리를 막아버리자, 엔버스는 크게 당황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어찌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겠는가?

       

       복잡한 머릿속에서, 그는 허둥대다가 무심코 본심을 말했다.

       

       “훔칠 만한 검은 아니었소.”

       

       “⋯⋯⋯⋯.”

       

       “아, 그러니까 초식 자체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소. 하지만 다루는 사람이 명쾌하게 휘두르지 못하니, 검술에 녹아있을 큰 뜻은 담겨있지 않다 보았는데. 그, 그러면 말이오. 보물상자의 안이 텅 비었으면 훔칠 것도 없는 게 아니겠⋯⋯.”

       

       “⋯⋯그렇게 자신 있다면, 어디 직접 몸으로 확인해 보세욧-!!”

       

       면전에서 ‘너 무공 개못하잖아’ 소리를 들은 남궁승아는 그대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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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버스는 남궁가의 가정교육이 상당히 잘 이루어졌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남궁승아는 당장 아버지에게 달려가 ‘저 오랑캐의 머리를 담장에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 정중하게 비무를 걸었다.

       

       남궁승아는 문에 박힌 칼을 회수하여 쥐고, 중단세로 쥐어 겨누었다.

       

       “당신이 열 수를 받아낼 수 있다면, 이 무례는 없던 일로 해 드리죠.”

       

       “좋소. 그리고, 내가 인신공격을 할 의도는 아니었고⋯⋯.”

       

       “도사라는 자가 그 나불대는 입만큼 능력이 대단한지 한번 보겠어요!”

       

       “으음⋯⋯.”

       

       승부는 공정해야겠지. 

       

       엔버스는 양팔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러자 오랜 수련으로만 쌓을 수 있는 발달된 근육이 드러났다. 남궁승아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

       

       “보시다시피, 나는 조잡하게나마 무공을 익힌 몸이오. 이번 비무에서 스크롤⋯⋯ 부적. 부적이나 아티⋯⋯ 요술 도구를 쓰지 않을 테니, 알아 두시오.”

       

       “가겠어요! 하압──!”

       

       휘이익-!

       

       칼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은 허공이라는 캔버스에 궤적을 덧그리는 듯하다. 남궁승아는 충분히 단련하여 그 검세가 상당했으나.

       

       “아카데미 하위권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죠?!”

       

       제국에서도 기라성 같은 인재들만 긁어모아 수련하는 아카데미, 그곳에서 열심히 구른 엔버스를 따라잡기에는 격차가 상당했다.

       

       휘익, 휘이익──!

       

       3초식을 가볍게 흘려내자, 남궁승아의 얼굴에 초조함이 스쳤다. 엔버스는 잠깐 생각하다가,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뭘 하는 건가요?”

       

       “이대로도 피할 수 있소.”

       

       “이익⋯⋯!!”

       

       촤악, 촤자작──!!

       

       넷, 다섯, 여섯.

       

       연격. 

       

       비단 찢는 소리를 내며 굽이치는 연격에 맞서, 엔버스는 시선통찰(視線洞察)을 켰다. 눈을 감으니 오히려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정직했다.

       

       정직하고 맑다.

       

       검을 휘두르고는 있으나 급소를 노리지는 않는다. 베여도 목숨에 지장이 없거나 금방 치유할 수 있는 살갗. 혹은 망신을 줄 수 있는 옷자락이나 옷고름 등.

       

       무례를 저지른 엔버스에게 벌을 주고 싶을지언정, 그게 목숨을 거두거나 무공을 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강하게 주의를 주고 싶었겠지. 

       

       무공을 나누니 이제야 마음이 보인다. 다소 눈치가 부족한 편인 엔버스는, 서로 대련하는 이 순간 사회성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엔버스는 빙그레 웃었다.

       

       “비웃는 건가요?!”

       

       “아니오, 그저. 그대의 마음이 고와서 웃었소.”

       

       “꼬, 꼬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즐겁구려! 좀 더 날카롭게 휘둘러도 괜찮소. 내가 받아넘길 수 있으니, 과감하게 휘둘러 보시오!”

       

       남궁승아의 표정도 미묘하게 변했다. 저 청휘 도사라는 자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혹여 자신을 놀리는 것을 즐기나 싶었지만, 가만 보면 무공을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무공에 관심 있는 색목인 도사라.

       

       외국인이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으면 기껍듯이, 그 모습이 나쁘지만은 않게 보여 흥이 올랐다. 승아는 그 말대로 보다 과감하게 칼을 휘둘렀다.

       

       슥. 사사삭!

       

       보법을 밟아 들어가며 요혈을 찌른다. 그러나 남궁승아가 손을 채 움직이기도 전에, 그는 어디를 노리는지 안다는 것처럼 미리 피해 두었다.

       

       기감이 뛰어나, 기를 추적하여 피하나 싶어 내공을 가라앉혀도. 

       

       휙-!

       

       스윽.

       

       전신에 눈이라도 달린 양 가볍게 피했다. 

       

       공격을 눈치채는 것은 어떠한 기술이라고 해도, 피해내는 것은 결국 육신의 움직임인 바. 청휘 도사의 동작은 투박할지언정 육신의 힘이 상당했다. 기교 없이도 정직하게 빠르다. 

       

       “빈말은 아니었군요! 이게 열 번째 수이니, 어디 받아보세요!”

       

       남궁승아는 청휘 도사라는 자를 격상의 고수로 판단했다. 고수에게 손속을 두는 것은 되려 무례일 터, 배울 기회라고 생각하며 임하는 것이 좋으리라.

       

       자만도 내려놓고, 분노도 내려놓고, 남궁승아는 온 힘을 다하여 절초를 펼쳐내었다.

       

       “『청기린(靑麒麟)』!”

       

       엔버스는 눈을 떴다.

       

       기린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들듯, 푸른 아지랑이가 언뜻 일렁이는 칼날이 포물선 궤적을 그렸다. 공간을 잡아먹듯이 뻗어오는 기술이었다.

       

       저것은 선보다는 면의 공격이다. 단순히 칼날을 피하려 들거든, 번지듯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베여 피해를 입을 터. 

       

       둘 중 하나다. 크게 거리를 벌리거나, 번지기 전에 막아내거나. 

       

       그렇다면 후발선제를 노려야 하겠지!

       

       “폭쇄결(爆灑結)!”

       

       투웅.

       

       쏘아진 엔버스의 손이 검 손잡이를 내리눌렀다. 청기린은 하늘로 비상하기 전에 막혔다. 

       

       “⋯⋯⋯⋯.”

       

       “⋯⋯⋯⋯.”

       

       두 무인은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치다가, 동시에 기운을 갈무리했다. 남궁승아는 새초롬하지만 그다지 화는 나지 않은 눈치로 말했다.

       

       “⋯⋯제가 약조를 한 바 있으니, 훔쳐본 건 없던 일로 하겠어요.”

       

       “고맙소. 그런데, 여기는 연무장이 이곳 하나뿐이오?”

       

       “그럴 리가요. 여기는 남궁가 직계를 위한 연무장이고, 내방객분들을 위한 연무장은 따로 마련이 되어 있는걸요?”

       

       “⋯⋯⋯⋯.”

       

       엔버스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그 빌어먹을 도사 놈이 엿을 먹였구나.

       

       일이 이상하게 풀렸더라면 큰 화를 입었을 터. 남궁가에서 쫒겨나다 뿐인가, 어쩌면 정말 칼부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는 조용히 복수를 맹세했다.

       

       ===============================================================

       

       “청휘 도사님!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발도술을 구사한다는 재이라는 자를 어떻게 공략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만한 쾌검을 다루는 자라면 마땅히 느림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도사님께서 시간이 있으실 때에 부탁드리는 것이지만──”

       

       “청휘 도사,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 눈을 감고는 피해낼 수 없을 테니, 한 번 더 어울려보시죠!”

       

       “⋯⋯⋯⋯.”

       

       주로 남들의 기를 빨고 다니던 엔버스는, 난생처음으로 기가 빨린다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양 많이 볶았습니다 마이 프렌즈. 그러면 내일 또 만납시다, 아디오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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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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