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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붉게 칠해진 토리이.

       어둠에 물들어 새까만 색으로도 보이는 굵직한 기둥이 양옆으로 서 있었다.

       잘 닦인 돌바닥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기둥은 달빛이 구름에 가려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함에 따라 검붉은 색이 되기도, 어둠과는 다른 색의 어둠을 품은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토리이를 감싸듯 자라난 나무들은 밤의 냉기를 품은 바람에 스산하게 흔들리며 소리를 내었고, 나뭇잎이 흔들리며 내는 바스락거림과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내는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이 그를 노리고 몰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한 번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나뭇잎이 흔들리면 기척이 느껴진다.

       형체가 없는 기척은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을 망토처럼 둘러 그 형체를 숨기고, 빛나지 않은 눈으로 어둠 속으로 그를 꿰뚫어 본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바라보며 먹이의 숨통을 노리는 맹수가 있다.

       그늘 속에서 소리 없는 걸음으로, 보이지 않는 발로, 네발로 기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

       그의 목덜미를 혓바닥을 내밀어 핥아내는 듯한.

       손가락의 가장 끝부분으로 닿을락 말락 그의 솜털을 자극하는.

       머리카락의 끄트머리에 제 숨결을 들이미는 듯한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 느껴진다.

         

       료스케는 그 시선에.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고 소름을 돋게 만드는 그 시선에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그 시선은 마치 그가 토리이를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토리이를, 경계를 넘어 현세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는 토리이의 바로 앞에서 우뚝 선 채 식은땀을 흘리며 그 너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겁먹은 동물이 그러하듯.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만 사냥감이 물리기 전에 본능의 경고에 고민하듯.

         

       그렇게 료스케는 우두커니 선 채 밤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식은땀이 바람에 씻겨 내려가고, 어느새 오한에 몸을 떨면서도 계속해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달빛이 그를 바라보고, 눈길을 거두기를 얼마나 반복한 것일까?

         

       그의 귓가에 노이즈가 잔뜩 낀 소리가 들려왔다.

         

       [ 이보게. 어찌 거기에 서 있는가? ]

         

       료스케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속이 비칠 듯 얇고 하얀 유카타를 입은 여자였다.

       여자는 차갑기 짝이 없는 눈길로 료스케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는 좋지 않은 화질로 사람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는데, 노이즈가 끼고 거리가 멀어졌음에도 그 모습은 료스케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것처럼 그의 눈에는 그 사람이, 스마트폰에 비친 사람의 얼굴이 똑똑히 들어왔다.

         

       차기 신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정치계를 잠식하고 있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남자.

       귀신을 부리고 사람을 현혹하는 괴물 같은 인간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층을 쾌락으로 휘두르는 알 수 없는 존재.

         

       그가 스마트폰으로 료스케를 바라보고, 말을 걸고 있었다.

         

       [ 이보게. 이리로 좀 들어오게. 밤바람이 이렇게 차고, 풀벌레가 저렇게 많은데 어찌 문 앞에 서서 이러고 있는가? 사양 말고 들어와 나와 담소나 나눠봅세. ]

         

       차기 신관은 눈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했다.

       노이즈가 낀 목소리로 밤의 어둠을 가르며 그의 귓가에 자신의 말을 때려 넣었고, 높지 않은 그의 소리는 낱말 하나하나가 그대로 쏙쏙 박히는 듯 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료스케는 그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발이 땅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이보게. 객으로 찾아온 것 같은데 어찌 나에게 이런 창피를 주는가? 들어오게. 저 토리이를 지나 이곳으로 오게. ]

         

       계속되는 차기 신관의 재촉.

       그리고 그와 비례해서 터질 듯 뛰는 심장.

       무언가 붙잡고 있는 듯 움직이지 않는 발.

         

       료스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어둠이 끈적하게 그의 몸에 달라붙으며 서늘한 손길을 뻗는 것 같았고, 스마트폰 너머에서 보이는 차기 신관의 눈빛이 빛을 이뤄 그의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현혹하는 것 같았고, 귓가에 들리는 들어오라는 말소리에 균형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료스케는 고민했다.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홀린 듯 천근이 넘는 무게를 가진 것 같은 다리를 들어 한 발자국을 옮기려 하였다.

         

       도—-랸세 도랸-세.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정신을 퍼뜩 들게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신전 근처에 있는 신호등에서 들리는 보행자 교통 신호음이었다.

         

       본래라면 기계음만 있고 가사가 없어야 정상이건만, 마치 귀신이 영혼을 쥐어짜서 내지르는 듯한 목소리를 품은 가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가 퍼뜩 정신을 차리자 귓가를 간질이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저 멀리서 간신히 들릴락 말락 한 작은 기계음으로 변했다.

         

       삐-삐비-삐비비-

         

       그는 그 자그마한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여기는 어디로 가는 샛길인가요(ここはどこの 細通じゃ)….”

         

       공포를 잊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중간에 끊겨버린 가사를 잇기 위한 단순한 행동이었을까?

         

       “…천신님께 가는 샛길입니다(天神さまの 細道じゃ)….”

         

       그리고 그 두 번의 흥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스마트폰에 띄워진 차기 신관은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지나가게 해주겠네. 용건이 있으니 지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두려움을 품고, 이 토리이를 지나가게나. ]

         

       동요, 지나가세요(通りゃんせ)의 1절 가사를 묘하게 왜곡해서 말하는 차기 신관의 얼굴에는 상냥해 보이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노래를 흥얼거림과 함께 다시 정신이 돌아온 료스케의 눈에는 저 미소가 마치, 맹수가 사냥하기 전에 내보이는 공격적인 표정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료스케는 한 발자국 앞으로 가는 대신, 그 발을 그대로 뒤로 뻗었다.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 모습에 차기 신관은 환하게 웃었다.

         

       [ 어허. 보게, 귀한 객을 맞이하기 위해 주인이 문 앞까지 이렇게 마중을 나왔는데 어찌 나를 부끄럽게 하는가? 들어오게. 자네가 부른 노래처럼 나는 자네가 지나가도록 허락하였으니, 부담 갖지 말고 어서 들어오게나. ]

         

       자신을 유혹하는 듯한 소리에 료스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아닙니다. 그…. 보내주신 문자는 잘 받았습니다만.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생각나서 나중에 길일(吉日)을 잡아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안다.

       머리로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파오는 자신의 눈이.

       터져버릴 것처럼 뛰는 심장이.

       등을 축축하게 만들고, 손과 발을 흠뻑 적시는 땀이.

         

       그의 온몸이 절대 저기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의심을 산다고 한들, 배반한 것으로 낙인이 찍힌다고 한들.

       절대로 저기에 들어가선 안 된다고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다.

         

       [ 길일이라 하였는가? ]

       “네, 네. 길일에 뵈었으면 합니다.”

       [ 길일, 길일이라.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

         

       길일이란 단어를 들은 차기 신관은 크게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스피커가 뭉개지고, 소리가 깨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고 또 웃었다.

         

       [ 그래, 길일. 아주 좋구나, 좋아. 자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나야 문제가 없지. ]

         

       차기 신관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목소리는 냉기가 서린 목소리로 변했다.

         

       [ 그런데 말이야. 자네, 혹 고전 같은 것을 좋아하는가? ]

       “고, 고전이요?”

       [ 그래. 뭐 예를 들어서…. 사서삼경이나 도덕경, 뭐 이런 거 말이네. ]

       “큼. 제가 무인이나 학자가 아닌지라 그런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만….”

         

       료스케는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아주 미세하게 몸을 뒤로 빼었다.

       당신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무의식적으로 몸으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차기 신관은 그것을 눈치챘음에도 오히려 기꺼운 듯 환하게 웃었다.

         

       [ 그럼 지리소(支離疏)라는 이에 관한 이야기 역시 모르겠구나. ]

       “고견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료스케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본능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료스케는 그동안 정치인을 하며 겪은 경험으로 차기 신관이 던지는 이야기에 성실하게 대꾸를 해주고 있었고, 얼핏 보면 평온하게 보이는 것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 아니. 몰라도 된다네. 지리소는 무용(無用)이 곧 또 다른 쓸모가 된 사람이지만 자네는 무용은커녕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니 자네는 지리소의 이야기를 알 필요가 없다네. 그래, 만약 지금 자네가 발걸음을 뒤로 돌린다면 더더욱 말이야….]

       “그….”

         

       료스케는 지금 차기 신관이 하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선택지가 내려졌다.

       차기 신관을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료스케는 억겁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 그럼 그…말씀하신 대로. 길일에 뵙겠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

         

       그는 육체가, 육감이 말하는 것처럼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사냥감의 신세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그의 거처로 돌아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는 예의가 바르게 둘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위치가 되자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숨이 차고 계단에서 구를뻔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직 신사에서 멀어지는 것만을 생각하며 나아가고 또 나아가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핸들에 머리를 박고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한 자신의 몸을 히터로 녹이고 나서야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료스케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스마트폰을 엎어버리고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그는 신호에 걸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신호를 잠시 기다리는 사이.

       그의 양옆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삐—비비-삐비비–

         

       아까 그가 정신을 차리게 해줬던 보행자 교통 신호음이었다.

         

       기계음만으로 이루어진 보행 신호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머릿속에는 뚜렷한 가사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왔고, 머리에 각인이 될 때까지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가는 것은 괜찮지만 돌아가는 것은 무서워(行きはよいよい 帰りはこわい).

       무서워 하면서도(こわいながらも).

       지나가세요(通りゃんせ).

       지나가세요(通りゃんせ).

         

       료스케는 멍하니 그 가사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려 하였다.

       하지만 그가 부르려는 그 순간 신호가 다시 바뀌고 교통 신호음은 그대로 뚝 끊겨버렸다.

         

       료스케는 텅 빈 도로에서 작게 한숨을 쉬고는 페달을 밟았다.

         

       돌아가기 위해서.

       신사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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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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