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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황궁에서 회담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침실에서 헬레나와 사용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껏 치장하는 프란체.

         

       “오늘 드레스의 색은 깊고 진한 푸른색이네요? 공작님의 따뜻한 붉은색 머릿결과 잘 어울려요.”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며 드레스 입는 걸 도와주는 헬레나.

         

       “오늘 입을 드레스는 유독 불편해보이는구나…….”

       “죄송해요, 황궁에서 열리는 회담에 참여하셔서 어쩔 수 없어요.”

         

       치맛자락에 걸리지 않도록 완벽한 걸음걸이를 유지해야 하는 길고 펑퍼짐한 드레스. 안드레아가 만든 드레스다.

         

       “이제 머릿결을 정리할게요.”

         

       한 사용인은 빗으로 프란체의 머리를 정리. 다른 사용인은 화장을 맡고, 보석 및 장신구 선택까지.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서야 회담으로 갈 준비가 끝났다.

         

       “헬레나? 이제 케일과 카자르를 불러주렴.”

       “네.”

         

       헬레나가 잠시 두 명을 부르러 간 사이, 프란체는 소파에 늘어져 잠시간의 휴식을 취했다.

         

       “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곁에 있던 라데아가 프란체의 드레스와 장신구를 빤히 쳐다봤다.

         

       “…….”

         

       라데아의 시선을 느낀 프란체가 물었다.

         

       “드레스를 입고 싶니?”

         

       라데아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부정했다.

         

       “아니요! 그냥 드레스가 너무 불편해 보여서요. 움직이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 거 같네요…….”

         

       연신 고개를 휘젓는 라데아를 보곤 프란체는 픽 웃음이 나왔다.

         

       “정확해. 특히 황궁에 갈 때 입는 드레스는 더 하지.”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지 않지만, 명망 높은 데카르트 공작의 품위를 유지해야 했다.

         

       “회담 같은 걸 괜히 한다고 했나.”

         

       프란체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 늘 진과 같이 보던 풍경이라 눈을 뗀지 조금 됐는데. 괜히 입맛이 씁쓸해졌다.

         

       그러던 그때.

         

       ─공작님, 플뤼겔입니다.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전서?”

         

       최근에 전서가 많이 와서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황실은 아닐 거 같은데.

         

       “가져오렴.”

         

       덜컥. 플뤼겔은 정중히 인사한 뒤 입구에서 사용인에게 전서만 건네고 돌아갔다.

         

       “여기요, 공작님.”

         

       사용인이 전서를 건넸다. 보기 드문 검은색의 편지. 엑시드에서 온 거다. 프란체는 서둘러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눈이 번뜩 뜨였다.

         

       “어…….”

         

       ───────────────

       엑시드에서 진 바렌베르크와 접촉했다.

         

       이곳에서 그를 찾은 지 꽤 지났다만, 데려갈 방법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데카르트 상황을 보여주니 자신이 직접 돌아가겠다고 하더군.

         

       3주 안에 진 바렌베르크와 복귀할 예정.

       엑시드의 임무는 끝났다.

       전원 페델리안으로 복귀하도록 하지.

       ───────────────

         

       “…진짜야?”

         

       휘둥그레진 프란체의 눈에서 떨리는 눈동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계속해서 달싹이는 입술. 거칠어진 숨결.

         

       “정말로…?”

         

       덜덜 떨리는 손. 두근거리다 못해 시려오기까지 하는 심장. 전신의 피가 세차게 돌아 과도한 흥분상태를 이끌어낸다.

         

       ‘드디어, 드디어 진을 만날 수 있어.’

         

       준비는 완벽하다. 영혼 결속, 간절한 영원의 노래도 완성했고 그를 가둬놓을 지하 감옥도 만들어뒀으니 말이다.

         

       남은 건 진의 병.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 폰 그라시아는 그가 죽어가는 게 아닌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카자르에게 맡기면 돼.’

         

       지금의 카자르는 역사상 두 번째로 초월 마법사 경지에 도달한 천재. 분명 진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 줄 거다.

         

       ‘얼마 남지 않았어.’

         

       고지가 코앞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프란체는 씩씩한 숨을 내뱉으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헬레나가 들어와 말했다.

         

       “공작님? 카자르 님과 케일 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꾸나.”

         

       고개를 끄덕이곤 프란체를 따라나서는 라데아. 그렇게 저택의 로비로 나오고.

         

       “먼저 출발하기 전에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단다.”

         

       프란체가 모두를 모아두고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무슨 소식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자르와 케일. 이미 알고 있는 라데아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엑시드에서 진을 데려오고 있다더구나.”

         

       그 말에 단번에 눈이 휘둥그레진 카자르와 케일.

         

       “…드디어 찾았나보군.”

       “그 사람 오기만 해봐…!”

         

       케일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고 카자르는 정강이를 차줄 생각에 투지를 불태웠다.

         

       “아무튼, 이번 회담만 끝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란다. 지금까지 힘써줘서 고마워.”

         

       생글생글 웃으며 따뜻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프란체. 카자르는 싱긋 웃었고 케일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가자. 마지막 일을 끝내러.”

         

         

       * * *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황궁의 중앙 회의실.

         

       제국의 주요 핵심 관료들과 황제, 황후. 그리고 데카르트 공작, 프란체와 그녀의 호위들이 모여있다.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재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페델리안 황실과 데카르트 공작가의 화합을 위한 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황제 폐하, 황후 폐하, 공작님, 관료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재상이 정석적으로 시작을 이끌었다. 그렇게 시작된 화합의 회담. 상석에 앉은 레제프 페델리안이 말했다.

         

       “우선 황실에서 강해진 데카르트의 힘을 염려해 견제하고 음해한 것에 관하여 사과하고 싶소. 제국에 흐르는 데카르트의 안 좋은 소문은 전부 황실에서 무마시킬 것이며, 그간의 일을 보상할 것이라 약속하오.”

         

       처음은 황실의 사과였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만, 데카르트는 이번 일로 굉장한 타격을 입었고, 막대한 손해를 감당했기에 이에 대한 배상은 철저히 받겠습니다.”

         

       어찌 보면 건방진 말이지만, 프란체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애초에 이 싸움의 시작은 황실이 시작하지 않았는가? 과실은 완전히 황실 쪽에 있다.

         

       “또한, 이번 일로 데카르트를 배신한 귀족 세력에게 정당한 응징을 내릴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에서 직접 처리할 것이오니 황실의 관여는 원하지 않는 바입니다.”

         

       이어진 프란체의 요구.

         

       “…알겠소. 황실은 정당하다고 판단되면 데카르트의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오.”

         

       레제프는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이빨 빠진 사자와 같은 모습. 프란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미뤄진 마도 혁명과 제국의 경제 혼란에 관해서는 따로 재무장관과 이야기해서 황실에 제출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이것으로 데카르트의 요구는 끝. 남은 건 황실 쪽의 입장 발표인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번 일에 관하여 사과의 말을 전하오, 데카르트 공작. 그러나 다른 일은 별개인 법. 그대가 왕국의 재앙, 진 바렌베르크를 놓쳤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겠소.”

         

       프란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로 어느 정도 황실의 과실을 무마할 생각인가. 어림도 없지.

         

       “진 바렌베르크는 현재 제 명령을 받아 해외로 나간 상태입니다. 그는 모든 일을 끝마치고 자유의 도시 판테온에서 복귀 중입니다.”

         

       황제 레제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작년 수확제부터 지금까지. 대체 무슨 명을 받았기에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단 말이오? 그저 시간을 끌기 위해 하는 변명이 아니오?”

         

       날카로운 지적. 다만 변명 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넓힐 생각입니다. 그에 맞춰서 해외 경험이 많은 진 바렌베르크를 보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느 정도 사실도 포함되어 있고, 머지않아 진은 엑시드와 같이 복귀하지 않는가? 전혀 문제없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오! 그대가 이미 진 바렌베르크의 제어권을 잃은 건 다 알고 있소. 황실을 너무 물로 보는 것이 아니오?”

         

       다소 거칠어진 회담의 분위기. 더는 화합이 아니게 되었다. 청문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확실한 답은 곧 나오겠지요. 진 바렌베르크는 늦어도 3주 안에 제국으로 복귀할 예정이니까요.”

         

       이를 빠득 물며 자신의 분함을 숨기지 못하는 레제프. 프란체는 그를 보며 속으로 픽 웃었다.

         

       ‘진짜 읽어내기 쉽다니까.’

         

       애초에 금이야, 옥이야 자란 레제프가 프란체의 상대가 될 일이 없었다. 그는 경험도 모자랄뿐더러 전대 황제처럼 지혜롭지도 못하니 말이다.

         

       “폐하, 우선은 진정하시고 데카르트 공작의 말을 들어보시지요. 3주 안에 복귀한다고 하였으니 책임은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지 않습니까.”

         

       소미레가 말했다.

         

       “…알겠소. 만일 3주 안에 진 바렌베르크의 복귀가 확인되지 않으면 이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물을 것이오.”

         

       여전히 분함이 가시지 않은 것 같지만, 소미레의 만류로 인해 한 걸음 물러난 레제프.

         

       “그때가 되면 마음대로 하시길.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은근슬쩍 비웃는 프란체의 말에 레제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기가 화합의 자리란 걸 알고 있소?”

       “폐하께서야 말로 알고 계신가요?”

       “…….”

       

       프란체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레제프를 굽어봤다. 비굴하게 꼬리도 내린 주제에 어딜 기어올라?

       

       “폐하의 행동거지로 제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화합을 위한 회담이잖아요?”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프란체. 레제프는 애써 분노를 참느라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일그러졌다.

         

       “그런데 황후 폐하께서는 참 피곤하게도 사시는군요. 왜 저를 시기하시는지 모르겠지만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가에 호선을 그리는 프란체. 소미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발뺌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프란체는 고개를 까딱이며 소미레를 노려봤다.

         

       “황후 폐하께서 부탁드린 거잖아요?”

       “…….”

       “뭘 노리시는지 모르겠지만, 제 인내심은 깊지 않으니 조심하시길.”

         

       눈썹이 꿈틀거린 소미레였지만, 애써 미소지어 넘겼다.

         

       “…그럼 이제부터 결과 도출 및 협정 작성과 서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재상이 빠르게 정리했다.

         

       지금까지의 회담 내용을 정리해 양측에 서류를 건네는 재상. 레제프와 프란체는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뒤 서명까지 마쳤다.

         

       “이것으로 회담을 끝마치겠습니다. 앞으로의 화합을 위하여 오늘 저녁부터 황실에 파티가 열릴 예정입니다. 부디 공작님께서도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정대로 화합의 파티. 절대로 참여하고 싶진 않지만…….

         

       “당연히 참석해야겠지요.”

         

       정치적인 일이기에 선택권은 없었다.

         

       “다행입니다. 공작님께서 황실에서 개최한 화합의 파티를 편히 즐기시면 좋겠군요.”

         

       아까의 일그러짐은 온데간데없이, 소미레가 환하게 웃었다.

         

         

       * * *

         

         

       짧은 화합의 파티가 끝나고 늦은 밤. 프란체는 황궁의 손님방에 머물게 되었다.

         

       “공작님, 탐색과 색적의 마법을 펼칠 거예요. 먼지 한 톨까지 포함한 움직임이 제게 전송되니 안심하셔도 돼요.”

         

       그리 말하고 손님방의 중앙에서 마력을 운용하는 카자르. 그녀의 손끝에서 퍼지는 파장이 보이지 않는 역장을 펼쳐냈다.

         

       “나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다.”

       “그럼 저는 공작님의 곁에 있을게요.”

         

       케일과 라데아의 위치까지 정해지고.

         

       “다들 고맙단다. 오늘 하루만 고생해주렴.”

         

       다들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카자르는 효율적인 탐색을 위해 적절한 자리로, 라데아는 프란체가 머무는 방의 테라스, 케일은 그 방의 문 앞.

         

       소드 마스터 둘과 초월 마법사의 호위로 철통 보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어쌔신이 온다고 해도 여기를 뚫을 순 없을 거다.

         

       “라데아? 미안하구나, 혼자 자서.”

       “사과하실 필요 없죠, 이게 제 일인걸요.”

         

       싱긋 입꼬리를 올리는 라데아. 오러를 활용하는 소드 마스터는 하루 정도 자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 그럼 나는 눈 좀 붙일게. 오늘은 피곤하구나.”

         

       안도감으로 가득해진 프란체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싫은 인간을 만난 것도 모자라 그간의 피곤함이 단번에 몰려와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푸우…….”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하늘이 새까매질 정도로 늦은 밤.

       

       별안간 프란체가 머무는 손님방의 침실에 알 수 없는 청록색의 역장이 펼쳐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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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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