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46

       아무리 그래도 소희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소희의 집에 왔는데.

        

       나의 예상이 틀렸다고 해야 할까, 맞았다고 해야 할까.

        

       일단 소희의 말대로, ‘집에 빈방이 하나 있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소희의 집에는 빈방이 하나 있긴 했다.

        

       문제는 그 하나의 빈방이, ‘원래 소희가 지내던 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희가 내가 사는 저택에서 지내기 전에 지내던 방이라는 뜻이다.

        

       소희의 가족들이 방 정리를 깨끗이 해줘서 그런지, 방 안에는 소희가 원래 쓰던 물건들이 먼지도 쌓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심지어 책장에도 책이 그대로 꽂혀있었다. 교과서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옷은 우리 저택에 이미 있으니 속옷과 일상복만 가지고 오면 그만이었고, 학교가 달라 사용하는 교재도 달랐으니까.

        

       “언니!”

        

       소희의 동생…… 소리라고 했던가?

        

       아무튼 소희를 그대로 크기만 줄여놓은 것처럼 생긴 동생은, 소희의 품에 안겼다.

        

       소희가 메이드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 대신 나의 몸을 움직이고 있던 그 사람은 계약서를 작성하며 근로기준법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소희에게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급휴가가 있었으나, 나는 지금까지 소희가 휴가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소리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할 일이 있다면 저택에 맡겨도 된다는 말도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우리가 소리를 맡아서 돌봐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도 일을 줄이고 자택 근무로 전환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소희의 아버지는 아주 시원하게 그렇게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아, 물론이지. 솔직히 소희가 벌어오는 돈만 해도 앞으로 십 년은 거뜬할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소희의 아버지는 번역 일한다고 하셨다. 주로 영화 자막 번역을 하지만, 만화나 소설의 번역도 자주 했었는데 그 수를 줄이셨다는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돌려 소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내 옆에 앉아서 소리와 놀아주고 있던 소희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연봉 중 대부분을 가불받아 양혜인이 모은 돈과 합쳐 학교에 뇌물로 바쳤던 게 바로 소희였으니까.

        

       만약 내가 그 돈을 정말로 ‘가불’로 쳤다면, 소희는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은 무보수로 일해야 했다. 물론 그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그럴 생각이 없기는 했지만.

        

       “……그런가요?”

        

       그래서, 나는 소희 아버지의 그 시원한 발언에 그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단다.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맙다.”

        

       “……아뇨,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소희 아버지의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소희의 집은 내 예상대로 저택만큼 넓지 못했다.

        

       ……아니, 예상대로라기보다는 당연하다고 표현하는 쪽이 맞는 말이다.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런 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서울은 정말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면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이 되었을 테니까.

        

       이 집이 넓은지 좁은지 판단할만한 객관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오기 전에 이미 양혜인과 수아와는 떨어졌다. 다행히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온다고 해도 지나치게 북적거릴 크기의 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함께 지낼 정도의 크기도 아니었다.

        

       거실은 하나, 꽤 넓은 주방이 하나, 방은 세 개에 화장실은 두 개인 곳.

        

       그중 하나는 소희 아버지가 서재 겸 방으로 쓰는 곳이었고, 한 곳은 소리 방, 한 곳은 소희의 방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혼자 자지는 않아.”

        

       방이 따로 있어서 공부하거나 놀 때는 방에 있을 때가 있긴 했지만, 보통은 소희나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모양이다. 밤에 잘 때도 혼자 자는 것 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자는 것을 더 좋아하고.

        

       ……몇 년 동안 혼자 지냈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

        

       “언니가 좋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소희의 품으로 안겨드는 소리는, 보는 사람의 기분이 좋을 정도로 활발해 보였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집에서 지내고 싶다고?”

        

       “……예, 허락해주신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어휴, 아냐, 아냐.”

        

       나의 말에, 소희 아버지는 너스레를 떨듯 조금 과장되게 손을 휘휘 저었다.

        

       “오히려 이런 아저씨랑 있으면 그…… 사라, 양? 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그냥 사라라고 부르셔도 돼요. 저는 소희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어색하게 내 이름 뒤에 호칭을 붙이는 사라 아버지에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그러냐? 그럼 앞으로는 사라라고 부르마.”

        

       소희 아버지는 그래도 조금 어색한 표정과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너무 쉽게 허락해주셔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만약 안 된다면 그냥 바로 호텔 쪽으로 찾아보려고 했는데. 소희가 정 아쉬워하면 숙박비라도 내어드리거나……

        

       음, 오히려 그런 말을 하면 더 불편해질 것 같긴 했다.

        

       “와! 언니도 여기서 지내는 거야?”

        

       소리는 환호성을 지르더니, 소희 품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달려와 품에 안겼다.

        

       소희에게 안겼을 때와는 또 다른 따뜻함이었다.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체온이 더 높은 모양이었다. 사실 어린아이와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어린아이가 안겼을 때의 감각을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주변에는 나보다 작은 사람이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 신장이 가장 작은 수아조차 나와 키가 같은 수준이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안아준다면 대등한 위치에 서거나, 아니면 나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나를 끌어안아 주는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안겨 오는 소리는 나보다도 훨씬 작았다. 잘해야 정수리가 내 어깨에 닿을 수 있을까?

        

       물론 소희의 동생인 만큼 몇 년 내에 훌쩍 커서 나보다 커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몸이 너무 작고 여려서, 왠지 함부로 끌어안는 것도 걱정되었다. 혹시 내가 꽉 끌어안았다가 다치지 않을까?

        

       “소리야!”

        

       내가 마주 안아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소희가 기겁하며 소리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얼른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며 말했다.

        

       “그렇게 막 달라붙으면 상대가 싫어할 수도 있어!”

        

       아니, 별로 싫지는 않았는데.

        

       조금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는 가족을 갈망했다. 당연히 가장 갈망했던 존재는 어머님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친어머니는 그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았으니까. 나에게 남아있는 존재는 어머님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형제나 자매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님은 나의 형제자매조차 나처럼 가두어두었을까? 아니면, 나 하나만 콕 찍어서 저택에 가두어두었을까? 뭐, 나에게 형제도 자매도 없는 시점에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그런 나에게, 수아는 마치 나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같은 저택에서 지낼 때면 꼭 나에게 자매가 있다는 착각이 들게 했으니까.

        

       특히, 같은 침대에 둘이 누워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런 자매가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소리는……

        

       소리는, 문자 그대로 ‘동생’이라는 이미지였다.

        

       수아가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언니도 될 수 있고 동생도 될 수 있는 자매였다면, 소리는 천진난만한 동생.

        

       ……물론, 내가 살던 그 집안에서 살았다면 이런 밝은 성격은 가질 수 없었겠지.

        

       오히려, 이 집에서, 같은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알 수 있는 성격이었다.

        

       “언니, 싫어?”

        

       소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소리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을 하면서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띄우지 않았다. 아주 당당하게, ‘싫으면 안 할게’하는 분위기의 질문.

        

       “……아니, 괜찮아.”

        

       “봐봐!”

        

       나의 대답에, 소리는 바로 벌떡 일어나 자기 친언니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 달려드는 소리를 보고, 나는 슬쩍 양팔을 벌렸지만—

        

       “으에……?”

        

       소리는, 그대로 찹, 하는 소리를 내며 내 양 볼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내 양 볼을 만지작거렸다.

        

       “으, 으엫……?”

        

       아, 그랬지, 참.

        

       내 몸을 그 사람이 쓰고 있을 때도, 소리에게 휘말려서 볼을 잡혔다.

        

       감각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좋다고도 할 수 없고…… 뭐라고 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

        

       “언니, 이것 봐, 진짜 말랑말랑해!”

        

       “소리야!”

        

       소리의 돌발행동에, 잠깐 굳어있던 소희가 기겁하면서 다시 소리를 낚아채 갔다.

        

       “응? 언니도 만지고 싶어?”

        

       “그야 당연히— 아니, 그게 아니고! 사람 얼굴은 함부로 막 만져도 되는 게 아니야! 예의가 아니니까!”

        

       사람을 마음대로 막 끌어안고, 평소에 자랑하듯이 셔츠 단추를 몇 개나 풀고 다니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그런 질문은, 소희가 언니로서 가진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이지, 시끌시끌한 가족이었다.

        

       부러울 정도로.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