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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 …오류 로그 재검토. ]

         [ 접속 경로에 고의적 지연율을 유발하는 비인가 스파이크 관측, 차선 순위로 배정된 회선을 통해 연결 시도 중…. ]

         

         “이게…!! 무슨 이런 얼토당토않은 방식으로…!”

         – ……. –

         

         팡! 하고.

         뒷목 근처로 올라가던 손이 차마 바쁜 와중에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었는지, 이마를 한 번 거세게 치고는 다시 키보드 위로 되돌아갔다.

         

         한 쪽은 찌르고 다른 쪽은 막는다. 창과 방패의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맞대결과는 달리 보안 문제에 있어서는 공격자 측이 압도적 고지를 점하고 들어간다.

         특히나 지금처럼 침입한 기록이 남는 걸 걱정하거나, 정체를 숨겨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으, 아! 아니…! 아, 좀…!! 아이씨….”

         “흐응…?”

         

         당혹, 열중, 감탄, 낙담, 환호, 비관.

         분을 초 단위로, 초를 밀리초로 쪼개서 일어나는 치열한 전자 세계의 접전에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드문드문 수면 너머로 표출된다.

         

         처음에야 저 까칠한 인격 모델을 탑재한 깡통 로봇이 켄을 억제하는 동안, 안전하게 주변 동향-…주로 제일 걱정되는 에나마 추적자-부터 파악해 놓고자 자리를 떠나려던 마리나의 걸음이 느려졌다.

         

         재차 눈을 날카롭게 뜨고 기억의 서고를 잔류하는 컴포넌트 카탈로그와 제로의 외형을 비교한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다소 부담되는 고가 부품들이 얼핏 보였으나.

         그렇다고 또 다른 물주가 있다고 의심하자니… 중간중간에 적당히 지갑과 타협한 애환의 흔적들도 관찰된다.

         

         ‘따로 자금을 대주는 배후가 있다고 보기는 애매한데….’

         

         보여주기 식으로 판단할 재료를 던져주어서 혼란을 유도하는 것일 가능성도, 한 때 자신만의 전용 드로이드를 커스텀 해서 데리고 다니는 유행이 있었던 만큼 그 시절의 잔재일 가능성도 적어서 여태까지는 보면서도 그러려니~ 했지만.

         

         독특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호위 드로이드에 불과한 줄 알았던 녀석이, 프로 해커와 기계라는 절대적인 상성의 차이조차 무시한 채 정보전을 이어 나가는 형세를 지켜보고 있다 보니까 생각이 깊어졌다.

         

         우발적인 사고를 대비한 안전 장치? 그런 것치고는 여러모로 공이 많이 들은 것 같은데….

         

         무엇을 경계하고, 어떤 결과를 노리고 이런 대치 상황을 유도하면서까지 앞을 가로막은 건지.

         혹 자신이나 켄이 뭔가 딴 생각이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아채고…?

         

         “이익…!!”

         

         그렇게 한 구석에서 마리나의 고민이 깊어지거나 말거나.

         켄은 제로와의, 정확히는 그를 대리로 내세운 아나스타샤와의 대결에 점점 열중하고 있었으니.

         

         타닥… 탁! 드드득!

         

         이런 감각은 꽤 오랜만이라고 그는 내심 생각했다.

         

         모의전이나 스파링, 그리고 훈련에서는 접수하고 리드하는 사람. 즉, 받아내는 측의 실력과 대응이 뛰어나야 원활한 연습 겸 테스트가 이루어질 수 있다.

         

         약간의 당근과 무수한 채찍질.

         상대방의 한계를 시험하고, 오기를 자극해서 품은 저력을 끌어내는 과정은 뇌에 때려 박은 기술을 몸에도 학습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딱 맞는 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네트워크 엔지니어링과 사이버 아키텍쳐링에 두각을 일찍 드러낸 켄이 더는 배울 게 없어진 연습 게임을 벗어나 삐끗하면 난장판이 벌어지는 실전에 금방 발을 들이민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경험도 꽤 알뜰하게 쌓은 데다가 슬슬 이름 좀 날리기 시작했다고 내심 자만한 건 너무 일렀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 베일링(Veiling; 위장) 프로세스 실행. 암호화를 통해 무기명 데이터를 전달합니다. ]

         

         …실패. 고급 테크닉일 텐데도 기만 전술쯤은 익숙한 지 보안망을 돌파한 신호를 금세 쳐냈고.

         

         [ 대규모 보안 무효화 전파 송신 준비, 발사 카운트다운 5… 4… 3…… 4… 5… 5… 메인 시스템 자가진단을 예약합니다. ]

         

         아예 인접한 기기의 모든 인증 절차를 망가트리는 특제 바이러스탄을 기껏 장전했더니, 무슨 해괴한 수를 썼는지 역으로 자신의 컴퓨터가 멋대로 재부팅을 하려 들어서 황급히 취소했다.

         

         “이건 좀 너무 하잖아요…!”

         

         혹시 일시적으로 모든 외부 신호를 구분없이 차단하는 폐쇄 로직을 적용해서 이렇게 접근이 어렵나 싶었지만, 그런 단순한 물건이라고는 믿기 힘든 현상들이 줄줄이 발생했다.

         

         이 드로이드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코드를 역산하고 그에 맞는 안티테제(Antithese; 반정립 코드)를 찍어내고 있을 리는 없으니 전부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뽑아내는 결과값이라는 건데….

         

         대체 무슨 개발 툴을 이용해, 얼마나 걸려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기에 일개 로봇이 쓰는 데도 이런 범용성과 성능을 보인다는 말인가?

         

         차라리 그녀 본인은 방에서 편~히 자고 있다는 쓸데없는 부연설명이 새빨간 거짓이었으면 좋겠다.

         이게 이 살벌한 드로이드를 중계기로 두고 서로 간의 실력을 겨루는 멋진 장면이었다면 마음이라도 조금 편했을 것이다.

         

         신기에 가까운 다중 정보 처리(Multi-Tasking) 능력으로 바이러스나 악성 코드 무더기를 일순간에 소멸시키는 솜씨를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실력자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뭔가 편법이 있으리라 여겼지 정말 그만큼의 격차가 존재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게다가, 세상이 자기 실력을 알아준 것 같아서 기쁘다~고 자랑한 지 뭐 얼마나 지났다고.

         찍어 누르기는커녕 드로이드의 말마따나 이쪽의 해킹 시도에 맞춰서 시간을 끌기만 하는데도 이렇게까지 밀리는 건… 너무 모양새가 빠지지 않나? ……슬프게도.

         

         – 아나스타샤님의 작품을 상대로 굉장히 선전하시는군요. 원래는 파일 리스트를 열람하는 것도 못하게 막으려고 했는데, 대범하게도 그분의 ID를 도용해서 접속하려 하다니… 하마터면 기침하신 줄 알고 제가 직접 수면을 방해할 뻔했습니다. –

         

         “……하핫.”

         

         한 방 먹었다며, 연신 진동판을 울리는 로봇을 보고 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이런 트래시 토킹까지 설정해 놨다고…? 진짜?

         이쯤 되니 반대로 여기까지 공을 들인 이유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과시하는 건가? 아니면 못난 자신을 비웃는 건가?

         

         “이야… 역시 진짜배기 전문가들은 쓰는 코드부터가 달라? 나처럼 사전만 외우는 반푼이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

         

         제로의 등판 쪽을 기웃거리다가~ 다시 와서 이쪽 화면을 훔쳐보다가.

         노골적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생생한 흥미와 학습 의지를 표출하는 마리나마저 이젠 한패거리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그런 수고를 들일만한 거물이 아니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지막 발악으로, 저번에 꽁꽁 싸매서 격리해 놨던 변종 바이러스라도 풀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빈틈을 노려볼까… 하는 고민이 깊어 가던 찰나.

         그 위기를 해결해준 은인이 아나스타샤인데, 그걸로 잘도 변수를 창출하겠다는 자조가 들어서 그만두었다.

         

         다같이 죽자고 작정하고 덤벼드는 게 아닌 이상, 데이터를 탈취하려는 섬세한 손찌검 수준으로는 절대 제어권 싸움에서 못 이기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푸흡.”

         

         솔직히 완패다. 완벽하게 졌다. 핑계조차 댈 수 없으리만치 철저하게.

         시답잖은 장비의 질이나 컨디션 난조로 인한 차이 따위가 아니다.

         

         자신처럼 우연히 살아남은 실험실 쥐새끼가 아니라 불합리할 정도의 천재. 아마 이게 진짜 축복받은 재능이라는 것 아닐까.

         

         “크흡, 푸흐흣…!”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복합한 자조가 새어 나온다.

         우물 안 개구리는 적어도 그 안에서 몸을 누일 곳을 정할 권리라도 있지, 비루한 자신은 이 무서운 누나들의 허락 없이는 불장난조차 완수하지 못하는 신세였다.

         

         심지어 가진 것조차 대부분 가짜다.

         

         애지중지하는 컴퓨터도 거두어 준 후원자의 돈으로 맞춘 차용물, 해킹 능력도 우연히 적합도가 높은 뇌를 지닌 덕분에 수술을 통해 주입된 지식.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심 쓰듯이 던져진 이름만은 진짜.

         

         거기까지. 피식거리면서도 자기 부정의 늪에 가라앉아가던 켄이 중요한 걸 깨달았다.

         …아, 이 정도로 자신을 손패를 완전히 읽고 맞춤형 억지책을 준비한 아나스타샤가 정말 어설픈 스파이의 의도를 전혀 몰랐을까?

         

         사실 그녀는 이미 처음부터 모든 내막을 알았기에 그리도 열심히 앞장서서 의뢰를 수행해주다가, 기어이 선을 넘으려는 바보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아준 건 아닐까?

         

         ‘왜’ 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답을 구해보자.

         결국 실력도, 기량도, ……그리고 외모도 나무랄 데 없는. 그런 빛나는 상대방이 이런 이벤트를 구태여 준비한 것 자체가 그를 위한 배려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모든 정황 증거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논리가 완성.

         그렇게 혼자서 납득하고, 혼자서 감명받은 미숙한 소년의 작태를 야릇한 시선으로 구경하던 마리나도 재밌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나름대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근슬쩍. 격렬한 전자전에 쓰였던 코드들을 보이는 족족 자기 단말기에 옮겨 적는 약삭빠른 행위를 끝마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울보 소심쟁이. 이제 좀 진정됐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신세한탄 끝났으면, 어디 이 누나한테 첩보 활동 좀 배워 볼래?”

         

         “……네?”

         

         엉뚱한 제안에 힘 빠진 대답이 돌려졌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스러지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갑자기 뭘 가르쳐 주겠다니.

         

         망가진 얼굴을 쓱쓱 비벼서 닦은 뒤 속셈이 뭔지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삐딱한 태도로 나온 켄을 마리나가 열렬히 설득했다.

         

         “얌마. 누가 기업 상대로 정면에서 그런 식으로 들이박아? 모가지 내놓은 것도 아니고! 잔인한 윗대가리들이 우리보고 가서 장렬하게 옥쇄하라고 명령해도, 알아서 적당히 힘 빼고 일해야 하는 법이야.”

         

         “……마리나 누나는 멋대로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손톱 한 조각까지 채무로 묶인 몸이라…!”

         

         본론도 아직이거늘, 벌써부터 안 된다 어렵다 항변하려는 입을 착! 하고 곧게 세워진 집게손가락이 틀어막았다.

         

         “엄중히 보관된 연구 자료니, 특급 기밀 문서니. 꼭 그런 것들만 돈이 되는 정보가 아니란다? 이런 격리 구역의 상세한 위치, 언뜻 구경한 추적자 형씨의 무력, 우리가 매일 지키는 업무보고 구조 같은 사소한 편린 하나하나가 다 산업 스파이가 긁어모아야 할 금싸라기지!”

         

         “하지만…! 그건 목표로 삼으라 명령받은 물건보다 한참 가치가 떨어지는 좀스러운 결과물이잖아요.”

         

         씨익.

         

         거기서 마리나는 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건 네 쪽이라는 듯이.

         

         “그럼! 지들이 뭘 어쩔꺼야? 애써 살아 돌아온 기술자를 손수 죽이기라도 할 거야? 그게 더 손해가 막심할 텐데?”

         

         “…아?”

         

         저당 잡힌 목숨을, 스스로 담보로 다시 내놓으라는 기막힌 충고에 켄의 입이 딱 벌려졌다.

         

         말이 안 될 건 또 없었다. 빈틈없는 채무 논리에 따라 돌아가는 관계라면 오히려 저런 방식으로 하극상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꾸준한 가치를 증명하는 게 더 스스로를 보호하기 용이하리라.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자꾸 빚을 상환하면서 저울의 균형을 일그러뜨리는 걸로,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었고.

         

         자포자기한 순간에 명줄을 붙잡힌 걸로도 모자라 살아날 길까지 주어졌다.

         여기서 계속 칭얼댈 만큼 그는 양심 없지 않았다.

         

         “진짜… 진짜 고마워요. 누나들.”

         

         “으휴, 이제 알아들었으면 지금부터라도 죽어라 머리속에 꾸겨 담아. 전자기기는 보나마나 계약 마무리될 때 싸그리 정리당할 테니까. …정 고마우면 나나 귀염둥이한테 분배금이나 더 챙겨주던가 말던가.”

         

         아무튼, 의도가 어쨌건.

         울먹이는 애한테 진심 가득한 인사를 받는 게 영 불편한지 먼저 마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휘적이면서 방으로 돌아갔고. 겨우 표하고 싶은 감사와 하고픈 말이 남은 켄도 그 뒤를 졸졸졸 따라갔으니.

         

         에나마의 비공식 의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적어도 두 사람의 걱정거리는 그럭저럭 괜찮게 해결되었다고, 훈훈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겠다.

         

         

         

         

         – ……뭐, 과정은 둘째치고. 결과적으로 아직 말소 작업이 덜 된 저장 장치에 관심을 꺼 주셨다면 저로서는 큰 불만은 없습니다만.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우수한 아이.

    햐얌 님의 50코인 후원과 충고!
    볼드모트 님의 1코인 후원!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제가 휴재는 박을지언정 적어도 미리 공지를 하던가, 지각해서 늦게라도 올리던가 하는 원칙은 꼭 지키려고 했는데.
    최근 연재분이 밀린 걸 좀 소화하지 못하고 불규칙적으로 업로드하는 감이 강해져서… 정말 면목 없습니다.

    적어도 재미는 책임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눌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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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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