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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6

     제국의 첩보망은 왕국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그림자의 감시는 왕국 어디를 가더라도 존재한다.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지.’

     세이레네 항구가 열린 이후, 더 많은 그림자가 왕국에 침투했다.

     ‘아예 안 들어오게 막았다면 몰랐겠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기에는 제국의 마도공학 기계들은 너무 편리하지.’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그림자에게 정보를 어느정도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와중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처럼 움직이는 게 편해. 겉으로는 일탈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지하에서 몰래 칼을 가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스타시아를 생일이라고 이곳 지브롤터 영지까지 데리고 온 일은 그 어떤 방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연막이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제국을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수단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협곡까지 왔습니다.”

     황태자는 지금쯤 내가 아스타시아를 상대로 음험하고 음습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성적이고 문란한 행동은 지브롤터의 서약 때문에 할 수 없지만, 그전까지 아스타시아와 사실상 기정사실을 만드는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그저 건전하기 짝이 없으며, 성적이고 문란한 자연의 친구들은 열심히 각자 곡괭이나 삽 등을 들고 작업에 충실하고 있다.

     “엘프…. 처음봐요.”

     “처음?”

     “네. 엘프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 엘프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스타시아는 속옷만 입은 채 곡괭이를 움켜쥔 엘프들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정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네요. 오히려 인간 중에서도 엄청 미남미녀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과 닮았어요. 아, 반대인가? 그런 사람들을 두고 엘프 같다고 하는 게 맞겠죠?”

     “…….”

     “왜 그러세요?”

     “에르윈 회장이 뭔가 언질을 준 적 없습니까?”

     “……???”

     아무래도 에르윈 회장이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다.

     엘프를 처음 봤다길래 속옷만 입고 지하갱도를 파내고 있는 엘프는 처음 본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제가 알려드리자면, 에르윈 회장의 어머니가 엘프입니다.”

     “…저, 그러면 1/4은 엘프라는 말인가요?”

     “합스베르크 황태자의 피에 엘프의 피가 섞여 있지 않다면 그런 셈이죠.”

     “와, 충격.”

     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다지 충격을 받을 이유 없을 것 같은데.

     “어머니도 막 저렇게 속옷만 입고 괭이질을 하고 그러셨던 건가요?”

     “…그럴 리가.”

     정정.

     충격 받을만한 요소는 충분한 것 같다.

     누구나 자기 부모가 속옷만 입고 땅을 파고 있다고 생각하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

     

     “에르윈 회장은 엘프의 숲 장로, 백금경이라고 하는 엘프의 수장에게 사회에 대한 상식과 지식을 배운 상태로 인간 사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녀 또한 하프엘프기는 하지만 엘프로서의 감성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감성이 더 가까운 사람이잖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에르윈 회장이 저러지는 않습니다. 만일 저런다고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좀 충격일 것 같다.

     “곡괭이질은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곡괭이질은? 그러면 다른 뭔가는 한다는 소리인가요?”

     “예.”

     “어떤…?”

     “글쎄요. 마도 바이크?”

     “앗.”

     바이크를 자주 타고 다닐 때는 거의 속옷에 가깝게 노출하는 경향이 있던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어디 수영장이나 해변가도 아니고 진짜 속옷만 입고 다니는 그런 일은 없다.

     “아스타시아. 당신이 에르윈 회장을 닮아서 다행입니다.”

     “…앗, 생각해 보니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위험한 발언인데.”

     “여기는 어떠한 발언을 해도 괜찮습니다. 이곳이 들켰다는 건 제국과 사실상 전면전을 펼치자는 것과 같으니.”

     나는 엘프들이 수레에 싣고 온 물건을 가리켰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나무판자 아녜요?”

     “예. 장작을 검으로 잘라낸 나무판입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나무와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나무들이죠.”

     중간중간 나이테에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모습이 있는 건 그냥 우연이거나, 혹은 나무 아래에서 굶어 죽은 어느 한 인간의 원혼이 남은 흔적 정도일 뿐이리라.

     “엘프의 숲을 지키는 미로, 그중에서도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괴수 중 하나인 ‘혈수목’을 잘라놓은 겁니다.”

     “엘프는 숲을 수호하는 일족 아니었어요?”

     “그건 편견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집’을 수호하지, 모든 나무를 수호하는 그런 자들은 아니에요.”

     불필요하게 나무를 자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우리와의 동맹을 체결하여 ‘블러디 엘프’ 타도를 위한 대의를 위해서는 기꺼이 나무 괴수를 처리할 수 있는 이들이다.

     “저들의 곡괭이는 평범한 곡괭이가 아닙니다. 혈수목, 엔트 등과 같은 나무형 괴수의 몸통을 장작으로 패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뿌리까지 뽑아내기 위한 사냥도구들이죠.”

     물론, 이곳에 그런 괴수가 있는 건 아니다.

     지금 곡괭이와 삽을 들고 움직이는 건 순전히 지하의 갱도를 넓히기 위한 장기간의 작업용 공구일 뿐이다.

     유사시에는 무기로 쓰이게 되겠지만.

     혹은, 자원을 채굴하기 위한 본래의 목적에 맞게.

     “그런데 왜 곡괭이죠?”

     “예전에는 삽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에 이 지하로 통하는 굴에서 마석 탄광이 발견되는 바람에.”

     지난 2년.

     “노스트럼은 축복받은 땅이었습니다. 지하에 이렇게 많은 보물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몰랐겠죠. 정확히는 광물, 보석입니다만.”

     지브롤터와 엘프의 숲 사이로 직통으로 연결된 지하통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곳에서 보석이 좀 나옵니다. 가공하지 않은 원석인데, 그걸 보육원 아이들이 이런저런 조작을 거쳐 세공하고 있습니다.”

     “보석까지…?”

     “크기도 작고 가벼운 주제에 값은 더럽게 비싼 물건이잖습니까.”

     아이들이 늦은 밤에도 교대로 근무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캐롤라인을 만드는 건 누군가가 강제했기 때문이 아니다.

     캐롤라인과 보석 등 사치품을 팔아 얻는 이득을 통해 많은 보수를 받고자 하는 지극히 금전적인, 제국 자본주의에 의한 열망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자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아해할 텐데요.”

     “그래서 원산지를 갈아치우는 겁니다.”

     “…뭐라고요?”

     “다행히 모르가니아가 가지고 있는 탄광 중에는 철강 말고도 보석광산도 좀 많아서.”

     그리고 여기, 지브롤터가 물리적으로 가지지 못한 개연성과 연막은 모두 모르가니아의 몫.

     “모르가니아의 ‘인증’만 있다면, 출처가 여기 지하 탄광에서 얻은 정체불명의 보석도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하여 곳곳으로 팔려나갈 겁니다.”

     세상 그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최근 1년 사이 모르가니아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붉은 다이아몬드’라거나 ‘라피스 라즐리’같은 보석들이 실은 이곳 지하에서 나온 광물일 줄은.

     모르가니아가 가지고 있는 광맥은 고갈되어 고혈을 쥐어 짜내도 나오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르가니아가 기존 광맥에서 새로운 광맥을 찾아내어 호황을 누리는 걸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고생을 좀 많이 하기는 했다.

     ‘찾느라 거의 땅 전체를 헤집어 놓았지만.’

     지금은 전부 다 메워졌지만, 작업 초기에는 개미굴이 따로 없었다.

     ‘애초에 터널을 파는 목적만으로 구멍을 만들다가 발견한 부수입이었으니.’

     메우는 것도 노동이라 고생을 엄청 많이 하기는 했지만, 땅을 파낸 면적을 생각하면 발견한 매장량은 지극히 적었지만, 그래도 위조로 만들어 내는 큐빅형 보석과 달리 원석은 원석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단순히 사치품으로서도 그렇고, ‘마석’으로서도 그렇고.

     “아스타시아. 이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나는 수레 안에 실려있는 나무판자 하나를 꺼낸 다음, 그 아래에 영롱하게 빛나는 청금석-수레 아래에 갈려있던 마석을 붙였다.

     “제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원리를 이해하면 몇 가지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우물만 파면.”

     부우웅.

     “어?!”

     “마술이랍니다.”

     “마법이잖아요!”

     청금석이 두둥실 허공에 떠오른다.

     당연히 그 위에 균형을 잡고 떨어지지 않는 나무판자 또한 청금석 위에 올라가 있다.

     “보이시나요? 청금석 아래로 마나가 아주 미세하게 방출되는 모습이.”

     평범한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마력 방출.

     하지만 엘프의 눈은 물론이거니와 멘테 경, 그리고 아스타시아에게도 분명 환하게 보인다.

     “이게 풍석이랍니다. 물건을 허공에 띄울 수 있는 발명품.”

     “이건….”

     “예. 지브롤터 협곡 마지막 관문의 승강기에도 그렇고, 기숙사 곳곳에 설치된 승강기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의 물건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본래.

     이 ‘풍석’이라는 개념은 제국에서 발전된 개념이었다.

     실제로 이번 역사에서도 그랬다.

     “황실 말입니다. 마석, 대량으로 모으고 있죠?”

     “…….”

     “그 마석, 전부 이걸로 개량하고 있을 겁니다. 내부에 홈을 파서 마법진을 새겨놓고, 마나만 흘리면 자동으로 바람을 방출하는 마법을 일으키며 물체를 띄우겠죠.”

     제국은 전쟁 전, 노스트럼 왕국의 마석들을 시가 2배는 넘는 돈을 줘서라도 전부 다 사들였다.

     당시 왕국에서는 갑작스러운 마석 인플레에 너도나도 좋다고 다 마석을 제국에 팔아넘겼고, 그 마석들은 전부 훗날 왕국을 침공하는 동력원으로 사용되었다.

     “아스타시아. 이 수레, 뭐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양쪽으로 달린 마석. ‘에어로 블러스트’마법이 깃들어 있는 마석으로.”

     “맞습니다.”

     바퀴.

     선로.

     적당한 무게.

     “황태자가 제게 생일 선물로 준 마도자동선과 같이, 앞으로 굴러가기만 하면 될 정도로 무식하게 마력을 방출하기만 하면 차체는 굴러갑니다.”

     

     그리고 주어진 레일 위를 달리는 단단한 바퀴.

     “앞으로도 가는데.”

     나는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풍석을 움켜쥐었다.

     “위라고 못 갈까봐요.”

     * * *

     그 시각.

     새벽, 4시 33분.

     

     새벽닭이 울기에도 애매한 시각.

     “…용서할 수 없어.”

     나이트가운만 두른 채 테라스에 나온 이사벨라 황태자비는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무조건 성공할 거야. 반드시.”

     성공.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이사벨라 황태자비의 뒤, 방 안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인쇄된 종이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혁명.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반역이라.

     “괜찮아. 가능해. 서부 대공도 돕기로 했고, 무엇보다도 제 3기사단이 돕기로 했으니까.”

     반역에 대한 근거로 충분한가.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이사벨라 본인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

     

     반역을 하지 않는다면 황태자는 이사벨라를 비롯하여 가문이 가진 모든 권한을 빼앗을 것이며, 권한뿐만 아니라 재산까지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감히, 내 자식을 유배를 보내…?”

     누군가에게도 피를 이어받은 자식일 텐데, 그런 자식을 저 멀리 북부의 설원을 공략하라면서 강제로 보내버리고 말았다.

     

     설원에서 얼어 죽은 건 아닐까.

     연락은 나날이 가면 갈수록 뜸해지고, 심지어 마도기구를 통한 연락도 이제는 어려운 상황.

     그저 살아있기만을 바라며-

     “……?”

     검은 하늘.

     어둠만이 가득해야 할 하늘에 무언가 붉은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새?”

     까마귀인가?

     아니면 왕국 방향에서 이 대륙의 끝까지 날아온 와이번이라도 되는 건가.

     “……어?”

     생물이라고 생각한 순간, 어딘가 이질적인 반짝임에 이사벨라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오, 황태자비.”

     “다, 단장. 저거, 내가 지금 보는 게 맞다면…!”

     파ㅡ앗.

     불빛이 반짝이자, 밤하늘의 새벽을 밝히는 수많은 빛이 하늘을 밝히기 시작했다.

     “…해군 제1함대?”

     지금은 죽은 하이레딘 장군이 이끌던 함대의 기함.

     그 기함 표면의 꼭짓점을 빛나는 점으로 연결하면 딱 저런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함대의 모습까지 감안한다면.

     파ㅡㅡ앗.

     “저게, 뭐야?”

     밤하늘.

     “배가, 하늘을 날아…?”

     수백 미터는 되어보이는 고도의 상공에서, 바다를 누벼야 할 배가 구름 위를 파도 타듯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저기, 뭔가가 우리를겨누는 것 같은-”

     “황태자비! 엎드리세-”

     더 강력한 불빛이 반짝임과 함께, 하늘에서 무언가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펄럭.

     사람의 모습을 한 무언가가, 넓은 망토를 펄럭이며.

     * * *

     “노스트럼은 500년 동안 하늘을 지배해왔습니다. 비룡기사단을 통한 제공권 장악. 협곡도 협곡이지만, 하늘을 빼앗긴 제국은 좀처럼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았죠.”

     매직미사일 싸개라고 저평가받는 머스킷도 공군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화살은 자원 소모가 극심하지만, 매직 미사일을 쏘면 개인의 마나와 체력만 소모되니까.

     “전쟁이라는 부분에 있어, 합스베르크 황태자에게는 이 부분이 제일 중요했을 겁니다. 하늘을 난다. 무엇이?”

     “배가.”

     제국은 풍석을 배에 부착하여, 배를 하늘에 띄웠다.

     바야흐로, 비행선의 시대.

     “공중전함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올바르겠지만요.”

     “…하늘에서 포격이 날아오는 건가요?”

     “아뇨.”

     포격보다 더 위험한, 마른하늘에 날벼락.

     “소드 마스터가 떨어집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랍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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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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