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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진장명은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계집이다.

         

       왜냐하면 애교란 타고나기보다는 학습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애교를 떨어 원하는 바를 쟁취한 경험이 쌓여야 커서도 필요한 때에 꺼내 쓸 수 있는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진장명은 어려서부터 절맥을 앓았다.

       본인 때문에 가세가 기우는 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기에 그저 참아 감내할 줄만 알았다.

       아양과 교태까지 부려 억지를 써 본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지만.

         

       “자고 갈 거야.”

         

       “내 누누히 말했지만 국법이 지엄한데.”

         

       “그런 국법 없잖아.”

         

       “내 우주에서는 있거든? 자자. 꼬맹이는 가서 잘 시간이에요. 안 그래도 작은 키가 조금이라도 더 크지.”

         

       “자, 장명이는 자고 갈 꺼에요.”

         

       그에 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 꼬맹이가 감히 성명으로 자칭을?

         

       물론 장명이와 줄곧 농담 따먹기정도는 한다.

       하지만 정말정말 이 지랄 정도야 어차피 그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하는 건조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진장명 본인이 수치심에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상태였다.

         

       청이 그 빨간 얼굴을 바라보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양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나이를 핑계로 유독 장명이에게만 거리를 두니, 애가 얼마나 서운하면 안 떨던 애교까지 떨겠어.

         

       저, 저. 아주 창피해서 죽을라고 하네.

         

       “그래. 하루 정도 같이 잔다고 해서 뭐 천벌이 떨어지겠어, 어쩌겠어. 근데, 추울 텐데?”

         

       진장명이 그에 눈을 동그렇게 떴다.

         

       “어, 통했어?”

         

       “내 이름 쓰는 자칭은 본래 용서하지 않지만, 내 귀여우니까 봐준다.”

         

       진장명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전진이었다.

       가끔은 애교를 부려도 좋겠구나, 하는.

         

       “자, 이리 와.”

         

       “응.”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춥다!

       진장명 역시 겨울의 추위 앞에서 달리 어떤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난아의 목적은 청이라기보단 그 몽실몽실 무게감 있는 부드러움을 다시 느껴보고자 하는 욕망 뿐이었기에 추위 앞에서 금방 포기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진장명은 버텼다.

       옆에서 전해져오는 떨림이 심상치 않았기에, 청이 낄낄 얄미운 웃음을 터뜨렸다.

         

       “추우면 너네 집 가서 자라.”

         

       “아, 안 추어.”

         

       “이빨 딱딱거리는 소리나 멈추고 말해 줄래.”

         

       “은 츱드그.”

         

       그에 진장명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청이 피식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하여간, 똥자루만 한 게 똥고집이야.”

         

       진장명이 무어라 항변하려는 때였다.

       갑자기 저를 와락 안아주는 손길에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나니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았다.

       청이 진장명을 안아 이불 끄트머리까지 굴러 천을 잡아쥔 후에, 다시 반대편으로 데굴데굴 둘둘 말은 것이다.

         

       “어때, 좀 괜찮지? 요즘 맨날 이러고 잔다.”

         

       진장명이 콩닥콩닥 뛰는 가슴에 놀라 얌전히 품 앞에 차렷 자세로 굳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근데 깜깜해서 보이는 것도 없고.

       사방을 조이는 이불도 답답하니 손발을 꿈지럭거리는게 전부요 움직일 수도 없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정수리 위쪽에서 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이러니까 예전 생각 나네. 근데 꼬맹이는 어째 크기가 그대로지.”

         

       “예전? 아.”

         

       진장명이 문득 예전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때 땅굴 속에서.

       생각해보니 그때처럼 깜깜하고 사방이 죄어 움직이기 어려웠더란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도 있었다.

       서로 씻지 못해서 나던 냄새 대신 그저 향긋하니 향조(고대 원시 미용비누)의 은은한 향내가 돌았다.

       신체 한 군데 흙이 들지 않은 곳이 없어 바작바작 몸에 배기던 불편함도 없고, 등짝과 종아리로 호되게 스미던 추위도 없었다.

         

       힘이 들어가 뻣뻣하던 신체가,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청에게 기댔다.

         

       진장명이 기대하던 사제 사매 사숙들간의 그 형용할 수 없이 야릇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편안해서.

       이렇게 편안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아.

         

       부모 앞에서는 미안함 뿐이라 집은 항상 약 냄새 지독한 불편한 장소였고, 신녀문 식구들은 상냥하기는 해도 내 방 없이 단체로 살다 보니 마냥 마음을 놓을 수는 없던 나날이었다.

         

       “야. 꼬맹이. 신녀문 생활은 괜찮아? 누구 막 괴롭히고 다니는 거 아니지?”

         

       “……? 보통 누가 괴롭히지 않느냐고.”

         

       “이대의 막내를 누가 괴롭혀? 사제들은 전부 예뻐라 할 텐데. 배분 뛰었다고 삼대 애들을 괴롭히면 괴롭혔겠지.”

         

       “안 그래.”

         

       “그러냐? 그럼 됐다.”

         

       청이 본 것만으로도 진장명을 품에 안고 정수리에 턱을 탁 올려놓은 제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그냥 해 본 소리였다.

       한민족 아버지들이 모처럼 둘이 있게 될 때에 괜히 어색하게 일은 잘 되냐 하고 무뚜뚝하게 묻는 이치와 같았다.

         

       물론 청이 생각하기에 그랬다.

       아버지가 한 명밖에 없었던 통에 다른 아버지들도 그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리옹이 알면 섭섭할 수도 있다)

         

       “이번에 같이 가고 싶었는데.”

         

       진장명이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일류에 이르면 청과 함께 가까운 강호 구경이나 다녀오게 시켜 준다더니, 이번에는 안 된다고 퇴짜가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중원의 이름난 가문 소속 사내놈들이 죄다 몰려드는 행사다.

         

       명문의 자제들이란 기본적으로 미남이다.

       명문가의 며느리라 하면 선녀공 하나 정도는 익혀 미색이 고운 여인들이고, 그에서 난 자식들이 고운데 그러면 또 고운 딸은 선녀공 익혀 또 고운 어머니가 되고…….

       그러니 그렇게 선녀공을 피의 중첩으로 쌓아 이제는 명문이라 하면 벌써 그 외양에서부터 참으로 헌앙하구나 하고 알아볼 지경이었다.

         

       그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 무방비한 열아홉 살 소녀를 내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다음이라 하셨잖아. 근처에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생각해 두기나 하지.”

         

       “그럼, 북해.”

         

       청도 설가놈 덕분에 북해 먼 줄은 안다.

         

       “이번에 내가 다녀올 때까지 절정 찍으면.”

         

       “칫. 그럼 해남도. 주산도”

         

       “어딘진 몰라도 섬이지? 동서남북 중원 바깥 순례라도 하자고?”

         

       “그럼……”

         

       그렇게 두런두런 영양가 없는 잡담이나 하다 보니 어느새 진장명이 새근새근 얌전한 소리를 냈다.

         

       청이 픽 웃으며 억지로 밀어내고 있던 잠기운을 받아들였다.

         

         

       —-

         

         

       본래 중원에서 열리는 큰 행사란 그 시일을 아주아주 넉넉하게 잡는다.

       왜냐하면 손님들 역시 아주아주 멀리에서부터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무림대회가 열리는 개봉은 하남성 동북쪽에 위치하고, 신녀문은 호북성 제일 서쪽 구석에 처박혀 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중원의 기상으로는 어쨌거나 이웃한 행정 성급끼리라 옆집이라고 허세를 떨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길도 워낙에 잘 닦여 있어야지.

       장강 타고 무한에서 내려 북쪽으로 큰 가도 따라서 신양, 여남, 허창 지나서 정주에 들렀다 꺾어 며칠이면 개봉이다.

       이 도시들은 유비와 조조, 그리고 사마의가 천하를 놓고 다투는 삼국지 속의 고대에서부터 존재했다.

       그 원시적인 시절에도 제대로 도로를 내 여태까지 짓밟아 평탄하고 배수 잘 되며 널찍하니 싸구려 마차로도 탑승감이 나쁘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그러니 청이 괜히 설렜다고 툴툴거리며, 겨울 다 지내고 필사도 아예 넉넉하게 끝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신녀문을 나서게 된 것이다.

         

       ““잘 다녀오세요!””

         

       여느 때처럼 신녀문 제자들의 격렬한 배웅을 뒤로한 채, 청이 벌써 오 년 차의 강호행을 시작했다.

         

       벌써 오 년 차라니.

       시간 참 빠르다.

         

       청이 새삼 그에 묘한 감상에 젖었다.

       그러나 본래 지나간 시간이란 인생에서 가장 지루하고 길었던 때라도 순식간에 넘어가고야 마는 것이기도 하다.

         

       “의원님도 잘 다녀오세요!”

         

       “난 끝나고 집에 가야 하는데……”

         

       어차피 무림대회 같이 가야 한다고 아예 눌러앉았던 당난아는 덤이었다.

       그래도 격렬히 배웅받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아쉬운 미소를 띠면서.

         

       그리고 나선 신녀문 앞의 도시, 자귀에 들러 맡겨놓은 견포희를 찾으러 갔다.

         

       자귀, 설가 상회.

       가끔씩 신녀문의 물자 구매를 위해 나올 때마다 조금씩 그 규모가 커지더니, 이제는 완전히 번듯한 장원이 되고 말았다.

       과연 동네 최고의 지성은 상도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라고.

         

       청은 그리 납득했지만, 실상은 이 역시 천마신교의 중원 사업체나 마찬가지였다.

       자본도 교에서 온 것이요, 취급하는 물품도 교의 교역선과 닿았으니 설가놈이야 거의 이름 빌려준 바지 사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천마신교의 중원을 향한 무시무시한 경제적 침공…… 이 아니라 황금 쌓아다 청에게 맛난 거 사주려는 최리옹이 천마신교 비선을 약탈한 결과물이었다.

       상회의 실질적 주인은 최리옹이었던 것.

         

       이미 얼굴 익힌 상회 직원들-정문 위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청이 성큼성큼 안에 들었다.

         

       그러자 본청 가운데 짐꾼들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던 미모의 설가놈이 청을 보고 눈썹을 까닥거렸다.

         

       견포희의 모자란 어휘로는 언니같이 생겼다고 묘사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럴만도 하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잘 생겼다에 가까운 형태의 이목구비 뚜렷한 미인에다가, 이마 가린다고 영웅건까지 척 둘러놓으니 청의 눈에도 멋있는 남장 미녀였다.

         

       “와, 설가놈. 볼 때마다 예뻐져요.”

         

       “아주 보자마자 악담이로군.”

         

       “그 분은요? 잘 지내요?”

         

       청이 주변을 살폈다.

       분명 저번에 왔을 때는 깨가 쏟아지는 연인을 두었었더란다.

       그러자 설가놈이 담담히 말했다.

         

       “헤어졌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보다 예쁜 남편을 두긴 싫다더군. 평생 남편보다 못생긴 년이라는 소리 듣고 살 수는 없다고.”

         

       “저런. 힘내요.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내가 무에 아쉬운 것이 있어서 힘을 내겠나. 나 좋다는 여인들 많네.”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 좀 재수가 없다.

       그러나 좋다는 여인들로 따지면 청 역시 한둘이 아니라서, 그냥 뭐 그런갑다 하고.

         

       “뭐, 설가놈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개봉에 갈 건데. 의매는 어딨어요?”

         

       “올 거면 미리 온다고 연락을 줘야 그 요녀도 준비를 할 것이 아닌가. 대뜸 찾아와서 내놓으라 하면. 매일 같이 자네만 기다리며 놀고먹고 기다리고 있어야하나? 일하러 나갔네.”

         

       “놀고먹으면 좋지 않을까요? 언제 와요?”

         

       “그건 자네나 그렇겠지. 안 그래도 자네들 도시에 들자마자 어르신께서 사람 보냈으니 금방 돌아올 걸세.”

         

       그에 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누가 미행이라도 했어요? 무슨 도시에 들자마자 알아?”

         

       “그쪽 동행이 워낙에 눈에 띄지 않나.”

         

       청이야 면사 뒤집어써 흔한 추녀인가 싶어도 옆에 붙은 당난아는 사실 놀랍게도 중원오화 중원오대미녀로 꼽히는 미인이었던 것이다.

       비록 지나가는 여인들의 가슴을 아닌 척 계속 흘끗거리는, 한창 피 끓는 때의 소년과 같은 태도를 하고 있더라도.

         

       신녀문에서 매일 보면서도 눈을 마주친 적은 별로 없었더란다.

       사람 눈이 가슴에 달린 줄 아는 사람 같아서, 열심히 찾아보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렇다고 해도 외양 하나만은 성깔 드센 인상의 초 미인이다.

         

       “뭐야. 왜. 시선이 왠지 기분이 나쁜데.”

         

       “아냐. 너 좋으면 그만이지.”

         

       ”……?“

         

       ”오, 저기 일하시는 분, 가슴.“

         

       동시에 당난아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어? 어디? 어디?“

         

       ”가슴 근육을 잘 단련했는걸.“

         

       당난아가 대번에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그에 청이 한숨을 푹 쉬었다.

         

       처음부터 멀쩡,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애가 이렇게.

         

       벌써부터 이번 여정이 걱정이었다.

         

       견포희는 원래 모자란 애니까 내가 잘 이끌어 주면 그만이지만, 얘는 한의사인데도 어째 점점 모자란 애가 되어가고 있는지.

       

       유일한 상식인인 청의 어깨가 무거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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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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