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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공간과 시간의 사이에서 빛이 보였다.

        

       무지갯빛으로 어지러이 마구 흩뿌려진 빛 사이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푸른 빛.

        

       보이지 않는 벽에 난 실금의 틈으로 마치 기체처럼 새어 나오는 그 창백한 푸른 빛을 내가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쩌적 소리를 내며 깨진 거울처럼 갈라진 조각 하나하나에 내가 처한 상황이 비쳤다. 나의 눈으로 보던 그 순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앨리스.

        

       한 번 부딪혔다 튕겨 나온 몸이 마치 반동을 느끼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장애물이라도 있는 듯 몇 번이고 부딪혀 튕겨 나갈 때 느끼던, 그 감각.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프고, 머리가 울려서 논리적인 생각을 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내 앞에 있는 그 상황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했다.

        

       안 돼.

        

       전부 내 탓이었다. 내가 너무 안일해서, 내 능력에만 너무 의지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스토리에 관여하고 나서부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라는 존재가 없어도, 그냥 다 잘 돌아갔던 것은 아닐까? 각자 알아서 시련을 겪고, 그걸 뛰어넘으며 성장하고, 서로 이해하고…… 게임에서처럼, 그냥 다 잘되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나타나서 오히려 일이 꼬이고, 상황이 악화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상황이고, 뭐고. 이 세상에 내가 나타난 시점에서 이미 스토리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내가 여기 오게 된 이유 자체를 나는 모른다. 만약 여신이 진짜 존재해서 나를 여기 데려다 둔 것이라면, 그 여신은 양심도 없는 녀석이 분명했다. 하다못해 내가 여기 오게 된 이유나 목적이라도 좀 설명하라고.

        

       그런 게 없으니 내가 그냥 나 좋은 대로 살고 있잖아.

        

       다시!

        

       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소리쳤다. 뒤로 튕겨 나가던 나의 몸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입으로 그렇게 소리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돌릴 수 있었으니까.

        

       쿵. 몸이 부딪힌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정신력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근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시간을 돌려가며 열심히 뭔가 한 뒤에는 다시 시간을 돌려 몇 번이고 빈둥거리며 쉬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놈이었으니까.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 무식하게 몸을 부딪히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진작에 포기해버렸을 거다.

        

       쩌적.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고, 고통이 온몸을 뒤흔들어놓는다.

        

       하지만, 뭐, 그래.

        

       아무리 그래도 검에 베이는 것보다는, 총에 맞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이미 겪어봤잖아. 그런 것쯤은.

        

       그러니까, 집중하자.

        

       나는 흐려지는 눈을 비빈 후, 다시 한번 외쳤다.

        

       다시!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렸다.

        

       뭔가 깨지는 소리가.

        

       *

        

       운이 좋았다.

        

       간신히 앨리스가 검격에 당하기 직전으로 돌아왔지만, 무언가를 있는 힘껏 뚫고 나와버린 탓인지, 나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자연스럽게 앨리스를 뒤에서 덮치면서 앞으로 함께 넘어져 버린 덕분에, 앨리스도 나도 검격에 맞지는 않았다.

        

       머리카락 뒤쪽을 무언가가 서걱 썰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내가 달려드는 것을 망설였다면 나는 다시 시간을 돌려야 했을 거다.

        

       쓰러지면서, 나는 그대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탕!

        

       한 발, 총알이 쏘아졌다. 급하게 한 손으로 쥔 총에서 반동이 세게 느껴졌지만, 이번에도 루카스는 맞지 않았다. 루카스는 나의 총구 끝을 보고 있었는지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으로 내가 쏜 총을 피했다. 루카스가 서 있던 곳 너머의 벽에 총알이 박히는 것이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이를 악물고, 앨리스의 등을 꾹 누르며 일어났다.

        

       “실비아!?”

        

       불시에 뒤에서 덮쳐진 탓인지 앨리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못했다. 뭐, 내가 그걸 노리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언니?”

        

       클레어가 당황한 듯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왠지 한쪽 시야가 빨갛더라.

        

       이마를 무언가에 스친 듯, 그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다시 총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인지, 루카스는 조금 전보다 더 수월하게 내 총을 피했다.

        

       자동권총의 슬라이드가 뒤로 밀린 상태 그대로 멈췄다.

        

       일곱 발을 모두 소진했다.

        

       루카스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동작을 쉬지는 않았다.

        

       다시 루카스의 손이 검 손잡이를 향한다—

        

       그렇단 말이지.

        

       다시.

        

       *

        

       “꺅!?”

        

       다시, 내가 앨리스를 넘어뜨렸던 곳에서부터.

        

       몸에 상처는 늘었다. 하지만 적어도 조금 전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둔기로 머리를 맞는 것과 날카로운 곳에 긁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타격이었으니까.

        

       괜찮다. 그렇게 심한 상처는 없어. 적어도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나는 일어나는 동시에 루카스를 향해 달렸다.

        

       “황녀님!”

        

       뒤에서 레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면녀가 루카스가 아닌 내 쪽으로 다가오길래, 나는 그쪽을 향해 총을 한 발 쐈다.

        

       위협 사격이었지만, 적어도 그 ‘위협’으로서의 기능은 한 듯, 가면녀는 흠칫 몸을 멈췄다.

        

       왜, 너도 공격 취소를 할 수 없으니 쫄리나봐?

        

       꼬우면 나처럼 몸으로 때워버리던가.

        

       잘하면 엉엉 울리겠다는 나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걱.

        

       아.

        

       하지만 너무 가면녀 쪽을 신경 쓴 탓일까. 루카스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실비아!”

        

       앨리스의 절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아직 안 죽었어. 시야가 이상하게 아래이긴 했지만, 내 생각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기회는 있어.

        

       다시.

        

       *

        

       탕!

        

       가면녀를 향해 총을 쐈을 때부터.

        

       반응은 이미 봤으니 신경 쓸 것이 되지 못한다. 나는 곧장 총구를 루카스 쪽으로 돌렸다.

        

       총구가 불을 뿜고, 45구경의 탄두가 루카스를 향해 발사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루카스는 나의 총을 피했다.

        

       너무 가깝다. 분명 내가 총알을 다시 채워넣기도 전에 루카스는 칼을 휘두를 것이다.

        

       괜찮아. 그냥 한 번 쏴본 거니까.

        

       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야 다음에 어딜 쏠지 알 거 아냐.

        

       다시.

        

       *

        

       일곱 번, 아홉 번, 열네 번, 스물여덟 번.

        

       다시 옛날식으로. 단 한 발의 총으로 수백 발의 사격 연습을 했던 것처럼. 나는 움직이는 루카스를 향해 몇 번이고 총을 쏘았다.

        

       그 사이에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었다.

        

       내가 ‘현실’에서 얻은 상처는 시간을 돌리면 없던 것이 된다. 나는 착실하게 과거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넘어오는’ 과정에서 얻은 상처는 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내 몸의 상태가 돌아가는 것은 그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올 때 긁히는 상처는 그대로다.

        

       뭐, 그래도.

        

       다행이긴 하지. 시간을 두 번 돌린다고 그 넘어올 때의 상처가 누적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더 자주 시간을 돌릴수록, 공간이 회복되는 속도는 느렸다. 공간은 내가 지나오는 순간 회복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그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 공간으로 들어갈 때마다, 넓혀둔 구명은 아주 조금씩만 좁아졌다.

        

       그럼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최대한 짧게, 초 단위로.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부순다. 그렇게 상황을 유지하면, 나는 이전의 능력을 계속 쓸 수 있었다.

        

       뭐, 몸으로 때우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

        

       루카스는 습관적으로 자기 방향에서 왼쪽, 그러니까 내 방향에서는 오른쪽으로 피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체적인 차이 때문에 내가 루카스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탕!

        

       “큭!?”

        

       뭐, 그렇지.

        

       어차피 나한테 필요한 건 딱 한 번의 성공이다.

        

       루카스의 오른쪽 어깨에 총알이 박혔다. 총알은 그대로 루카스가 매고 있던 작은 가방의 끈에 맞았다. 끈이 완벽하게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루카스를 향해 곧장 뛰었다.

        

       루카스는 눈을 조금 크게 뜬 채 내 쪽으로 검을 휘두르고—

        

       푹, 하고, 내 배에 검이 꽂혔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목에서부터 피가 올라와서, 나는 울컥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래도, 루카스에게 딱 달라붙을 수는 있었다.

        

       나는 루카스의 멱살을 잡은 채 말했다.

        

       “아직, 만족 못했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는 나를 보고, 루카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어떻게—”

        

       “그러게. 어떻게 그랬을까.”

        

       나는 루카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안 알려줘.”

        

       그리고,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총으로 루카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빠악, 하고 루카스의 머리가 돌아갔다.

        

       뭐, 이 정도로 기절하거나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냥…….

        

       한 대 때려주고 싶더라고.

        

       다시.

        

       *

        

       루카스가 총에 맞던 순간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몸을 옆으로 날려 바닥을 굴렀다. 곧장 내 등 쪽에서 검기가 날아왔다. 아마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 거다. 검성일까, 클레어일까. 모양을 보니 황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큭!?”

        

       루카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그 검기에 얻어맞았다.

        

       그 틈에 나는 다음 탄창을 장전했다. 다행히 바닥에 누워 장전을 끝마칠 때까지 루카스가 후속타를 날리는 일은 없었다.

        

       루카스는 이를 악물고 나를 보았다.

        

       왜, 내가 ‘반칙’을 쓰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쁘기라도 할까.

        

       어, 음…… 그래, 기분 나쁘긴 하겠다. 나라도 똑같이 생각했을 거야. 같은 상황이라면.

        

       그런데 같은 상황이 아니네.

        

       약실에 장전되어있던 것까지 전부 소모한 뒤 탄창을 갈았으니 총에 들어간 탄은 여섯 발이다.

        

       물론, 나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적어도 적 한 명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루카스를 향해 총을 겨눈 채,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루카스는 아직도 서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몸이 잘리지 않더라도 바닥을 뒹굴었을 텐데.

        

       그걸로, 나는 루카스가 입은 법복이 보호의 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루카스는 숨을 길게 내쉰 다음,

        

       “좋아, 인정할게. 여기서는 내가 이길 방법이 없겠다.”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방 안의 누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루카스는 이미 자세 잡는 것을 끝마친 뒤였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쏘아졌다.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기사를 들이받아 쓰러뜨려 버리고, 루카스는 그대로 문을 향했다.—

        

       *

        

       젠장.

        

       생각해보니, 총알이 박혔던 곳에서도 피를 흘리지는 않았었다. 맞았지만 보호의 마법이 그대로 총알을 밀어내기라도 한 모양이다.

        

       달리기 시작한 루카스를 향해 총을 몇 번 쏘아봤지만,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도주에만 힘을 쏟는 루카스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더라도, 가능한 사람 정도는 이 방에 이미 있었다.

        

       검성과 황제.

        

       그리고 클레어와 레오, 앨리스.

        

       수많은 기사들.

        

       무수한 검기가 루카스를 향해 날아갔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한 번에 베지 않도록 세심하게 힘 조절을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루카스를 두들겨 패기에는 충분했다.

        

       툭.

        

       루카스가 매고 있던 가방이 아래로 떨어졌다. 루카스는 그 가방을 주우려고 몸을 내리다가,

        

       “칫.”

        

       이내 날아오는 검기를 보고 포기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총알 몇 발을 보고 나를 아주 잠깐 노려본 뒤, 루카스는 곧장 문을 향해 달려갔다.

        

       내려가는 복도에 기사가 얼마나 있을까.

        

       창문 하나 없는 탑이고, 웬만한 포격으로 쉽게 부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 기사들을 죄다 몸으로 뚫고 지나가지 않는 이상 루카스는 탈출할 수 없을 거다.

        

       “하아…….”

        

       문 바깥에서 나는 외침 소리와 칼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뭔가가 막고 있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몇 번이나 부쉈으니까.

        

       몸이 회복되고 다치고를 반복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정말 엄청나게 지치는 일이었다.

        

       “실비아!”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앨리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 반응하지는 못했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아, 아직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가면녀도 확인해야 하는데.

        

       내 쪽으로 달려온 누군가가 몸을 받쳐줘서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지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흐려지고 어두워지는 시야 저 너머에서, 황제가 루카스가 떨어뜨리고 간 가방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그걸 황제가 집어 드는 것을 본 것이, 그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후 3시 되기 전에 3천자짜리 한 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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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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