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7

       이세계에 떨어진 코쟁이 엔버스는 사전에 거지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지식으로만 세상을 접한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앎의 공백이 발생하는바.

       

       심지어 지식의 원천이 30년 전에 활동하던 전대 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껏 트렌디해진 MZ 무림의 문화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는 바가 없을 수밖에.

       

       “청휘 도사님, 요즘은 검날에 문자를 새기는 것보다는 검병의 끝에 수실을 매다는 것이 유행이라 합니다. 저잣거리의 아이들은 나뭇가지 끝에 붉은 실을 매달아 병정 놀이를 하는데──”

       

       “청휘 도사, 얼굴은 그토록 젊은 데다가 저보다도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어찌 이렇게 아는 게 없나요? 역시 서역의 코쟁이는⋯⋯.”

       

       “누님! 아무리 도사님의 코가 길쭉하다지만 사실 적시는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애들 둘이서 재잘거리고 있으니, 엔버스는 무자비하게 양쪽에서 쪼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었다. 남궁가의 자제들과 교분을 쌓음과 동시에 상식까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남궁세가에 머물러야 할 이유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 청휘 도사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이야기하니 크게 기뻐하시면서, 연회 자리에서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연회가⋯⋯ 이틀 후였던 걸로 알고 있소만. 맞소?”

       

       “그래요, 청휘 도사. 그 시간이면 세 번은 대련하고도 남겠어요!”

       

       구명지은의 보상.

       

       남궁명의 보답을 넘어서서, 남궁세가라는 커다란 가문을 이끄는 가주가 직접 상을 내리겠다고 언약하였으니. 기대해 봐도 좋지 않겠는가?

       

       하여 남궁 남매들과 어울리며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무림에 대한 지식을 들을 수도 있으며, 활달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퍽 즐거우니.

       

       그러고 보면⋯⋯ 거지의 부탁도 진행해야 하니, 마침 지금이 딱 묻기 좋은 때였다. 엔버스는 대뜸 물었다.

       

       “궁금한 것이 있소만, 천마에 대해 아시오?”

       

       “⋯⋯⋯⋯.”

       

       남궁명과 남궁승아의 표정이 살짝 창백해졌다. 

       

       “⋯⋯내가 물어서는 안 될 것을 물어본 것이오?”

       

       “아닙니다, 청휘 도사님. 다만⋯⋯ 하도 집안 어르신들이 겁을 주어 그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쁜 일을 저지르면 못된 천마가 잡으러 온다’고⋯⋯.”

       

       “30년 전에 죽은 노괴가 저희를 어찌 잡으러 오겠어요! 다 어른들의 거짓말이고, 괜히 겁주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테죠. 그런 말에 겁먹을 나이는 이미 지나기도 했구요!”

       

       어린 시절부터 하도 괴담으로 들으니, 천마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싹함이 올라왔던 모양이었다. 엔버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우리 가문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소. 『빛남을 숨기지 않으면, 용이 와서 제 둥지로 잡아 간다』는 괴담이었는데⋯⋯ 그래서 나와 형님은 예쁜 조약돌을 일부러 창틀에 내어 두었지.”

       

       사생아의 집에서 이대로 훈련을 받으며 길러지느니, 드래곤이 와서 잡아가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여겼으니.

       

       “용은 신령스러운 영물이 아닙니까?”

       

       “동방의 용과는 다를 것이오. 그리고⋯⋯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오. 동화책이나 음유시인의 헛소리에서나 등장하는 이름이라.”

       

       “천마도 비슷해요. 물론, 그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기록은 분명합니다만⋯⋯ 모두에게 아픈 기억이라 언급이 드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30년 전의 혈사에서 본가는 화를 피했지만⋯⋯ 청휘 도사도 알죠? 오히려 화를 피한 사람이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거.”

       

       30년 전 발생한 정마대전.

       

       수많은 무인들이 마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고, 마지막 천마와의 결전에서는 정파 전체가 휘청할 정도의 피해가 있었다. 몇몇 문파는 완전히 문을 닫았고, 또 어느 문파는 죽지 못해 사는 실정이다.

       

       이후, 천마라는 파도에 휩쓸려 나가지 않은, 전력을 온존한 문파가 득세하였다. 개중에는 남궁세가 또한 있었다. 

       

       당시 남궁세가의 젊은 가주 남궁채공은 정마대전이 일어나기 전, 폐관수련을 위해 봉문을 결정했었다. 그 이유는 남궁가 선조의 ‘하늘을 베는 검’을 깊이 궁구하기 위함이었다.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 가문 전체를 닫아걸었다는 말이오?”

       

       “과하게 들리겠으나⋯⋯ 여기에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전대 가주 남궁소휼은 죽기 직전 젊은 남궁채공에게 가주 자리를 넘기며, 하늘을 넘볼 생각은 말고 가문을 다스리는 데에 전념하라 말했다고 한다. 

       

       무엇을 염려하였던 것인지, 남궁소휼은 선조의 검흔이 남겨져 있다는 비처의 위치도 알려주지 않고 숨을 거두었다. 이에 남궁채공은 아버지가 자신을 무시하였다 여겨 심마에 들었다.

       

       ‘내 재능이 그리도 일천하다는 것이냐. 아니다,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비처의 위치를 찾아내어 내 손으로 선조의 검을 재현하리라!’

       

       남궁채공은 젊은 시절에 검밖에 모르는 검치(劍痴)로 유명하였다. 그는 거의 눈이 뒤집어져, 가문 전체를 닫아걸고 비처를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독선이었으나, 남궁채공이 하늘의 검을 얻으면 남궁세가 역시 번창하리라 여겼던 가문의 구성원들도 결국에는 동의했다. 무림이란 절대고수의 존재가 그토록 중요하였으므로.

       

       잔뜩 식량을 쟁여 둔 다음, 가문 전체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수련과 탐색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덕분에, 우연찮게도 화를 피했다. 

       

       봉문을 풀고 나왔을 때 무림의 절반은 불타 있었고, 싸우지 않아 멀쩡했던 남궁세가는 얼떨결에 무림제일검가가 되었다.

       

       대전에 휘말려 스승도 제자도 갈려 나간 문파 입장에서 보기에, 그저 웅크리고 화를 피한 남궁세가는 얄궂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피를 흘리지도 않고서 달디단 과실만 취하다니!

       

       하여, 남궁세가는 여러 의심의 시선과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다른 문파와의 교류도 끊겼고, 무림맹에서는 비겁자들이라며 암암리에 홀대를 받았다. 

       

       그렇기에, 남궁가의 식솔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세간의 눈치를 신경 쓰며 다니는 중이었다. 천마가 죽어 갈 곳 잃은 원망이 이리로 향해도 이상할 것 없었으니.

       

       “비처는 어떻게 되었소? 찾아내지 못한 거요?”

       

       “아, 비처는 말입니다.”

       

       남궁채공은 결국 비처의 위치를 찾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검을 익혀내지 못했으며, 그날 이후로 사람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문을 다스리는 데에 전념하였으며, 바짝 독이 올라 불같던 성정도 적당히 누그러져 평안하였다.

       

       다만, 남궁채공 또한 그의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넘볼 생각은 말고, 그저 인간의 길을 걸으라고.

       

       “물어봐도 이유를 알려주시지는 않아, 여전히 궁금합니다⋯⋯.”

       

       “애교를 부리면 뭐든 들어주시는데도, 비처의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그래서 포기한지 오래예요. 어련히 뜻이 있거니 하고⋯⋯.”

       

       기묘한 일이었다.

       

       엔버스는 재미있게 그 이야기를 들은 뒤에, 슬쩍 물었다.

       

       “⋯⋯그럼, 혹시 개방은 어떻게 되었소?”

       

       “개방이라면, 그 거지들의 문파 말씀이신가요? 잘 알려지지 않아 듣기 어려운 이름인데, 서역에서 온 청휘 도사님께서 알고 계시다니 몹시 신기합니다!”

       

       “볼 일이 있다는 것이 그들이오. 지인의 부탁으로 전해줄 물건이 있어서⋯⋯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시련의 탑의 거지가 이르길, 개방도는 어디에나 있기에 모든 것을 안다 하였다.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정보 조직이라 하였건만. 어찌하여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라 하는가?

       

       “그게⋯⋯.”

       

       엔버스의 표정을 살핀 남궁명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흐릴 때, 남궁승아는 빠꾸 없이 진실을 입에 담았다.

       

       “폭삭 망했거든요.”

       

       “⋯⋯누님!”

       

       “망한 걸 망했다고 하지 뭐라 그러니?”

       

       “그래도, 좀 더 둥글게⋯⋯.”

       

       남궁명이 제 누이의 언사를 수습하려 바둥대고 있을 때, 남궁승아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당금 무림에 개방이라는 단체는 무명무실해졌다는 것이었다.

       

       “전대 개방 방주 구승개가 정마대전에서 실종된 이후, 개방 방주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신무공이 유실되었다 들었어요. 무학이란 뿌리와 같으니, 뿌리 없는 식물은 시들어 죽기 마련이죠.”

       

       “⋯⋯그래서, 개방은 신진 세력인 하오문의 아래로 흡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사님. 하오문 분파 개방이 된 거예요.”

       

       “⋯⋯⋯⋯.”

       

       무공이란 그렇게나 무거운 것이었던가? 고작 몸 움직이는 법을 잊었다 하여, 커다랗던 파벌이 완전히 쪼그라들어버릴 만큼?

       

       가문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는 세뇌뿐이었던 엔버스에게는, 후대로 이어서 전한다는 개념이 이해하기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거지 스승이 그렇게 염려하던 단체가 몰락했다고 하니 입맛이 썼다.

       

       다른 파벌의 아래로 들어가서 연명하고 있는 것 같다만⋯⋯.

       

       “⋯⋯혹시, 내가 그들을 만나볼 수 있겠소?”

       

       “하오문 개방 분파를 말인가요?”

       

       “그렇소.”

       

       남궁승아는 골똘히 궁리하더니,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음⋯⋯ 혼자서는 안 돼요! 청휘 도사, 넓은 안휘성에서 길이라도 잃으면 어떡하겠어요. 그렇지 명아?”

       

       “예? 누님, 아무리 도사님이라도 길 찾는 능력 정도는⋯⋯.”

       

       “그러니까 저희가 같이 가면 될 것 같네요! 본가의 손님을 미아로 만드는 것도 안 될 일이니까.”

       

       “⋯⋯아, 아하! 누님의 말이 맞아요! 청휘 도사님, 저희가 함께 간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희는 지리를 잘 알고, 안휘성 사람들과도 친밀하니 혹여 일어날 못된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엿봐서는 안 되는 일에는 눈을 감고 있겠습니다!”

       

       반짝반짝.

       

       남궁명과 남궁승아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놀러 가고 싶어서 죽겠다는 눈이다. 승아는 대놓고 ‘날 데려가라’고 눈빛을 쏘고 있었고, 명이는 그러다가도 문득 실례일까 싶어 망설이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둘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이 넓은 도시에서 하오문을, 그 하오문 중에서도 개방도를 찾아 나서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현지인의 도움이 있다면 수월하리라.

       

       하나 문제가 있다면.

       

       “같이 가도 되는 거요?”

       

       “⋯⋯⋯⋯.”

       

       “⋯⋯⋯⋯.”

       

       “⋯⋯삼촌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도사님!”

       

       “명아, 나도! 금방 허락 맡아서 올 테니까 도망가지 말고 기다려요!”

       

       우다다다.

       

       남궁 남매는 외출 허락을 받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허락을 따냈고, 엔버스는 그들과 함께 안휘성 거리를 탐방하게 되었다.

       

       ===============================================================

       

       안휘성 길거리는 떠들썩하고 활기가 넘쳤다. 마교라는 중대한 위협이 물러나고 흐른 30년, 전란의 날 선 분위기는 가라앉고 평온이 내려앉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차들이 행인을 밀어내며 다니고, 가판대의 상인들이 소리를 높여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본래의 세계나 무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히야아압!”

       

       “그까짓 금나수로 나비나 잡겠느냐!”

       

       술에 얼큰하게 취한 사내들이 투덕거리는 것 또한 무공이요.

       

       “이놈! 지붕 밟고 다니지 말라니까!”

       

       “배달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소!”

       

       물건을 나르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듯한 청년이, 길다란 장대를 이용해서 건물 지붕을 넘나드는 것도 무공이었다.

       

       “탄력 있는 장대로 곡예를 부리는구나!”

       

       “⋯⋯청휘 도사님께서는 정말로 무공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러니까 제 공격을 눈감고도 피해낼 수 있었겠죠. 기감을 읽은 것도 아닐 텐데.”

       

       “누님의 공격을 눈을 감고 피해내셨단 말입니까?!”

       

       남궁명의 입에 시동이 걸렸다. 그게 말로만 듣던 신통력이냐, 도술을 써서 투시를 할 수 있었던 거냐, 무공이었노라면 무공과 도술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느냐.

       

       엔버스는 명이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정답을 밝혔다.

       

       “⋯⋯기술이오. 기술. 친구가 알려 준 기술인데, 시선통찰(視線洞察)이라고 부르오.”

       

       “시선을 읽어낸다라,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읽는다구요? 흥, 믿기 힘드네요.”

       

       “그러면 눈 감고 있을 테니까 한 번 아무 데나 보고 계시오. 맞춰 볼 테니. 왼손, 오른발, 종아리, 엉덩이, 엉덩이, 왼쪽 귀, 어깨, 됐소?”

       

       “⋯⋯⋯⋯!!”

       

       남궁 남매는 놀랍고 신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사람 피부에 눈이 돋아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남의 시선을 이토록 기민하고 정교하게 알아챌 수 있다는 말인가?

       

       크게 흥미를 가지게 된 듯하여, 엔버스는 넌지시 물었다.

       

       “배워보시겠소?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물론 가르쳐주신다면 저는 대단히 기쁘겠습니다만, 이미 구명지은을 보답하기도 전인데 또 받기만 하면, 제가 값을 다 지불할 수 있을지 크게 염려가 됩-”

       

       “네, 줘 보세요.”

       

       “누님!”

       

       엔버스는 시선통찰의 비결을 알려주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특별한 의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반복해서 노려보고 맞추는 연습을 하면 깨닫는 감각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또한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 셀비어의 경우에는 3시간 정도 연습하다가 진저리를 치면서 포기하였다. 그녀는 감각이 둔한 편이었다.

       

       그래도 공짜로 주기에는 아쉬우니, 엔버스는 약간의 조건을 걸었다.

       

       “⋯⋯내게도 무공을 알려주시오.”

       

       “⋯⋯!! 역시 남궁가의 무공을 훔치려는⋯⋯!!”

       

       “아니, 아니오. 남에게 알려주어도 상관없는 무공이어도 좋소. 저잣거리에 떠도는 것도 좋고, 격이 낮아 쓸모가 없는 것도 좋소. 무리한 걸 요구할 생각은 없소.”

       

       “그런 거라면, 본가의 서재에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이 있습니다! 물어봐야 알겠지만, 분명 서로 나눌 수 있는 무공서가 있을 거예요!”

       

       남궁 남매와 엔버스는 간단한 약식 계약을 맺었다.

       

       서로가 가진 무공을, 서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르쳐준다는 내용이었다.

       

       ===============================================================

       

       사람이 많이 나다니는 대로로부터 살짝 떨어진 상대적으로 한적한 어느 길목으로 들어가면, 색색의 조명이 달려 흔들리는 조용한 거리가 나온다.

       

       술과 노래와 춤을 파는 이들이 모인 곳. 여러 기루가 들어선 중원식 종합유흥단지였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인지라 본격적으로 영업이 개시되지는 않았다.

       

       밤이 깊어 술기운이 올라오고 저 조명에 불을 붙여 바람 따라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잠든 거리는 오랜 꿈에서 깨어나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리라.

       

       그러한 거리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 취흥루라는 명패가 달린 기루야말로 일행의 목적지였다.

       

       남궁명은 닫힌 기루 문을 작은 손으로 콩콩 두드리며,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어흠, 흠⋯⋯ 계신가요?”

       

       “어머, 어린 도련님. 지금은 영업시간이 아니⋯⋯ 아, 남궁세가의 도련님이시군요? 여기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

       

       그러자 문이 살짝 열리며 여시종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대낮부터 기루에 들른 어린 소년을 쫒아내려다가, 소년이 대 남궁세가의 직계라는 것을 깨닫고 2배쯤 정중해졌다.

       

       “여기가 하오문의 지부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청휘 도사님께서 개방과 연이 있어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데, 저희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머나, 그럼요! 그들도 마침 일이 없어 빈둥대고 있으니, 금방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들어오셔요!”

       

       “⋯⋯⋯⋯.”

       

       시종의 낯에 옅은 비웃음이 걸렸다. 엔버스는 업신여기는 표정만큼은 날렵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개방’을 한참 낮잡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승님의 문파가 이렇듯 신세가 좋지 않으니, 어서 빨리 타구봉법을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시종을 따라 호화로운 건물 내부를 걸었다.

       

       이러한 기루에 온 것은 남궁 남매도 처음이었는지, 두 사람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본래는 엔버스 또한 그 대열에 합류했겠으나, 구경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건물에서도 구석, 청소도 안 된 문 앞에서 시종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문 너머로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손님이 찾아오셨으니, 접대하셔야 할 거예요.”

       

       “접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나는 무인이고, 정보원이지, 한낱 창부가 아니니까.”

       

       앙칼지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화답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움찔 떨게 만드는, 묘한 악의가 서려 있는 듯한 소리였다.

       

       “흥, 이번에는 그래야 할걸요? 남궁세가의 공자, 공녀님께서 용무가 있어 방문하셨으니까!”

       

       “그렇다면 말을 바르게 하지 않은 당신의 혓바닥이 문제로군요. 대 남궁세가의 현앙하신 분들이, 고작 거지의 접대를 받기 위해서 온 것처럼 말씀하시다니요. 모자람을 아세요. 분칠할 시간에 붓을 들고.”

       

       “⋯⋯이이익!”

       

       “됐소. 물러나시오. 안내해 주어 고맙소.”

       

       엔버스는 나서서 시종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차원을 뛰어넘은 소식을 전했다.

       

       “⋯⋯개방 방주의 소식을 가져왔소. 잃어버렸다던 타구봉법의 초식도.”

       

       “⋯⋯우스운 놀이로군요.”

       

       벌컥. 문이 열렸다.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뱀과도 같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꼬리는 팔자로 쳐져 있어, 생긴 모습으로만 보면 무척이나 소심하게 보였으나. 그 눈꺼풀 아래로 빛나는 독살스러움이 심상치가 않았다. 

       

       기루의 여인들처럼 은근한 몸매를 드러내는 복장을 하곤 있으나, 자연스레 취하고 있는 자세에서는 요염함보다도 서늘함이 두드러진다. 슬쩍 드러난 어깨보다도, 소매 아래에 비수가 숨어 있지는 않을지 시선이 간다.

       

       손.

       

       손의 근육 어디가 발달되었는지를 유심히 보면, 어떤 병장기를 다루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타구봉법이라는 큰 뜻을 잃어버린 개방도는 그 커다란 빈자리에 대신 무엇을 채워 넣었던가. 바로 독심(毒心)이었다.

       

       손을 보건대, 그녀는 암기술을 극도로 수련한 자였다.

       

       그녀는 바짝 굳어버린 엔버스를 바라보며, 새빨간 입술을 열어 말했다.

       

       “개방 하오문 분타에서, 개방 방주 희영현(希永玄)이 인사 올립니다.”

       

       희영현.

       

       에스포와르 드 이터널 다크라는 뜻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설레는 주말이 코앞이네요 마이 프렌즈. 휴일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아른거리고 있습니다⋯⋯.
    내일 또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만납시다. 챠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