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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태초에,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백색의 탑이 있었다.

    그 높이는 마치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아서, 아무리 높이 보아도 그 끝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계의 기둥’, ‘백색의 탑’, ‘태초의 탑’등으로 불렀고,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 탑을 보자마자 사람들은 알 수가 있었다고 한다.

     

    ‘탑을 오르면, 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탑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장 현명한 자, 가장 힘이 센 자, 가장 뛰어난 지휘관과  가장 위대한 왕까지.

    결국엔 모두가 실패하며 그 시련을 내린 존재를 저주하며 죽어갔다.

    결국 모두가 얻을 수 없는 과실의 유혹으로부터 눈길을 돌린 순간,

    탑의 벽을 타고 오르는 작은 덩쿨이 있었다.

     

    ——–

     

    베리튼에서의 첫 아침,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아주 좋았다.

    화창한 태양은 창문을 넘어 따사로운 빛을 쏘아내고 있었고, 루크는 그 햇살 덕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는 느낌을 받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기온이 살짝 높아서인지 느긋한 기분, 루크는 한껏 기지개를 켠 뒤에, 가장 먼저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던 타코 두개가 잘 있는지 확인해봤다.

    아마, 없겠지만.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곁으로 돌리니, 그곳에는 푸른색의 정령이 루크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식사는 잘 했나보구나.”

     

    -응, 맛있었어!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일부러 식사를 남긴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을 따라온 파이를 위해서.

    다행히 맛은 정령의 입맛에도 맞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와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한 약속은 잊지 않은 게지?”

     

    -응! 에레하고 같이 가는 거면.

     

    “그래. 착하구나.”

     

    이렇게 응석을 받아 주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걸 알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세상에 나온지 얼마되지 않은 정령이니까.

    모든 맛과 감각이 새롭겠지, 정령인 상태로 지내본 적이 없으니 어떤 감각일지는 떠오르는 부분이 없지만 말이다.

     

    사실은, 루크도 파이가 신체검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상당히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마력을 조작해 현실에 사소한 영향을 주는 것과, 직접 빚어낸 육신을 타고 동작하는 행위는 서로 크게 다르다.

     

    루크가 여태껏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파이리스의 현신화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따져보자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신이 물질계에 강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마도 물질계라는 차원의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화신체를 생성하고, 그 안에 깃드는 것.

     

    그렇기에 파이의 화신체인 모습은 이름이 바뀌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따지면 ‘그것’은 파이 자신이 아니니까.

     

    ……어딘가 아주 익숙한 개념이지 않은가?

     

     

    ‘마치 게임과 같지.’

     

     

    공통점은 바로 타 차원의 존재가, 하위차원에 간섭하며 유희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그대로 쓸 수도 있지만, 실제 자신과 분리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파이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조금 더 낮은 존재라는 단어인 ‘리스’를 붙인 것이다.

     

     

    원리는 그렇다고 하지만, 의문스러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파이가 현신화로 사용하는 신체는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았다.

     

     

    자신이 만들었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그토록 완성도 높은 육신을 빚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을 모르고 만들었다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나?

    어쩐지 현재 자신의 외형을 닮았다는 부분도 걸린다.

     

    이참에 아예 자신이 직접 연구하고 싶을 지경이지만, 스스로를 해하지 않겠다고 예르나에게 약속한것이 문제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수야 없잖은가.

     

    ‘필요한 장비도 부족하고 말이지.’

     

    그동안은 마력시를 이용해 대부분의 관측장비를 대신했지만, 이 경우는 이야기가 상당히 다르다.

    파이의 몸은 분명 마력이 포함되긴 했지만, 단순히 마력회로로 짜올려진 기계가 아닌, 실존하는 육신이다.

    마력시를 운용해 봤자 일반적인 인간에게서 마력이 흐르는 경로를 보는 것 이상의 관측을 할 수가 없다.

    마나가 들어갔다고 동일한 게 아닌 것이다.

    애초에 마나는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이니.

     

    그렇기에 더욱 궁금한 것이다.

    대체 파이리스의 육신은 ‘어디까지’ 인간인 것일까.

    그리고, 자신과의 ‘공통점’은 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다면 마법사가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몸단장을 마치고 마침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저 화창한 태양 아래에 놓인 베리튼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화창한 태양 아래에 놓인 베리튼의 풍경은 한밤중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것이…….”

     

    조금 높은 층에 머물기 때문일까, 저 멀리 세계수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다.

     

     

    구름보다 높은,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

    그 거대한 나무의 밑동에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백색의 장식된 문이 달려있고, 그 밑에서는 줄기를 통과하는 거대한 터널,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퍼지는 도로의 끝에는 마치 열매나 나뭇잎이 매달리듯 수많은 건물들이 지어져있었다.

     

     

    하지만, 역시 5000년이라는 세월은, 세계수마저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일까?

     

     

    세계수는 크게 갈라져 본래 내부에 품고 있었을 백색의 탑을 그대로 노출한 상태였고, 세계수를 감싸는 또 다른 거목이, 세계수와 정 반대로 자라서, 간신히 온전한 나무처럼 보이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저 나무를 ‘글레이프니르’라고 부른다고 하던가?

    그것은 바로 죽어가는 세계수를 살리기 위해 기생시킨 인공식물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크는 그 변화가 만족스러웠다.

     

    “하하하, 세계수여. 그대마저 키메라가 되어버린겐가?”

     

    그 모습엔 어쩐지 동질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다한들 루크 이루시인 것처럼.

    아무리 모습이 달라졌다 한들, 그것은 분명한 5000년 전의 세계수였으니까.

    그때, 기분좋은 바람이 루크를 한차례 휘감았다.

    파이였다.

    -기대돼?

     

    “물론이지, 그대는 기대되지 않나? 5000년 전에도 있던 세계수가, 저토록 흥미롭게 변화했다는 사실이. 당장 달려가 살피고 싶어지지 않느냐?”

     

    참 신기한 일이다.

    5000년 전에는 세계수에 별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토록이나 반갑다니!

     

    파이는 그런 루크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리듯 했다.

     

    -그래, 역시 에레는 에레인가봐.

     

    “……파이, 혹시 에레라는 말이 욕은 아니겠지?”

     

    ———

     

    호텔의 로비에 모인 아이들.

    간단히 출석을 부르고, 엠마는 오늘의 일정을 읊었다.

     

    “자, 오늘은 가장 먼저, 밥을 먹고나서 베리튼의 역사 박물관을 관람할 거에요!”

     

    참으로 안타깝게도, 세계수관람은 거의 마지막 순서에 가까웠다.

    루크는 몰래 도망쳐서 세계수로 바로 가버릴까 생각을 했지만, 그랬다간 분명 다른 아이들에게 민폐가 될 것이다.

    뭐, 그래도 세계수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 어느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되어서, 역사박물관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검색이나 책으로도 얻을 수 없던, ‘잊혀질 전투’ 이전의 역사에 대한 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엠마의 일정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루크는 피곤한 표정의 시루드를 발견했다.

     

    “시루드?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한게냐? 왜 그리 피곤해 보이는게지?”

     

    어깨 부근을 톡, 건드리자 눈에띄게 당황하는 시루드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시루드가 루크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아, 루크구나.”

     

    “그래 나다. 왜 그리 놀라지? 무슨 일이 있는 게냐?”

     

    그리 말하던 루크는 문득 시루드의 볼과 팔뚝에 심하게 긁어낸 듯한 흔적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혹시, 같은 방의 친구가 괴롭힌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벌레 때문에.”

     

    시루드는 한탄을 늘어놓았다.

     

    안 그래도 잠을 많이 자서 잠이 안 오는데, 밤새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벌레들이 너무 짜증나서 감정을 지우기위한 약까지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루크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따뜻한 날씨와 벌레는 어쩔 수 없이 붙어있는 것이니.

     

    “모기한테 두 방이나 물렸어. 으으……. 내가 이래서 베리튼이 싫다니까.”

     

    마구 긁어낸 자국은 아마도 그 흔적인 모양이다.

     

    “아하.”

     

    루크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괴롭힘이 아니라면 다행인 일이다.

     

    그때, 메리는 루크의 옆에서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 나는 벌레 못 봤는데. 이상하네. 모기도 한방도 안 물렸고.”

    “뭐? 정말이야?”

    “응, 맞아. 루크, 그치?”

     

    아마 그렇겠지, 자신은 딱히 의식하지 않으면 용이라는 종족이 타종족에게 공포를 흩뿌리고 있을 테니까.

    굳이 드래곤피어를 뚫어가면서 피를 빨러 오려는 미친 모기는 없겠지.

     

    헌데 메리는 자신과 한 침대에 같이 있었으니까 모기에 물릴 리가 없다.

     

    루크는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루드의 볼과 팔뚝을 유심히 살피다가 묻는다.

     

    “시루드, 많이 가려운가?”

     

    “응, 진짜 엄청.”

     

    “어디 한번 보자꾸나.”

     

    루크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혓바닥으로 침을 묻히곤 모기가 물린 부분과 상처부위에 잘 발라주었다.

    역시 생각대로, 용과 마수가 섞인 키메라의 타액은 그것만으로 이미 꽤 훌륭한 마법적 소재였던 것이라, 가려움을 완화하는 인챈트쯤이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제대로 마법이 들어갔는지, 마력시로 살짝 살펴보니까 효과는 확실히 들어간 모양이다.

    루크는 시루드에게 만족스럽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이제 좀 나아질게다. 혹시 피로 회복제도 필요하면 말하거라. 방에서 가져올 테니……. 일단은 밥부터 먹으러 가도록 하지.”

     

    “……어.”

     

    시루드는 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굳어서 반응이 사라져버렸다.

    시루드는 배가 별로 안 고픈가? 하고 생각한 루크는 고개를 돌려 메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메리, 식당이 어디지?”

     

    “…….”

     

    그런데, 반응은 메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메리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크게 뜨고 루크와 시루드를 번갈아보며 속으로 외친다.

     

    루크가 또 저래!

    이거는 완전히 간접뽀뽀 아니야?

     

    “메리?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그러나 루크의 당황한 반응은 진짜였다.

    아, 루크는 저런 행동을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막 하는 거였구나.

    안 되겠다.

    정말로 진지하게 충고하지 않으면…….

     

    메리는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루크에게 다가가 루크의 귓가에 손을 대고는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루크, 남자애한테 자꾸 그러다간 정말로 아기가 생길지도 몰라.”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이건 어젯밤에 아기가 생기는 과정에 대해 똑바로 이야기를 해줬어야 했던 게 아닐까?

    루크는 얼굴을 감싸 쥐고 신음했다.

     

    ‘레니에,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게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계수가 참 그리기 어렵더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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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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