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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판타지에서 용사와 성검은 뗄 수 없는 존재다.

     

    용사가 들면 평범한 검도 성검이 된다는 편리한 설정도 가끔 있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여기선 둘이 별개였다.

     

    ‘성검은 상당히 중요해.’

     

    한 세대의 용사에게 주어지는 성검도 한 자루뿐이다.

     

    마왕은 머시기 면역 이뮨 버프를 둘둘 감고 있어서, 성검으로 선제 타격한 후에야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즉 성검이 없거나, 리셰가 다루는 데 실패하면?

     

     

    [No. 010 : 성검 파괴 72%]

    [No. 014 : 공명 해제 66%]

     

     

    그 순간 배드엔딩 직행이다.

     

    그리고 리셰는 늘 의욕은 출중했지만.

     

    ‘솔직히 용사로서 훌륭한 편이었냐 하면.’

     

    절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검 실력도 검 실력이고, 조심성이 너무 없다고 해야 하나.

     

    당장 성검을 취급을 잘못해서 발생하는 배드엔딩의 확률이 이렇게 높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쩐지 너무 자주 깨먹더라.

     

    ‘미래에서는 이미 성검을 가지고 있었지.’

     

    리셰의 등장이 빨라지면서 이 획득 과정도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원래도 성검을 발견한 건 왕국이 먼저였을지도 모르겠다.

     

    용사 파티엔 대륙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다. 마왕 토벌 후엔 연합군이 해체되고 세운 공적에 따라 추후 대륙 정세에서 유리한 이권을 잡을 수 있게 된다.

     

    파티 편성은 높으신 분들이 했었다. 용사인 리셰와 성녀인 네리아는 필수로 들어가야 했지만 나머지는 국가 간의 힘 싸움에 의해 들어갔다.

     

    나도 그렇게 떠밀려서 들어간 케이스고.

    법국이 활약할 치유사 자리를 틀어막고 제국의 자리를 하나라도 더 가져오기 위한 아셀라의 계책으로 쓰였었다.

     

    여섯 명이었던 용사 파티엔 왕국 출신의 모험가가 둘이나 있었다. 왕국이 성검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뭐, 적어도 내 회귀 시점에서 이미 왕국은 멸망했으니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행여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이번 건은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성검을 왕국군이 발견했단 말씀이시죠. 위치는.”

     

    “왕국령 남부의 메링턴 수해야. 원래 용사와 성검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던 지역이라 소식을 듣고 바로 수색에 나섰다나.”

     

    “운 좋게 하루 만에 찾아냈단 거군요. 혹은 짐작 가는 장소가 있었던가. 하지만 성검은 용사가 아니면 뽑지 못할 텐데요.”

     

    “그래서 굴착 장비를 동원한 회수대를 출발시켰다고 해.”

     

    아, 검을 못 뽑으면 지반째로 가져오면 된다는 아이디어다.

     

    현명하네. 나도 엑스칼리버 전설을 보면서 늘 했던 생각이다. 주변의 흙을 파서 꺼내가면 되지 않나, 하고.

     

    “라스, 어떻게 생각하니?”

     

    “굳이 제국에 정치적으로 불리해질 상황을 두고 볼 이유가 있을까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가 먼저 가서 성검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니?”

     

    아셀라가 의욕을 보였다.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왕국 출신인 전사 라르크는 가능하면 추후 용사파티에서 다른 멤버로 교체하고 싶다. 리셰와 성격이 안 맞고 팀워크도 별로였다.

     

    그를 위해서는 리셰가 성검을 직접 뽑아와 제국의 소유로 만들어야 한다.

     

    슬쩍 리셰를 돌아본다.

     

    나와 아셀라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따라오지 못해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지금 리셰는 용사의 징표만 있을 뿐, 훈련도 안 된 민간인과 다를 바 없어.’

     

    메링턴 수해는 분명 희귀하고 강력한 마물이 꽤 나오는 곳이다.

     

    사룡을 상대할 때 용사파티의 작전지역 중 하나였기에 기억한다.

     

    예상 밖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동행하고 싶다.

     

    ‘무엇보다 마물의 전리품도 가지고 싶은데.’

     

    상태창을 확인한다.

     

     

    ―――――――――――

    ○ 연금술 C

    · 강화 C – 성질변화 B

    · 압축 C

    · 합성 C – 추출 C

     

    · 3개의 스킬이 습득 대기 중입니다.

    · [인챈트] [원소화] [연성]

    · 희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경험치를 상승시켜야 합니다.

    ―――――――――――

     

     

    약품의 제약을 클로에에게 맡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연금술의 사용빈도는 점차 줄었다.

     

    최근엔 내의원 파벌에서 제약 쪽으로 특화한 의사들이 필요한 분량을 생산하고 나는 검수와 강화 작업만 한다.

     

    덕분에 랭크 상승이 거의 막힌 참이었다.

     

    ‘나중에는 화학 공식을 뛰어넘은 약품도 필요해질 상황이 올 거야.’

     

    연금술은 금을 만드는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연습에 불과한 과정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연금술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목표는 하나.

     

    엘릭서.

     

    즉, 불로장생약이다.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때는 내 디버프도 확실하게 지워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과정에서 포션을 만들어내면 치유사와 성녀에게 부상을 의존해야만 하는 용사 파티도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갈 테고.

     

    ‘필요한 희귀 재료도 손에 넣을 수 있어.’

     

    이런 지역의 마물은 토벌해서 이익이 없으니 전리품이 시장에 나올 일도 없다.

     

    좋은 기회다.

     

     

    생각을 마치고 아셀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황녀님.”

     

    안 보내줄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어떻게 설득할까 생각하는데, 그녀는 비교적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래. 당연히 월광궁 기사단을 보내 성검 회수 임무를 맡겨야겠지.”

     

    “그렇습니다.”

     

    “따라가고 싶은 거지?”

     

    “오, 알아주셨네요.”

     

    내가 위험 지역에 가겠다고 하면 수갑까지 채우던 아셀라였는데, 웬일로 먼저 제안까지 해왔다.

     

    “좋아, 대신.”

     

    아셀라가 생글대며 내 턱 끝에 검지를 대고 치켜올렸다.

     

    “나도 같이 가.”

     

    “황녀님께서요?”

     

    조금은 의외의 발언이었다.

     

    “위험한 지역입니다. 야만족 토벌 때는 성채에서 이뤄진 작전이었지만 이번엔 사방이 뚫린 야생지에요.”

     

    “잊었니? 나는 이 나이에 5위계에 도달한 마법사야. 심지어 우리에겐 소드마스터도 있잖니. 누가 감히 우릴 위협하겠어.”

     

    “흠, 더할 나위 없이 옳으신 말씀이네요. 그럼 한 가지만 더.”

     

    나는 주사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병충이 걱정되는 지역이니 예방접종을 하고 가죠. 주사 한 대만 맞으면 돼요.”

     

    아셀라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알았어. 맞으면 되잖아.”

     

    “바로 만들어 오겠습니다.”

     

    “얄미워.”

     

    아셀라가 툴툴대고는 공식 명령을 하달했다.

     

    “출정은 내일 오후 13시에 하겠어. 편성은 두 시간 안에 끝낼 테니 내의원도 준비해 놓으렴.”

     

    “받들겠습니다.”

     

    나는 리셰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용사님. 파트너를 데리러 가야 하겠네요.”

     

    “파트너, 성검 말이죠. 으으음….”

     

    리셰는 어딘가 기분이 불편해 보였다.

     

     

     

    ***

     

     

     

    성검 회수는 최중요 기밀 임무로 취급되어서 월광궁 기사단 전원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제국 남서부에 도착한 월광궁 기사단은 중립지대를 넘어 왕국령으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텔레포트 게이트 덕에 일정이 상당히 빨라졌군요. 사흘이면 도착하겠습니다. 왕국군을 앞지를 수도 있겠습니다.”

     

    내 옆에서 휴고가 지도를 확인했다.

     

    “국경을 넘었습니다. 여기부터는 제국법이 보호하지 않으니 주의하시길.”

     

    타냐가 짤막하게 경고했다. 선두에서 길목을 경계하는 그녀는 든든했다.

     

    “험준한 지형이라 도적은 다니지 않으리라 예상되지만 마물을 경계해야 합니다.”

     

    내 경고에 기사단장이 말했다.

     

    “마물 말이군요. 바위산 지형이라 마물이 엄폐할 곳은 없어 보입니다. 다가온다면 미리 전투태세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단장의 말에 내가 근처의 돌을 들췄다.

     

    돌에는 날카로운 칼로 여러 번 긁은 듯한 흔적이 나 있었다.

     

    “이건?”

     

    “바실리스크가 꼬리를 연마한 흔적이야.”

     

    “바실리스크. 위험도 상급 마물 아닙니까.”

     

    “맞아. 놈들의 등껍질은 바위처럼 보이게 생겨서 멀리서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힘들어. 바닥에 딱 붙어서 사족보행으로 움직이니 속도도 빠르고. 방심하지 말도록 해. 꼬리에 찔리면 사망까지 두 시간도 안 걸려.”

     

    “과연, 그렇군요. 주의하겠습니다. 전원, 경계도를 올려라. 방패기사가 선행한다.”

     

    기사단이 내 말을 듣고 태세를 바꿨다.

     

    그 모습을 본 아셀라가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마물도 잘 아네. 공부했었어?”

     

    “이 정도는 기본 교양이지요. 황녀님도 주의하세요.”

     

    “잘 보고 있으렴. 내게 다가오는 마물은 머리에 얼음창이 박힐 테니.”

     

    마법예장을 입은 아셀라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찔려도 별로 걱정은 안 해.”

     

    “왜요?”

     

    “왜겠어. 어차피 네가 해독해줄…”

     

    “선생님! 뱀! 뱀이에요!”

     

    아셀라의 말은 우리 사이에 달려든 리셰에 의해 끊겨버렸다.

     

    아셀라는 불쾌했는지 혀를 차면서 지팡이를 빙글 돌려 마법진을 그릴 준비를 했다.

     

    ―파스슷!

     

    리셰가 보고 놀란 뱀은 평범한 독사는 아니었다.

     

    길이가 3미터는 되고 긴 꼬리 끝에는 독침을 단 사족보행의 도마뱀.

     

    바실리스크다.

     

    “나타났다! 황녀님과 용사님을 지켜라!”

     

    기사단이 방어진을 구축하며 검과 창을 치켜들었다.

     

    “선생님.”

     

    “위험할 땐 부탁해.”

     

    휴고 역시 아뮬렛을 꺼내 들었다. 비상사태 땐 휴고도 저주를 공격용으로 사용해 전투에 가담하게 된다.

     

    네 발로 달려오는 바실리스크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바위산에 카모플라주를 한 색깔이라 잠깐 눈을 깜빡이면 움직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놈의 모습에 집중한다.

     

    “온다!”

     

    바실리스크가 달려들려는 긴장의 순간.

     

    ―콰아앙!

     

    지면이 갈려나가며 폭풍이 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건 달려오는 마물의 측면에서 돌진해 순식간에 검을 꽂아넣는 타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오러가 터지면서 흙먼지가 일었고,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됐다.

     

    “흠.”

     

    먼지가 걷혔을 때, 우리의 앞에는 처절하게 양단되어 절명한 바실리스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타냐가 검을 털어내고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마저 전진하시죠.”

     

    소드마스터의 차원이 다른 힘을 목격한 기사단장은 잠시 놓았던 정신을 차리고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옙.”

     

    나쁘지 않네.

     

    만족스럽게 타냐를 보고 있으니 리셰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 모양이었다.

     

    “멋지신 분이네요….”

     

    “앞으로 용사님에게 검을 가르쳐줄 기사입니다.”

     

    “제가 저분께요? 와, 그럼 저도 저렇게 될 수 있나요?”

     

    제발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는 시간 여유가 몇 년 더 있으니 기대해 볼 만 하려나.

     

    “야.”

     

    그러고 있으니 탁, 아셀라가 신경질적으로 리셰의 팔을 쳤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야.”

     

    그제야 리셰는 여태 붙잡고 있던 내 백의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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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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