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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료스케가 떠나간 신사는 정적이 가득했다.

       흔들리는 나뭇잎이 소곤대는 소리도, 흔들거리는 나뭇가지가 자아내는 숨소리도.

       사이사이에서 울던 풀벌레의 소리와 날아다니던 날벌레들의 날개 퍼덕이는 소리마저 완전히 사라진 숲은 마치 현세가 갑작스레 이계(異界)로 변한 것 같았고, 달빛에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어둠이 더더욱 무겁게 가라앉으며 음산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가르려는 듯 스마트폰에서 잡음과 함께 남자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 끌끌. 기회를 주었건만 냅다 차버리고 꽁무니를 빼는 꼴이 참으로 안타깝다. ]

         

       리세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스마트폰에 붙은 스트랩을 입에 물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입에 문 리세는 얇은 유카타의 옷깃을 이리저리 매만져 정돈하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자신 쪽으로 향하게 했다.

         

       리세는 스마트폰에 비치고 있는 진성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신주님. 궁금한 게 있어요.”

       [ 무엇인고? ]

       “어째서 그냥 보낸 건가요?”

         

       리세의 얼굴은 약간 화가 난 듯 보였다.

         

       “제가 보기에는 저 의원이 명백히 신주님을 배반한 듯 보였어요. 게다가 신주님이 몸을 낮춰가며 부탁을 하였음에도 들어주지 않았고, 도리어 귀찮은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기까지 했지요. 도저히 은인에게 행하는 태도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어요.”

         

       리세는 잠시 숨을 고르려는 듯 말을 쉬고는 물었다.

         

       “저 료스케 의원은 신주님을 배신한 것이 분명한 것인지요?”

       [ 그러하니라. ]

         

       진성은 리세의 말을 시원하게 긍정했다.

         

       [ 네 말대로이니라. 공포는 있되 경외가 없고, 거리낌이 가득하였다. 신뢰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신의 역시 느끼지 못하였지. 오직 맹수를 앞에 둔 사람이 그 자리를 피하려는 것과 같고, 역경에 닥친 인간이 그것에 맞서려고 하기보다는 온 힘을 쥐어짜 도망가려고 하는 꼴과 같으니. 이것만 보아도 충성과 믿음이 조각났음을 알 수 있느니라. ]

       “그럼 어째서….”

         

       리세는 어째서 그냥 보냈냐고 다시 물으려다가 말을 삼켰다.

       그녀의 눈에 진성이 입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래. 궁금할 것이니라. 주물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불렀건만 정작 부른 놈은 토리이 앞에서 들어올 생각을 하지를 않았고, 추궁해야 하는 음양사와의 관계나 배반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으니 의문이 들 법도 하다. ]

         

       진성은 스마트폰의 앞부분을 슬쩍 손으로 쓸었다.

       그러자 흐릿하고 지저분했던 카메라의 렌즈가 닦였는지 또렷하게 진성의 모습이 보였고, 막 씻기라도 한 것인지 뽀송뽀송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 토리이라는 것의 의미는 너도 알 것이니라. 저것은 신의 땅과 인간의 땅을 가르는 경계이며 관문. 저것을 건넌다는 것은 신에게 제 몸을 맡긴다는 뜻이요, 제 생살여탈권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넘겨준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행동에는 깊은 신뢰가, 제 목숨조차 맡길 수 있을 믿음이 필요한 법이니라. ]

       “네에….”

       [ 믿음이 없는 자는 볼 수 없고 건너지 못하니. 이것이야말로 신뢰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특히나 저 료스케라는 작자는 이러한 사실을 이성이나 지식으로 습득한 것이 아닌, 본능으로 꺼렸으니. 이는 그의 본능이 우리를 거부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니라. ]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잠깐 입을 닫았다가 열었다.

         

       [ 다만…. 그래. 토리이를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육감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하였으니, 이는 오산이라고 할 법한 일이다. 하지만 오산이라고 한들 그 어떠한 손해도 없으니 나쁜 일은 아니로다. ]

         

       리세는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토리이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오산이었다고 한다면, 그 뒤에 있는 것은 오직 시험이었느니라. 내가 준 기회를 받아 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소중하기 짝이 없는 기회이며, 쏟아지려는 물을 일부나마 주워 담을 수 있는 소중한 시험. ]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사납게 웃었다.

         

       [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니 참으로 부질없는 관상이로다. 다만 제 쓸모를 증명한다면 목숨을 부지하고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터나…. 허어, 참으로 쓸모가 없다. 무용지용의 쓸모가 아닌, 쓸모가 있음에도 활용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잡동사니와 같다고 하지 않으면 무어라 할까! ]

         

       그는 리세를 바라보았다.

         

       [ 옛적에 지리소(支離疏)라는 이가 있었다. 어찌나 심한 꼽추였던지 아래턱이 배꼽의 아래에 파묻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배 속의 내장이 머리의 위에 올라가고 두 넓적다리가 옆구리에 닿을 정도였으니 사람들이 말하는 미(美)와는 참으로 동떨어진 사람이라 할법하였느니라. ]

         

       진성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무용(無用)한 것에도 쓸모가 있음이니. 쓸모가 없어 보이는 나무는 그 쓸모 없음 때문에 제 목숨을 부지한 채 자랄 수 있으며, 아무것도 갖지 못한 땅은 그 쓸모없음에 땅이 파헤쳐지지 않고 순수를 간직할 수 있는 법. 이 지리소라는 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재주는 있어 먹고 살기에는 충분하였으며, 쌀을 고르는 것에 재능이 있어 열 식구를 먹여 살렸느니라. 게다가 흉하기 짝이 없는 외모로 징집의 대상에서 벗어났으며, 지병 때문에 노역의 대상에서 벗어났다. 게다가 먹고 살 재주도 있는데 제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라가 내리는 양식과 장작을 받아 천수를 살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라! ]

         

       진성은 쉴 새 없이 말을 하다 말고 멈추더니 미소를 지었다.

       토끼 같은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게, 살기를 품은 미소를.

         

       [ 다만 료스케는 이 무용의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라. 정치로 사람을 이끄는 것으로 제 쓸모를 증명하였고, 거목이 내리는 가지를 붙잡고 위로 올라가려는 것에서 향상심을 보였으며, 쾌락을 거부하고 특별함을 얻음으로써 무용에서는 한참 벗어난 이가 되었느니라. 다만 강자에게 굴복하되 언제든 칼을 숨기고 주군을 갈아탈 상이라, 정으로 함께 가기에는 신의가 없으니 오직 그 쓸모만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었는데….]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 거군요.”

       [ 그러하다. 사용해야 할 곳에 제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능력이 없는 것과 무어 다를 것이 있을까? 하니 저 작자는 지금 이곳에서 제 운명이 결정이 난 것이니라. 다만 그래, 길일을 말하고 훗날을 기약하였으니 그것이 점지된 수명의 끝이요, 저승으로 여정을 떠날 죽을 날이 될 것이다. ]

         

       리세는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배신을 한데다가 쓸모를 증명하지 못해 죽어야 하는 료스케.

         

       죽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베푼 은혜의 크기도 가늠하지 못하고 등에 칼을 꽂으려고 했으니.

       죽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것이 조건이라면.

       료스케가 ‘쓸모’라는 조건으로 목숨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이 결정되었다면.

         

       과연 자신은 어떤 조건으로 살아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조건이 사라진다면 나 또한 이렇게 버려지는 것인가?

         

       리세는 잠시 떠오른 미혹을 그대로 지워버렸다.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고….’

         

       왜 갑자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 것일까?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의심이 떠오른 것일까?

         

       그가 일본을 떠나고, 연락도 뜸했기 때문인가?

       몸이 멀어졌기 때문에 마음에 미혹이 생긴 것인가?

         

       ‘…나는 믿는다고 했어.’

         

       리세는 마음속에 생긴 약간의, 아주 약간의 의심을 필사적으로 지워버렸다.

       그리고 생각 저편으로 치워버리고, 과거 했던 결심을 몇 번이고 되뇌며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다시 바라보자 아까와 같이 리세를 바라보고 있는 진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성의 입은 꾹 닫혀있었고, 눈은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려는 듯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본 것일까.

         

       [ 별 이상한 것으로 미혹에 빠지는구나. ]

       “네, 네?”

         

       리세는 갑작스레 정곡을 찌르는 말에 당황했다.

         

       [ 끌끌. 그래, 수행에는 번뇌가 뒤따르는 법이지. 몸과 마음을 갈고닦고 도를 구하는 것은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곳을 눈을 감고 거니는 것과 같으니, 어둡고도 참으로 어두워 중간중간에 다른 생각이 들고는 한다. ]

         

       진성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세에게 상냥하게 가르침을 주었다.

         

       [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당연하고, 내 앞에 낭떠러지나 독사가 있지는 않은지, 계속 걷다가는 커다란 나무에 부딪히지는 않는 것인지, 저 너머에 나를 바라보며 돈을 훔칠 궁리를 하는 도둑이 있지는 않은지, 괴한이 나를 잡아 그대로 끌고 가지는 않을지. 그런 의문이, 걱정이 태산과도 같이 덮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라. 이러한 것은 당연하며, 모두가 거쳐 가야 하는 길이니. 오직 진실한 믿음만이 나침반이 되어 올바른 곳으로 이끌게 될 것인즉. ]

         

       진성은 강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말했다.

         

       [ 나를 믿으라. ]

         

       그 말을 하는 진성의 얼굴은 진지해 보였다.

         

       [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던 나를 믿어라. 그리하여 미혹에서 벗어나 진실을 보아라. ]

         

       그 단호함에 리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 행복에 대한 정의조차 모르는 이를 어찌 내가 내치겠는가. 이는 제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새끼 짐승을 그대로 야생에 풀어 놓는 것과 같으며, 날개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새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일과도 같은데. 하니 너는 오직 걱정을 잊은 채 나를 따르고 믿으라. 그리하여 행복의 길을 찾고, 새로운 신과 새로운 믿음으로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

         

       리세의 표정이 변해갔다.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진성의 말을 들을 때마다 표정은 점차 풀어지고, 입꼬리는 서서히 올라갔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 담겼던 미혹은 믿음이 되었고, 귀에 달콤하기 짝이 없는 말은 그녀의 얼굴을 녹였다.

         

       “네에, 믿을게요.”

         

       리세는 배시시 웃었다.

       그 표정은, 그럭저럭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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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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