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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프란체가 머무는 방의 바로 옆방.

       

       카자르는 탐색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곳을 골랐다. 손님방으로 배정된 황궁 별채의 복도, 정원, 테라스. 이 세 곳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마법은 마력이나 오러. 즉 카자르가 허용하지 않은 생명력이 감지되면 곧바로 경보가 울리듯이 마력이 요동치는데.

       

       ‘뭐지?’

       

       알 수 없는 무언가 범위 내에 들어왔지만,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마치 오러나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벌레가 들어온 것처럼.

       

       ‘이상해.’

       

       위치는 3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이지만… 확실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법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 확인하겠다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저게 사람이라면 케일 씨나 라데아가 알아챌 거야.’

       

       프란체가 머물고 있는 손님방은 3층의 복도 가장 끝부분에 있어 들어갈 방법은 한정적이다.

       

       첫 번째는 라데아가 지키고 있는 테라스의 창문 쪽. 높이가 있어 일반적인 사람이 들어오긴 불가능이다.

       

       두 번째는 복도. 케일이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다.

       

       프란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면 이 두 가지 방법이 전부.

       

       ‘둘에게 맡기자.’

       

       애초에 소드 마스터 둘의 경비와 초월 마법사의 탐색 마법이다. 뚫는 건 불가능. 카자르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던 그때.

       

       우웅──!

       

       “뭐야?!”

       

       별안간 거대한 마력이 요동치며 탐색 마법이 경보를 울렸다. 이 정도의 파장은 일반 마법이 아니다.

       

       “초월 마법…!”

       

       덜컥! 카자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향했다.

       

       “케일 씨!”

       

       다급히 케일을 불렀다.

       

       “뭐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문에 등을 기대고 있는 케일.

       

       “누군가 초월 마법을 사용했어요!”

       “뭐?!”

       

       케일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초월 마법사인가?”

       

       질문에 고개를 휘젓는 카자르.

       

       “아니요. 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저한테 걸렸을 거예요.”

       

       탐색 마법 범위에 걸린 건 아무런 오러도, 마력도 존재하지 않는 의문의 존재 하나뿐. 초월 마법사가 왔더라면 범위에 들어오기도 전에 경보가 울렸을 것이다.

       

       “초월 마법사는 아닌데, 뭔가 이상한 사람이에요. 오러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달칵. 카자르는 노크도 하지 않고 프란체가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라데아는 테라스 앞의 의자에서 감시 중인 상태.

       

       침대에는…….

       

       “…공작이 없군.”

       “없네요.”

       

       프란체가 사라져있다.

       

       “카자르 언니랑 케일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라데아가 고개를 돌려 카자르를 바라본다.

       

       “이 방에 아무도 안 왔어?”

       “아무런 기척도 안 느껴졌는데요?”

       

       라데아의 감각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면 무언가 모종의 방법을 썼다는 건데…….

       

       그때 문득 카자르의 생각을 스쳐 지나간 한 정보.

       

       ‘설마.’

       

       프란체는 말했다. 장례식에서 확인한 황제와 황후의 시체에는 오러와 마력이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분명 그 힘의 일종이겠지.

       

       탐색 마법에 걸렸던 그 이질적인 존재. 그건 성녀였다.

       

       “케일 씨는 당장 황실 기사단에 말해서 비상경보를 울려요. 라데아는 별채를 탐색해줘.”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지휘하는 카자르. 케일은 “알겠다.”하곤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

       

       “무슨 일이에요?”

       “공작님께서 사라지셨어.”

       “네?!”

       

       라데아는 서둘러 침대를 확인했다. 프란체가 없다. 바로 옆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사라졌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침착해. 아직 늦지 않았어.”

       

       카자르는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는 라데아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부터 이 별채를 샅샅이 뒤져.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게 없는지 확인할 테니까.”

       

       라데아는 “네, 네!”하곤 서둘러 방문을 나섰다.

       

       “후우…….”

       

       그렇게 프란체가 있던 방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카자르. 전신의 마력을 활성화해 이곳에서 일어난 초월 마법을 추적한다.

       

       “이건…….”

       

       역장 마법, 이면 결계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없어.”

       

       카자르는 프란체가 있던 방에 펼쳐진 역장의 해석에 들어갔다. 이는 지극히도 익숙한 마력.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 폰 그라시아의 마법이다.

       

       그러나 이 마법을 사용한 건 그녀가 아니다. 그렇다는 건 이미 만들어진 마법진을 실행했다는 건데.

       

       이는 필요한 마력만 넣으면 발동한다. 카자르가 당혹스러운 건 다른 점이었다.

       

       ‘정말로 마력을 지우는 게 가능할 줄이야.’

       

       카자르의 머리카락 끝으로 식은땀이 떨어졌다. 서둘러 이 역장을 해석하여 이면 결계를 풀어내야 한다.

       

       ‘공작님 제발.’

       

       프란체가 무사하길 기도하며 카자르는 모든 집중력을 쏟아냈다.

       

       

       * * *

       

       

       번뜩! 별안간 프란체의 눈이 맑게 뜨였다.

       

       “뭐야…?”

       

       무언가 이상하다. 테라스 창문을 지키고 있던 라데아는 사라지고 없는 상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질감.

       

       마치 꿈에서 버둥거리는 것처럼, 원래 있던 세상이 아닌 느낌을 받았다. 프란체는 허리를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났다.

       

       “케일? 카자르? 라데아?”

       

       혹시나, 싶어 이름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프란체는 눈을 감고 흐르는 마력에 집중했다.

       

       “…결계구나.”

       

       원래 마력은 시계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결계 안이라는 건 확실하다.

       

       “후우…….”

       

       프란체는 깊게 숨을 내쉰 뒤 침착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깨어나렴.”

       

       우웅…! 손바닥 위에 생긴 구체에서 빠져나가는 그림자들. 마수 병사들이 깨어났다.

       

       “이 별채를 탐색해.”

       

       마수 병사들은 프란체의 명이 내려지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몇몇의 병사들을 남겨두어 호위로 삼았다.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건지.’

       

       프란체는 날을 곤두세운 채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카자르라면 분명 이걸 눈치챘을 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드디어 기회를 얻었네.”

       “?!”

       

       화들짝 놀란 프란체는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녀.”

       “진짜 귀찮게 만든다니까.”

       

       저벅. 저벅. 어깨를 으쓱이곤 태연하게 걸어오는 소미레. 프란체는 이를 가만히 두고보지 않았다.

       

       “처리하렴!”

       ─키에엑!

       

       수십은 거뜬히 넘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마수 병사들이 소미레를 덮친다. 그러나…….

       

       “성녀인 내게 흑마법은 소용없어.”

       

       차앙! 소미레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사라졌다. 일반적인 신성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순결함에 흑마법은 무용지물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알고 있잖아?”

       

       결국, 프란체의 앞까지 도달한 소미레.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예전부터 나를 노리던 이유가 대체 뭔데?”

       

       잔뜩 미간을 찌푸린 프란체가 물었다.

       

       “알고 싶어?”

       “너 같으면 모르고 싶겠니?”

       

       프란체의 불쾌함과 짜증이 그대로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소미레는 픽 웃고는 대답했다.

       

       “나는 말이야. 다른 세상에서 왔어.”

       “…뭐?”

       

       생각지도 못한 소미레의 발언에 프란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상상도 하지 못할 세계야. 거긴 마법도 존재하지 않고 오러 같은 것도 없어. 심지어 마수라는 위험한 것도 없지.”

       

       멋대로 말을 시작하는 소미레.

       

       “거기서 ‘로맨스 판타지 소미레 편’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 게임 속의 세계야. 너는 단순한 창작물에 불과하지.”

       

       비웃는 듯한 그녀의 말에 프란체는 눈을 얕게 떴다.

       

       “창작물? 게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그게 왜 나를 죽여야하는 이유가 되는 건데?”

       

       소미레는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죽어야 내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이 게임의 엔딩을 봐야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스윽. 소미레는 자신의 품안에 손을 넣더니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단검이었다.

       

       “이거로 너의 심장을 찌르면 돌아갈 수 있다고 그 할머니가 그러더라. 네가 죽는 건 아쉽게 됐지만, 어쩔 수 없어. 나는 사람이고 너는 게임 속 NPC에 불과하잖아?”

       

       소미레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1년이나 버텼어. 너는 내 마음을 모를 거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단검을 찌를 기세다. 프란체는 시간을 끌기 위해 침착하게 대화를 이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러는 건데? 성녀라면 누릴 거 다 누리고 원하는 건 다 얻을 수 있던 거 아니니?”

       

       그 말에 소미레는 허탈하게 웃었다.

       

       “웃기는 소리. 너는 내 마음을 절대 모를 거야. 창작물에 불과한 네가 어떻게 나를 이해하겠어?”

       

       꽈악. 단검의 칼자루를 세게 쥔 소미레는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불순물로 취급받아 서서히 죽어가고 있어. 매일 밤 끔찍한 악몽을 꾸고, 이상한 음성이 들리면서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나를 갉아먹지.”

       

       말을 이어가던 소미레는 그간의 감정에 북받쳤는지,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 보고 싶어. 학교생활도 그립고 친구들도 보고 싶어. 나는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소미레의 눈빛에는 그간의 설움이 잔뜩 서려있었다.

       

       “너는 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아니, 이해는 바라지 않아. 너를 죽인 나를 원망하고 또 원망해. 나는 돌아갈 거야.”

       

       말에 두서가 없고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다. 소미레 본인도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고 있다.

       

       “미안해.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어. 아니, 안 미안해. 내가 진짜 사람이고 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에 불과한데 내가 왜 미안해야 해?”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소미레는 단검을 쥔 채 걸음을 내디뎠다. 프란체는 서둘러 흑마법을 펼쳤다.

       

       “오지 마!”

       

       우웅! 검은 쇠사슬이 지면에서 솟구쳐 소미레를 속박했다.

       

       “흑마법은 소용없다니까.”

       

       차앙! 소미레가 손가락을 튕기자 황금빛 신성 마법이 주변을 맴돌며 프란체의 쇠사슬을 가뿐히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나를 위해 죽어줘.”

       

       저벅. 저벅. 점점 다가오는 소미레.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수 병사들을 내보냈다.

       

       “잡아!”

       ─크르르륵!

       

       수많은 마수 병사가 소미레에게 달려들지만,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황금빛 마력에 닿자마자 소멸했다. 이러면 소모전으로 버티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무슨…!”

       

       그 어떤 흑마법도 성녀인 소미레에겐 통하지 않았다. 재능의 특성상 흑마법에 치중되어 다른 속성의 마법은 불가능. 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챈 프란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문으로 달렸다.

       

       “어딜 가려고?”

       

       황금빛의 마력이 응축되어 화살의 형태로 변하더니, 쐐애액! 프란체의 다리를 향해 쇄도했다.

       

       쾅!

       

       “아악!”

       

       바닥에 엎어진 프란체. 시선을 돌려 다리를 살폈다. 화살에 맞진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넘어지면서 발목이 접질렸다.

       

       “으윽…!”

       

       애써 움직여 보지만 기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반면 소미레는 눈물을 흘리면서 걸어오고 있다.

       

       “미안해. 미안해. 아니, 안 미안해…….”

       

       결국 프란체의 앞에 당도한 소미레. 그녀는 단검을 양손으로 쥔 채 높게 들었다.

       

       “나를 위해 죽어줘…?”

       

       단검의 날이 바짝 세워져 쇄도한다. 턱! 프란체는 소미레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하지 마…!”

       “죽어, 죽어 달라고!”

       

       정당하지 않은 힘겨루기. 중력의 영향을 받는 소미레가 유리했다.

       

       “죽어줘 제발!”

       “그만…!”

       

       프란체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케일! 카자르! 라데아!”

       

       애타게 불러보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급함에 프란체의 눈가가 눈물로 반짝였다.

       

       “진! 진! 제발, 진!”

       

       뾰족한 단검의 날이 프란체의 가슴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그만…! 제발 그만…! 진!”

       

       흑마법을 사용하며 열심히 발버둥 쳐보지만, 그 무엇도 소미레에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죽어!!”

       

       푸욱! 프란체의 가슴에 단검의 날이 파고들었다.

       

       “커헉…!”

       “아……!”

       

       소미레는 단검을 뽑은 채 뒤로 물러났다. 거센 저항 탓에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위치는 복부 대정맥. 피가 울컥거리며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허, 허억…!”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호흡곤란을 겪는 프란체.

       

       “이대로 죽으면 안 돼…! 심장을!”

       

       소미레가 심장을 찌르기 위해 다시 한번 단검을 든 순간.

       

       쩌적, 쩌저적!

       

       이면 결계가 깨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소미레의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이대로 프란체의 심장을 찔러도 돌아가기 전에 그들에게 처형당한다.

       

       “아, 진짜!”

       

       어쩔 수 없이 소미레는 서둘러 도망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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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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