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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추방자 크쉬타르.

        이름은 그렇다 치고, 이름의 앞에 붙은 ‘추방자’라는 이명을 듣는다면 이 오크가 어떤 존재인지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동족들의 무리에서 쫓겨난 개체.

        그것이 바로 크쉬타르라는 오크였다.

       

        “크르르르르…….”

       

        “크르릉!

       

        “…….”

       

        수풀을 헤치고 튀어나온 것은 상처 입은 세 명의 오크들이었다.

        그리고 서로 딱 마주친 크쉬타르와 세 오크들은, 서로를 확인하자마자 저렇게 으르렁거리며 각자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여차하면 곧바로 한바탕 싸울 기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식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로 싸울 것처럼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살기가 없기 때문이다.

        즉, 서로 그냥 경계만 하는 것이다.

        다만 이 황량한 세상에서 살아오다 보니 좀 거칠게 보일 뿐이지.

       

        “옴뇸뇸.”

       

        “…….”

       

        “…….”

       

        그렇게 내가 주변 환경을 싹 무시한 채 식사만 하니, 마침내 이 오크들도 김이 팍 새어 버린 모양이다.

        뭔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이들은 조심스럽게 무기를 내리고선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디 부족이냐.”

       

        크쉬타르가 거친 목소리로 묻는다.

        그의 물음에 세 오크들 중 가운데에 있던 오크가 으르렁거리듯 대답했다.

       

        “왜 추방자가 여기 있는 거지?”

       

        “…….”

       

        어… 저건 대답이 아닌데?

        크쉬타르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오크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고로 대화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거늘…….

       

        “이 근처라면…… ‘페체몬다’ 부족인가?”

       

        “더러운 추방자 놈이 우리의 영역에서 무엇을 하는 거냐!”

       

        “아니, ‘사푼다’ 부족인가?”

       

        “그 꿍꿍이를 토해내라!”

       

        “…….”

       

        뭐 하는 걸까? 이놈들은.

        나는 빈 그릇을 옆에 놓아두며 오크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내가 나 혼자 잘 살아가는 ‘엘더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나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전생에 인간이었던 내 감성으로는 이상하게 보여도,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성체들의 일반적인 대화법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            *            *

       

       

        – 그게 말이 되나?

        – ??

        – 말도 안 돼.

        – 헐.

        – 헐헐헐

        – 진짜예요?

        – 그건 좀 무리수 같은데.

        – 또 잘못 기억하시는 거 아닌가요?

       

        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청자들이 어깃장을 놓는다.

        내가 한 이야기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 부분은 너희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어.”

       

        나는 이야기를 멈추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뭐라고 설명해야 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예전에도 말했지만, 차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분기란다.”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무수한 가능성으로 갈라져 나왔고, 지금도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가능성들.

        그것 하나하나가 바로 ‘차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는, 인간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차원에는 ‘관성’이라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단다.”

       

        – ?

        – ???

        – ?

        – ??

        – ?

        – 네?

        – ???

       

        무수한 ‘?’를 올리는 채팅창.

       

        “그리고 ‘광자’라는 존재가 없는 곳도, 규소 기반 생명체만이 존재하는 곳도 있었지.”

       

        – 헐?

        – 그게 가능함?

        – 광자가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나?

        – 거긴 무슨 세상임?

        – 미친…….

       

        채팅창을 통해 시청자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보여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들도 이미 겪어본 일이지 않으냐.”

       

        – ??

        – ???

        – ??????????

        – 뭘요?

        – 아, 이젠 슬슬 무서움.

        – ?

        – ㄹㅇㅋㅋ

       

        “게이트와 마나 말이다.”

       

        본래 내 고향 차원은 ‘게이트’나 ‘마나’, ‘마법’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었다.

        물론 관찰자들에 의해 그 존재가 허구의 존재로서 알려져 있기는 했다.

        하지만 존재 자체를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차원은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트가 생겨나고, 다른 차원의 개념이 이 차원에 섞이면서 달라졌다.

        이제 이 세상의 인간들은 ‘마나’와 ‘마법’의 실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생활에 그것들을 활용하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이다.

       

        “본래 과거의 인간들은 마법의 존재 자체를 허구로 취급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지금은 그 실체를 누구나 인정하지.”

       

        – 아.

        – 아아아

        – 그러네?

        – 아하?

       

        “그래. 이제 이해되는 모양이구나.”

       

        이렇듯 차원들은 무수한 가능성의 분기고, 그렇기에 다른 차원에서는 기존의 ‘상식’이 무조건 맞는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떤 차원에서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납’을 필수 영양소로 삼는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행성도 있을 정도니까.

       

        – 어라? 그런데 라나님이 지금까지 해주신 이야기에서는 저희 쪽이랑 상식이 비슷한 곳만 나왔던 것 같은데요?

        – 진짜네?

        – ㄹㅇㅋㅋ

        – ㅇㅇㅇㅇㅇ

        – 그러네?

        – 이건 해명 해주셔야 할 듯?

        – 해

        – 해

        – 명

        – 해

       

        “그야, 이곳과 비슷한 형태를 한 차원의 이야기만 들려주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말재주가 없는 드래곤이다.

        그런 내가 굳이 이쪽 차원과 상식과 법칙이 판이하게 다른 차원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

        가뜩이나 인간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내가 말이다.

        나중에 할 이야기가 다 떨어진다면 모를까, 이곳과 ‘상식’, ‘법칙’이 비슷한 경험담이 많은 나로서는 굳이 어려운 길을 걸어갈 이유가 없다.

       

        – 아하.

        – 그렇구나.

        – 라나님의 고생도 모르고 그만…….

        – ㅠㅠ

        – 눙물 ㅜㅜ

        – ㅠ

       

        “뭐, 궁금증도 다 풀렸다면 이제 이야기를 계속하마.”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후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모닥불을 쬐며 오크들의 실랑이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나 덕분에 한 번 무기를 내려놓았지만,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다 보니 다시 무기를 집어 드는 것이 보였다.

        저것을 보니 이쪽 세상에서도 대화라는 것은 서로의 말을 잘 들어 주어야 성립하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나?”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서로에게 달려들 것 같은 두 진영 사이로 끼어들어 갔다.

       

        “그만. 그만하거라.”

       

        “??”

       

        “란가!”

       

        세 오크들은 나를 바라보며 의아한 얼굴을, 크쉬타르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와중에도 크쉬타르는 나를 지키려는 듯, 내 팔을 잡더니 자기 등 뒤로 나를 데려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어린아이로 생각하는지…….

       

        “누구냐?!”

       

        “짐승인가?”

       

        “하지만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색적인 외형을 가진 내 존재에 세 오크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크쉬타르는 마치 천적에게서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처럼, 나를 자기 몸으로 가린 채 세 오크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꺼져라!”

       

        “……꺼지는 것은 너다 추방자!”

       

        “그래!”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다!”

       

        나의 난입으로 소강상태가 될 뻔했던 상황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내가 이들을 말려야 하는지 조금 의문이 드는데…….

       

        ‘그래도 크쉬타르는 내가 챙겨야지.’

       

        이 황량한 세상에서, 무려 종족 자체도 다른 나를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도와준 이가 바로 크쉬타르다.

        물론 나에겐 그의 도움이 딱히 필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은혜를 결코 잊지 않는 드래곤이다.

       

        “그만!!”

       

        후우우우웅!!

       

        “!!”

       

        “!!”

       

        기세를 조금 담아 소리쳤다.

        드래곤으로서의 기운이 마치 파동과 같은 형태로 퍼져나가고, 그것을 바로 지척에서 느껴버린 오크들은 바짝 굳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상대를 죽여 버리겠다는 투지는 이미 꺼져 버렸고, 남아 있는 것은 항거할 수 없는 천적을 마주친 약자의 눈빛뿐.

        물론 그 와중에도 크쉬타르의 눈빛에서는 ‘지키고자 하는 자’의 의지가 느껴졌다.

        흠.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한 아이로군.

       

        어쨌든 이것으로 싸움은 대충 뜯어말린 것 같다.

        남은 것은 이 아이들이 또다시 싸우지 않게 예방하는 것.

       

        “일단은 좀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떠하느냐?”

       

        “……알겠소.”

       

        “…….”

       

        내 말에 오크들이 얌전히 모닥불 주위에 앉았다.

       

        쿵!

       

        “음?”

       

        “?!”

       

        “뭐냐!”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우리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육식 동물로 보이는 커다란 짐승이 혀를 쭉 내민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세 오크 중 한 명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심장이 멈춰 서 죽었다고…….

       

        “으음…….”

       

        내가 기세를 좀…… 세게 내보냈나?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잠을 못 자고 있던 본체의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기세가 좀 날카롭게 날아갔고, 그런 것에 예민한 동식물들이 쇼크를 받아 심장마비를 일으킨 모양.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죽은 짐승의 심장 어림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약하게 충격!

       

        파지직!

       

        깨개갱?!

       

        “자, 돌아가거라.”

       

        깨갱! 깨개개개갱!!

       

        다시 살아난 육식동물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런 육식동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자, 하나같이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오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는 그들의 눈빛을 모른 척하며 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세 오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

       

        “…….”

       

        “…….”

       

        세 오크들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다 이놈들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충 심폐소생술 개념도 없는 곳에서 심장이 멈춘 짐승을 되살린 정체불명의 ET를 보는 인간의 심정)

    드디어 표지가 나왔습니다!

    본래라면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쪽이 더 예쁘게 뽑혀서 너무 좋습니다!!

    타이포는 조만간 신청해볼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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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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