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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네다섯 판은 기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적응에 필요한 시간은 예상보다도 짧았다.

        

       축복받은 신체 능력이 정말로 빛나는 건 몸을 직접 움직일 때라는 거겠지.

        

       상대 마법사가 다시금 찾아오길 기다리며, 잠시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잿빛 하늘. 갈색으로 변한 들풀 위에 흩뿌려진 피와, 드문드문 쓰러져 있는 시체까지.

        

       시야 전체를 커버하는 헤드기어는 제법 실감나는 전경을 제공했다. 조금 전의 전투도 제법……현실감이 있었고.

        

       그래. 이 정도면 사람들이 전통의 키보드마우스를 버리고, 힘겹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VR에 빠질 만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로그 VR 언제 나온다고 했더라.

        

       -쿵

       -쿵

       -쿵

        

       판검갑옷 사운드. 마법사가 합류를 위한 호위를 부른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본대에서는 일시적으로 우리가 수적 우위에 설 터.

        

       “기사 탑. 중앙 밀어주세요.”

        

       눈 앞의 검방기사는 제법 느긋해보였다. 아무렴, 상대는 도적이니까. 마법사의 호위 요청도 호들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다섯 걸음 정도 뒤에서,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고개를 휙휙 돌리고 있는 마법사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나쁠 건 없다.

        

       손동작으로 은신을 시전하고, 풀숲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길가에 서서, 기사가 내 앞에서 무방비한 측면을 노출할 때까지.

        

       아예 지나쳐서 후방까지 내어주면 더 좋겠으나……마법사가 사람인 이상 탐지 주문 쓰면서 올 터. 욕심을 부렸다간 선공조차 빼앗기리라.

        

       -쿵

       -쿵

        

       지척까지 다가온 기사는 제법 거대했다. 판금갑옷 보정도 있겠지만……그보다는, 내 캐릭터의 키를 현실에 맞춘 탓이겠지. 이건 마음에 안 드는데.

        

       그 다섯 걸음 정도 뒤에서, 마법사가 여전히 한껏 촉각을 곤두세운 채 따라오고 있었다. 탐지 주문 범위가……아직 좀 남았나.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반- 지금.

        

       다리를 박찼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려질 정도의 속도. 판금 갑옷에 우그러진 부분이 식별될 정도의 거리에 다가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오싹한 위화감이- 투구 속 기사의 눈과 마주쳤나. 은신이 풀린 건가. 너무 격한 움직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미세 컨트롤은 조금 더 적응해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이제 와서 본다고 달라질 건 없다.

        

       검방기사를 상대로 던지는 첫 수는, 언제나 허리다. 패링하기 매우 어렵고, 막기에도 까다로우며, 설령 온 몸을 뒤로 던져가며 피하더라도 반격을 하기 쉽지 않으니.

        

       -푸욱

        

       짜릿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제대로 박혔는데. 패링도, 방어도, 회피도 못했으면……대가를 치러야지. 지금쯤 시뻘겋게 물든 시야를 보고 있으리라.

        

       허리에 깊이 박힌 단검을 비틀어 뽑으며, 엎드리듯 몸을 극단적으로 낮췄다.

        

       -부웅!

        

       검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소리. 생각치 못한 상처를 입어 당황한 기사들이 가장 잘 날리는, 거리를 벌리기 위한 횡베기다.

        

       다만, 단순한 ‘저리가 견제’라고 하기엔……바람소리가 예상보다 컸고, 빨랐다. 스태미너를 과잉 투자해서라도 한 방 돌려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격이다.

        

       겁먹고 뒤로 물러났으면, 추격해오는 검에 걸렸겠지. 하단으로 회피했음에도 제법 아슬아슬했던 모양이지만……결과는 같다.

        

       무리한 공격으로 무너진 밸런스를 회복하려면, 최소 3초.

        

       위험에 노출된 탱커를 구하려 들 마법사를 낚아채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기사의 발을 노리듯이. 온 몸을 던져, 기사의 다리를 향해 달려드는 모션을 취하다가-

        

       아주 짧게, 기사의 등 뒤를 목표로 돌진기를 시전했다. 개발자의 의도는 생존기지만……원래 이동기는 앞으로 쓰면 돌진기, 뒤로 쓰면 생존기니까.

        

       -파스슷

        

       기사의 발 앞에 작은 얼음 결정이 생겨나다가 사라졌다. 마법사의 주문 중 가장 시전시간이 짧은 메즈기를 회피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

        

       가장 경계하던 주문이 사라졌다. 달리 말해, 수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설 수 있는 순간이다.

        

       탱커가 무력화되고, 메즈기조차 잃은 상황. 저 마법사는 이미 사냥감에 불과하다. 언제 생존기를 써야 목숨이나마 건사할 수 있는지 전전긍긍하고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파괴력이 큰 주문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근원에 담긴 감정은 마찬가지니- 결론도 마찬가지다.

        

       휙, 고개를 마법사에게 돌렸다.

        

       움찔, 마법사의 몸이 떨렸다. 시전하던 주문을 취소했나. 시스템상으로는 무슨 주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뻔하다.

        

       생존기였으면, 도적이 돌진할 징조가 보인다고 긴장할 이유가 없다. 일발역전을 노렸나.

        

       “하-”

        

       어떤 흐름인지 설명하고 싶은데. 직접 몸을 움직이며 하자니, 말하는 게 쉽지가 않다.

        

       “시선이 중요했어요.”

        

       그래도, 시선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야지. 대중적인 기술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으로는……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더라. 자세나 각도 등으로 다음 수를 파악하는 고급 기술에 비하면 난이도도 낮은 편인데.

        

       그러고 보면, 갤러리에서 논쟁이 붙은 적도 있었더랬다. 괜히 시선 돌리다가 시간 날리고 눈 먼 화살이나 맞는다, 겉멋 부리지 말고 칼질이나 해라, 이래서 무협지 읽은 새끼들은 상종하면 안 된다……마지막에 살짝 긁혀서, 신성한 결투로 결론을 지었던가.

        

       명예를 건 결투였다. 달리 말해……패배자의 명예는 내 것이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즐거운 기억이다.

        

       아무튼.

        

       원래도 제법 효과가 있는 기술이었다지만, VR에서는 파괴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주문을 취소한 마법사가 잠시 얼어붙은 사이. 판금 갑옷이 채 가리지 못하는 기사의 오금에 단검을 한 차례, 최대한 얕게- 살며시, 부드러운 푸딩을 가르듯 박아 넣었다.

        

       슬슬 3초가 끝나간다. 기사는 반격을 준비하고 있겠지.

        

       하지만 저 멀리 서있는 마법사는 모른다. 기사의 경직이 몇 초간 지속될지. 과연 저 도적이 단검을 얼마나 깊게 쑤셔 박았을지.

        

       고개를 먼저 돌렸다. 마법사는 그 자리에 서있다. 손이 움직이고, 입술이 달싹인다. 주문을 외고 있는 모습. 다리를 공격당한 기사를 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나.

        

       고마운 일이다.

        

       단검을 다시 뽑아낸 힘을 온전히 담아, 180도 뒤로 돌며 팔을 흩뿌렸다.

        

       -퍼억!

        

       경쾌한 소리.

        

       미간에 단검 손잡이가 돋아난 마법사가 허물어지는 광경은 제법 장관이었다.

        

       “읏, 아.”

        

       다만…….

        

       ……너무, 너무 격한 회전이었나. 압박속옷을 입었는데도 아파서…….

        

       아, VR 싫다.

        

       * * * *

        

       『와 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뭐야』

       『???』

       『응 그래그래 맞아 저건 그냥 흔한 아따먹이야』

       『아니』

       『캬』

       『???』

       『방금 소리 뭐임』

       『퍄퍄…….』

       『녹음하길 잘했어……!』

        

       습관적인 녹화였다.

        

       아따먹 팬튜브. 대회전킥 빌런. 최근 여러 별칭으로 불렸던 시연에게 더 이상 채팅이나 도네이션을 남길 용기는 없었으나-

        

       팬튜브 운영만큼은 포기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지은 죄가 있다고 도망치기엔, 책임감이 너무 강한 그녀였으니.

        

       [오늘도 감사히 먹고 갑니다 선생님……]

       [후 덕분에 숨쉼 ㄹㅇ]

       [와 시1발 편집 퀄ㅋㅋㅋㅋㅋ바로 정식 지튜브 가실 듯]

       [혹시 텐련이랑 연락되시면 제발 방송 좀 키라고 해주세요]

       [선생님 제발 더로리도 편집 부탁드립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이게 팬튜브라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그녀가 업로드하는 영상들에 달리는 댓글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이예나의 방송 문화 탓이리라. 성토의 장이 필요한……그리고, 굶주린 이들이 너무나 많은.

        

       지나간 방송은 흘러가버린 추억에 불과하다는, 누구도 원치 않는 철학을 가진 이예나. 불규칙한 방송에는 다시보기조차 남지 않고- 공식 지튜브도 없다.

        

       하지만-

        

       ‘재미라도 없든가.’

        

       그렇게 흘리기엔, 너무……너무, 말도 안 되는 플레이의 향연들이다. 아이디를 가리고 프로 부캐라고 하면,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후열을 괴롭히는 암살자부터, 탱크처럼 전열을 부수며 전진하는 장검 기사까지. 극과 극을 모두 담은 플레이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괴리에 반해서 생방송을 보기 시작하고……공부로 바쁠 때면, 나중에 보려고 녹화를 했다가……다른 팬들과 공유하고……기왕 공유하는 김에, 조금 더 재밌는 형태로 공유하고 싶어서 편집도 하다가…….

        

       ‘……너무 멀리 왔네.’

        

       차라리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의 정식 지튜브 채널이 개설되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마음 편하게 평범한 시청자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차피 수익화도 안 한 팬튜브는, 시간을 잔뜩 잡아먹는 취미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일도 안 하는 스트리머 때문에……결국, 그녀가 운영하는 팬튜브 구독자가 5만명에 육박할 지경이다.

        

       춘추전국시대마냥 난립한 7개 팬튜브의 구독자는 다하여 10만명에 달했다. 물론, 중복 구독한 인원이 상당히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다. 지금에 와서 그 많은 이들을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지튜브 보고 생방에 유입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는 마당에.

        

       법무법인 로그에서 제출했을 실물 고소장이 날아오는 날만 기다리며 벌벌 떨던 나날들 동안, 몇몇 방송을 녹화하지 못했다는 게 유일한 한이었다.

        

       ‘……사과 메일은 읽으셨던데.’

        

       최근 들어 급격하게 친해지고 있는 것 같은 오빠를 통해서 사과를 다시 전달해야 하려나. 시연이 그리 고민하는 사이, 방송 화면의 좌측 하단에서 노란색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

        

       귓속말이었다. VR버전 클라이언트에는 처음 접속한 이예나가 숨김 처리를 안 한 탓에 노출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 차례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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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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