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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예전에.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단서’라는 것을 처음 사용했을 때. 그런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왜 ‘올리비아’는 이질감을 알아채지 못하는가?

         

       갑자기 이상한 곳에서 눈을 뜨는데도.

         

       정신을 차린 순간 대화가 끝나 있어도.

         

       키엘이 갑자기 거리를 두고, 멜리나가 묘하게 반응하고, 리브가가 적의를 드러내는데도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기억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서? 물론 키엘의 ‘단서’를 사용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키엘이 기억하는 범주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게끔, 반투명한 막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막은 사라졌다. 그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키엘의 ‘단서’가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 쯤이었을 것이다.

         

       그 때 알았다. ‘단서’는 단순히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몰살 회차라는 과거에, 직접 개입하는 것임을.

         

       플레이 기록에 불과해서?

       아니. ‘올리비아’는 단순한 플레이 기록이 아니다.

       그렇다면 에스티와 함께 항구도시 이카일을 전복시킨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포악한 감정에 몸을 맡긴 결과를, 직접 목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올리비아는 이만큼이나 격렬한 살의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을 찢어버리고 싶은, 능욕도, 즐거워서도 아닌, 단순히 죽인다는 행위 자체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살의.

         

       올리비아는 제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붉은 핏물을 보았다. 그녀 자신의 피는 아니였다. 척추째로 뽑혀, 힘없이 널브러진 대악마 아가레스의 혈액이었다.

         

       아가레스는 아직 죽지 않았다. 비록 머리가 뽑힌 상황이었지만, 명색이 서열 3위의 대악마였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언젠가는 재생하겠지.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또 다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게 될까봐 두려웠다.

         

       ‘……저항할 수 없었어.’

         

       포악한 살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성을 반쯤 잃고, 악마처럼 아가레스를 몰아붙혔다. 거기까지는 백 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아가레스의 목을 뽑아낸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만한 행동. 연쇄살인마도 칠공(七孔)에 바늘을 꽂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통어린 신음을 음미할지언정, 척추째로 뽑아내어 죽이지는 않는다.

         

       그건 인간으로서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라이칸스로프같은 마물이나 할 짓이지.

         

       올리비아는 차라리,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올리비아’였으면 했다. ‘올리비아’가 역으로 빙의한 상황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을 부정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가레스에게 분노한 것도, 그의 목을 척추째로 뽑아낸 것도 전부 올리비아 자신이 한 짓이었다.

         

       예전에, 회귀자 여섯과 다투었을 때 느꼈던 감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노골적으로 육체를 조종하려 드는 것 같았다면, 이번에는 오로지 정신만을 건드렸다.

         

       그것조차도 매우 은밀했다.

         

       천천히, 티나지 않도록. 매우 자연스럽게 올리비아가 분노하도록 의도했다.

         

       암주와 악마사냥꾼의 죽음이 목전에 놓인 것을 직접 보게 된 순간.

         

       거기서부터가 발단이었다.

         

       악마사냥꾼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감정은 천천히 끓어올랐다. 처음부터 끓는 물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 뛰쳐나오지만, 점점 따뜻해져 끓게 된다면 위험한 줄 모르다 익어 죽는 개구리처럼.

         

       올리비아 자신도 그러했다.

         

       공동 바닥으로 착지했을 때에는, 이미 폭주한 후였다.

         

       ‘내가 왜…….’

         

       암주와 악마사냥꾼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귀찮고 방해되는 놈들. 그들에게 품은 감정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멜리나나 리브가였다면 모를까, 그들이 해코지를 당했다고 해서 올리비아가 분노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살의의 발단은 그 상황에서 비롯됐다.

         

       올리비아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정신을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실 알고 있었다. 조종당하지도, 환각에 빠지지도 않았다.

         

       다만 감정에 취했다.

         

       그래서 분노했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죽하면 조종당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매 순간 냉철했던 자신이,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내 어찌 웃지 아니할까! 평생 기다려왔던 그분의 강림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였는데!

         

       올리비아는 꿈틀거리는 아가레스의 머리를 노려보았다. 그대로 발로 짓밟아 터뜨리고 싶다는 욕구를 애써 밀어내며, 손끝에 마력을 응축시켰다.

         

       [스킬, ‘라이트닝 볼트’를 사용합니다.]

         

       콰직! 익숙한 파열음과 함께 아가레스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다. 올리비아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도 녀석은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거라고 하기도 뭐했지만.

       하지만 놈의 얼굴에 피어오른 광소만큼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콰직! 콰직!

         

       공동이 밝아지고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올리비아는 아가레스가 재로 변할 때까지, 마법을 쏘아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악마, ‘아가레스’를 처치했습니다.]

         

       [토(土)의 마경, 모리아를 클리어했습니다.]

       토의 마경 열쇠가 지급됩니다.

         

       기다렸던 알림이 떠오르자, 그제서야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앙금을 토해내듯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쉰다고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이제 괜찮아진거야?”

         

       연쇄살인마가 경계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손에는 피처럼 붉은 낫이 들려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반으로 갈라진 돌조각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자신의 마법에 휩쓸리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쓴 흔적이었다.

         

       연쇄살인마의 뒤편에는 악마사냥꾼과 암주가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이제 보니 자신만 지킨 게 아니고, 저들도 지킨 모양이었다.

         

       ‘하. 도망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시키면 잘 듣는 게, 꼭 개 같았다.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다.

         

       “일단은.”

       

       올리비아는 반색하며 달려드는 연쇄살인마를 밀어냈다. 아직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단서 #12의 주인은, ‘암주(暗主)’입니다.]

         

       다행히 암주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피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연쇄살인마가 포션을 소량만 먹인 모양이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은가.’

         

       방금 그 모습을 보였더라면, 정말로……좋지 않은 오해를 샀을 테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할거야?”

       

       올리비아는 연쇄살인마의 실없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암주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손끝에서 파직 전류가 일었다.

         

       암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제압했다는 말이 뜨지 않자, 올리비아는 전류의 세기를 약간 올렸다.

         

       “끄르륵.”

        “오오…….”

         

       ‘끄르륵’이 암주고, ‘오오’가 연쇄살인마였다.

         

       “의식은 차리지 못하게 하면서 고통은 그대로 느끼게 하다니…….”

         

       이런 건 고문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고통을 주기 위함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격통과 함께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겠지. 가히 혁명적이다.

         

       연쇄살인마는 감탄했다는 얼굴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는 그런 연쇄살인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좀 비켜봐.”

       

       연쇄살인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쇄살인마는 평소처럼 대들지 않았다. 보나마나 암주가 거품을 무는 광경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올리비아는 그 이유를 지레짐작했다.

         

       “끄르르르륵!”

       “오오오오오!”

         

       확실했다.

         

       ‘왜 이렇게 질겨.’

         

       올리비아는 더는 암주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단서를 얻은 이후에는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 자체를 지워버릴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누가 아가레스로부터 자신들을 구해낸 것인가.’에 대한 의문까지 해소해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아가레스와 싸워 이기려면 레드 드래곤 로드 에리야스 정도는 와야 하는데, 그는 황녀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의심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어쩌겠나? 암주는 올리비아가 아스모데우스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멜리나나 리브가를 의심할텐데, 그들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멜리나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알려나?

         

       [회귀자, ‘암주’를 죽이지 않고 제압했습니다!]

       [단서 #12를 획득합니다.]

         

       마침내 기다렸던 알림이 떠올랐다. 올리비아는 미련 없이 암주에게서 손을 떼어냈다.

         

       올리비아는 공동의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아가레스와의 전투에서 떨궜던 뇌전 때문인지, 천장에는 거대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구멍을 타고 내려오는 미약한 새벽빛을 받아내며, 올리비아는 공동 곳곳에 스며든 본인의 마력을 도로 흡수해냈다.

       

       대마법사들, 설령 멜리나가 오더라도 흔적을 발견해내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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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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