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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생각해보면 그렇게 넓은 집에서도 진짜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었다.

        

       물론 그 저택은 나의 소유였다. 법적으로도 내가 아버지께 물려받은 곳이었고, 아홉 살 이후로 ‘내 집’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곳이 내 집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 저택 안에 있던 것 중 내가 원해서 산 것은 극소수였다. 집 안의 가구들이나 인테리어들은 내가 그 저택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다 준비되어 있던 거니까.

        

       물론 부족한 것은 없었다. 적어도 ‘물건’으로선 부족한 것이 없기는 했지만……

        

       마치 남이 빌려준 것 같은, ‘나의 것’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그곳에 있을 때면 늘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챙겨서 나온 짐도 커다란 여행용 가방 안에 깔끔하게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며칠 동안 갈아입을 옷과 속옷, 교복, 그리고 서랍 안에 있던 노트와 편지, 몇 가지 잡동사니들.

        

       사실 이 중에서도 교복과 속옷은 대부분 내가 고른 옷이 아니었다. 그나마 지난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니며 조금씩 산 사복들 정도만이 내가 제대로 고른 옷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몇몇 액세서리들은 내가 산 물건이긴 했다. 대부분 아주 어린 시절, 어디서 어떻게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물건들이지만. 아마 대부분은 아버지나 어머님과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길거리 좌판에서 샀던 것 같다.

        

       모두 모아서 작은 상자 안에 다 들어갈 만큼 별로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물건 대부분은 어디서 어떻게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작은 물건들은 모두 내가 과거에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는 증거이자 추억의 파편들이었다.

        

       내가 밖에 나갈 때면 늘 머리에 하고 다니는 핀도 그런 물건 중의 하나였고.

        

       반면에, 소희의 방은 나의 저택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굳이 물건 하나하나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지 않아도, 그저 한 번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이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이 소희의 취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희는 친한 친구들에게는 활기찬 강아지 같은 성격으로 접근했지만, 반대로 자신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가시를 세웠다.

        

       가시를 세운 모습만 보면 성격이 다소 거칠어 보이기도 했고, 사람에 따라 다소 중성적으로 보거나 남자 같은 일면이 있는 괄괄한 성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음, 적어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소희의 진짜 성격은 아무래도 친구들과 있을 때 나오는 성격인 것 같다.

        

       방 안에는 어두운색의 물건이 별로 없었다.

        

       아까 가방을 두고 나오느라 잠깐 봤을 때는 막연히 정리가 잘 되어 깔끔한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기묘하게 복잡해 보였다.

        

       아니, 지저분하거나 난잡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뭐랄까,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이나 침대 위에 올라간 커다란 인형들 하나하나는 분명 잘 정리되어있는데, 그런 잡동사니들이 눈에 너무 잘 보여서 이상하게 정리가 안 되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분명 정리는 잘했는데, 이상하게 어질러져 보이는, 그런 방이었다.

        

       ……그래,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자, 다시 소개할게. 여기가 한동안 우리가 같이 지낼 방이야!”

        

       “응…….”

        

       좁다.

        

       아니, 방이 아니라, 침대가.

        

       소희의 침대는 누가 봐도 1인용이었다. 애초에 이 방 자체가 두 사람이 함께 쓰라고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들어가면 너무 좁아서 북적거리는 수준은 또 아니었지만.

        

       “아, 만약 침대가 너무 좁은 것 같으면,”

        

       내 시선이 그 분홍색 침대에 가 있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소희가 얼른 입을 열었다.

        

       “내가 아래에서 잘게. 같이 지내자고 한 사람은 나니까. 손님을 바닥에서 재울 필요는 없지.”

        

       “아냐, 아무리 그래도 너희 집이잖아.”

        

       “응? 아, 그럼 둘이서 바닥에서 잘까? 이불 깔면 오히려 바닥 쪽이 더 넓을 텐데.”

        

       “…….”

        

       그건 그거대로 좀 이상하지 않나?

        

       물론 바닥이라고 난방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 같이 잔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애초에 손님 바닥에서 재우는 것이 미안하다고 본인도 같이 바닥에서 자면 주객전도가 아닌가?

        

       “괜찮아. 어차피 평소에도 같은 침대에서 잤으니까.”

        

       소희가 밤중에 화장실에 갔다가 침대를 헷갈리는 버릇은 쉽게 낫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아침마다 이상하게 비좁은 침대 위에서 일어나야 했다. 세 사람이 누워도 충분한 침대였지만, 따뜻한 열원을 찾아 달라붙기라도 하는 건지 소희와 수아 두 사람은 모두 나에게 딱 달라붙어 있곤 했으니까.

        

       ……사실 그래도 그 넓은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1인용 침대라고는 해도, 우리 둘이 같이 누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조금 비좁기는 하겠지만. 정 불편하면 그때 누가 아래에서 잘지…… 아니면 소희 말대로 같이 바닥에서 잘지 정하면 그만이고.

        

       “정말!?”

        

       나의 대답에 소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혹시 혼자 자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가?

        

       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평소에는 소리랑 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까. 매일 침대로 들어오는 것도 그게 버릇처럼 된 걸지도 모르고.

        

       가족과 함께 지내기에, 가족이 없으면 외로움을 느끼는 성격인 걸까?

        

       “그래, 일단은 그렇게 해 보자. 어차피 같은 방에서 자기로 했으니까.”

        

       “좋아!”

        

       소희의 대답은 분명 나의 말에 대한 것이었겠지만, 아무래도 그 방향 자체는 나를 향해 있는 것이라 조금 간지럽게 느껴졌다.

        

       *

        

       “…….”

        

       가족 넷이 지내기에 충분한 크기라고 생각되는 집이었고, 아마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내 방보다 더 넓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면적 내에서 구획이 나누어져 있어서 그런지, 소희의 집 어디에 있어도 내 방보다 조금 좁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실이나 방 하나하나의 면적을 따지면 그게 사실이기도 할 거고.

        

       무엇보다 내가 더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이 세 가족은 거의 언제나 같은 곳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오늘 저녁이 되어서야 여기에 처음 왔고, 그래서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있거나, 부엌에서 조금 늦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것밖에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도 있을 거다.

        

       내 방에서도 보통 나, 소희, 수아, 하늘이 이렇게 넷이서 노는 경우가 많고, 종종 일이 있다면 양혜인까지 와서 있는 때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방 안에서는 이야기 외에는 할 것도 없고, 방 자체가 절반 이상이 그냥 텅 비어있었기 때문에 네 사람만으로는 가득 찬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하나의 텅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이유와 용도에 따라 나누어진 방과, 가족들이 공유하는 거실과 주방이 있었다.

        

       TV가 켜져 있었지만 아무도 그걸 보고 있지는 않았다. 낮은 소리로 혼자 떠들고 있는 TV 소리를 배경으로,

        

       “소리야, 이거 식탁 위에 좀 가져다 놔줘.”

        

       “응!”

        

       능숙하게 밥그릇에 밥을 퍼담고,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는 소희와 그걸 하나하나 받아서 식탁 위에 올려두는 소리의 대화 소리가,

        

       “…….”

        

       아무 말 없이 집중해서 프라이팬 위에서 소시지를 굽는 소희 아버지의 소리가 섞여서, 세 사람만으로도 뭔가 부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시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 정겨워 보였다.

        

       소희는 분명히 꽤 오랜 시간 동안 집에서 떠나서 있었는데도, 이렇게 돌아오자마자 바로 가족들의 사이로 녹아들었다.

        

       아니, 녹아들었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겠지. 소희는 애초부터 이 가족의 일원이었으니까.

        

       아무리 오랫동안 바깥으로 나가 있어도, 여기로 돌아오면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다. 언제 돌아오건,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시 가족으로 지낼 수 있다.

        

       그 인연은 남이 함부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언니.”

        

       “응?”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소리가, 나를 뚫어져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나?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곳은 부엌의 식탁이었다. 소희가 일단 앉아있으라고 해서 앉아있기는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집주인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그냥 이렇게만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슬퍼?”

        

       소리가 다시 한번 엉뚱한 소리를 했다.

        

       “으응?”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소리는 여전히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뭔가 슬픈 생각을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어.”

        

       “……그러니?”

        

       이렇게 어린아이가, 내 감정을 읽었다는 걸까?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확실하게 연결된 가족들과는 다르게, 나는 어머님과의 관계를 끊어가고 있는 와중이었으니까.

        

       애초에 여기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거였고.

        

       “아냐, 괜찮아.”

        

       “정말로?”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도, 소리는 한동안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알았어. 믿어줄게.”

        

       그리고 양 허리에 손을 척 올리더니 마치 선심 썼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즉, 실제로는 전혀 믿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래, 착하네. 고마워.”

        

       하지만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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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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