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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눈을 뜨니 예전에 물이 샜을 때 진 얼룩이 남은 천장이 보인다.

         

         덤으로 자꾸 날벌레가 기어 들어가서 죽고, 껴 놓아 봤자 방이 어두워지기만 한다는 이유로 아예 커버를 빼놓은 형광등이나.

         

         딱히 뭔가 장식품을 구해서 걸어 놓는다는 취미는 없지만, 방이 황량한 걸 넘어 조금 황폐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예의처럼 박아 둔 철 지난 달력도.

         

         이야… 이거 꽤 오랜만 아닌가? 하는.

         상당히 실없는 감상이 떠올랐지만 일단 몸을 일으켰다.

         

         그리운 건 그리운 거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대비책이다 대비책. 그것도 아주 확실하고 깔끔한 걸로.

         

         아무래도 장기 계약인지라 에나마 근처에서 오래 알짱거리긴 했는데, 대기업쯤 되면 수도 없이 많을 외부 협력자 중에 하나로 좀 일했답시고 미친 마마보이랑 정면으로 박치기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요…!

         

         굳이 이런 고민거리를 따로 제공하지 않아도, 사는 것만으로 팍팍해서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왜 이런 억까가 자꾸만 나를 덮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딘가에 계실 주인공이라는 무게를 지닌 존재라면 게임 내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사연도 있고,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는 만큼 분명 운명론적인 무언가도 있으니까 상층부 인물과 엮이더라도 그렇구나~ 하겠는데.

         

         메가코프의 돈만 타 먹어도 ‘와… 너는 그런 경력도 있냐?’ 하는 반응이 돌아오는 현실에서 파라다이스 최고 간부나 에나마 창립자 일족과 연달아 엮이니까 슬슬 혼란-인지 부조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혹시, 내가 조심성이 부족한가? 하는 자기 비판적인 생각도 좀 들었고.

         

         ……….

         …….

         아니, 그게 말이 되냐!? 내가 뭘 잘못했는데!

         

         두고 봐라 진짜, 이번 일 끝나고 보수만 타면 그 돈으로 다른 해커들처럼 비밀 아지트 같은 멋있는 은거지부터 만들고. 안에 숨어서 원작 개시까지 그 어떤 불행한 사건 사고에도 휘말려 들어가지 않은 채 차곡차곡 돈만 모으면서 버틸 거니까.

         

         물론…… 중간 중간에 간섭해야 할 이벤트나, 안면을 터 두면 괜찮은 인맥이 떠오른다면 또 모르겠지만.

         

         끼익…!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이불을 걷어치우고, 바로 침대와 맞닿아 있는 의자를 타넘어서 컴퓨터 앞에 착석.

         

         효율을 따지자면 생각이고 고민이고 나발이고 전부 집어치우고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려야 하는 게 맞긴 한데, 원리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잠들었던 의식을 깨우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막상 매번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이것도 다 요령이 생기면 할 만 해지려나?

         

         일단 잡담은 여기까지. 안 그래도 저번에는 미래를 엿보는 금기 비슷한 걸 저지르려 하다가 쫓겨난 탓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은 게 없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얻기는 힘들어도.

         알아 둬서 나쁠 거 없는 지식이나, 내가 원래 알던 인생 게임 ‘네오 헤이븐’과 이 기묘한 짝퉁 게임 ‘네오 헤이븐 프라임’의 차이점 혹은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걸로 득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음… 그러면 역시 또 위키를 봐야 하나? 아니면 그냥 얌전히 게이머 커뮤니티?

         노골적으로 앞날을 알아보려는 건 어차피 자비없이 막힐 테니까, 그냥 되는대로 유저들이 떠드는 주제에 편승해서 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에다마츠 놈의 문서라도 한 번 훑어보려고 어떻게 시도하는 게 낫지 않나…? 진짜 걔랑 그놈의 비서 새끼한테 잘못 물리면 인생이 더럽게 피곤해질 게 너무 뻔한데….

         

         ‘쓰읍….’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적당히 웹서핑 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름이 아니라, 마우스를 휘휘 흔들자 이미 켜져 있던 유저 활동이 왕성하기로 유명한 사이트가 켜져 있어서 그대로 구경이나 하면 될 것 같기도 했고.

         

         괜히 욕심 내다가 두 번 연속으로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되도록 지양하고 싶었으니까.

         

         딸깍.

         …그 놈의 야짤 같은 2차 창작물만 아니라면 참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할 텐데 말이지.

         

         

         [ 오늘도 알찼다. 거의 6시간 동안 경찰 장비 노가다 꼬라 박아서 든든하게 기동대 풀셋도 뽑고 남는 장비도 다 마켓에 팔았다. ]

         : (대충 합산 내역이 마이너스인 짤) 그런데 왜 벌금이랑 부활 비용 합친 게 수익보다 많냐?? 겜에 시간을 갈아 넣었으면 뭔가… 뭔가 돌려주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님???? 어이업내 이거.

         

         > 그럼 경찰 죽이고, 기업 치안 유지대 박살내서 얻는 수익이 범칙금보다 많으면 누가 일을 해요 수배 등급이나 높이고 있지.

         >> 아하~~

         > 이거 완전 얼탱이 없는련 아니야;;

         

         

         [ 겜 배경은 어차피 사법 체계도 좆망하고 제네바 협약도 없다면서 ]

         : 템 설명 읽어보니까. 뭐 막 발전된 기술력으로 사기쳐서 총 무게도 줄이고~ 반동도 줄이고 했다는데. 그럼 RIP탄이나 백린탄 같은 건 왜 없냐? 지들도 처맞고 좆되긴 싫어서 만드는 기업이 ㅇ벗나봄??

         

         > 슈나이더 알선 친화도, 유부남 아재랑 친목질 하기 싫으면 블랙마켓 거래 등급이나 기업 신용 평가 빡세게 올리셈. 최종 티어 탄약군에 있는 게 아니라 중간 어딘가에 있음. 화기 리스트 잘 봐라 http://NeohavenPwiki/gameinfo/ammolist…….

         >> ㅇㅎ 꼭대기에 있는 GRB탄은 머임. 검색하니까 감마선 붕괴가 나오는데 설마 그런게 가능함…?

         >>> ㄴㄴ. 그냥 탄두에 변이형 세슘-147이란 거 박아서 쏘는 특제탄임. 혈액 속에 녹아들고 유전 정보도 다 조각내놔서 에나마 기술로도 치료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치료 불가 데미지 판정 가진 탄종이라 올려치기 된 거. 그래도 FPS겜이라 상태 이상거느니 걍 쏴서 죽이는게 더빠름.

         >>>> 아니;;; 그럼 존나 무서운거 맞잖아 개미친;;

         

         

         [ 레오나르 경 보스전 스킵 조건이 정확히 뭐임? 아나스타샤 호감도 아니었음? ]

         : 내가 수치를 잘못 알고 있었나? 10인가 15만 채워도 봐주는 걸로 알았는데 착각했나? 아니면 핫픽스 받음?

         

         > 블랙마켓 돌입 전 단계에서 전화를 걸던가, 자유 대화를 해서 걔한테 행선지를 미리 말해놔야 하는거임. 그냥 무작정 꼬라박는다고 저쪽이 알아서 굽신대며 굽혀주는게 아니라.

         >> 어… 그럼 이미 전투 시작했으면 어캄. 걍 죽임?

         >>> ㅋㅋㅋ… 그래 죽이던가. 그렇게 하나 둘 막 죽이다보면 카르마 씹창나고~ 호감도도 조져서 나중에 ‘진짜 좆되는 보스전’도 해볼 수 있을 테니 참 좋겠네 그래~

       

         

         

         [ DLC나 대규모 패치로 꾸준히 동료나 네임드 NPC 추가해주는 건 좋은데… 이게 시발 의미가 있냐?? ]

         : 까놓고 말해서 어차피 근거리랑 서포터 0티어 동료는 적폐 발렌타인 자매로 고정이고. 끽해야 원거리 0티어가 헥사곤이냐~ 안야냐~ 이정도 차이밖에 안나고.

         그렇다고 또 외형이 괜찮냐고 하기엔… 마리나를 봐라. 서브딜되고 미드 훌륭한 여캐 해커이신데 왜 시발 머리모양이 하필 아프로 스타일이냐고 대체 왜왜왜!!

         

         > 그… 성능충을 하시던 외형을 파시던 둘 중 하나만 하시면 안될까요???? 진짜 배때지가 개쳐불렀네.

         > 블랙 소울이 넘쳐서 그럴수도 있찌 왜;;

         >> 얘는 시발 애당초 피부부터 흑인도 아니잖아!!!! 마리나 세라노면 당연히 독일계나 아일랜드계 아니냐고.

         >>> 스웩이 넘치는 유러피안인가보죠~

         > 엉킨 머리카락 사이에서 권총 같은 거 뽑아서 쓰더라.

         

         

         난장판이 따로 없다.

         혼돈과 질서 그 사이 어딘가를 헤매면서도 기적적으로 질의응답 같은 커뮤니티의 순기능이 용케 돌아간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니면 벽 보고 자기 할 말만 퍼붓는 애들이나 일기장 쓰는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표해줄 만큼 유동 인구가 넘치는 흥겜이라고 봐야 하나?

         

         하여간 여러모로 인터넷이나 그 사용자는 시대는커녕 세계가 달라도 여전한 것 같아서 안심되었다.

         그리고 말하는 꼴을 보니 마리나 얘도 무슨 등장인물 취급당하는 것 같은데. 호레이쇼나 아론이라는 선례가 있어서, 캐릭터가 추가된 게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혹시 내가 만나는 인물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그건 과연 내가 원흉인지. 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오래된 질문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 나중에 절대 내 일 방해하지 마!’라고 협박할 수도, 이미 맺은 관계를 물러버릴 수도 없으니까 아마 어느 정도의 뒤틀림도 각오하는 게 좋으리라.

         

         ‘……혹 떼려다 혹 붙인 기분이네, 거 참.’

         

         그나저나 슬슬 시야가 흐릿해지고, 손이 뻑뻑한 게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가 본데 마지막으로 볼만한 글이 어디… 아, 이거 괜찮아 보인다.

         

         

         [ 솔직히 다 맛보기도 전에 컨텐츠가 계속 늘어나는 건 개좋음 ㅋㅋ ]

         : 근데 인간적으로 씨발 진엔딩 조건은 뭔가 힌트를 주던가 하고 게임 볼륨을 늘리는 게 맞지. 씹 달성율 꽉 채워야 마음 편안해지는 사람은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서어어얼마 나중에 추가된 퀘스트나 캐릭터들도 다 연관 있어서 여태까지 아무도 못 찾은 건 아니겠지?? 설마????

         

         

         한 때의 나와 똑같이 고통받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 한 켠이 훈훈해졌다.

         

         다각도로 글을 해석해봐도. 이 동네의 나나 다른 유저들은 아직 망할 차원 균열 간섭기 설계도를 못 얻은 모양이다.

         

         괜스레 충고랍시고 거들먹거리며 댓글을 달고 싶어졌다.

         이미 목표를 이뤄본 선구자가 주는 조언의 한마디랄까, 그걸 해서 얻는 달성감은 있겠지만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엄청난 현상이 발생할 거라는 걸 경고해주고 싶은 작은 배려랄까.

         

         쯧쯧. 애당초 저런 고민을 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우선 빈 수집칸은 제외하고 다른 모든 업적이나 도전과제를 꽉 채워야 거기서 설계도가…!

         …아니지, 그 녀석이 설계도를 주는…… 아닌데? 블랙마켓에 경매 아이템으로 등장했었나? 어라…? 토너먼트 상품으로… 이것도 앞뒤가 안 맞는데?

         

         

         ………내가 그 설계도를 어떻게 얻었었지?

         

         

         “아…?”

         

         – 일어나셨습니까? 매일 반복하는 걸 권장 드리고 싶은 수면 패턴은 절대 아니었지만, 확실히 푹 주무시니 평소보다 몽롱함이 덜 하신 것 같습니다. –

         

         멍하니, 관대함을 싹 빼고 박하게 평가하자면 살짝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으려니 제로가 절제된 집사 마냥 아침 인사를 건네 왔다. 편안하게 마시기 좋은 미지근한 물도 한 잔 곁들여서.

         

         지금 내 정신이 특별히 더 또렷해 보인다면 그건 과도한 충격으로 인해 혈액 순환이 촉발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걸 전부 다 설명하자니 골치가 아프고, 요약해서 털어 놓자니 바보 같은 내가 엄청난 사기를 당했다는 간단한 이야기라 좀 애매했다.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할 게 뻔해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숨겨둔 설계도를 다시 꺼내서 펼쳐 놓고 출처나 단서를 찾아보던가 해야지 원.

         

         “하아아……. 그래, 정신이 아주 말똥말똥해지네. …간밤에 별일 없었지?”

         

         – ……. –

         

         “…얌마.”

         

         당연히 아무 일 없었다는 태연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고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더만.

         갑자기 스캐너의 빛을 끄고 불길한 침묵을 연주하기 시작한 제로를 지그시 노려봤다.

         

         왜 이 타이밍에 그러는 건데. 격리 구역 내에 아는 얼굴밖에 없는데 사고 칠 게 뭐가 있다고.

         제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줘라… 응?

         

         – ……막대한 크레딧 부채가 인간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시료가 있었습니다. 또한 미스 마리나와 미스터 켄. 두 분이 작업을 따로 진행하고 싶어하셨지만 제가 응대하자 수긍하고 물러나 주셨습니다. –

         

         아잇…! 그냥 혼자서 내장 기록을 다시 분석하는 거였어? 이게 진짜 사람 놀래키기는!

         

         “뭐야, 크레딧 부채가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네. 역시 너한테 맡겨 두기를 잘 했어!”

         

         – …아샤님의 신뢰에 보답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

         

         어딘가 뿌듯한 기색을 감출 생각도 없이 말하는 로봇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한때는 좀 어떻게 되려나 싶었지만. 얘와는 이상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세하게 말하지 않은 제로는 유죄 판결을 받고 혼날 예정입니다.)

    립탄은 RIP(Radically Invasive Projectile). 탄두가 적중하면 끝이 파편화 되어 갈라지면서 살을 찢어 놓는 그 실용성 적은 녀석.
    GRB(Gamma-Ray Burst)탄은 이름만 차용한 상상의 산물입니다. 감마선 붕괴가 일어나려면 우주 규모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늦더라도 오늘은 에피소드를 꼭 마무리해야지… 했거늘. 밤을 꼴딱 샜는데도 문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서 기어이 또 상하편으로 잘랐습니다. 언제나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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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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