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7

     같은 문명 수준의 두 국가가 전쟁을 치를 때, 유리한 쪽은 당연히 자원이 많은 쪽이다.

     인적자원이든 물적자원이든, 일반적으로 보면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노스트럼은 자원이 풍부했다.

     개발된 일부는 모르가니아와 같은 권신(權臣)이 독점하는 모습을 보였고.

     노스트럼 왕국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비룡은 왕가에서 전문적으로 다뤘다.

     일반 백성들?

     하루하루 농사를 짓고 밥만 축내며 배설이나 하고 세금이나 내는 존재.

     노스트럼이 멸망한 이후 제국의 역사학자들이 ‘노스트럼은 왜 멸망하였는가?’라는 토론회를 열 때마다, 노스트럼이 멸망한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기술의 발전.

     노스트럼은 기사의 검술을 극대화하였고, 마법사 개인의 기량을 극한으로 갈고닦았다.

     영웅만능주의.

     영웅적 능력을 갖춘 한 개인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때때로 그러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의 노스트럼은 멸망 직전까지 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빼앗자.

     

     전쟁으로 인해 영웅급 인재가 우후죽순 튀어나오기 전에, 최대한 왕국 내부에 침투하여 인재를 빼앗자.

     그러한 과정에서 가장 확실하게 성과를 본 게 아마도 ‘풍석’ 쪽이리라.

     “아스타시아. 혹시 예전에 이 광장에서 폭발 사고를 일으켰던 마법사를 기억하십니까?”

     낮.

     나는 아스타시아를 데리고 과거 축제가 열리던 구도심의 광장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기억하죠. 흡혈귀의 권속이 되어버린 그 마법사잖아요.”

     “예. 그 마법사, 아무래도 다른 방면으로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능력?”

     “제국에서 만들어진 풍석의 개발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정확히는 발상의 근원지라고 해야 하나.”

     “…네?”

     

     아스타시아가 당황했다.

     “풍석은 제국 마도공학공단에서 개발된 건데….”

     “발상의 근원은 다를 수 있죠. 지브롤터 지하에 있는 광물이 모르가니아에서 채광된 물건으로 ‘태그 갈이’ 되어 시중에 팔리는 것처럼.”

     “그래서 제국에서 그 사람을 흡혈귀로 만든 건가요? 소용이 다 해서?”

     “아마도 그건 아닐 겁니다. 사실은 이 부분은 흡혈귀, 블러드 엘프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받쳐줘야 합니다.”

     사실은 회귀자로서 가진 정보까지 총동원하는 셈이지만.

     “오랜 시간 흡혈귀를 사냥해 온 결과, 흡혈귀는 자기 권속으로 만든 자의 기억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상위 개체가 하위 개체를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 때, 그가 알고 있는 지식과 개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더라.

     “원리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피를 빨아먹으면서 그 피에 담긴 기억이라도 흡수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엄청…신기하네요.”

     “예. 신기하죠.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생물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상대하는 데 몹시도 주의해야 했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오염지대에서 흡혈귀 사냥을 하며, 우리는 여러 번 위기를 겪었다.

     죽을 뻔하기는 했지만,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리프트령’에 있는 흡혈귀 사냥꾼 중에는 은퇴한 이는 없다.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기억전이라는 부분입니다. 마법사가 풍석에 대한 발상을 어디에서 했는지 대충은 감이 오지만, 그 발상이 결국 흡혈귀를 통해서든 어떻게든 제국으로 넘어갔다는 게 중요하죠.”

     기술의 특허나 원조, 그에 대한 기타 사항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테르시안 제국은 풍석 개발에 성공하여 비행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높아 보이는 저 관문조차, 하늘을 날아오는 거대비행선을 향해 마도포격을 날릴 수는 없어요.”

     “…….”

     “전쟁이 일어나는 날, 제국은 협곡 위를 가로질러 공중을 통해 진격해 올 겁니다.”

     용기사단의 강습을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머스킷을 장착하여 화망을 구성하고.

     바다에서 퇴역한 배를 개조하여 선수에 주포를 달아 마도포격을 날리고.

     확보한 모든 마석을 풍석으로 바꾸어, 수만 명의 병사들이 협곡을 넘어 지브롤터에 상륙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비행선단을 운용할 수도 있겠지.

     “지금쯤, 제국은 공군 병력의 ‘실증’을 확인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대상은 제국 내부의 반란자들.”

     “…당신은 그걸 무슨 근거로 판단하는 거죠?”

     “제국신문.”

     아스타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확히는 황태자의 어용 언론에서 뿌리는 말을 이용하여, 제국의 움직임을 한 사흘 정도 늦게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제국신문에서 나오는 사설이나 여론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요?”

     “그 안에 담긴 당신의 아버지, 합스베르크 황태자의 생각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요.”

     회귀 전의 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합스베르크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귀납적 통계에 따라.

     “지금쯤, 소드 마스터급 존재가 반란군 진지에 정확히 떨어졌을 겁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최소한 클레이돌 후작급의 소드 마스터가 말이죠.”

     * * *

     인간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태양은 서서히 떠올라 어둠을 환하게 밝히지만, 그렇게 빛이 곳곳에 드리울 때마다 드러나는 광경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죽음.

     죽음. 

     오로지, 죽음.

     과거 한 왕국이 멸망한 뒤로 남은 고성(古城)은 어느 한 욕심 많은 황태자비 가문의 별궁이 되었다.

     그렇게 소유자가 바뀌기 전에도 이렇게 옛 왕성에 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을까?

     모르겠다.

     이사벨라 본인이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으니까.

     “우욱!!”

     목이 잘린 시체가 한가득.

     일격에 죽은 건지, 바닥을 구르는 머리의 얼굴에는 경악과 공포가 그대로 담겨있다.

     얼마나 죽었더라.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래.

     하늘에서 무언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던 붉은 궤적.

     사람들의 피가 사방팔방으로 흩날렸다.

     죽어 나가는 이들은 전부 이사벨라의 기사들.

     숫자도 숫자지만, 그들이 향후 ‘반란군의 핵심 전력’이었던 황실 제3 기사단이었다는 것이 이사벨라가 지금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소한 상급 기사 수준의 실력은 되는 자들로만 이루어진 기사 수십 명.

     그 아래에 있는 하위 기사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수백 명.

     과거 제국이 상대했던 몇몇 왕국 중에서도 작지만 강한 국력을 가진 왕실 제1 기사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 수백 명에 이르는 ‘기사단’이 전멸했다.

     

     단 한 명에 의해.

     “아아, 아아아….”

     

     이사벨라는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간신히 앞으로 나아갔다.

     

     “가야 해, 어서…!”

     기사단이 죽은 이상, 자신도 안전하지 않다.

     심지어-

     “당주시여!!”

     복도의 너머, 그림자 속에서 집사복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절규하듯 외쳤다.

     “이곳은 끝났습니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카이틀린!!”

     “저는 끝났습니다…!!”

     복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집사의 눈동자는 붉게 반짝이고 있었으나, 그의 한쪽 다리는 허벅지 부분 아래가 사라진 채 핏빛 안개를 흘리고 있었다.

     “반드시 도망치십시오! 이곳에 있는 그 ‘미러포탈’을 이용해, 도망치시는 겁니다!”

     “하, 하지만…!”

     “당주!! 제39대 ‘테르시안’으로서, 결코 지금 꺾이시면 안 됩니다!”

     “!!”

     집사 카이틀린의 외침에 이사벨라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 알았어!”

     별궁 내부.

     옛 왕성에는 왕족이 도망치기 위해 마련된 마법진이 남아 있다.

     “내가 그쪽으로 갈게!”

     “안 됩니다! 먼저 가십시오! 저는 제가 알아서 뒤따라가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반역’이라는 걸 계획하는 만큼,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이사벨라는 별궁의 구석에 있는 마법진을 미리 보수해 뒀다.

     “내가 너를 어떻게 놓고 갈-”

     서걱.

     집사가 반으로 갈라졌다.

     무언가 붉은빛이 사선으로 갈라진다고 생각이 든 순간, 집사는 그대로 붉은 핏빛 안개를 흩뿌리며 소멸했다.

     절그럭, 절그럭.

     “!!”

     뒤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

     도끼의 날을 일부러 바닥에 긁으며 다가오는 소리.

     “어디를 그렇게 가십니까, 황태자비 전하.”

     

     어둠 속, 복도의 끝.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에 전신 갑옷에 얼굴만 드러낸 붉은 눈동자의 거한이 피 묻은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클레이돌…!”

     “소신, 황태자비께 받은 선물을 돌려드리기 위해 왔나이다.”

     거한, 클레이돌 후작은 도끼날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이죽거렸다.

     “사교계에서 그렇게 소신을 두고 문어니 대머리니 온갖 모욕을 다 하셨잖습니까.”

     “이, 졸렬한…!”

     “졸렬하든 뭐든, 명분이 생겼다면 개인적인 소소한 복수도 챙기는 게 좋겠지요.”

     클레이돌 후작은 투구 아래를 슬쩍 들추며 비웃었다.

     “어차피 이제는 빠질 머리도 없는데, 머리카락 빠지라는 저주를 걸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더러운 자가!”

     이사벨라는 계속 복도를 내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인간을 저버리고 괴물이 되기로 한 쓰레기!”

     “하, 하하….”

     “그런다고 없어진 머리카락이 다시 생겨날 줄 알았더냐! 천만에!”

     이사벨라는 복도의 끝을 달려, 클레이돌 후작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네가 햇볕 아래에 이제는 더 이상 오지 못하는 것처럼, 네 머리에서도 영영 머리카락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설령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 하하하…!!”

     클레이돌 후작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선 곳을 가리켰다.

     “그렇지요. 지금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이제 저는 이 해를 조심해야겠군요. 그런데….”

     철컹.

     “햇빛만 안 받으면 되는 거라서.”

     클레이돌 후작의 투구 앞부분, 페이스 마스크가 내려왔다.

     덜컹, 덜컹.

     클레이돌 후작이 시체를 밟고 앞으로 걸어왔다.

     사아아.

     햇볕이 드는 창을 지난 순간, 클레이돌 후작의 갑옷 사이로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 가지, 알려드리죠. 마스터 정도 되는 자가 흡혈귀가 된다면, 짧은 순간이라도 이렇게 버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흡사 종이가 불에 타오르면서 재가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것 같았으나, 그 반응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으, 으아아ㅡㅡㅡ!!”

     이사벨라는 도망쳤다.

     햇빛이 드는 곳을 위주로 도망치고 또 도망쳤으나, 이제는 저 미친 괴물이 기어이 햇빛까지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느, 늦었어!”

     가문의 수많은 기사가 목숨을 내던진 결과, 이사벨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를 잡으려고?! 어림도 없다, 이 멍청한 대머리야!”

     “저게….”

     

     복도의 끝.

     복도의 문과도 같이 큼지막하게 걸린 전신 거울 하나.

     “반드시 복수하겠어! 이 대머리!”

     이사벨라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꺼낸 다음, 그걸 손으로 꽉 움켜쥐며 거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위ㅡ잉.

     거울은 깨지지 않고, 오히려 잔잔한 물처럼 이사벨라를 품었다.

     파ㅡ앗.

     이사벨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뭐, 그래도 결과적으로 귀결되는 건 ‘소드 마스터는 엄청 강하다’라는 결과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수백 미터 상공에서 떨어져도, 떨어지는 순간에 바닥을 향해 오러 참격을 날려서 충격파로 살아남는 게 소드 마스터 아니겠습니까.”

     소드 마스터는 안 된다.

     

     “내부의 적을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크림슨 지브롤터’가 있는 이상 제국은 최소한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겁니다.”

     비행선이라는 건 도구다.

     그리고 도구는 우리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

     “막말로 소형 쾌속정 하나를 만든 다음, 제국 한 복판에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샤를로트 백작부인이 제국인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치면.”

     “…다 죽겠죠?”

     “예. 다 죽을 겁니다.”

     제국이, 합스베르크가 제일 우려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이다.

     “그렇기에 당신과 저는 지금보다 친해지고 더 사이가 깊어져야 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와 아스타시아의 관계는 단순한 남녀관계가 아니다.

     제국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틀어막기 위한, 피로서 쓰여지는 전쟁이 아닌-대외적으로는 평화로운 경제 및 문화 교류를 통한 융화.

     “당신과 저는 상징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찌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의 상징.”

     그렇기에.

     “아스타시아. 저는 오직 당신 만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아스타시아를 사랑해야 한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서로 같은 입장 아닌가요?”

     아스타시아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저 또한 그레이 지브롤터를 유혹해서 그 마음을 얻어내야, 제국이 지브롤터를 향해 칼을 겨누고 비행선을 들이밀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안다.

     “우리가 헤어지는 즉시….”

     “황태자는 당신을 ‘처분’할 겁니다.”

     

     나는 회귀를 통해.

     아스타시아는 바로 옆에서 살면서 지켜봤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그에게 있어, 자식은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그 자식을 낳는 대상마저도.

     그리고 가장 무서운 점이 있다면.

     “합스베르크는 저보다도 더 지독할 정도로 철저한 인간입니다.”

     인간이면서, 그런 존재라는 것.

     

     “미친놈이죠.”

     * * *

     위ㅡ잉.

     거울을 지나온 순간.

     “아.”

     이사벨라는 절망했다.

     “멀리도 다녀오셨군.”

     탁자 위에 놓인 회백색 스테이크를 썰며,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이사벨라를 맞이했다.

     

     “마법진 좌표를 보고 넘어왔어야지.”

     “어, 어떻게…?”

     “카이틀린이라고 했던가? 마지막까지 제국을 위해 열심히 잘 해줬어.”

     “……!”

     “그리고, 환영하마.”

     합스베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나의 천공요새.”

     거울을 넘어온 곳은, 바람이 유달리도 차갑게만 느껴지는 장소.

     “비공성(飛空城), [그레이베르크]에.”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