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7

   하하. 할배 당신 너무 밸런스 붕괴잖아.

   

   할배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게임 속에서 보던 컷신이 떠올랐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퀄리티로 만들어졌던, 허나 게임 속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따라하는 게 불가능했던 그 컷신 말이다.

   

   진짜 따라잡을 엄두가 안 나네. 이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서는 저 할배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저거를 뛰어넘기 위해선 대체 어느 정도의 노력을 바쳐야 하는 거야.

   

   저 경지를 위해 달리고 있는 입장이라서 알 수 있어. 멀다. 너무 멀어. 저 멀리에 희미한 점으로 보일 정도로.

   

   하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네. 그러지 않으면 할배의 근처에도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알른 영애.”

   

   할배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자니 옆에서 페이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또한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적이 경악스러운 듯 그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분은.”

   

   ‘루엘님이에요…’

   “허접 할배. 내 메이스에 깃들어 있는 사람이자 내 스승이야.”

   

   이 세계에 떨어지고서 내게 스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포셀.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그 순간까지 알른 가문의 기사들 옆에서 신나게 굴려준 사람.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어지간한 체력적 한계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하나가 바로 루엘 할배다.

   

   시련을 돌파하고 루엘 할배와 마주하고 난 후로 루엘 할배는 내게 메이스와 방패를 든 자의 싸움법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잔소리를 해대서 까탈스럽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지금 메이스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까 그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된다.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쉬운 걸 도대체 왜 못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겠지.

   

   지금도 봐. 나크라드를 메이스로 후드려 패면서 슬쩍슬쩍 나한테 곁눈질을 하고 있잖아. 이걸 보고 배우라는 것처럼.

   

   할배. 그런 식으로 눈치를 줘도 아직은 당신이 하는 걸 따라할 엄두가 안 나거든요?

   

   공부로 따지자면 저 이제 막 구구단을 마스터한 꼬맹이라고요.

   

   그런 꼬마한테 대학 입시 때 나올 법한 문제 푸는 걸 보여주면서 배우라고 해봐야 감탄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따라해 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요. 알겠죠? 나중에 왜 이걸 못하냐고 투덜거리지 말고.

   

   할배에게 얻어맞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걸까. 비틀거리며 일어선 나크라드가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수하들을 꺼내 들었다.

   

   우와. 저거 반쯤 필살기인데.

   

   아직 어둠의 악신이 제대로 부활하지 못한 지금 저 수하들은 하나 만드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녀석들이다.

   

   본래라면 기말고사 때 아카데미를 습격할 때 써먹어야 하는 건데 지금 꺼내드는 거야? 할배가 무섭긴 무서웠나 보네.

   

   근데 이걸 어쩌나. 저거 할배한테는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할배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무리들을 보고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이내 할배가 자신의 메이스를 위로 치켜들자 그 곳에 신성이 모여 들었다.

   

   미친. 저 위에 모이는 신성의 밀도가 왜 저래. 저건 이미 하나의 작은 태양이잖아.

   

   할배. 저게 내가 언젠가 도달하게 될 경지라고? 당신은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좋아. 알겠어. 그 기대 이루어주도록 할게. 난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니까. 당신을 놀라게 만들고 말 거야.

   

   나중에 할배 당신을 깔보며 허접 소리를 들려줄 테니까 기대하도록 해.

   

   그 때가서 건방지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마. 그건 분명 당신이 만든 괴물일 테니까 말이야.

   

   메이스 위에 모인 신성이 자신의 빛을 발하자 어둠에서 자라난 무리들이 하나 둘 물러나기 시작한다.

   

   악신의 힘을 얻어 태어난 존재라 할지라도 저 빛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크라드가 불러낸 모든 무리가 자취를 감춘 후 할배는 자신이 띄워 놓은 신성을 지워버린 후 나크라드를 향해 다가섰다.

   

   “저 분이 알른 영애의 스승님.”

   

   페이비는 그 모습을 경외를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주신에 관해 아무런 생각도 없는 나와는 다르게 건실한 신도인 그녀다.

   

   한 때 세상을 구원한 성기사이며 성인으로 지정된 사람이 펼치는 기적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들겠지.

   

   “영애께서 강하셨던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

   

   ‘그런 셈이죠.’

   “뭐래는 거야. 허접 성녀. 내가 강한 건 내가 대단하기 때문이지 저 허접 할배가 잘 가르쳐 준 덕분이 아니라고. 바보 같은 헛소리 하지 마.”

   

   저기. 메스가키 스킬아. 왜 이렇게 투덜거리는 게 심하니? 덕분에 페이비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잖아.

   

   거기에다가 또 왜 페이비한테 반말을 하는 거야? 이번에는 메스가키 스킬이 강화된 것도 아니잖아.

   

   뭔데. 뭐냐고. 나 좀 알게 해주라. 그래야 대응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니냐. 제발 좀.

   

   콰앙! 할배가 메이스로 나크라드를 내리찍음에 따라 자그마한 지진이 일어났다.

   

   바닥에 금이 가고 온갖 조각들이 흙먼지와 함께 비산하는 풍경의 한 가운데에 선 할배의 표정은 그리 상쾌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곳에 있었던 나크라드가 자취를 감추었으니까. 도망쳤나.

   

   할배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메이스를 휘둘러 주변의 연기를 걷어낸 후에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미안하구나. 끝마무리를 짓진 못했다. 이 곳은 어디까지나 정신세계인지라 한계가 있어서 말이야.”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이 곳에 내가 온 목표는 어디까지나 페이비를 구하는 거였고 나크라드를 괴롭히는 건 부가적인 목표였으니까.

   

   살짝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 어쨌든 간에 피해를 주긴 한 거잖아? 그래서 웃으며 신경 쓰지 말란 이야기를 할 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메스가키 스킬이란 벽이 있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허접 할배 같으니.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거야? 하긴 메이스에 처박힌 외톨이 할배한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한심한 퇴물 할배라니까.”

   

   “돌아버리겠군. 대체 다른 아이들은 이 어투를 어찌 견디고 있는 게냐.”

   

   할배 이 정도로 그런 반응을 보이면 곤란하다고요.

   

   조이나 아서 같은 애들은 이런 말투를 하루 종일 듣고 있는데 명색이 성인으로 지정되신 분이 이 정도를 못 웃어넘겨서야 되겠습니까?

   

   그래도 방금 전에 보여준 게 보여준 거니까. 이번에는 제가 숙이고 가겠습니다. 할배.

   

   ‘죄송합니다. 좀 참아주세요.’

   “에에? 이 정도도 못 견디는 거야. 퇴물 할배? 푸훗. 기가 막히네. 이딴 사람이 성인이라니. 허접. 허접.”

   

   아. 맞다. 죄송하단 소리 꺼내면 왜곡이 심해지는데.

   

   메스가키 스킬을 통해 나오는 도발에 할배는 한숨을 내쉬었고 페이비는 경악을 하고 있었다.

   

   그치. 자기 입장에서는 존중과 존경을 다해야 할 사람한테 막말을 하고 있으면 저런 표정이 나올 수밖에.

   

   페이비가 착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거지 좀 성격 급한 사람이었으면 무엄하다면서 뭐라 그랬을 걸?

   

   “저기. 루엘님.”

   

   당분간 입 좀 다물고 있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페이비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할배는 눈썹을 살짝 치켜든 채 페이비 쪽으로 고갤 돌리더니 은근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어냐. 아이야.”

   “언제나 이런 느낌인가요?”

   

   아냐! 페이비! 오해하지마! 나 할배한테 그래도 나름 공손하다고! 만날 존댓말도 따박따박하고 있어!

   

   가끔 할배한테 무례한 일을 하긴 하지만 그건 다 할배가 먼저 잘못해서 그런 거란 말야! 나 할배한테 잘해준다고! 진짜야!

   

   속으로 그런 변명을 하던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어라? 이거 기회 아냐? 내가 메스가키 어투를 사용하는 게 무고하다는 걸 밝힐 수 있는 기회 말이야.

   

   생각해봐. 평소에 허접이나 좆밥이니 멍청하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애가 갑자기 내 말투는 다 허접 주신 때문이야라고 이야기를 하면 무슨 개소리냐는 말이 먼저 나오지 않겠어?

   

   허접 주신이 얼마나 변태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주신께서 그런 말투를 강제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헛소리로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할배가 이야기하면 신빙성이 달라!

   

   성기사이자 세상을 구한 영웅이자 성인으로 지정된 할배가 내 무고를 증명해 준다면 도저히 안 믿을 수가 없을 걸?!

   

   특히나 방금 전에 할배가 펼친 기적을 본 페이비에게라면 그 설득력은 배가 되겠지!

   

   할배! 부탁합니다! 빨리 페이비에게 제 무고를 증명해주세요!

   

   그럼 페이비가 성녀의 직함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도 설득해 줄 거 아니에요!

   

   그렇게만 일이 풀린다면 제 평판도 해결될 수 있다고요!

   

   내가 눈빛으로 이야기를 전하자 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눈치가 비상한 할배다. 내 생각을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하아. 드디어 제대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

   

   “항상…”

   

   어라? 할배 왜 말을 끝까지 못해요?

   

   평소에 혀가 그렇게 잘 굴러가던 사람이 왜 마무리를 못 짓냐고요.

   

   장난 치는거죠? 그쵸?

   

   제발 그렇다고 해줘요!

   

   할배!

   

   제발!

   

   “그. 말투는 저래도 심성은 고운 아이이니 말이다.”

   “그건 그렇죠. 알른 영애는 좋은 분이니까요.”

   

   갸아아아악?!

   

   할배! 말투는 저렇다니! 이건 합의된 사안이 아니잖아!

   

   내 말투를 해명해줘야 할 타이밍에 심성이 곱다는 이야기를 해서 어쩌자는 거야!

   

   제대로 해명하라고 솧리치기 위해 할배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 갑자기 의식이 점멸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자 페이비의 정신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교회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페이비의 정신 세계에서 내쫓긴 건가.

   

   “잘 해결 되었느냐?”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치켜 올리자 얼빠여우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달라붙는 걸 좋아하는 애가 대체 왜 내가 만지는 건 거부하는 걸까.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네에.’

   “보면 몰라. 얼빠 여우?”

   

   “그렇다면 잘 된 일이구나.”

   

   얼빠여우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내 머리 위에서 도망쳐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허접 여우 같으니.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털을 마구잡이로 휘저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게 있다.

   

   ‘할아버지.’

   

   해명을 요구해야 하니까.

   

   대답해요. 할배. 왜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왜 날려먹었냐고요!

   

   다신 오지 않을 천재일후의 기회인데에에에!

   

   <미안하구나. 여아야. 그대의 어투에 관한 해명을 하려 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무언가 억제력이 작용한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그대의 축복과 관계된 그 어떤 이야기도 내뱉을 수가 없어 당장에 괜찮을 만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심성이 곱다는 이야기도 나름 고심해서 한 말이라는 할배의 이야기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내 스킬을 해명하는 데에 누군가 제약을 걸었다면 그 대상은 하나 밖에 없지.

   

   허접 사디 페도 마조 변태 쓰레기 주시이이이이인!

   

   꼭 이렇게까지 나를 억까해야 만족하는 거야?!

   

   나 좀 편하게 살면 안 돼?!

   

   난 만날 다른 사람들한테 허접 허접거리다 눈총을 받아야만 하는 거냐고!

   

   요즘 들어서 호감스택을 좀 쌓다 보니 매도당하지 못해서 아쉬웠어?!

   

   그래! 해줄게! 여자애 괴롭히면서 즐기는 변태 새꺄!

   

   난 네가 부탁하는 걸 들어줬는데 왜 너는 내가 부탁하는 걸 안 들어주는 건데!

   

   난 왜 햄보칼 수가 없는데! 왜!

   

   – 띠링.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던 와중에 알림음이 떠올랐다.

   

   [퀘스트 클리어!]

   [제한시간 내에 페이비를 구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뭔데. 미안하게 됐고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 그거야?

   

   어이. 허접 병신. 내 기분은 지금 아아아아아주 안 좋아.

   

   어줍잖은 보상 한 두 개 주어진다 해서 풀릴 기분이 아니라고. 네가 어떤 걸 주더라도.

   

   [연습모드 기능이 해방됩니다!]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배를 잠에서 깨워준 건 허접주신님이었죠.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