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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불량 가출 학생 크라슈.

   옆에 같은 가출 학생 하링과 함께 그는 지금 하덴하르츠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겨울보다는 덜하기는 하지만 눈이 소복하게 쌓인 산은 오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크라슈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몸에 열기를 내서 걸음을 옮기면 눈들이 죄다 녹아내렸으니 말이다.

   덕분에 하링은 문제없이 크라슈의 뒤를 따라갈 수 있었다.

     

   “이동형 난로 같아.”

   “사람을 난로 취급하지 마라.”

     

   어느새 장갑도 벗고 자신 쪽에 손을 뻗고 있는 하링을 어이없이 보던 크라슈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은 이해했냐?”

   “응, 우리 아버지를 중상 입힌 건 밤 까마귀 단 전 수장이 아니라는 거.”

     

   제국이 발표하기를 독왕을 중상 입힌 이는 밤 까마귀 단의 전 수장이라 하였다.

   그러니 크라슈는 하링에게 처음에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이번 일이 에벨아스크를 만나러 가는 거라고 설명하면 하링이 길길이 날뛸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생각보다 쉽게 납득했다.

     

   “시즐리 에파니아 님이 왜 이번 임무에 참가했는지도 이해됐어.”

   

   이중, 에벨아스크를 시즐리와 연관해서 말해준 것이 하링이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아무리 제국과 스타론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곤 해도.

   시즐리까지 이번 임무에 참가한 것은 하링에게 줄곧 의문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에벨아스크는 메리를 뒤에서 조종해 4황녀를 시해하려 했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에벨아스크를 위해 구태여 시즐리가 도우러 온 마당.

   앞에 이야기들은 전부 오명임을 하링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게다가 하링의 머릿속에 4황녀쯤 되면 진상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거란 점도 일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덕분에 하링은 크라슈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시즐리 만만세다.

     

   “……세계 침식자는 괜찮냐? 지금 가는 길은 그 세계 침식자를 만나러 가는 일인데.”

     

   하링의 오빠는 세계 침식자가 일으킨 세계 침식에 죽었다고 하였다.

     

   세계 침식을 일으킬 수 있는 세계 침식자는 꽤 있다.

   크라슈도 당장 짐작하며 떠올릴만한 이가 한두 명이 아닐 정도다.

     

   ‘그중에서 진짜로 골치 아픈 녀석들이 있어서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하링의 오빠가 세계 침식자 탓에 죽은 이상 그녀는 세계 침식자라면 질색을 할 줄 알았다.

   애초에 세계 침식자는 대부분 혐오하는 게 보통이니까.

     

   하지만 하링은 의외로 이런 쪽에서는 너그러웠다.

     

   “내가 미워하는 건 우리 오빠를 죽인 세계 침식자야.”

     

   그녀가 세계 침식을 막고자 라헬른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 것도 어디까지나 자기와 같은 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나도 물론 그 세계 침식자를 찾고 있긴 하지만. 그 세계 침식자가 아니라면 세계 침식자 전체를 마냥 미워할 이유는 없어.”

     

   하링은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자기 몸을 전혀 안 사리고, 나아가는 크라슈 같은 사람이 득 없는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건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게 정보다.

   정보의 의심은 의미 없는 일이긴 했다.

     

   “무엇보다.”

     

   하링이 빙그레 웃음 지었다.

     

   “크라슈, 널 믿어.”

     

   그녀의 웃음을 본 크라슈는 목덜미를 매만졌다.

     

   “거기에 빚진 것도 있으니까.”

   “그 빚이라는 거 내가 연구하는 걸 도와준다는 걸로 갚게 된 거 아녔느냐.”

   “난 아버지 소식을 듣고 난 뒤에도 아카데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야 라그렌 가문에서 그저 대기하고 있으란 말을 했으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기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크라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줬잖아. 그러니 빚이야.”

     

   크라슈 입장에서는 그냥 이해관계가 맞으니 사용한 것에 불과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뭐, 그러냐. 그럼 얼른 갚아라.”

   “노력할게.”

     

   갈수록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하링이었다.

     

   그렇게 산을 오른 지 몇 시간.

   꽤나 강행한 만큼 크라슈는 얼마 안 가 에벨아스크의 거처에 도착했다.

     

   보기에는 그냥 나무가 있는 숲속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크라슈가 나무를 이리저리 더듬자 입구가 덜컥하고 열렸다.

     

   ‘부수고 가지는 않았나.’

     

   꽤나 급하게 뜬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크라슈는 에벨아스크의 위치를 알고 있다.

     

   그러니 마주치기 싫어 빠져나간 걸지도 모른다.

     

   ‘뭔가 단서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크라슈가 나무 안쪽 지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자 하링이 따라 걸어왔다.

   하링은 나무 안쪽 공간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에벨아스크 말고, 익시온의 세계 침식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크라슈는 하링을 돌아보았다.

     

   “하링, 인비저블을 쓰고 움직이자.”

   “알았어.”

     

   그녀는 대답과 함께 장갑을 주섬주섬 벗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크라슈가 그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하링은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땀 같은 거 안 났어.”

   “별말 안 했다.”

     

   손을 보니 비앙카가 떠올라서 잠시 멈칫했을 뿐.

   크라슈는 그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그녀와 크라슈의 모습과 기척이 완전히 지워져 가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무척이나 사기적인 스킬이다.

     

   “간다.”

   “응.”

     

   하링도 긴장한 기색이 눈에 띄었다.

   상대는 무려 세계 침식자.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대다.

   당연한 거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죽게는 안 둔다.”

     

   이쪽도 전력으로 도망치는 건 자신 있다.

   그 난리 통에서도 기어코 살아남아 마지막을 본 게 자신 아니던가.

     

   “……응.”

     

   결심한 듯한 하링의 대답을 들으며 크라슈는 그녀와 손을 맞잡은 채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다.

     

   본래는 여기저기 불이 켜져 있었던 복도는 황량했다.

     

   하덴하르츠 설산의 냉기가 숨어 새어 들어오기라도 하는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보기만 해도 꺼림칙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런 복도를 걸으며 크라슈는 인기척을 느끼고자 제 육감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무언가 잡히는 게 있다면 즉시 반응하기 위함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휙!

     

   크라슈의 고개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갔다.

   제 육감에 무언가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링과 눈이 마주치자 크라슈는 얌전히 있으라는 의미를 담아 입가에 손을 올렸다.

   하링은 고개를 끄덕였고, 크라슈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살짝 열린 문틈 너머.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 뒷모습이 눈에 익음을 느꼈다.

     

   “하링, 인비저블을 풀지 말고,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응.”

     

   하링의 대답을 들은 크라슈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곤 방문을 잡은 채 끼익하니 밀었다.

     

   그 순간 저쪽도 이쪽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등 뒤에서 뽑힌 사단 봉이 찰칵 소리를 내며 맞물림과 함께 즉시 이쪽을 향해 휘둘러졌다.

     

   채엥!

     

   크라슈가 뽑아낸 우뢰성과 봉이 맞부딪치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 상대는 이쪽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라슈 님?”

     

   머리 위에 쫑긋 선 토끼 귀 모양의 머리띠.

   진한 피부색과 검은 흑발의 짧은 머리카락.

   거기에 메이드 복장.

     

   그녀는 다름 아닌 에벨아스크의 시체 중 하나, 8호였다.

     

   “8호, 오랜만이다.”

     

   그녀는 크라슈임을 확인하자 봉을 회수한 채 물러섰다.

   그러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오셨군요.”

   “그래, 넌 에벨아스크 녀석의 뒷정리를 맡은 모양이고.”

     

   크라슈는 그녀의 등 뒤에 쌓인 짐을 보았다.

   분명 에벨아스크의 짐들이겠지.

     

   “내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알겠지.”

   “예, 주인님을 만나러 오셨겠지요.”

     

   8호는 순순히 대답하면서도 봉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크라슈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크라슈 님께는 주인님께서 편지를 보내셨을 겁니다.”

   “찾지 말아 달라는 그 말 말이냐.”

   “예, 저는 주인님의 종, 그 말의 의미를 크라슈 님이 잘 이해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님도 크라슈 님과는 부딪치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그래.”

     

   크라슈는 우뢰성을 늘어트렸다.

   그것을 보고 8호가 조금 안도하려는 순간 화륵 하는 불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라슈의 검 위에서 흑염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8호, 내 대답도 그 녀석에게 좀 전해라.”

     

   크라슈는 멸화침식을 끌어 올리며 조용히 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뿜었다.

     

   “헛소리 말고, 당장 오라고.”

     

   8호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자신의 경고에도 크라슈는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심이십니까.”

   “어, 늘 진심이야.”

   “가능하면 크라슈 님과는 부딪치지 않고 싶었는데요.”

     

   그 순간 8호의 옷차림이 변했다.

     

   메이드 복이 찢겨 나가며 몸에 쫙 달라붙는 슈트 형태로 변한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 위에 투구가 씌워졌다.

     

   8호의 완전한 전투 모드였다.

   그녀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에벨아스크의 한 자릿수 시체다.

   당연히 강자였다.

     

   “그래도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8호의 봉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그럼과 동시에 봉 양쪽에 흉악하게 생긴 톱날이 나타났다.

     

   “제게 생채기도 못 내시던 크라슈 님이 얼마나 성장했을지요.”

     

   8호의 이야기를 들은 크라슈는 우뢰성을 허리춤으로 당겼다.

   동시에 앞발을 쭉 내밀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감당 못 할 말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에벨아스크 녀석에게도 알려줘야겠다.

   이쪽을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다시 만나기만 해봐라.

   궁둥이가 빨개질 때까지 때려 주마.

     

     

   * * *

     

     

   채엥!

     

   거세게 울려 퍼진 금속음과 함께 흑염의 불길이 튀었다.

     

   8호와 크라슈의 전투 때문에 일어난 풍압은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단 시간에 이만큼이나 강해지셨군요.”

     

   8호는 자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내는 크라슈를 보며 놀라워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8호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던 크라슈다.

     

   그러나 지금 크라슈는 8호가 놀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특히 그의 검에 올라오는 흑염 사이로 드러난 오러 블레이드는 그가 마스터의 경지임을 드러냈다.

     

   “그걸 알면 괜히 어디 망가지지 말고, 에벨아스크 녀석의 위치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죄송하지만 아직 크라슈 님과 만났다는 것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8호와 같이 한 자리 숫자의 시체는 개인 의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에벨아스크가 직접 건드려 눈을 빌리기 전까지는 8호가 뭘 하는지 에벨아스크도 몰랐다.

     

   지금쯤이면 8호가 그냥 방을 청소하고 있겠거니 하겠지.

     

   “그리고 방금 걸로 느꼈습니다.”

     

   철커덕!

     

   그 순간 크라슈의 검과 맞부딪쳤던 봉이 사절곤의 형태로 바뀌며 꺾였다.

     

   사절곤의 사슬은 순식간에 크라슈의 검을 옭아맸다.

   동시에 곤 끝에 달린 톱날이 날아들었다.

     

   그 광경을 벽력으로 포착한 크라슈는 우뢰성의 날을 지웠다.

   그러곤 사슬을 빠져나옴과 함께 톱날을 쳐내곤 뒤로 물러섰다.

     

   찰카닥!

     

   크라슈를 물러서게 한 8호의 곤이 다시금 봉으로 돌아왔다.

   그 봉을 돌려 잡은 8호가 옅은 웃음을 지었다.

     

   “마스터 경지에 오른 이들과 그리 많이 붙어 보시지는 않았다는 걸요.”

     

   그 말을 끝마친 순간이었다.

     

   8호의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존재감이 이전보다 훨씬 거대하게 느껴졌다.

     

   크라슈의 눈에 그녀의 팔 위 실 같은 것이 미세하게 스쳤다.

     

   그것을 끝으로 크라슈의 벽력이 즉시 반응했다.

     

   채엥!

     

   금속음이 튀어 오르며 우뢰성이 아슬하게 8호의 봉을 막았다.

   벽력이 따라가는 게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크라슈는 8호가 무엇을 했는지 눈치챘다.

     

   마스터 급의 오러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심상을 담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심상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더욱 파괴력을 지닌다.

     

   이러한 심상이 바로 마스터 사이에서 경지 말고, 또 다른 차이를 만들었다.

     

   경지는 육체가 발현하는 힘.

   심상은 정신이 발현하는 힘.

     

   마스터의 전투는 때로 경지가 차이 나도 심상이 더 뛰어난 이가 이기기도 했다.

     

   그러니 마스터의 전투에서 두 힘의 밸런스는 중요했다.

   어느 것을 더 깊게 담아내는가에 따라 완전한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8호는 에벨아스크와 함께 셀 수 없는 시간을 함께 살아온 시체다.

   그녀의 심상에 담긴 것은 에벨아스크를 위한 마음.

     

   에벨아스크를 위하면 위할수록 그녀의 심상에서 나오는 힘은 더 강해진다.

     

   그것이 그녀의 심상으로 만들어진 비기.

     

   괴뢰(傀儡)

     

   꼭두각시를 자처했기에 그녀는 더욱 강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8호의 맹공 앞에 크라슈의 벽력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날아드는 봉이 크라슈의 턱을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공격을 피한 크라슈가 즉시 우뢰성을 내려그었다.

     

   하지만 8호는 그보다도 한발 앞서 있었다.

   그녀는 정말 꼭두각시로 조종당하는 구체 인형처럼 기괴한 움직임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괴한 움직임은 변칙성을 만들어 내었다.

   꺾인 팔과 함께 봉이 기묘한 각도로 돌아갔다.

     

   그녀는 애초에 시체다.

   뼈관절에 무리가 가는 행위나 근육이 나올 수 없는 형태라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에 무엇보다 육체에 오는 과부하를 그녀는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걸어 놓는 뇌의 리미트가 처음부터 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두각시의 역할에 충실히 한 자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콰앙!

     

   결국 크라슈 또한 8호의 봉에 타격을 허용하며 뒤로 크게 날았다.

   벽에 부딪히며 멈춘 크라슈는 입에서 침을 뱉었다.

     

   날아가며 입안 안쪽을 씹은 듯 핏물이 섞여 있었다.

     

   “지금 돌아가신다면 눈 감아 드리겠습니다.”

     

   8호의 몸에 실이 더더욱 그 색이 선명해졌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크라슈는 한차례 웃음을 흘렸다.

     

   “심상, 중요하지.”

     

   심상이란 오랜 기간 쌓으면 쌓을수록 강해진다.

   그러니 오래 살아온 이들의 심상은 이뤄 말할 수 없을 만큼 깊다.

     

   그러나 그런 심상을 오랜 기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깊이를 늘리는 법이 있다.

     

   그 순간 갑자기 8호의 몸이 굳었다.

   크라슈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화륵-

     

   크라슈의 흑염이 타오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요한 공간 크라슈는 그 흑염이 제멋대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크라슈 님?”

     

   안 좋은 예감이 든 8호의 투구 안쪽에 식은땀이 천천히 흘렀다.

     

   심상은 분명 오랜 기간을 들여 쌓아 그 깊이를 늘린다.

   하지만 그런 심상을 극단적으로 늘리는 방법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깎아 내는 고행이다.

     

   8호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 비춘 크라슈는 고작해야 15살이다.

     

   그러나 실제 그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그녀는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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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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