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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뱀의 눈빛을 받아 얼어붙은 쥐들이 그러할까.

       

       남궁 남매와 엔버스는 그 독살스러운 눈빛에 제압당해, 빳빳하게 굳은 몸으로 눈치를 보며 어정거리고 있었다. 어떤 감정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법이다.

       

       대체 무슨 얄궂은 일을 당해 온 것인지 눈동자에 가득 들어찬 짜증과 분노는,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게 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꺼냈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어느 누가, 남자가 됐다가 여자가 됐다가, 인간을 싫어했다가 장난감으로 여겼다가 좋아했다가, 란제리를 입었다가 프릴을 입었다가 안 입었다가 하겠는가?

       

       생물의 범주를 초월한 형태를 지닌 악신에게 있어서, 본래라면 그러한 변모는 스치는 산들바람처럼 의미 없는 행위일 터였다. 돌이나 창날에게 성별을 부여한들 그 어떤 변화도 없는 것처럼.

       

       형태와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인간을 고뇌에 빠트리는 것이 그것의 본 기능이었으니, 인간을 연기하는 것은 아무런 감흥도 없어야 했건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글줄 너머의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과,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차이였다.

       

       미친 마법사의 지시에 의해 연기하게 된 배역은, 악신의 데이터를 비집고 들어가 조금씩 스며들었다. 이입하게 했다.

       

       날이 지날 때마다 자신의 껍데기가 바뀌는 존재가 겪는 혼란 속에서, 그것은 자신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처지에서 벗어나기에 어려우니 운명에 따를 수밖에. 

       

       희영현(希永玄)은 미친 마법사의 디렉션에 맞추어, 감정을 한껏 담아 미소녀 개방 방주 RP(Roll-Play)를 시작했다.

       

       Q. 그녀는 어떤 캐릭터인가?

       

       A. 희영현이라는 자는 현실에 박제된 나비였다.

       

       Q.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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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꾸었던 적이 있나요.

       

       없다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필히 지독한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나는 꿈을 꾼 적 없소.’ 라는 말은,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만이 꼭 그렇게 말합니다. 

       

       이루지 못함이 너무나도 애달파서, 본래부터 없던 일인 양, 바라지 않았던 일인 양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본래 소영현(蘇永玄)이라는 이름을 쓰는 소녀였습니다. 

       

       영원히 검으라는 말은, 검은 머리가 오래도록 희지 않으라는 장수(長壽)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주신, 건강하게 오래 살아달라는 희망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아주 솜씨 좋은 도사에게 가서 거금을 주고서 받아 온 이름이라 하더군요. 영현아, 영현아, 언제 나오려느냐 하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웃음꽃을 피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날 때부터 제 어미를 죽이고 태어날 줄만은 몰랐던 것이겠지요.

       

       아버님이 꿈꾸던 단란한 가족의 그림은, 첫 획에서 이미 찢겼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일곱 살이 되던 해까지 괴롭게 번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러한 꿈을 꾼 적이 없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외동딸의 성을 빼앗아, 이름만 쥐여 준 채로 길바닥에 내버린 것이겠지요.

       

       하여 영현(永玄)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구걸하며 길거리를 헤매다가, 헤매다가,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어느 인심 좋은 거지에게 거두어져 개방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제 직전의 개방 방주였습니다.

       

       그는 허풍선이였습니다. 앞날이 어둡더라도 어떻게든 잘 풀릴 것이라 떵떵거리고 다녔지요. 개방이라는 단체가 기울고 어두운 폭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선한 일을 하면 마땅히 하늘이 도와주리라 여겼습니다.

       

       어느 정도로 밝은 사람이었느냐 물으시면.

       

       그는 제게 희(希)자를 덧붙여 희영(希永)이라 불렀습니다. 오래도록 희망차라며 그리 불렀던 듯싶습니다.

       

       개방이 융성할 때에는, 각 지역의 거지들을 거두어 살피는 보육원의 성질을 띠었다고 합니다.

       

       돈도 권력도 있으니 그런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다 무너져가는 현재의 개방에게는, 그런 활동을 지속할 여력이 없었건만. 그는 했습니다.

       

       내가 ‘이대로 가면 정말로 거지가 될 겁니다. 저 하오문 녀석들에게 팔려버릴 거예요!’ 라고 물으면.

       

       ‘나도 개방에게 도움을 받아 자라난 거지였다. 그러니 형편이 어려워도 마땅히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며. 구하고, 구하고⋯⋯.

       

       그러다 죽었습니다. 어느 패거리에 의해 급습을 당했다 하였는데, 개방은 방주의 죽음을 조사할 여력도 없어, 그 흉수가 누구인지도 채 모르고 끝났습니다.

       

       다음 대 개방 방주는 제가 되었습니다.

       

       은인이 칼을 맞아 죽었으니, 은인이 남기고 간 개방만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버렸지요. 정보망도 잘라 내어 팔아넘기고, 인력도 축소하였습니다.

       

       더 기력이 쇠하기 전에 하오문에게 비싼 값을 주고 팔아 이름이라도 남겼고, 마지막으로는 어린 거지들을 거두어 살피는 일도 끊어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희영현(希永玄) 이름 석 자만 남았습니다.

       

       마치며 이르니, 나는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다 하겠습니다.

       

       단 한 번도.

       

       ===============================================================

       

       달그락.

       

       희영현이 낡은 탁자 위에 찻잔을 소리 내어 내려놓았다. 거의 맹물에 가까운 액체가 잠깐 물결치다가 고요히 가라앉았다.

       

       엔버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 고맙소.”

       

       “미지근한 차이니, 시간을 지체하면 금방 식어버릴 겁니다.”

       

       “그럼 마시고 시작하겠소.”

       

       “⋯⋯⋯⋯.”

       

       식은 차를 마시고 싶지 않다면 얼른 용건을 말하고 여기서 꺼지라는 깊은 뜻이었으나, 엔버스는 ‘냉차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였다.

       

       그녀의 의중을 명확하게 이해한 영특한 남궁명만이, 이거 얼른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초조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희영현은 에둘러 꼽을 줘서는 이야기가 길어지겠구나 여겨,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의중이 무엇인가요.”

       

       “의중⋯⋯ 어떤 의중 말이오?”

       

       “30년 전에 천마와 함께 실종되었다는 13대 전 개방 방주의 소식을⋯⋯ 어찌하여 입에 담으시냐는 말입니다. 이토록 영락하였다 하여, 얕은 거짓말로 멋대로 다룰 수 있다 여겼습니까?”

       

       “오해요. 나는 거짓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소.”

       

       탕!

       

       희영현은 찻주전자를 거세게 내려놓았다. 탁자가 떨리며 파문이 인다.

       

       “허면, 어떻게 그 소식을 얻어내었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그러니까, 차원의 힘을 다루는 마법사가 있어서, 신비한 탑에 천마와 스승, 그러니까 개방 방주님이⋯⋯.”

       

       “하, 이제는 거짓을 숨길 생각도 않으시는군요?”

       

       “⋯⋯⋯⋯.”

       

       믿기 힘든 이야기이긴 했다.

       

       실제로 겪은 엔버스 본인마저도 머뭇거리며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세계의 주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랴? 곤혹스러움으로 혼란할 때에, 의외의 지원사격이 날아왔다.

       

       허리를 쭉 펴고 두손을 주먹을 쥔 채 무릎에 붙인, 각이 딱 잡히게 앉은 남궁명이었다.

       

       “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떠들어보세요, 도련님.”

       

       “청휘 도사님께서는 아주 고명한 도사이십니다! 이 건물을 가득 채울 정도의 먹구름을 지상에 불러내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대화의 기세가 잠깐 기우니, 엔버스는 명이에게 내심 고마워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거짓이 담길 수는 있소. 하지만 무공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알 것이오. 내가 타구봉법을 넘겨줄 터이니, 그걸로 검증해 보면 될 일 아니오?”

       

       “가짜 무공일지 누가 알겠어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없는 안목과 수준이라면, 가짜 무공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고. 진짜만큼 정교한 가짜라고 한다면, 이 또한 도움이 될 것이며.”

       

       흡. 엔버스는 숨을 들이켜고 강단 있게 말했다.

       

       “정말로 그토록 회의적이었더라면, 차를 내오며 이야기를 들을 것이 아니라, 진작에 나를 박대했을 것이오. 그렇다면 설령 가짜 무공이라도 믿어보고 싶을 만큼,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게 아니오?”

       

       “⋯⋯⋯⋯.”

       

       “그렇다면 한번 믿어보시오. 내 말에 거짓이 없었음을 증명해 보이겠──”

       

       오싹!

       

       순간 목줄기에 서늘한 느낌이 들어, 엔버스는 후다닥 두 팔을 들어 올려 목과 가슴의 요혈을 가렸다. 

       

       남궁명과 남궁승아 또한, 허리춤의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다급하게 자세를 갖췄다. 

       

       순식간에 방 내부의 온도를 떨어트리는 날카로운 살기다. 

       

       그저 기세만으로도 엔버스와 남궁가 남매를 반응케 하는 경지. 희영현은 틀림없는 무공의 고수였다. 엔버스의 목덜미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렀다.

       

       “⋯⋯후우.”

       

       희영현의 손등을 살짝 덮은 소맷자락에서 흉험한 비수가 삐져나왔다가, 고양이가 발톱 집어넣듯이 스르륵 갈무리되었다. 살기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겨울이 오면 눈이 소복하게 쌓이듯, 희영현의 눈꺼풀에는 미련과 회한이 내려앉았다. 엔버스의 말을 내심 인정한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소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기이하다 여기겠지요? 개방도의 이름을 자칭하면서, 빼 드는 것이 암기라니.”

       

       “⋯⋯봉법과 각법, 권법은 배운 바 있으나. 확실히 암기술은 배운 적 없었소.”

       

       “예. 개방은 변했습니다. 기둥이 되는 무공을 잃었으니, 무엇이라도 가져와 기둥 삼아야 했지요.”

       

       영현은 속이 탔는지, 차 한 잔을 털어 넣으며 사정을 말했다.

       

       지독한 내분이 있었다 했다.

       

       개방을 끌어나가던 방주와 그와 뜻을 함께하던 거지들이 모조리 천마의 손에 명을 달리한 뒤, 개방은 세 갈래로 쪼개졌다 하였다. 

       

       어디에 붙어야 한다, 저기에 붙어야 한다. 누가 다음 대 방주가 되어야 한다, 누가 이권을 더 가져야 한다.

       

       누구 하나 정통성 있는 자가 있었다거나, 누구 하나 무공이 독보적인 자가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으련만. 서로가 다 어중떠중하니 아비규환은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고 가속될 뿐이었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개방은 정체성을 잃었다.

       

       분명, 멀쩡히 굴러가던 시절에는 모든 거지들이 우러러 쫒는 큰 뜻이 있었던 듯하였는데, 그것을 알려 줄 사람도, 전해 줄 무공도 없으니 잊었고.

       

       누구는 배신하고 누구는 도망가는 와중에, 마침내 희영현이 방주 자리에 올랐다.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했습니다. 쓸모없는 날개부터 떼어 버리고, 앞발과 뒷다리도 망설이지 않고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뱀이 되었습니다. 독한 분칠 향기로 가득한 하수구에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있는.”

       

       대부분의 거지들은 개방을 떠났다. 그저 거지가 되거나, 익힌 무공으로 낭인이 되거나, 표사가 되거나, 기생이 되거나 하였다. 

       

       그렇게 떠나가지 못하고 남은 한 줌이 바로 희영현과 몇 명인 것이었다.

       

       그들이 가장 강하여 개방의 이름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더럽고 꼬질꼬질한 개방이라는 이름을 구태여 손에 쥔 자가 그들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거지도 아니고, 기녀도 아니며, 몽둥이를 쥐지도 않고, 때가 꼬질꼬질하거나 구걸하지도 않으니, 개방이라는 형(形)은 진작에 스러진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하오문의 그늘 아래서 고작 명줄이나 붙들고 살아 있다. 

       

       “헌데, 이제 와서 타구봉법이 돌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개방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인데.

       

       “⋯⋯⋯⋯.”

        

       지금의 엔버스는, 그녀에게 대답해 줄 말을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그 상실에 막연하게나마 공감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 해지고 낡은, 개방이라는 이름 하나만 쥐고 있는 이들에게. 타구봉법을 돌려준들 의미가 있는가?

       

       개를 때려잡는 무공의 껍데기(形)를 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역사와 함께 흐르는 것 : 개방도에게 타구봉법을 반환하기]

       

       대답할 수 없었으니, 차마 돌려주겠다 말할 수도 없었다. 이미 망한 개방에게 무공을 돌려준다 하여, 저들이 다시 한번 날아오를 계단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그래도.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소.”

       

       “나중에, 다시 말입니까?”

       

       “그렇소. 무언가⋯⋯ 형용할 수 없으나, 그대들에게 이 타구봉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를, 또박또박 설명할 수 있을 때 다시 오겠소.”

       

       “⋯⋯⋯⋯하아.”

       

       희영현은 진저리를 내며 손을 휘휘 저었다. 명백한 축객령에 엔버스가 엉거주춤 일어났고, 남궁 남매들도 어물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셋이 어색하게 옹기종기 모여 문지방을 넘어설 때, 영현은 간신히 들을 수 있을 만큼만 흘려 말했다.

       

       “다음에는 꼬리에 묻은 먼지나 떼고 오세요. 다음이 있다면 말이옵니다만⋯⋯.”

       

       “⋯⋯⋯⋯?”

       

       엔버스는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어 눈을 끔뻑였지만, 영현은 자세히 풀어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셋이서 기루를 나오는 길에, 남궁명이 슬쩍 의견을 냈다.

       

       “⋯⋯먼지를 떼라는 말은 단장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 멋있게 차려입고 오라는 게 아닐까요, 청휘 도사님?”

       

       “명아, 그렇다면 그건 필히⋯⋯ 영현이라는 자가 청휘 도사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리니?”

       

       “⋯⋯도저히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소만.”

       

       관심은커녕 분노만 가득 차 있던 것 같은데. 만일 관심이 있었다면⋯⋯ 루나처럼 굴지 않았겠는가? 

       

       엔버스는 달밤의 추억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 탓에, 그를 감시하다가 몰래 인파 속으로 숨어드는 그림자를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 

       

       남궁세가 가주, 남궁채공의 생신 기념 축하 연회 하루 전.

       

       남궁가 전용 연무장에서 세 사람이 수련하고 있었다. 다만 그 모양새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는데, 둘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집중하였으며. 하나는 주변을 알짱대며 앉은 꼴을 노려보았다.

       

       서당을 연상케하는 이 모습은, 서양으로부터 온 도사에게서 시선통찰(視線洞察)이라는 비법을 전수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궁명의 경우에는 이 수련이 참으로 재미있어, 눈을 감은 채로 작은 웃음을 머금고 임하였다.

       

       “도사님, 목덜미인가요?”

       

       “아깝구려.”

       

       “음⋯⋯ 손인가요?”

       

       “손목이었소.”

       

       그러나 남궁승아의 경우에는 분노수치가 오르는 것이 눈에 선했다. 천성이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 했던 데다가, 시선이라는 게 참 야리꾸리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 어깨?”

       

       “아니오.”

       

       “⋯⋯가, 가슴?”

       

       “아니오.”

       

       셀비어도 이렇듯 얼굴색이 붉어지다가 얼마 안 있어서 터졌더랬다. 엔버스는 속으로 셋을 세었다. 하나, 둘, 셋.

       

       펑.

       

       “모르겠다고요! 이거, 사실 희롱하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닌가요 청휘 도사⋯⋯?!”

       

       “음해요. 나도 루나⋯⋯ 그러니까, 월이라는 자에게서 이렇게 배웠소.”

       

       “그러니까, 단순히 시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그런 감각을 깨칠 수가 있겠느냐는──”

       

       “어, 정수리인가요 도사님?”

       

       따지고 들던 남궁승아도, 이리저리 둘러대던 엔버스도 동시에 남궁명을 돌아보았다. 그러니 눈을 지그시 감은 남궁명이 잠깐 집중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얼굴이네요.”

       

       “⋯⋯아직 세 시간도 안 지났거늘!”

       

       이어서 시선통찰을 시험해 보니, 남궁명은 상당한 숙련도로 시선 느끼는 법을 깨우친 상태였다. 정밀도도 높았으며, 게다가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시선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공격이 온다고 가정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피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이치에 맞아 효험이 있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남궁승아는 조바심이 났는지, 눈을 질끈 감으면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소리를 높였다.

       

       “이씨⋯⋯ 얼른 날 보세요, 청휘 도사! 나도 금방 깨우칠 테니까!”

       

       “허어⋯⋯.”

       

       “날 보라니까요!”

       

       엔버스는 보채는 남궁승아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남궁명을 오묘한 눈으로 쭉 바라보았다. 이 어린 소년은 날 때부터 감이 뛰어난 천재였던 것이다.

       

       이후로 세 시간이 더 흘렀으나 결국 남궁승아는 깨우치지 못했다. 엔버스는 혹시 남매의 사이가 멀어질까 크게 걱정하였으나, 기우였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공을 잘하니?!”

       

       “누, 누님. 아픕니다!”

       

       남궁승아는 질투는 하더라도 속으로 삭일 줄 알았다. 그녀는 제 남동생의 머리를 헝클이는 것으로 여러 아쉬움을 털어내었다. 그 모습이 퍽 익숙해보였다.

       

       “자주 이렇소?”

       

       “⋯⋯그래요, 청휘 도사. 명이는 이렇게 금방 앞서가 버려요. 가주님한테도 ‘네가 바로 천하제일의 기재로구나’ 하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까.”

       

       “과한 칭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님도 검초가 미려하고 훌륭하신 데다가, 소 형님은, 저 아득히 멀리 계시니까요!”

       

       “너랑 소가주님이 나이 차이가 얼마가 나는데!”

       

       남궁명은 과한 칭찬이다 싶어 멋쩍게 웃었다. 엔버스는 느껴지는 기시감에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넌지시 물었다.

       

       “⋯⋯형과는, 사이가 좋소?”

       

       “그렇습니다! 소 형님은 무척이나 바쁘셔서, 자주 어울릴 수는 없지만⋯⋯ 항상 저를 염려해 주십니다. 저번에는 부적도 사 주셨는걸요!”

       

       “그건, 대단히 좋았겠구려.”

       

       “예. 제게 하나 꿈이 있다면⋯⋯ 가주가 된 소 형님의 옆을 보필하는 거예요. 그리고 가문을 번창하게 할 겁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 소년의 눈 너머로.

       

       ‘로데루스 형의 오른팔이 될 거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모습이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엔버스는 차마 마주하기 힘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꼭 이룰 수 있을 거요.”

       

       닫힌 눈꺼풀에도, 태양을 올려다보면 남는 검은 반점처럼, 유년기의 빛바랜 기억은 오래 남아 있었다.

       

       ===============================================================

       

       “돼지 통구이는 이쪽이다 이것아, 이쪽이라고!”

       

       “어서어서 탁자를 놓고, 그쪽에는 깃발을 내거세요!”

       

       연회의 준비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온갖 인부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가구와 음식을 옮기고, 남궁가의 식솔들은 저마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저어 멀리에,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남궁명과 남궁소의 모습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의좋은 형제였다.

       

       그 장면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엔버스는 소란 속에서 고요하였다.

       

       “⋯⋯⋯⋯.”

       

       가끔, 길을 잃은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무공을 닦은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저택으로 돌아가, 모두에게 인정받겠노라는 막연한 꿈자락은── 이미 늦은 것은 아닌가.

       

       [꿈 : 레드번 저택으로 돌아가 실력을 증명하고, 나를 무시하던 이들을 무릎 꿇리고, 가주의 오른팔이 되기⋯⋯?]

       

       이룰 수 있기나 할까. 

       

       마력을 일으키면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이 몸을 갖고, 이룰 수 있기나 할까.

       

       ‘헌데, 이제 와서 타구봉법이 돌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 개방 방주 영현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 물음에는 지독한 회의가 담겨 있었다. 미래가 나아지기는 할까, 흘러내린 것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난.”

       

       그러한 혼돈 속에서, 아주 흐릿하게. 햇빛과 달빛이 스치우는 듯할 때.

       

       사건은 일어났다.

       

       척척척척.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남궁가의 무인들이 원형을 그리며 엔버스를 에워쌌다. 그가 고개를 들자, 접객당의 도사가 쥘부채를 나풀거리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이오?”

       

       “흥, 그렇게 시치미를 떼는 것도 여기까지다. 내 신통력으로, 네놈이 밖으로 나가 무얼 하는지 똑똑히 지켜보았지!”

       

       “⋯⋯⋯⋯?”

       

       밖이라면, 남궁 남매와 함께 하오문에 방문한 것을 말하는가?

       

       “실전된 타구봉법으로 다 망해가는 개방을 꼬드겼다지? 그러면, 대체 그 타구봉법을 어디서 구했다는 말이냐. 그것은 천마와 함께 사라졌는데!”

       

       “아니, 그건⋯⋯!”

       

       “답은 하나다. 네놈은, 마교의 끄나풀이렷다-!!”

       

       “⋯⋯⋯⋯?!”

       

       마수가 뻗어 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토요일 좋아~~~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면 일요일날 쉬고, 월요일날 다시 뵙겠습니다!
    저는 이 말 할 때가 참 좋더라구요⋯⋯ 평안하고 회복 효율 높은 주말 되세요,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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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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