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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눈부셔···.”

       

       

       커튼, 쳐놓았었던 것 같은데···.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은 직사광선에 얼굴을 찌푸렸다.

       

       벌써 아침인가···?

       

       이상할 정도로 피곤해서 더 자고 싶었지만, 눈을 감고 있어도 한번 깬 정신은 다시 잠들지 못했다.

       

       더 자고 싶어서 뒤척여봐도 더 불편해지기만 할 뿐.

       

       한참을 더 자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짜증 나.

       

       눈이 부신 것 정도야 이불을 덮어쓰고 자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내 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으, 물···.”

       

       

       목 안이 텁텁해 물을 찾자 목에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전날 노래방에서 노래를 다섯 시간 동안 부른 것 같은 느낌.

       

       목이 뻐근하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에 물을 마시고자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서기 위해 손을 짚자, 끈적끈적한 침대보가 손에 닿으며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아···.”

       

       

       어쩐지 몸이 조금 춥다고 생각했는데.

       

       땀과 체액이 뒤섞여 푹 젖은 침대보 탓이었구나.

       

       조금 추워서 옷을 입고 싶었는데, 이 상태라면 그것도 불가능하겠지.

       

       슬쩍 배 주위를 손으로 쓸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체액들이 끈적끈적하게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먼저 씻어야겠네.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보자, 곤히 자는 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무해하다는 듯 자는 모습에 살짝 심통이 났다.

       

       그렇게 난폭했으면서.

       

       자기 전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설마 내가 그런 신음을 내뱉게 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걸까.

       

       시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소설이나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거사를 치르고 난 뒤에 먼저 깨어난 사람이 연인에게 키스를 하는 그런 장면.

       

       키스를 하면 깰 것 같아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흐끄으으으으윽···?!”

       

       

       그리고 후회했다.

       

       예전에 잠깐 다이어트를 하겠답시고 헬스장에 다녀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매일매일 근육통과의 전쟁을 치렀었지.

       

       ···그것보다 몇 배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통증이 찾아왔다.

       

       

       “허, 허리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아니, 반으로 접힌 건가?

       

       알 게 뭐야. 더럽게 아프다는 건 똑같을 텐데.

       

       정신이 확 드네.

       

       다리는 갓 태어난 새끼사슴처럼 후들후들 떨리고, 팔은 축 늘어져 가슴 위로 올라갈 때마다 괴로웠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침대로 들어가 시우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움직여야만 하는데.

       

       시우가 일어날 때까지 갈증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부여잡고 움직였다.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듯. 조금씩, 조금씩.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물통이 원망스러워졌다.

       

       왜 저런 곳에 있는 거야.

       

       온갖 불평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거실의 한 가운데로 움직여 물통을 집어 들었다.

       

       

       “꿀꺽, 꿀꺽···.”

       

       

       타들어 가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잔뜩 들이켰다.

       

       물병에 담긴 물이 바닥을 보일 때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우와아···. 이게 도대체 뭐야···.”

       

       

       온통 체액으로 뒤덮여있던 시우의 방 안.

       

       하지만 시우네 방뿐만 그랬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실도 마찬가지로, 말라붙은 액체들과 아직도 남아있는 액체들, 그리고 내 실들이 뒤엉켜 난장판을 자아내고 있었다.

       

       온통 끈적끈적한 체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우의 향이 구석구석까지 나는 게, 뭐가 원인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여기서도 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한 거지? 청소하기 진짜 힘들겠네···.”

       

       “그러게.”

       

       “흐꺄아아아악?! ···끄으윽!”

       

       “괘, 괜찮아?!”

       

       “아, 아파아아···.”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마자 후회했다.

       

       극심한 근육통을 이기지 못한 나는, 주저앉아 한참을 끙끙거리며 고통을 가라앉히기 바빴다.

       

       고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무렵.

       

       어쩔 줄 모르며 연신 내게 괜찮냐고 묻는 시우가 시야에 들어왔다.

       

       

       “미, 미안···. 그렇게 놀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안아줘요.”

       

       “응?”

       

       “용서해줄 테니까, 안아줘요.”

       

       

       도대체 언제 일어난 걸까.

       

       내가 키스를 했을 때?

       

       아니면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물을 마시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시우가, 남들이 보기에 상당히 민망한 상태라는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빨리. 저보다는 멀쩡할 거 아니에요?”

       

       “어, 으응···.”

       

       

       시우의 몸도 역시 끈적끈적했지만,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겼는데 그런 게 무엇이 중요할까.

       

       시우의 탄탄한 몸에 안기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어린아이처럼 시우에게 명령했다.

       

       

       “자, 화장실로 돌진! 우선 목욕부터 합시다!”

       

       “알겠어.”

       

       “제가 지금 어느 짐승분 덕분에 움직이기가 힘들거든요. 잘 씻겨주셔야 해요?”

       

       “···.”

       

       

       아.

       

       말실수했다.

       

       시우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보고,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시우의 품속에 안겨있는 상황.

       

       도망칠 체력도 없고, 근육통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싫지 않기도 하고.

       

       결국 씻으면서 한바탕했다는 사실은,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었다.

       

       

       

       

       

       

       

       

       

       “으에에에엑···. 죽는다···.”

       

       “괜찮아?”

       

       “범인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미안···.”

       

       “아니, 미안할 것 까지는 없는데···.”

       

       

       결국 몸에 달라붙은 끈적한 액체를 모두 제거하기 위해서 매우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내가 근육통에 시달렸다는 건 말할 것도 없는 일인가.

       

       

       “저걸 다 처리하려면···. 하아···.”

       

       

       솔직히, 시우와의 한때를 모두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너무 기분 좋았던 나머지 기절한 적도 있었고.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서로를 탐했던 시간도 있었고.

       

       그랬기에 우리는 뒤처리를 생각하지 않고 집 이곳저곳에 행위의 흔적을 잔뜩 남겨놓았던 모양이다.

       

       한번 둘러보자, 집 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우와 함께 난감해하고 있던 무렵.

       

       거실 책상에 있던 내 휴대폰에 갑작스럽게 불이 들어왔다.

       

       

       “아, 전화다.”

       

       “내가 가져올게.”

       

       

       자기 탓에 내가 근육통에 시달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우가, 황급히 내 휴대폰을 들고 와주었다.

       

       아니, 뭐. 딱히 틀린 생각은 아니긴 한데.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시우 탓이 맞기는 해서···.

       

       뭐라 말하기 힘든 미묘한 기분을 느끼던 나는, 이내 말하기를 포기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움직이기 힘들었으니 차라리 잘 됐다고 해야 할까.

       

       

       “···여보세요?”

       

       -드, 드디어 받았다! 너, 너 지금 어디야?!

       

       “···네?”

       

       -지금 괜찮은 거 맞지?! 말할 수 없는 상황이면 신음을 길게 하면 네, 짧게 하면 아니오로 생각할게! 괜찮은 거 맞지?!

       

       “???”

       

       

       전화를 받자마자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와 시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뭐, 뭐야. 너. 납치라든가 당한 거 아냐?

       

       “네?”

       

       -···괜찮은 모양이네. 뭐야.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잖아···.

       

       

       한시름 놓았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쉰 아멜리아는, 갑작스럽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전화를 받았어야지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어?!

       

       “네? ···전화?”

       

       -그래! 내가 몇 번을 연락했는지 알기나 해?!

       

       

       ···연락했었다고? 언제?

       

       아멜리아의 호통에 전화 기록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아멜리아가 몇 시간 단위로 계속 내게 전화를 걸었던 흔적이 보란 듯이 남아있었다.

       

       

       “이, 이게 무슨···.”

       

       -삼 일 동안 전화도 안 받고! 경찰 부를까 진짜 고민했다고!

       

       “어? ···삼 일?”

       

       

       아멜리아의 말대로, 휴대폰이 가리키는 시간은 어느새 데이트를 했던 날에서 삼 일이 지나있었다.

       

       ···그럼 우리 삼 일 동안 계속해댄 거야?

       

       미친 거 아냐?

       

       어쩐지 초인인데도 온몸이 아프더라니···.

       

       

       

       ***

       

       

       

       “아, 그러고 보니 네 그 독자님 말이야.”

       

       “말하지 마···. 보고 싶어지니까···. 아아, 독자님. 보고 싶어요···.”

       

       “이 년 또 시작이네.”

       

       

       초월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있어 보이던 장소에서 강제로 쫓겨 나더니, 한동안 울고 있기 바빴던 녀석.

       

       정신을 차린 건지, 최근 재미있어 보이는 제안을 하길래 동참하고 있었는데.

       

       가끔 그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울해지는 모습이 참 꼴사나웠다.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

       

       “뭔데···.”

       

       “그 여자, 생리 안 하더라? 아이는 낳을 수 있어?”

       

       “아? ···아아, 그거?”

       

       “인간 여자들은 다 생리를 하니까. 그걸 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던데···.”

       

       “일부러 막아뒀는데.”

       

       “···그래?”

       

       “응.”

       

       

       자신이 만든 설정에 쫓겨나 버린 한심한 초월자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일부러 막은 거라고.

       

       

       “그게, 독자님의 영혼은 인간 남성이었으니까. 그런 거 겪으면 귀찮을 것 같기도 했거든. 주인공 지켜보는 데 방해만 되기도 하고.”

       

       “···그럼 임신 못해? 맨날 이어주겠다면서 시끄러웠잖아.”

       

       “그럴 리 없잖아.”

       

       

       자랑스럽다는 듯, 소녀는 우쭐대며 말했다.

       

       

       “자궁에 정액이 들어차는 순간 100% 임신하게 해놨어. 그 다음부터 생리를 하든가 하겠지!”

       

       “오···.”

       

       “아아, 독자님 지금쯤이면 주인공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 아아, 직접 보고 싶었어···. 스포일러 당하고 싶진 않았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삼 일동안 열심히 아이를 만들었는데, 임신하지 않을리가 없잖아!

    ***

    마요네임즈 님, 6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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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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