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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

         

         

         팔레 드 로얄의 대알현실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 혼란이라기엔 적이 우스운 연극이다.

         

         소수의 왕당파와 각 백작들의 파벌들이 난립하며 허울뿐인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폐하!! 그랑마르텔 백작이 상 마틸렌느의 접경을 넘었다는 급보입니다!”

         “성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랑마르텔 백작은 그저 이 나라의 왕실을 수호하려는 의인들과 함께함이라, 저들과 대적하는 것은 우책이오!”

         “이노오오옴! 그 입 닥치지 못할까! 그 의인이란 자들이 하는 짓을 보아라! 농번기의 이삭들이 모두 시들어가고 있다! 폐하, 저들을 징죄하소서!!”

         “베르몽포르 백작가에서 군세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폐하, 페르보뉴로 향하셔야 합니다! 상 마틸렌느는 역적들의 군세에 버텨낼 수 없나이다!”

         

         

         왕은 메마른 눈으로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저들 중 절반 이상은 그를 옥좌에서 끌어내리고자 함이라.

         

         호국경이 자리를 비운 순간부터 톱니바퀴처럼 시작된 역모다. 도당의 그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의 못난 아들들마저도.

         

         

         “폐하, 소자가 그간 지켜봐온 바, 그랑마르텔 백작은 만고의 충신이옵니다. 그의 병력은 오직 이 나라의 혼란을 감내하기 위함이라….”

         “그게 무슨 미친 소리십니까! 폐하! 하명하신다면 제가 직접 페르보뉴로 향해 베르몽포르 백작의 군세와 함께 상 마틸렌느를 지켜내겠나이다!”

         

         

         성문을 열어 역적들을 맞이하라.

         아니, 다른 지역의 역적들을 모셔와야 한다.

         아니다. 호국경을 기다려야 한다.

         차라리 외국으로 피난을 가고, 외국의 군세와 함께 다시 진군해야 한다.

         

         수많은, 그러나 모두 이 나라를 죽이고 싶어하는 자들의 외침이 어전에 가득했다.

         

         왕은 미간을 눌렀다. 시끄러운 어전 속에서 그는 홀로 조용히 고독했다.

         

         왕홀의 무게가 이토록 가볍다. 의인을 죽이고, 열사를 참하고, 충신을 도륙해서라도 쌓아 올린 왕권이었다.

         

         형제를 베고 조카를 팔았다. 오직 이 나라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라.

         

         그것이 없다면 이 나라는 끝이었으니까. 왕의 힘이 곧 나라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뱀 같은 귀족들 사이에서 왕실의 권위마저 떨어진다면 이 나라는 결코 하나의 국가로 영위될 수 없었으니까.

         

         마족과의 전쟁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상실했으니까. 국력이 바닥에 처박힌 순간부터, 힘을 온존하는 데에 성공했던 모든 귀족들은 왕의 경쟁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헤어나올 수 없는 덫이라.

         

         틸레스의 노왕, 오베르 3세는 세월에 찌들어 주름진 손을 들었다. 마침내 대신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권위라 하겠다.

         

         신하들의 눈이 아프다. 왕의 안위가 아니라, 다음 세대 권력자에게 가져갈 전훈을 위한 탐욕이 선연하다.

         

         그의 신하는 이제 이 자리에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늙은 왕은, 오랜 전쟁을 견디고도 왕좌를 유지한. 한때 틸레스의 사자왕이라 불렸던 이 노인은 이제 맞서 싸울 한줌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가 맞선다면 버틸 수 있겠더냐?”

         “폐하!! 그랑몽포르 백작은 역적이 아니….”

         “그만. 말해보아라. 응원을 청한다면 그 누가 손을 내밀겠는가. 크라실로프는 내홍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칼리온은 먼 바다 너머에 있으며, 드로안은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연합 왕국의 열강이라 불리울 나라들이 모두 그렇다.

         

         연합은 지금 당장의 틸레스를 구원할 수 없다. 하물며 틸레스 내의 병력이라 한다면야.

         

         그 절반은 그랑몽포르 백작의 손아귀에 쥐어 있고, 남은 절반은 각지에 흩어져 있다. 소집령을 내린다 한들 역적들보다 빠르게 수도에 도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턱밑으로 달려오는 단검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면 어찌 해야겠는가.

         

         늙은 왕은 한탄했다. 이 나라는 정말 이대로 끝이로구나. 하며.

         

         호국경의 부재와 동시에 무너질 나라였는가. 수많은 신하들 중 누구도 이를 먼저 알아채지 못했는가. 아니면, 알아채고선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던가.

         

         무엇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는가. 허울뿐인 왕권을 위해서 그리하였던가.

         

         

         “폐하. 에타크리히 공자가 입궐을 청하나이다.”

         “감히 예가 어디라고!!”

         “놈은 스스로 제 아비라도 된다 여긴단 말인가?”

         

         

         어전에서 나오기엔 적이 무례한 언사였다. 흥분한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공작의 부재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왕의 한탄이 더 길게 이어지기 전에, 콰앙. 어전의 두꺼운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감히!!”

         “지금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이곳은 어전이다!”

         “알고 있다.”

         

         

        -저벅, 저벅.

         

         오스칼이 어전의 긴 융단을 밟고 걸어왔다. 천천히 풀려나오는 기세에 귀족들이 움츠러들었다.

         

         초인의 영역에 도달했음이 명백한 기세였다. 단지 살기만으로 사람의 목을 옥죌 수 있는.

         

         이 자리에 그 경지에 도달한 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스칼의 앞에 감히 나서는 이는 없었다. 기선을 제압당한 귀족들은 어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폐하, 동방기사단의 입회기사. 오스칼 드 에타크리히가 이 자리에 있나이다.”

         

        -스릉.

         

         

         검이 천천히 뽑혀나왔다. 어전의 마력등 아래에서 새하얗게 타오르는 검이. 이 자리의 모두는 그 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에타크리히 대공의 검이다. 군권의 상징이며 동방기사단의 신물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호국경은… 전사했는가.”

         

         

         왕의 신음과 함께 귀족들 사이에서 소란이 터졌다. 왕당파의 절망과, 귀족원의 기쁨 섞인 비명이 메아리쳤다.

         

         그 소란 속에서 오스칼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소서. 이 자리엔 질 베르의 아들이 아니라, 에타크리히가 검을 쥐고 있나이다.”

         “경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오스칼은 고개를 들어 늙은 왕을 올려보았다. 소란 속에서 그 둘은 고요한 침묵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스칼의 입술을 무겁게 열렸다.

         

         

         “에타크리히는 언제나 앞장서야 합니다.”

         “윤허하겠다. 경은 이 순간부터 호국경으로 본분을 행하라.”

         “어명을 받듭니다.”

         

         

         오스칼은 검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싸늘한 눈이 귀족들을 훑었다. 가장 앞에서 핏대를 세우며 고함치고 있는 귀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감히 네가 네 아비라도 된 성싶더냐?!”

         “아니.”

         

         

        -스릉.

         

         

         검을 들고 앞으로.

         

         

         “이 자리엔 오직 한 사람의 에타크리히가 서 있을 뿐이니.”

         

         

        -서걱.

         

         

         귀족의 머리가 힘없이 공중을 날았다. 빙글 돌아가던 머리가 어전의 융단을 붉게 물들였다. 경악한 귀족들이 물러서기 시작할 때, 오스칼은 검을 쥔 채 말했다.

         

         

         “수도군단은 이 순간부터 그대들의 군주를 수호하라.”

         “어명을 받듭니다!!”

         

         

         열린 어전의 문 안으로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이 도시엔 아직 질 베르가 두고간 절반가량의 수도방위군이 남아 있었다.

         

          어전은 도살장으로 변했다. 세 백작의 파벌에 가입한 서로 다른 귀족들 모두는 오스칼의 손짓에 따라 죽고 살았다.

         

         피와 시체가 늘어선 어전에서, 오스칼은 다시 조용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이 순간부터 제가 폐하의 안위를 오롯이 지켜내겠나이다.”

         

         

         호국경의 직위란 그런 것이다. 오직 죽음만이 의무에서의 자유를 가져오는 자리다. 그리고 이 자리엔 아직 한 사람의 에타크리히가 살아 있으니.

         

         그의 죽음 이전에 틸레스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늙은 왕은 손을 뻗어 시위무관의 검을 뺏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오스칼의 앞에 섰다.

         

         스릉, 차가운 쇠가 그의 어깨에 닿았다.

         

         아무런 대화 없이, 왕은 오스칼의 양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 위에 검을 드리웠다. 잠시 후, 왕은 다시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왕좌에 주저앉았다.

         

         

         “적어도 한 사람의 충신이 남았으니 짐은 임금으로 죽을 수 있겠구나.”

         

         

        *

         

         

         “자, 자자. 어디 우리가 죽을 날 받아놓은 것도 아니고, 다들 고개들 드세요.”

         

         

         유진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들었다. 모두들 피로에 찌든 얼굴이었다.

         

         사흘을 내리 달려서 수도에 돌아오자마자 왕실에서 일을 벌이고, 곧장 군권을 쥐어 이제 병력 구성을 확인한 차였다.

         

         병무와 군무를 다스리던 고위 귀족들 대부분을 죽여버린 탓에 행정 공백이 치명적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장교급 군관들과 함께 병력을 확인하고 돌아와서 퍼져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당장 이틀 안에 적군이 도착할 것이다.

         

         상 마틸렌느는 이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다. 단순히 성벽에 병력을 전개하는 것만으로도 사천 명이면 다 감당할 수도 없다.

         

         

         “이걸 어떡해요? 그냥 와서 노크만 해도 열어줘야겠는데.”

         “차라리 왕실에서 챙길 것만 챙기고 같이 빠지는 편이 낫겠는걸요.”

         “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형님이 살아있잖아요.”

         “…아저씨가 온다고 뭐가 달라진대요?”

         “아직까지 우리한테 별 언질이 없잖습니까.”

         

         

         유진은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만약 우리가 뭘 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면 우리끼리만 보내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리도 없습니다. 형님께서 살아있는 이상 방법이 있으니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지요.”

         “하늘에서 갑자기 병력을 이끌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형님의 계획까진 주께서 별 언급이 없으시더군요.”

         

         

         유진의 상태창에 이반은 여전히 생존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이반이 살아있다면, 그가 이 상황에서 퇴각하라거나 도주하란 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그 방법이 무엇인지 확인될 때까지 버티는 것만 생각하자. 그것이 유진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어떻게요? 공성이 시작되면 당장 버틸 수가 없는걸요.”

         “외성을 포기합시다.”

         

         

         유진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오스칼이 툭 내뱉었다.

         

         

         “미쳤어요? 시가전을 하자고요?”

         “아직 피난하지 못한 백성들을 모두 내성에서 수용하고, 외성과 수도권역 전부를 포기합니다. 외성 성벽을 따라 전개하면 하루 정도는 버틸 겁니다.”

         

         

         성벽의 면적이 줄어든다면 사천 명으로도 성벽 전체를 감당할 수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급 역량이 마모된 시점에서 오랜 전투 지속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백성들까지 먹여 살리며 몇 날 며칠을 버틸 수는 없을 테니까.

         

         

         “이반 씨 방식을 따라해봅시다.”

         “네?”

         “우리가 방학 동안 배운 게 다 그거 아닙니까. 침투, 생존, 그리고….”

         

         

         암살.

         

         오스칼의 말에 이자벨이 입을 다물었다. 기실, 보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용사파티는 전쟁을 지휘하며 승리를 가져다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참수작전. 마왕과 칠용장의 목을 잘라오는 침투 부대에 가까웠다. 암살자들인 셈이다.

         

         그러니 오스칼은 군권을 쥐고 승전을 유도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능력이 되는 인물이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병력차가 물경 8배를 넘어선다. 보급로 전반은 적의 손에 쥐어 있으며, 시간이 흐른다고 승기가 서는 전황도 아니다.

         

         하지만 직접 그랑마르텔 백작의 목을 칠 수만 있다면 승산이 없다 하기도 어렵다. 적은 그 시절 마족군세와 같았다. 휘하 영주들의 집결은 오직 그랑마르텔의 권위로만 이루어져 있으므로.

         

         

         “내성에서 수성을 시작한다면 반드시 상 마틸렌느 전역을 지배하려 들 겁니다.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랑마르텔은 마족군처럼 이 나라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이 옥좌라면, 폐허 위의 왕위보다는 온건한 전리품을 얻고자 할 테니까.

         

         그러므로 시가전을 벌인다.

         

         

         “순순히 들어올까요? 함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정을 팔 여력이 있다고 여기겠습니까? 최후의 발악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선물을 보내놓았다. 대백작들을 지지하던 귀족원의 귀족들이 남긴 목과 에타크리히 대공의 인장이 박힌 친서로.

         

         용사 파티의 일원을 직접 꺾고 왕위를 쟁취할 명예까지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 좋아요. 수성을 하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어봐야 하루. 그 시간 안에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보죠.”

         “원치 않으신다면 여기에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여기까지 와서요?”

         “이자벨 양은 몰라도 다른 분들은 다 고향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목숨을 거실 이유가 없지요.”

         “이유라면 있어요.”

         

         

         에시디스는 머리칼을 빙글빙글 꼬며 웃었다.

         

         

         “우린 다 같은 파티잖아요.”

         

         

        *

         

         

         “상 마틸렌느….”

         

         

         에투앙 드 그랑마르텔은 새하얀 말의 등에 앉아 언덕 아래로 펼쳐진 대도시를 굽어보았다.

         

         늦은 심야임에도 도시에서 빠져나온 피난민 행렬이 점점이 초원 너머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게 틸레스 왕가의 뜻인가?”

         

         

         에투앙의 앞에 부복한 시종장이 거대한 궤짝을 열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궤짝 안엔 귀족들의 잘린 머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하나하나 아는 이들이다. 수년에 걸쳐 귀족원에 심어두었던 귀족들이 모두 시체로 돌아왔다.

         

         행정귀족들로서 각각 다가올 나라의 인재가 될 이들이었다. 에투앙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항복 없는 승리]

         [에타크리히 대공]

         

         

         궤짝에 첨부된 쪽지는 단촐했다. 힘있는 필치로 적힌 단 한 문장과, 에타크리히 대공의 인장이었다.

         

         질 베르는 베르니니 산맥에서 죽었을 테니 이건 그 아들놈의 짓이겠군. 제법 당돌하다.

         

         

         “전하, 진군을 명하여 주십시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에투앙은 오스칼의 쪽지를 와락 구기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코앞에 펼쳐진 도시의 광역권 앞에서,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승리를 야밤에 훔쳐올 수야 있느냐. 병사들을 다독이고 잘 먹여두어라. 전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선을 위해서. 날이 밝는 대로 진군해, 늙은 왕에게 왕관을 받아내야겠다.”

         “예, 전하.”

         

         

         에투앙은 물러서는 시종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언덕 위에 올랐다.

         

         틸레스가 이제 그의 손아귀 아래에 있었다.

         

         

        *

         

         그 시점.

         

         

         “귀관의 충성은 어디로 향하나.”

         

         

         기욤 백작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내려보는 새파란 눈동자를 올려보고 있었다.

         

         입을 열어 자비를 구걸하려는 순간, 그의 입가에 손가락이 얹어졌다.

         

         

         “아니, 듣지 않겠다. 귀관은 이미 충분히 행동으로 입증해왔으니.”

         “그, 그게 무슨 말….”

         

         

        -타앙—!

         

         

         팅, 하고 탄피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이반은 연기가 올라오는 권총을 허리춤에 차고 뒤를 돌았다. 소란스러운 군영 사이에서 죽은 기욤 백작의 머리를 콱 움켜쥐고 걸었다.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지요. 벌써 며칠째입니까.”

         

         

         곁에 다가와 조용히 묻는 노아르 남작을 일별하고는, 이반은 짧게 대답했다.

         

         

         “팔일, 19시간, 23분.”

         

         

         훈련받은 요원은 언제나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반의 대답에 노아르는 입을 한 번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대야 모르되 병사들의 상태는 좋지 않소. 피해가 너무 심했소.”

         “수습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들만 따르라.”

         “60인도 모이지 못할 거요. 기사들로만 골라도.”

         “남은 병력 중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이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

         

         

         이반은 기욤의 머리를 안장에 채우고 말 위에 올라탔다.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방향을 가늠했다. 머릿속 지도를 펼쳐 지리를 확인했다.

         

         뜨겁게 달군 인두로 뇌의 한 구석을 지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동시에 통증이 뭉근하게 차올라 호흡을 옭아맨다. 단 한 시도 잠들지 않고 오직 싸움만 계속한 시간이 벌써 여드레가 지났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저격은 무리겠군. 이반은 조준선이 계속 어긋나는 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이반의 말에 노아르는 기미가 깊게 내려앉은 눈으로 한차례 투덜거리고는 말 위에 뛰어올랐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틸레스 편 곧 끝납니다 (진짜임)

    자르기 애매해서 좀 눌러 담았습니다! (사유 :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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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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