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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 그래. 단지 그것이면 되느니라. ]

         

       진성은 스마트폰 너머로 보이는 리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안심한 듯 그렇게 말했다.

       미혹에 휩싸였다가 그것을 벗어나고, 그 대가로 점차 성장하는 리세의 정신을 보며 진성은 얼굴에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래. 생각에 깊게 빠지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나 그것에는 반드시 의심이 따르는 법. 중심을 꽉 잡고 있지 않으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게 되는 것이니, 너는 중요한 것을 닻으로 삼아 그 자리에 무겁게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리세의 차림을 한 번 훑어보았다.

         

       [ 그나저나 옷이 흐트러졌구나. 마침 밤이 깊었으니 바람도 차가울 터이니 감기에 들기 전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는 것이 좋겠다. ]

       “네? 아….”

       

       리세는 진성의 그 말에 슬쩍 자신의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피부색이 슬쩍슬쩍 비쳐 보일 정도로 얇고 하얀 유카타.

       잠옷 대용으로 입는 것이라 그런지 너무나 얇았고, 옷감의 무게는 가볍기 짝이 없어서 바람이 부는 것에 그대로 흐느적거리며 펄럭일 정도였다.

         

       유카타는 리세가 고민에 빠진 사이 바람이 한차례 몸을 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흐트러져 있었고, 아까 옷깃을 여미며 빈틈없이 가렸던 살갗이 약간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땀이라도 흘린 것인지 이곳저곳에 몸에 짝 달라붙어 있기까지 했으니.

         

       리세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스마트폰을 슬쩍 돌렸다.

       그리곤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몇 번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마트폰을 다시 자신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몸 전체, 혹은 상체 대부분을 비추던 아까와는 다르게 줌이 가득 당겨져 리세의 얼굴만을 비추는 형태가 되었다.

         

       리세는 스마트폰 바깥쪽에서 손부채질해서 바람을 보내 얼굴을 식히며,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가장했다.

         

       “신사의 부지 내라서 그런지 그렇게 춥지는 않답니다. 그리고 신력의 영향으로 잔병치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에요. 크게 걱정해주시지 않아도 된답니다.”

       [ 그러느냐? ]

         

       진성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리세의 얼굴을 보았음에도 내색하지 않고 말을 받아주었다.

         

       [ 그렇다고 한들 잠은 자야 할 터. 마침 시간도 축시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밖에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니라. 하니 안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도록 하여라. 료스케라는 작자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이…. 그래. 다른 정치인들에게 견제받고 배척을 당하게 하는 것으로 족하니 말이다. ]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 자신이 말한 길일에 처리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래, 제가 능력을 발휘하기 싫다면 도구로라도 사용되어야 하는 법이지. 그래, 야태도아랑류(野太刀餓狼流)의 무인과 얽히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야태도아랑류, 말씀이신가요?”

         

       리세는 그 단어를 듣자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과거 리세는 몰래 외출을 나갔다가 야태도아랑류의 망나니 무인에게 얽혀서 크게 고생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는 곳이기는 합니다만….”

         

       아주 끈덕지고 불쾌한, 그러면서도 묘하게 강압적인 태도로 자신을 꾀려는 망나니 때문에 리세는 자신의 일탈을 들켜 한동안 외출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학교와 신사 밖으로 이동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호위라는 이름의 감시자가 그녀를 뒤따라오기까지 했다.

         

       그것이 어찌나 끔찍했는지, 새장 속의 새처럼 갇혀서 그대로 썩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 그러하겠지. 웬 망나니에게 얽혀 고초를 치렀으니 말이야. ]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세는 진성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 일을, 아세요?”

       [ 당연한 일이니라. ]

         

       진성은 화들짝 놀라 자신에게 묻는 리세에게 웃어주었다.

         

       [ 덕분에 너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 신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느니. ]

       “네?”

       [ 인과의 끈이 이어진 것은 그 무인 덕분이라는 이야기이니라. ]

         

       그 말에 리세는 진성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매우 놀란 것인지 입이 슬쩍 벌어져 있었고,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묘하게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무인이라고 하기도 참으로 끔찍한 족속이며,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인맥이라고는 쥐뿔도 없고 그나마 있는 것이라고는 저승길로 가버린 쓰레기들 뿐이었느니라. 야태도아랑류와의 연은 끊겨버렸고, 오직 하류 인생으로 살아가는 일만이 남은 작자였지. ]

         

       진성은 무인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 하하하하. 놀랐느냐? 옛적 자신에게 다가왔던 악연이, 여기에도 닿아있음이 그렇게 놀라운 것이냐? ]

       “네? 네…. 놀, 놀라워요.”

         

       리세는 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 일단 먼저 말하겠느니라. 너와 원한으로 얽힌 그 치는 죽었느니라. ]

       “네?”

       [ 하니 은원의 사슬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덮칠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

         

       리세는 무인이 죽었다는 말에 다시 한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나 놀란 것인지 그녀의 귀에서 여우 귀가 튀어나와 쫑긋거리며 흔들렸고, 풍성한 꼬리는 비물질의 형상으로 유카타를 뚫고 밖에 드러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이라.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엉성해 보여도 악인을 놓치지 아니하는 법. 고작 한국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던 것 같은 복수는 나의 손에 의해 마무리가 되었으니 이것을 어찌 인연의 신비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진성은 쫑긋 움직이는 여우 귀를 보며 말했다.

         

       [ 그 망나니는 오직 악영향만 끼치며 살아갈 작자이니 그 자체로 독을 품고 땅을 오염시키는 흉물(凶物)이나 다름이 없으며, 악취를 풍기며 사방에 그 해를 퍼뜨리는 쓰레기였으니. 가장 먼저 보았던 내가 그것을 치우는 수고를 하였음이라. ]

         

       리세는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무인에게 가졌던 끔찍하기 짝이 없었던 만남, 그리고 후에 들었던 그 무인의 행실과 과거를 듣고 생긴 인상이 그녀가 저절로 긍정의 표시를 하게 만든 것이다.

         

       [ 그자는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의 밑바닥에서 숨이 끊기고, 육체가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넋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그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느니라. 다만 쓸모없는 것의 쓸모라. 아무리 쓸모가 없다고 한들 인과를 움직이고 인연의 끈을 이어줄 쓸모만큼은 있었는지 나에게 너의 존재를 알게 하였고, 그것으로 너에게 방문하여 너를 구원하게 되었느니라. ]

         

       진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 살아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 죽어서야 덕을 베풀었도다. 다만 덕을 베푸는 것은 선이며, 이는 생사(生死)의 여부와 관련이 없으니. 아마 망나니는 죽었어도 자신이 선업을 쌓았음에 감사하며 눈을 감았을 것이며, 극락으로 갈 한 가닥의 실을 손아귀에 쥐었을 것이다. 덧없는 인생에도 의미가 생긴 것이니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옴 마니 파드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

         

       진성은 죽어서 귀신이 되었을 남자에게 가볍게 명복을 빌어주고는 리세에게 말했다.

         

       [ 그래. 너는 이제 너와 원한이 있었던 이가 죽었음을 알았고, 그 원수로 인해 내가 이곳에 방문하여 구원받았음을 알았다. 심정이 어떠하냐? ]

       “…복잡해요. 하지만 잘 죽었다고 생각은 해요….”

         

       리세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성은 그 표정이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그래. 그거면 되었느니라. 그 작자가 죽은 것은 너와 얽혀서 죽은 것이 아닌, 오직 제 업보로 인한 것. 말하자면 네가 강어귀에 앉아 그 작자에 대해 생각하며 짜증을 내고 있을 때 상류에서 그 시체가 떠밀려 온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니라. ]

       “네. 신주님의 말이…맞아요.”

       [ 그렇다면 묻겠다. 원수가 갚아졌으니 그 원수의 발이 닿았던 곳과 그 원수가 몸을 담았던 곳은 이제 완전히 관계가 없어진 것이냐? ]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아도 그 답은 쉽게 나왔으니.

         

       “아뇨.”

       [ 그렇다. ]

         

       그 대답에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 주인과 그 흔적은 반드시 공감적 결합이 있고, 거기에는 끈끈한 인과가 자리하고 있느니라.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끊어지지 않는 고리를 만드니 이것이 바로 주술적 공감이라. 과거를 떼놓고 현재를 이야기할 수 없듯, 그 무인의 잘못 역시 삶의 궤적이 반드시 연관이 있을 것이니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곳이 바로 야태도아랑류이니. ]

       “네. 나쁜 감정이 없기는 하지만 좋은 감정 역시 없네요.”

       [ 그래. 그 말인즉 정치인을 미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후회는 없다는 것이다. ]

         

       리세는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입술을 살짝 벌렸다. 하지만 질문을 다시 삼키려는 듯 입술을 꾹 닫았다가, 다시 무언가 말하려는 듯 달싹달싹 움직였다. 그리곤 다른 곳을 바라보며 진성에게 슬쩍 물었다.

         

       “신, 신주님. 그 혹시…. 제가 좋은 감정이 있다고 했으면….”

       [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연히 다른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

         

       진성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주었다.

         

       “그, 그런가요? 당연한 일인가요?”

       [ 그래. 당연한 일이니라. ]

         

       그 말에 리세의 얼굴이 풀렸다.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비어있는 한 손으로 자신의 볼을 덮었고,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 그래. 보아하니 시간도 늦었고 방에도 다 도착한 것 같으니 이만 통화를 종료하도록 하겠다. ]

       “네에.”

         

       리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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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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