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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쩌적, 쩌저적!

         

       “제발, 제발!”

         

       과도하게 집중한 탓에 앞머리를 타고 떨어지는 식은땀. 초조함에 카자르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쩌저적, 쩌적!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면 결계가 사라졌다. 카자르는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다.

         

       “공작님? 공작님?!”

         

       여기는 프란체가 머물고 있던 침실. 현명한 그녀라면 여기서 나가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터.

         

       “공작님? 어디 계세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던 그때, 피의 쓴 냄새가 카자르의 코끝을 침범했다. 이는 분명 생명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남은 후유증이었다.

         

       “…공작님?”

         

       냄새의 방향으로 조심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프란체가 있었다.

         

       “공작님, 공작님!”

         

       카자르는 쓰러진 프란체에게로 달려갔다. 창백하다 못해 새하얀 얼굴. 호흡이 거칠고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이게, 이게 어떻게…….”

         

       서둘러 프란체의 상태를 살피는 카자르. 피를 토한 흔적이 있는 입가. 뜨거운 열기가 새어 나오는 복부에선 피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카자르는 손끝에 모든 마력을 담아 신성 마법을 펼쳤다. 성녀 급은 아니지만, 초월 마법사의 신성이라면 살릴 수 있다.

         

       “공작님, 제발 정신차리세요!”

         

       공포감이 몰려들었다. 계속해서 코에 맴도는 피의 냄새는 생명의 소멸을 암시했고, 죽음의 서곡을 알렸다.

         

       “공작님, 제발…!”

         

       우웅! 더욱 강렬한 신성 마법을 펼쳐 무지막지하게 마력을 쏟아붓는 카자르. 다행히 그녀의 바람이 통한 건지 프란체의 피가 멎었다.

         

       “공작님? 공작님, 정신차리세요!”

         

       대답이 없다. 설마 이미 늦은 건 아니겠지? 카자르의 어깨가 덜덜 떨려왔다.

         

       “제발…….”

         

       신성 마법으로 프란체의 상태를 살피는 카자르. 다행히 미약하게나마 숨을 유지하고 있다.

         

       늦지 않은 거다.

         

       “하…….”

         

       털썩. 심장이 떨어질 뻔한 카자르는 전신의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더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가 나왔으리라.

         

       “정말 죄송해요… 제 탓이에요…….”

         

       그 수상한 이질적인 존재가 들어왔을 때 확실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케일과 라데아도 눈치채지 못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떡해…….”

         

       애처롭게 프란체를 바라보는 카자르. 그녀의 의식도, 얼굴색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던 그때.

         

       “무슨 일입니까!”

         

       우렁찬 갑옷 소리를 내며 몰려온 황실 기사단. 그 중심엔 케일과 라데아가 있었다. 카자르는 눈을 부릅뜨며 일어섰다.

         

       “데카르트 공작님을 암살 시도한 사람이 있어요. 제가 응급 처치는 해둔 상태고요.”

         

       암살이라는 소리에 술렁이기 시작하는 기사단. 카자르는 말을 이었다.

         

       “여기 별채의 경비를 맡으신 기사분은 계신가요? 혹시 모르니 출입 명단을 확인해주세요.”

         

       이미 범인을 알고 있는 카자르였지만, 몰아갈 방법이 없다. 이면 결계의 특성상 마력의 흔적도 남지 않고 직접 본 것도 아니니 말이다.

         

       ‘성녀에게 화살이 가도록 유도해야 해.’

         

       무작정 성녀가 했다고 우기기엔 무리가 있다. 그녀는 황후이자 성녀. 제국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신뢰가 두텁다.

         

       이를 천천히 깨트려야 한다.

         

       “출입 명단을 확인했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출입하신 분은 공작님을 포함하여 호위분들까지 총 넷. 그 외에는 청소와 시중을 맡은 사용인들뿐입니다.”

         

       성녀가 출입했다는 기록은 없는 건가. 쯧, 카자르는 혀를 차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현장은 제가 먼저 조사할 거예요. 황실 쪽에 암살자가 있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어요.”

         

       카자르의 말에 한 기사가 반발했다.

         

       “지금 황실 쪽에서 데카르트 공작님을 암살 시도했다는 겁니까?! 이는 명백히 황실에 종사하는 이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그 말에 케일과 라데아가 살기를 내뿜었다. 서늘해지는 공기에 오한이 깃들어 기사들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지금 너희들의 명예가 중요한가?”

       “상황 파악을 좀 하시죠.”

         

       둘의 살기에 압도되어 움츠러드는 황실 기사들. 카자르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단 두 명밖에 없는 초월 마법사 중 한 명이에요. 어떤 궁정 마법사를 데려와도 저보다 정확할 순 없죠.”

         

       우웅! 카자르는 손바닥 위에 마력 구체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이 현장을 제가 직접 조사하겠어요.”

         

       그렇게 마력의 흔적을 읽기 시작한 카자르. 당연하게도 흔적이 나올 일은 없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연출을 위한 행위.

         

       “이상할 정도로 마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네요. 공작님은 대마법사에 도달하신 흑마법사이신데 말이죠.”

         

       이 정도 힌트를 줬으면 누구라도 알아챌 것이다.

         

       “전대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가 돌연 서거하실 때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면 전대 황제, 황후 폐하를 암살한 사람이 공작님까지 암살했다는 건가?!”

       “대체 누가?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 리 없잖습니까!”

         

       혼란의 도가니가 된 별채. 그러던 그때.

         

       “무슨 일인가!”

         

       뒤늦게 황제 레제프가 등장했다. 그 옆에는 낯빛이 어두운 황후 소미레도 있었다. 카자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얕게 떴다.

         

       ‘역시 저년이군.’

         

       암살을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낯빛이 어두운 거겠지.

         

       “데카르트 공작님을 암살 시도한 자가 있습니다. 마력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걸 보아, 이전에 있었던 전대 황제 폐하께서 돌연 서거하신 일과 관계가 있는 자 같습니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카자르. 레제프의 얼굴이 인정사정없이 구겨졌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암살한 배은망덕한 자가 공작까지 암살 시도했다는 건가?”

         

       카자르는 “그렇습니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레제프. 이어서 마른 세수를 하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우선 이 사건과 짐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여신님과 페델리안의 사자에 맹세하오.”

         

       카자르는 눈을 얕게 뜬 채 옆에 있던 소미레를 째려봤다. 시선이 마주친 소미레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 미친년…….’

         

       뿌득. 카자르는 어금니가 갈리도록 이를 악물었다.

         

       “현장을 조사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인은 강력한 신성 마법 사용자이면서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레제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게 누굴 말하는 건지 명확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오?”

         

       카자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말을 이었다.

         

       “공작님께선 흑마법 하나만으로 대마법사에 도달하신 분입니다. 웬만한 소드 마스터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하시죠. 그런 분을 제압하려면 상성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야 하는데.”

         

       이어서 소미레를 쏘아보는 카자르.

         

       “특별하면서도 아주 강력한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공작님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하지요.”

         

       웅성웅성.

         

       곳곳에서 술렁이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성녀님이 아니고서야 불가능이지 않나…?”

       “강력한 신성 마법이라면 성녀님 말고는….”

       “이거, 누굴 말하는지 너무 명확한데…….”

         

       이는 레제프에게도 들렸는지 엄숙하게 소리쳤다.

         

       “그만! 시답잖은 추측을 이어간다면 황실 모욕죄로 간주하겠다.”

         

       그 한 마디에 바로 정숙해진 별채의 복도.

         

       “레이디 유플레인. 그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오?”

         

       카자르는 “알고 있습니다.”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황제 폐하가 서거하실 때도 마력이나 오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지요?”

         

       그렇소만, 하고 대답하는 레제프.

         

       “저는 공작님께서 취침하실 때 끊임없이 탐색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오러나 마력이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바로 경보가 울리는 마법이죠.”

         

       카자르는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엔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런데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마력도, 오러도 존재하지 않았죠. 이 모든 게 너무 작위적이지 않습니까?”

         

       대마법사의 흑마법을 제압할 수 있는 신성 마법사. 마력이나 오러를 지울 수 있는 특수한 능력. 누가 봐도 성녀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몰아가면 돼.’

         

       황실 기사단의 눈치를 보니 그들도 성녀가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야 그럴 것이, 이 자리에서 가장 용의자로 타당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쓸데없는 추측은 그만하도록!”

         

       별안간 레제프가 소리쳤다. 그의 옆에서 성녀가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호위들, 그대들이 공작을 해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말에 카자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케일과 라데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흑마법을 사용하는 대마법사인 공작을 압도할 수 있는 자는 그대들도 포함이오. 허나 데카르트의 기사단장과 부단장은 황실 기사단과 움직였지. 그렇다면 범인은 그대가 아니오?”

         

       난데없이 카자르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레제프. 분명 옆에 있던 저 성녀가 입김을 불어넣은 거겠지.

         

       “마력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알 수 없지만, 그대 또한 초월 마법사라는 드높은 경지에 도달한 인물. 그러한 능력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소리에 케일과 라데아가 참지 못하고 반발했다.

         

       “못 들어주겠군.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저희가 그럴 이유가 뭐가 있다고요?”

         

       레제프는 눈썹을 좁힌 채 카자르를 쏘아봤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어떠한 목적을 위해 처음부터 계획을 세운 걸 수도 있지 않소? 그리고 그걸 황실에 덮어씌우려는 것이지. 내 말이 틀리오?”

         

       파지지직! 듣다 못한 케일이 전력으로 오러를 개방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검붉은 전류에 모두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 이상으로 우리의 충성을 의심하고 모욕한다면 아무리 황궁이라도 유혈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거다.”

         

       라데아와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케일 씨, 진정하세요!”

       “방금 그 발언은 좀 위험했어요!”

         

       황제의 앞에서 오러를 개방한 것도 모자라 목숨을 위협. 이는 당장 황실 수호 기사단이 몰려와 그를 판옵티콘으로 수감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대역죄였다.

         

       “백귀, 지금 그대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고 있소?”

         

       살기어린 시선을 보내며 케일을 쏘아보는 레제프. 둘 다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나는 데카르트 공작가의 기사단장, 케일. 과거엔 백귀와 용병왕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명예를 위해 싸운 자. 이 이상으로 내 주인과 나의 명예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스윽. 케일의 오른손이 허리춤에 매달린 칼자루로 향한다. 카자르는 다급히 그런 케일을 만류했다.

         

       “케일 씨, 진정하세요! 지금은 범인을 색출하는 게 중요해요!”

       “저걸 어찌 참으라는 거지? 범인이 누구인지 뻔한데 우리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잖나!”

       “그래도 자리를 생각하세요! 황제의 앞이고, 범인이 바로 앞에 있다고요!”

         

       쯧, 케일은 혀를 차곤 마지못해 오러를 거뒀다.

         

       “…황궁에서 예상치 못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걸 감안하여, 이번에는 관대하게 그대의 실수를 넘어가겠소.”

         

       상황이 잘 무마되어 카자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프란체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무튼,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새었네요. 폐하께서도, 기사단 여러분들께서도 제가 말한 걸 곰곰이 잘 생각해보시길. 정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요.”

         

       그리 말하곤 성녀를 쏘아봤다. 소미레는 경직된 상태로 무겁게 침을 넘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년.’

         

       그때. 뒤에서 라데아가 프란체를 수평 안기로 데리고 나왔다.

         

       “공작님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아요.”

       “그래, 빨리 공작령으로 돌아가자.”

         

       그때. 성녀 소미레가 손을 들었다.

         

       “데카르트 공작님의 상태를 제가 봐드릴 수 있어요. 저는 치유 마법에……”

         

       아니요, 하고 날카롭게 말을 끊는 카자르. 아무리 치유 능력이 압도적이라도 암살을 시도한 범인에게 맡길 수 없지.

         

       “공작님은 저희가 알아서 치료할게요. 황실은 범인 색출에나 신경 쓰시죠.”

         

       앞서 나가는 카자르를 중심으로 케일과 라데아가 따라붙었다. 별채의 복도에 있던 기사단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눈치만 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한 말 잘 생각해보시길. 범인은 아주 가까이 있으니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자르를 비롯한 데카르트의 모두는 별채를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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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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