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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소희의 어린 시절이 딱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소리는 활기차고 순수한 아이였지만, 그 아이를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눈치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리는 내가 우울한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순간을 이상하게 빨리 눈치챘다.

        

       내가 식탁에 앉아서 어머님을 생각하고 있을 때 ‘슬퍼?’하고 물었던 것 외에도, 소희와 그 아버지, 소리, 이렇게 세 사람으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와 어머님의 관계를 떠올릴 때마다, 소리는 얼른 나의 손을 끌고 자기 가족에게로 가곤 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이 세 사람과 어울려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소리의 덕이었다. 물론 소희도 열심히 돕기는 했지만.

        

       분명 나는 가출해 와있을 뿐인데, 이상하게 얹혀 있는 이 집의 분위기가 더 화목한 것은, 아마 단순히 내가 그렇지 못한 집에서 살다 왔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어린 시절에 그런 일을 겪어서 그랬던 것 같아.”

        

       밤이 늦어, 슬슬 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소리가 눈치가 무척 빠른 것 같다는 나의 평가에, 소희는 쓰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일이라니?”

        

       “음…….”

        

       소희는 나의 되물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소리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하늘나라로 갔으니까.”

        

       “아…….”

        

       확실히, 소희의 아버지는 봤어도, 어머니는 보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 때문에 떨어져 지냈다면 대화하는 도중에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 정상이었을 테니까. 내가 이렇게 집에 얹혀살게 되었을 때도 당연히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좋은 일로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들 앞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어머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처럼.

        

       물론 헤어진 이유가 사별인 이상, 소희 가족이 어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내가 어머님께 가진 감정보다 훨씬 긍정적이겠지만.

        

       “미안.”

        

       그래도 그런 감정을 공감할 수는 있었기에, 나는 그렇게 사과했다.

        

       “아냐, 괜찮아. 언젠가 해야 했을 말이니까.”

        

       소희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그리고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나랑 아빠는 둘 다 그때 너무 힘들었거든. 집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맨날 울고. 한참 동안 그러고 있으니까, 나보다 한참 어린 소리가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노력했었어.”

        

       “…….”

        

       어쩌면 그건, 죽음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어린아이라서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때부터, 소리는 그런 감정에 더 민감해진 것 같기도 해. 전부 언니인 내가 언니답지 못해서 그런 거지.”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어투에서 배어 나오는 쓰디쓴 분위기에 내가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남들과 어두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일생 처음인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방적으로 쏘아붙이듯 내 과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어두운 이야기를 들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

        

       조금 불편했다.

        

       물론 내가 그런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먼저 의문을 표한 것은 나였고, 소희는 그 의문에 대답해 주었을 뿐이니까.

        

       “아, 미안, 내가 너무 우울한 이야기를 했나?”

        

       우리 둘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는 것을 깨닫고, 소희는 바로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냐…….”

        

       사실 사과를 해야 할 쪽은 나였는데.

        

       왠지, 저 웃는 얼굴에 사과하면 안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저 말을 삼킬 뿐이었다.

        

       *

        

       집에 씻을 곳이 두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와 소희가 같은 욕실에서 씻으면 되었으니까.

        

       다만 욕실 두 개 중에서 소희 방 쪽에 있는 욕실은 딱 샤워하면서 변기에 물 닿지 않을 정도의 공간만 있는 좁은 형태라서, 저택에서처럼 둘씩 들어가서 씻을 수는 없었다.

        

       번갈아 몸을 씻고, 내가 가지고 온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소희는 언제나 그렇듯 펑퍼짐한 셔츠에 돌핀 팬츠 차림이었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슬슬 자지 않으면 내일이 몹시 피곤해질 것 같아서, 우리는 굳이 밤새 이야기하지 말고 그대로 자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이곳에서 아주 오래 지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며칠은 이곳에 있을 테니까.

        

       시험 삼아 둘 다 침대에 올라가 봤는데,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도 간신히 누구 하나 떨어지지 않을 수준은 되었다.

        

       다른 침대에서 잠들어도 깨어나면 내가 자는 침대에 와 있는 소희의 잠버릇을 생각하면 내일 아침에 우리 둘 중 하나가 바닥에서 자고 있을 거라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주인을 바닥에서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나 때문에 불편하게 할 수도 없고.

        

       “응, 이 정도면 충분히 되겠다.”

        

       ‘충분히’라는 단어가 몹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굳이 반박하지는 않기로 했다.

        

       “좋아, 그럼, 슬슬—”

        

       잘까? 하고 소희가 묻는 순간에, 찰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소리였다.

        

       눈을 거의 뜨지도 못하고, 한 손으로는 눈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베개를 품에 안고 있었다.

        

       “어, 아까 잠든 거 아니었어?”

        

       소희가 그렇게 물었지만, 소리는 여전히 반쯤 잠에 취한 걸음으로 소희의 방으로 들어왔다.

        

       “같이 자자~”

        

       “어…….”

        

       그 말에, 소희가 내 쪽을 흘끗 보았다.

        

       그렇네.

        

       소희는 오랜만에 집에 온 참이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소리도 언니인 소희를 참 좋아했다. 원래는 소희와 같이 자는 일도 많았다고 하니,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언니와 함께 자는 것을 원할 만도 했다.

        

       “아, 저기, 소리야…….”

        

       “같이 자자, 응?”

        

       우리보다 몇 살이나 어린 소리는 우리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었다. 소희 아버지가 옆에서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불을 끄고 거실로 나오시는 것을 우리가 봤으니까.

        

       아마, 도중에 깨어서 이렇게 비몽사몽 하며 소희를 찾아왔겠지.

        

       “아…….”

        

       소희도 동생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결심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미안한데, 오늘은 혼자 자야 할 것 같아…….”

        

       소희가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

        

       그야 언제나 혼자 자 왔으니까. 요즘에는 혼자 자는 일이 없기는 했지만, 하루 정도 혼자가 된다고 해도 무슨 문제가 생길 일도 없다.

        

       “응, 나는 오늘은 소리 방에서—”

        

       소희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언니.”

        

       소리가 몇 걸음 더 걸어서 내 쪽으로 왔다.

        

       “언니도 같이 자자.”

        

       “……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말에, 나는 순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같이 자자, 응?”

        

       소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 꺼진 방에서 자다 나와서 그런지 밝게 불이 켜진 이 방에서 시야가 적응이 안 된 탓도 있겠고, 바로 조금 전까지 잠들어 있다가 깨어서 잠에 반쯤 취한 탓도 있을 거다.

        

       “소리야.”

        

       소희가 조금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한테 그러면 실례야.”

        

       “아, 아냐.”

        

       소희가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부정해버렸다.

        

       “……엉?”

        

       소희도 내가 그런 말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는지, 순간 벙찐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봤다.

        

       “……어, 그게 그러니까…….”

        

       그런 소희에게,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그냥, 같이 자도 괜찮다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래……?”

        

       조심스러운 건 소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

        

       결국, 우리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셋이 나란히 눕게 되었다. 아무리 소리가 어린아이라고 해도 셋이 1인용 침대에 눕기에는 너무 좁았으니까.

        

       소리는 정말로 졸렸는지, 딱딱한 바닥에 깔린 이불 위인데도 눕자마자 바로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가슴을 작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잠든 소리의 모습은, 이렇게 보면 그저 얌전한 공주님 같아서 조금 귀여웠다.

        

       “소리 잠든 다음에는 침대로 올라가서 자도 되는데.”

        

       “나도 이렇게 자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바닥에서 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툼한 이불을 깔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바닥이 좀 많이 딱딱하게 느껴지긴 했다. 이렇게 누워보고 나서야 내가 평소에 쓰는 침대가 얼마나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잠자리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이거대로 꽤 즐겁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친구와 자는 기분이라기보다는, 진짜 동생하고 자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이제 고작 두 번째, 그것도 지난번에는 내가 직접 만난 것도 아닌 소리였는데도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소리가 소희를 똑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자는 소리의 앞머리를 슬쩍 넘기니, 소희와 더더욱 닮았다.

        

       “…….”

        

       소리를 가운데 두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듯 옆으로 누워있었다.

        

       어두침침한 방 안이라, 소희의 실루엣만 겨우 보일 뿐이었지만.

        

       나는 왠지, 나를 보고 있는 소희가 웃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이, 이, 이,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신소희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물론, 소리는 소희의 동생일 뿐이고, 사라와는 완전히 남이긴 했지만……

        

       뭐랄까, 지금 이 상황, 부부가 자식을 사이에 두고 마주 누운 상황이랑 똑같지 않나?

        

       소리 너머의 사라는 그저 실루엣만 간신히 보이는 수준이었지만,

        

       소희는 차마 사라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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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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