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8

     나의 행복은 아스타시아의 행복이다.

     아스타시아의 행복은 합스베르크의 죽음이다.

     이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합스베르크는 아스타시아를 철저한 도구로 보고 있다.

     태어난 순간에는 ‘에르윈 아이페리아의 딸’로서,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와의 동맹을 위한 증거로서 이용되었다.

     황태자는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와 손을 잡고 제국의 자본을 일부 손에 넣었고, 그걸 바탕으로 확실한 권력을 잡았다.

     자라는 순간에는 ‘유일한 황손’으로서, 다른 자식들에 대한 견제용 방패로서 활용되었다.

     다른 자식들에게 능력을 선보이면 아스타시아를 밀어내고 언제든지 황권에 도전할 수 있음을 주지시키며, 서로 경쟁하여 제 뜻대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그레이 지브롤터’를 유혹하기 위한 도구로 두고 있다.

     다른 여러 가문을 상대로 황실의 씨를 뿌려 동맹관계를 맺은 것처럼, 황태자는 아스타시아를 그저 지브롤터를 얻어내기 위한 유용한 존재로만 보고 있다.

     노스트럼 정복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인 지브롤터 협곡을 정복하기 위한 ‘허니트랩’.

     그 정복이 철혈로 정복하는 게 아니라 미인계로 정복을 하는 셈이지만, 어찌 됐든 전쟁 없이 협곡의 문을 열어 무혈입성하면 그게 가장 좋은 것 아니겠는가.

     제국 입장에서는.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의 모든 자원을 전쟁물자로 바꾸어 비행선을 찍어낸다고 하더라도, 비행선은 공교롭게도 안전에 취약하다.

     

     용기사단을 상대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비행선이 어째서 위험한가?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아스타시아.”

     미래의 ‘공중전’에 대하여.

     “만일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가는데, 그보다 위에서 소드 마스터가 갑판 위로 강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추락하겠죠?”

     “예. 추락합니다.”

     전술 마스터 투하.

     500년 노스트럼 왕국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웅 만능주의에 의한 군사전력 첫 번째.

     “소드 마스터가 비행선을 부수고 다니면, 그건 바다에 좌초되는 배와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오히려 더 끔찍하죠.”

     “바다는 그래도 수영이라도 해서 도망칠 수 있지, 하늘은 떨어지면 죽잖아요.”

     “예. 뭔가 낙하할 때 부유 마법을 들고 있거나 휴대용 풍석 같은 걸 가지고 낙하 속도를 줄이면 모르겠지만, 전쟁이랍시고 병력을 수백 명 가까이 한배에 태웠는데 그게 쉽지는 않겠죠.”

     “으음…. 이거,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

     “왕국 역사학에 있습니다.”

     장소는 하늘이 아닌 바다였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400년 전, 세이레네 해협을 지나 노스트럼에 상륙하려고 했던 제국 선단을 초토화시킨 해상왕이 한 분 계셨죠.”

     “그분이 그…세이레네 영지의 시조 아녜요?”

     “엄밀히 따지면 시조는 아닙니다. 세이레네 영지에서는 그가 우리 가문의 먼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저 평범한 어촌 마을의 청년이었죠.”

     노스트럼에서는 평범한 이야기다.

     평범한 어촌 마을 청년이 마을을 잠시 떠나 도시로 향했는데, 돌아왔더니 어촌 마을이 제국군에게 약탈당했다더라.

     복수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갔던 청년은 국왕에게 발탁되어 해군을 이끌게 되고, 소드 마스터가 되어 혈혈단신으로 제국 선단을 전부 파괴했다.

     한 배를 침몰시키고, 그다음 배로 뛰어 갑판에 착지하고, 그러다가 배들이 도망가면 수영을 하거나 물 위를 달려서 배를 습격하는 방식으로.

     “물론 마스터라면 물 위를 달릴 수는 있어도, 하늘을 직접 달리는 건 어렵죠.”

     “어, 으음….”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비행선을 목표로, 추락할 걸 가정하지 않고 뛰어올라 착지만 성공한다면 하늘에서 갈아타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노스트럼은 비룡이 있잖아요?”

     “맞습니다. 이러한 가정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마스터가 비룡을 타고 올라가면 더 쉽죠.”

     즉.

     “언젠가 인간이 마도공학의 도움을 받아, 마나 없이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제국이 마도공학의 개발로 노스트럼을 상대로 ‘이번이야말로 전쟁으로 이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정리해 보자면.

     “어린아이도 손가락 하나만 당기면 영웅마저도 죽일 수 있는 소형 머스킷 같은 게 개발될지도 모르죠.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너도나도 한 방에 죽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릅니다.”

     기술의 발전은 영웅만능주의를 퇴색하게 만들기는 하였으나.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아직 영웅만능주의가 완전하게 사라지기에는, 그것을 이끄는 자도 대적하는 자도 전부 영웅-소드 마스터.

     “기술이 발전되어 삶의 편리함을 가져온 건 편리한 거고, 결국 최종적으로 이기려면 ‘마스터’로서 이겨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법 오랫동안 생각을 해왔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다른 방법을 써서 회유하든, 설득하든, 제압하든 가능합니다. 약물에 의존하게 만들거나, 경제적으로 파산시켜서 빚을 지게 하거나, 가족이나 미래를 인질이나 담보로 잡거나.”

     “…다른 이들은.”

     “한 명을 제외하면 다 통할 방법이죠.”

     합스베르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는 합스베르크 황태자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길러왔습니다.”

     강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개해 드리죠.”

     “소개…?”

     “제 네 번째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을.”

     내가.

     “설령 제가 실패하더라도, 당신이 합스베르크의 명령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명령을 듣고 그에 따르는 인형으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핏줄이라는 끈을 잘라낼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줄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아스타시아 또한.

     “아스타시아. 제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 와서 ‘그녀’를 대할 때, 저는 저택에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어느새 걷다 보니, 옛 보육원 건물에 도착했다.

     “이쪽으로.”

     “…페가수스?”

     옛 보육원 건물 앞.

     하얀색의 털을 가진 날개 달린 말이 얌전히 보육원 입구 앞에 서 있고, 안에서는 향긋한 꽃차의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안에 ‘강자’가 있습니다.”

     문을 열자, 소파에 어딘가 푸른 기운이 감도는 은회색 머리칼의 여인이 다소곳한 차림으로 앉아있다.

     “…….”

     보통의 여인은 아니다.

     뾰족한 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 여인은 엘프다.

     “이분은….”

     아스타시아는 엘프 여인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본인과 비슷한 얼굴이라서?

     혹은 본능적으로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저기…누구세요?”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 아니다.

     진짜로 모르기에, 모를 수밖에 없기에 아스타시아는 눈앞의 엘프가 누군지 내게 바로 물었다.

     “엘프인데, 왜 속옷만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아카데미 제복 입고 있는 거예요?”

     움찔.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입는 제복-비슷하게 생긴 유사제품을 입고 있는 엘프의 귀가 잠시 움찔거렸고, 나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분이 바로 자연의 친구 중 한 명-”

     “제 소개를 하겠어요.”

     “……?”

     평소보다 더 명랑한 목소리.

     “엘프의 숲에서 파견을 나온…’실비’라고 해요.”

     “…….”

     “대장로, 백금경 아이페리아의 명령에 따라, 지브롤터 백작령에서 활동하고 있는 엘프 외교관이랍니다.”

     실비라고 자칭한 여인은 자기 귀를 손으로 쓱 손으로 훑었고, 곧 마나가 반짝임과 동시에 귀가 인간의 것처럼 변했다.

     “와!”

     “평소에는 이렇게 활동하고 있고, 모습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제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엘프들 자체도 기밀이라서, 아마 지브롤터 백작령에서 엘프들이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말하면서 점차 자신감이라도 생기는 건지, 목소리 끝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황손녀, 아스타시아 님이시죠?”

     “아, 네, 그….”

     “와ㅡ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르겠다.

     “다시 한번 소개하죠. 자연의 친구들, 엘프의 숲에서 파견을 나온 실비 님. 편의상 예의를 갖춰서 말하지만, 으음….”

     에라, 모르겠다.

     “우리가 17살이니까, 인간의 나이로 치면 몇 살로 봐야 한다고 그러셨죠?”

     “어, 그게, 그러니까….”

     실비는 입술 옆에 있는 점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16살입니다!”

     기어이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실비.”

     “저, 저기. 혹시 제가 이 엘프님을 상대로….”

     “전력을 다해 실력을 길러보세요. 저는 지난 2년 동안 죽어라 상대를 해봤으니까.”

     뭐, 어찌 됐든.

     “저도 당신도 강해져야 합니다.”

     백금경 아이페리아를 통해 아스타시아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고, 나 또한 다른 방면으로 강해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있는 동안.”

     

     이렇게까지 강해져야 하는 이유?

     “우리의 최대 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더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 * *

     “추하군.”

     흩날리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이사벨라는 무릎을 꿇었다.

     

     “흡혈귀는 부릴 대로 전부 다 부려놓고, 정작 본인은 피를 ‘갈아치우기’로 활동하고 말이야.”

     “다, 닥쳐…!”

     눈에 핏발이 잔뜩 선 이사벨라가 날카롭게 외쳤다.

     “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내가 제국을 위해서 지금까지 한 게 얼마나 많은데!”

     “테르시안 제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준 건 이해하마. 사치를 부려서 황실의 이미지를 실추하고, 폭언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모욕하고, 귀족과 평민 사이의 계급 갈등을 지속적으로 유발하여 노스트럼식 신분체제로 돌아가자는 귀족 여론을 모아 기어이 반란까지 저지르려고 한 것도 인정하마.”

     “…….”

     “덕분에 한 번에 청소할 수 있게 되었거든. 반란군.”

     회백색 스테이크를 소스까지 전부 빵으로 찍어 먹은 황태자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황제 폐하는 노환으로 쓰러지셨고, 황태자비는 반란을 획책했지. 그 아래에 황태자비를 따르는 기사단…아버지의 사람들도 같이 있었고.”

     “그건 당신이 폐하를 암살하려고 했으니까 그런 거야!”

     “암살? 내가? 하.”

     황태자는 키득거리며, 난간을 향해 다가갔다.

     “지브롤터에서 생산되는 자양강장제를 용법에 다른 방법으로 쓰려다가, 심혈관질환으로 쓰러지신 분인데 내가 암살을 하려고 했다?”

     “그 자양강장제라는 캐롤라인, 당신이 선물한 거잖아!!”

     “노인들의 원기 회복에 좋은 약재로 썼어야지. 용법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썼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법이야. 아니면 그걸 사용하려고 했던 ‘대상’이 문제라도 되는 건가?”

     “……!!”

     “부끄럽지도 않나. 이사벨라. 네가 아버지뻘 되는 노인과 정분이 나든 아이를 낳든 그건 상관하지 않는데, 지금 이 상황이 되어서도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게.”

     황태자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하자, 이사벨라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뭐, 괜찮다. 어차피 너를 비롯한 제국의 모든 흡혈귀는 청소가 끝날 거니까.”

     “대머리를 흡혈귀로 만들고, 왕국에 흡혈귀들을 뿌려놓고 그런 말이 나와…?”

     “흡혈귀가 아니라 ‘블러드 엘프’라고 해주겠나? 그저 피에 굶주린 짐승이자 마족으로 전락한 자들과 달리, 이쪽은 그래도 나름 ‘진조’라서 말이야. 뭐,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까 한마디 더 해주자면.”

     철컹.

     “어차피, 다 죽을 거다. 그들도.”

     황태자가 끝에 말뚝이 달린 머스킷을 집어 들었다.

     “대륙은 인간의 것. 더 이상 골드드래곤이 남겨둔 아인(亞人)에 의해 인간 세상이 좌지우지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테르시안 제국은 왕국의 수호룡과 그를 시기한 사악한 마룡-백은룡이 인간들을 두고 벌인 대리전의 역사였으나, 그 추잡한 역사는 이제 마무리 지어야지.”

     “너, 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사벨라. 너는 이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마.”

     철컥.

     “더 이상 인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황태자가 머스킷을 장전했다.

     “드래곤의 잔재와 아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류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바로 나, 합스베르크의 이름 아래에서.”

     “……어차피, 노스트럼에서 영웅이 태어나 망하겠지.”

     “그런 저주, 익숙하군.”

     황태자가 키득거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에게 죽은 이들은 항상 그런 말을 하고는 했지. 하지만 나도 쪼잔하고 뒤끝이 좀 있는 인간이라, 곧 죽을 자가 그런 식으로 웃는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아아ㅡ

     “네 아들, 네 딸.”

     머스킷 끝에 달린 말뚝에 군청색 오러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쓸모가 다 해서 내가 다시 회수했는데, 맛은 없더라.”

     “……뭐?”

     “내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었으니.”

     

     타ㅡ앙.

     “내가 그 열매를 다시 먹어 치웠을 뿐이니라.”

     * * *

     황태자가 마나를 늘리는 방식은 강탈과 흡수.

     그 원리는 노스트럼 왕국의 마법사 영웅이 개발한 ‘마나 드레인’에 근간을 두고 있으니.

     마나를 가진 모든 대상으로부터, 그 마나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예외는 없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