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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
    ​
    “으아아악!”
    “크아앗!”
    ​
    ​
    말의 눈이 불안과 공포로 물들었고, 근육이 마구 요동치며 몸을 비틀었다. 안개가 말들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불안을 증폭시킨 탓이다.
    ​
    ​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위에 올라탄 기사와 병사들의 몸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마구 흔들렸다.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기사들은 말이 앞발을 들어 올려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달랐다.
    ​
    ​
    “으아아악!”
    ​
    ​
    병사들 대다수가 균형을 잃고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떨어진 병사들은 몸을 웅크리며 말의 뒷발차기를 대비했다.
    ​
    ​
    대비한다고 해도 병사의 갑옷 따위로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기에, 바닥에 떨어진 병사들은 눈앞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죽음에 대비했다.
    ​
    ​
    이히히힝!
    ​
    ​
    “어…?”
    ​
    ​
    그런 병사에게 돌아온 건 병사를 떨어뜨리기 무섭게 매섭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 말의 울음뿐이었다. 병사는 멍한 표정으로 숲 깊숙한 곳으로 달려가는 말의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다.
    ​
    ​
    ‘아아! 살았다! 살았어!’
    ​
    ​
    병사가 천운에 감격하고 있을 때, 그와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
    ​
    “아아!”
   “메길리에우스! 안돼!”
    ​
    ​
    제 등에 인간이 떨어지면 무작정 숲 안으로 도망치라는 명령어라도 입력된 것처럼 말들은 미련 없이 숲 안으로 달려갔다. 병사들은 바닥에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엎어져 아련하게 손을 내밀며 제 말을 애타게 불렀지만, 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도망쳐버렸다.
    ​
    ​
    “큭! 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 크아앗!”
    ​
    ​
    이히히힝!!
    ​
    ​
    가장 튼실한 말을 타고 있던 기사단장이 목소리 높여 소리치다가 말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다른 말들이 거의 몸을 뒤집을 것처럼 앞다리를 들어 올렸다.
    ​
    ​
    “우와악!”
    “크아아앗!”
    ​
    ​
    겨우 말 위에서 버티던 기사들이 일제히 바닥에 나뒹굴었다. 
    ​
    ​
    쿠구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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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 마리의 말들이 땅을 짓밟는 소리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울림을 남겼다. 
    ​
    ​
    “안돼!”
   “돌아와아!”
    ​
    ​
    기사들과 병사들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말 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다. 기사단장은 빠르게 몸을 추스른 후 부단장과 함께 부상자 확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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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자가 없는 건 천운이라 할 수 있지만… 부상자조차 한명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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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튼튼한 기사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병사들은 다르다. 운 좋게 말에게 짓밟히지 않고, 뒷발에 차이지 않았다고 해도 말 위에서 떨어졌다면 크고 작은 골절 사고가 생기는 건 당연했다.
    ​
    ​
    기사단장은 단 한명의 부상자조차 없는 기이한 상황에 거북함을 느꼈지만 이내 빠르게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법사에게 부탁하여 수상한 흔적이 없는지 조사 해달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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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사들 또한 부상자 하나 없는 상황에 호기심을 느끼고 기꺼이 마력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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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런 이상 없습니다. 그저… 신기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죠.”
    “흠…”
   
    ​
    마법사의 설명에 기사단장은 티끌만큼 남아있던 거북함을 털어내고, 곧바로 침울해져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아 통솔하기 시작했다.
    ​
    ​
    상황이 얼추 정리되고 있을 때 리안은 마검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
    ​
    ‘진짜 방법이 하나도 없어?’
    [ 그으러엇타아아앗..! ]
    ​
    ​
    마검은 흔들리는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리안이 흔드는 걸 멈추자 다시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마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
    ​
    ‘뭔가… 안개가 더 짙어진 거 같은데?’
    ​
    ​
    흐릿하게 보이던 기사 무리가 실루엣만 남을 정도로 안개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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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 안개가 너무 짙어진 거…어?”
    ​
    ​
    옆에 있던 아이리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자 고개를 돌린 순간, 텅 빈 자리를 마주해야 했다. 아이리스는 물론이고 제스와 네로, 마법사들까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
    ​
    “어어어?”
    ​
    ​
    마차에 홀로 남게 된 리안은 곧바로 마차 밖으로 나와 기사 무리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도 텅 빈 상태였다.
    ​
    ​
    “이게 무슨….”
    [ 숲에 홀린 거다. ]
    “홀렸다고?”
    [ 그래, 정신력이 높은 파트너를 제외하곤 전부 숲에 홀려서 뿔뿔이 흩어진 거지. ]
    “뭐? 언제?”
    [ 파트너가 마차 구석에서 나를 흔들고 있을 때? ]
    “진작 말해줬어야지!”
    [ 안 물어봤잖아. ]
    ​
    ​
    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마검을 허리춤에 찼다. 
    ​
    ​
    ‘우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찾자.’
    [ 으음.. 가장 가까이라. 저쪽으로 가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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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검에서 검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한쪽 길을 가리켰다. 리안은 곧바로 마검이 가리킨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안개가 내려앉은 숲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사람들이 흩어진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보면 기이하게 느껴지는 고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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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리안의 모든 움직임에 따라붙으며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개 속에서 나무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마치 유령의 손길처럼 뻗은 가지는 섬뜩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
    ​
    ‘이거… 완전 공동묘지 분위기인데?’
    ​
    ​
    개그 세계 특, 공동 묘지 같은 장소엔 자욱한 안개가 깔리며 온갖 영적인 것들이 살고 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존재일수록 귀신들에게 악독한 짓을 당한다.
    ​
    ​
    그 말은 곧 태연하게 반응할수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
    ​
    ‘개그 필터 때문에 주변에서 뭐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해야 -…’
    ​
    ​
    생각이 끝을 맺기도 전에.
    ​
    ​
    투둑.
    ​
    ​
    “어?”
    ​
    ​
    차가운 감촉이 정수리 위에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정수리를 더듬는 순간.
    ​
    ​
    투둑…투두둑, 쏴아아아아 -..
    ​
    ​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되다만 비인지 빗물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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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허겁지겁 가까운 나무로 다가가 그 아래에 섰다. 다른 나무 보다 덜 자란 나무는 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무를 찾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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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덥석!
    ​
    ​
    “….!”
   “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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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숙한 목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에 무언가가 씌워졌다. 후드가 달린 망토 형태의 옷이었다.
    ​
    ​
    따로 어떠한 처리가 된 건지, 아니면 특별한 천을 쓴 건지 머리와 옷을 축축하게 적시던 빗물이 옷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이곳의 우비로 사용되는 옷 같았다.
    ​
    ​
    얼굴을 반쯤 가리는 후드를 살짝 뒤로 넘겨 시야를 확보한 후 앞을 바라보자, 빗물이 흘러내리는 녹색 우비가 보였다. 눈동자를 굴려 아래쪽을 바라보자 제 손목을 잡아끄는 익숙한 손이 보였다. 
    ​
    ​
    남자라기엔 작고 여자라기엔 조금 큰 크기의 손.
    ​
    ​
    투둑, 투두둑.
    ​
    ​
    우비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상대의 뒤를 따라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
    ​
    ‘잠깐, 이거 귀신이 장난치는 거 아니야?’
    ​
    ​
    지인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 한껏 장난을 치다가 “내가 아직도 00처럼 보여?”같은 대사를 치는 귀신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싹한 느낌에 곧바로 손을 쳐내려는 순간.
    ​
    ​
    “찾았다.”
    ​
    ​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쏟아지던 빗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
    ​
    “여긴..”
    ​
    ​
    주변을 둘러보자 새카만 어둠이 그를 반겼다. 자연스레 형성된 돌기둥과 습기로 축축한 벽, 대부분 돌로 이루어진 암석 바닥. 비를 피하기 딱 좋은 동굴이었다.
    ​
    ​
    화르륵.
    ​
    ​
    앞쪽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미리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고 있는 녹색 우비의 모습이 보였다.
    ​
    ​
    “후우… 이러면 체온이 떨어지지 않을 거야.”
    ​
    ​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잘한 흉터가 남은 손이 후드를 뒤로 슥 밀어 넘겼다. 갈색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흐트러지고 영롱한 녹안이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녹색 우비의 정체는 레인저 부대와 함께 떠났던 노아였다.
    ​
    ​
    “옷 젖었지? 가까이 와서 말려.”
   
    ​
    그 말에 곧바로 모닥불 곁으로 다가가려다가 우비에서 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걸 보곤 발걸음을 멈췄다. 의아해하는 노아의 모습에 후다닥 우비를 벗어서 안이 바깥쪽으로 가도록 접었다. 
    ​
    ​
    “자, 잠깐! 그…그렇게 많이 젖었어?”
    “응?”
    ​
    ​
    모닥불과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노아의 볼이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노아의 시선이 정처 없이 흔들리며 갈 곳을 헤매다가 리안을 흘긋거리길 반복했다.
    ​
    ​
    옷을 말리라고 하기 무섭게 냅다 우비를 벗어버리니, 젖은 옷을 전부 벗어 말리려는 것처럼 보인 탓이다. 노아의 머릿속에 ‘아무리 그래도 옷을 벗는 건…!’이라는 의견과 ‘하지만 옷을 안 말리면 감기 걸리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치열하게 의견을 교환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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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아이리스 어머니는 다음화나 그 다음화에 만날 것 같습니다. ‘ㅂ’9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으아아악!”

“크아앗!”

말의 눈이 불안과 공포로 물들었고, 근육이 마구 요동치며 몸을 비틀었다. 안개가 말들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불안을 증폭시킨 탓이다.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위에 올라탄 기사와 병사들의 몸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마구 흔들렸다.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기사들은 말이 앞발을 들어 올려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달랐다.

“으아아악!”

병사들 대다수가 균형을 잃고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떨어진 병사들은 몸을 웅크리며 말의 뒷발차기를 대비했다.

대비한다고 해도 병사의 갑옷 따위로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기에, 바닥에 떨어진 병사들은 눈앞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죽음에 대비했다.

이히히힝!

“어…?”

그런 병사에게 돌아온 건 병사를 떨어뜨리기 무섭게 매섭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 말의 울음뿐이었다. 병사는 멍한 표정으로 숲 깊숙한 곳으로 달려가는 말의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다.

‘아아! 살았다! 살았어!’

병사가 천운에 감격하고 있을 때, 그와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메길리에우스! 안돼!”

제 등에 인간이 떨어지면 무작정 숲 안으로 도망치라는 명령어라도 입력된 것처럼 말들은 미련 없이 숲 안으로 달려갔다. 병사들은 바닥에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엎어져 아련하게 손을 내밀며 제 말을 애타게 불렀지만, 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도망쳐버렸다.

“큭! 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 크아앗!”

이히히힝!!

가장 튼실한 말을 타고 있던 기사단장이 목소리 높여 소리치다가 말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다른 말들이 거의 몸을 뒤집을 것처럼 앞다리를 들어 올렸다.

“우와악!”

“크아아앗!”

겨우 말 위에서 버티던 기사들이 일제히 바닥에 나뒹굴었다.

쿠구구구궁!

수십 마리의 말들이 땅을 짓밟는 소리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울림을 남겼다.

“안돼!”

“돌아와아!”

기사들과 병사들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말 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다. 기사단장은 빠르게 몸을 추스른 후 부단장과 함께 부상자 확인에 나섰다.

“사망자가 없는 건 천운이라 할 수 있지만… 부상자조차 한명도 없다고?”

몸이 튼튼한 기사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병사들은 다르다. 운 좋게 말에게 짓밟히지 않고, 뒷발에 차이지 않았다고 해도 말 위에서 떨어졌다면 크고 작은 골절 사고가 생기는 건 당연했다.

기사단장은 단 한명의 부상자조차 없는 기이한 상황에 거북함을 느꼈지만 이내 빠르게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법사에게 부탁하여 수상한 흔적이 없는지 조사 해달라 부탁했다.

마법사들 또한 부상자 하나 없는 상황에 호기심을 느끼고 기꺼이 마력을 풀어냈다.

“아무런 이상 없습니다. 그저… 신기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죠.”

“흠…”

마법사의 설명에 기사단장은 티끌만큼 남아있던 거북함을 털어내고, 곧바로 침울해져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아 통솔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얼추 정리되고 있을 때 리안은 마검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진짜 방법이 하나도 없어?’

[ 그으러엇타아아앗..! ]

마검은 흔들리는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리안이 흔드는 걸 멈추자 다시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마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뭔가… 안개가 더 짙어진 거 같은데?’

흐릿하게 보이던 기사 무리가 실루엣만 남을 정도로 안개가 짙어졌다.

“아이리스 안개가 너무 짙어진 거…어?”

옆에 있던 아이리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자 고개를 돌린 순간, 텅 빈 자리를 마주해야 했다. 아이리스는 물론이고 제스와 네로, 마법사들까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어어?”

마차에 홀로 남게 된 리안은 곧바로 마차 밖으로 나와 기사 무리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도 텅 빈 상태였다.

“이게 무슨….”

[ 숲에 홀린 거다. ]

“홀렸다고?”

[ 그래, 정신력이 높은 파트너를 제외하곤 전부 숲에 홀려서 뿔뿔이 흩어진 거지. ]

“뭐? 언제?”

[ 파트너가 마차 구석에서 나를 흔들고 있을 때? ]

“진작 말해줬어야지!”

[ 안 물어봤잖아. ]

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마검을 허리춤에 찼다.

‘우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찾자.’

[ 으음.. 가장 가까이라. 저쪽으로 가면 된다. ]

마검에서 검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한쪽 길을 가리켰다. 리안은 곧바로 마검이 가리킨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개가 내려앉은 숲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사람들이 흩어진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보면 기이하게 느껴지는 고요였다.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리안의 모든 움직임에 따라붙으며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개 속에서 나무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마치 유령의 손길처럼 뻗은 가지는 섬뜩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이거… 완전 공동묘지 분위기인데?’

개그 세계 특, 공동 묘지 같은 장소엔 자욱한 안개가 깔리며 온갖 영적인 것들이 살고 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존재일수록 귀신들에게 악독한 짓을 당한다.

그 말은 곧 태연하게 반응할수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개그 필터 때문에 주변에서 뭐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해야 -…’

생각이 끝을 맺기도 전에.

투둑.

“어?”

차가운 감촉이 정수리 위에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정수리를 더듬는 순간.

투둑…투두둑, 쏴아아아아 -..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되다만 비인지 빗물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리안은 허겁지겁 가까운 나무로 다가가 그 아래에 섰다. 다른 나무 보다 덜 자란 나무는 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무를 찾으려는 순간.

덥석!

“….!”

“이리와.”

익숙한 목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에 무언가가 씌워졌다. 후드가 달린 망토 형태의 옷이었다.

따로 어떠한 처리가 된 건지, 아니면 특별한 천을 쓴 건지 머리와 옷을 축축하게 적시던 빗물이 옷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이곳의 우비로 사용되는 옷 같았다.

얼굴을 반쯤 가리는 후드를 살짝 뒤로 넘겨 시야를 확보한 후 앞을 바라보자, 빗물이 흘러내리는 녹색 우비가 보였다. 눈동자를 굴려 아래쪽을 바라보자 제 손목을 잡아끄는 익숙한 손이 보였다.

남자라기엔 작고 여자라기엔 조금 큰 크기의 손.

투둑, 투두둑.

우비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상대의 뒤를 따라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잠깐, 이거 귀신이 장난치는 거 아니야?’

지인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 한껏 장난을 치다가 “내가 아직도 00처럼 보여?”같은 대사를 치는 귀신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싹한 느낌에 곧바로 손을 쳐내려는 순간.

“찾았다.”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쏟아지던 빗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여긴..”

주변을 둘러보자 새카만 어둠이 그를 반겼다. 자연스레 형성된 돌기둥과 습기로 축축한 벽, 대부분 돌로 이루어진 암석 바닥. 비를 피하기 딱 좋은 동굴이었다.

화르륵.

앞쪽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미리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고 있는 녹색 우비의 모습이 보였다.

“후우… 이러면 체온이 떨어지지 않을 거야.”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잘한 흉터가 남은 손이 후드를 뒤로 슥 밀어 넘겼다. 갈색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흐트러지고 영롱한 녹안이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녹색 우비의 정체는 레인저 부대와 함께 떠났던 노아였다.

“옷 젖었지? 가까이 와서 말려.”

그 말에 곧바로 모닥불 곁으로 다가가려다가 우비에서 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걸 보곤 발걸음을 멈췄다. 의아해하는 노아의 모습에 후다닥 우비를 벗어서 안이 바깥쪽으로 가도록 접었다.

“자, 잠깐! 그…그렇게 많이 젖었어?”

“응?”

모닥불과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노아의 볼이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노아의 시선이 정처 없이 흔들리며 갈 곳을 헤매다가 리안을 흘긋거리길 반복했다.

옷을 말리라고 하기 무섭게 냅다 우비를 벗어버리니, 젖은 옷을 전부 벗어 말리려는 것처럼 보인 탓이다. 노아의 머릿속에 ‘아무리 그래도 옷을 벗는 건…!’이라는 의견과 ‘하지만 옷을 안 말리면 감기 걸리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치열하게 의견을 교환해 나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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